영화이야기/2013년 영화이야기

[전국노래자랑] - 현실의 이야기가 판타지로 귀결되다.

쭈니-1 2013. 5. 17. 09:40

 

 

감독 : 이종필

주연 : 김인권, 류현경, 김수미, 오광록, 오현경, 김환희, 유연석, 이초희

개봉 : 2013년 5월 1일

관람 : 2013년 5월 15일

등급 : 12세 관람가

 

 

[고령화 가족]에 이은 [전국노래자랑]

 

[고령화 가족]을 보고나니 어느 정도 제 마음도 힐링이 되더군요. 최근 들어서 처음으로 뭔가 마음이 가벼워진 느낌이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집으로 가서 그 느낌 그대로 [고령화 가족]의 영화 이야기를 쓰고 싶었지만 이번엔 [전국노래자랑]이 제 발목을 잡았습니다.

[전국노래자랑]은 5월 1일 개봉 이후부터 계속 '본다 본다' 마음만 먹다가 2주 동안 뒤로 미뤄둔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개봉날인 5월 1일에는 예매까지 했다가 감기 때문에 병원에 가느라 결국 예매를 취소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었죠.

하지만 2주가 지나는 동안 [전국노래자랑]을 안 본 진짜 이유는 감기 때문에 제 몸의 컨디션이 안좋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이 영화를 먼저 보신 분들이 코미디보다는 감동으로 영화의 코드가 맞춰져 있다고 해서 마음이 내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았기에 가볍게 웃고 즐길 수 있는 영화이기를 기대했는데, 웃음보다 눈물을 앞세운 영화라고 하니 보기가 꺼려 지더라고요.

 

결국 [고령화 가족]을 본 기세를 몰아 [전국노래자랑]을 봤지만, 확실히 기대했던 것보다 웃음 코드는 많이 약했습니다.

하지만 '전국노래자랑'이라는 33년의 역사를 가진 TV 프로그램을 매개체로, 평범한 서민들의 평범하지만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잘 엮어 놓아서 '영화가 재미없었다'라는 느낌은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분명 만족스러운 느낌보다는 아쉬운 점이 조금 더 많았습니다. 코믹 연기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김인권을 캐스팅했으면서도 관객을 제대로 웃기지 못했다는 것도 아쉬웠고, 너무 많은 에피소드를 늘어 놓다보니 딱히 마음에 와닿는 주인공이 부족했다는 것도 아쉬웠습니다. 차라리 봉남(김인권)과 미애(류현경)를 중심으로 다른 곁가지들은 조금 처냈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아쉬웠던 것은 서민의 평범한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결국 현실의 감동 대신 유쾌한 판타지로 귀결되었다는 부분입니다. [전국노래자랑]이 웃음과 감동이 공존하는 영화이기를 기대했는데, 아무래도 제 기대가 어긋나니 영화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먼저 눈에 들어오네요.

 

 

[전국노래자랑]은 왜 김인권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는가?

 

[전국노래자랑]의 장르가 코미디인 이유는 우리나라 코미디계의 대부인 이경규가 제작을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주연이 김인권이기 때문입니다.  

김인권은 참 특이한 배우입니다. 그는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특출난 매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왠지 마음이 '짠'해집니다. 

웃고 있지만 눈물이 나는 그의 연기의 절정은 [방가? 방가!]에서 그 진수를 맛볼 수 있습니다. [방가? 방가!]는 취업을 위해 부탄에서 왔다고 속이는 방태식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인 청년 실업 문제와 불법 체류자 문제를 웃음과 감동으로 잘 버무려냈습니다.

저는 [방가? 방가!] 이전까지만해도 김인권을 그저 영화의 양념같은 역할을 해내는 조연 배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방가? 방가!]를 보고나니 김인권 그 자체로도 상당한 매력을 갖춘 배우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전국노래자랑]에서 [방가? 방가!]의 김인권 만이 해낼 수 있는 코미디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분명 [전국노래자랑]은 제가 기대했던 김인권의 매력을 이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 김인권이 연기한 박봉남은 가수가 되는 것이 꿈이지만, 결혼 후 돈을 벌기 위해 억지로 아내인 미애 밑에서 미용 기술을 배우고 있습니다. 

가수라는 이루고 싶은 꿈을 포기하고 현실과 타협하며 미용 기술을 배우는 박봉남. 그러한 캐릭터 성격만으로도 박봉남은 딱 김인권과 어울리는 캐릭터였습니다. 

하지만 [전국노래자랑]은 욕심이 많았습니다. 김인권의 매력 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박봉남 말고도 수 많은 다른 캐릭터들에게 각자의 에피소드를 부여함으로서 오히려 가장 매력적인 카드인 박봉남의 분량을 줄이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그 결과 김인권의 코믹 연기는 영화의 초반 대리운전비로 받은 만원권을 화장실 휴지로 사용하는 장면 외에는 특별히 없습니다. 서민 코미디를 지향하는 [전국노래자랑]은 가장 매력적인 카드를 손에 쥐었으면서 다른 카드를 사용하기 위해 김인권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셈입니다.

 

 

집으로... 로맨틱 코미디... 정치 코미디...

 

그렇다면 이종필 감독이 김인권이라는 매력적인 카드를 손에 쥐었으면서 그 카드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그 대신 사용한 카드들은 무엇일까요?  

첫번째 카드는 어린 유승호의 풋풋한 모습을 볼 수 있는 2002년 영화 [집으로...]를 연상하게 만드는 오영감(오현경)과 보리(김환희)의 에피소드입니다. 바쁜 엄마 탓에 외할아버지에게 맡겨진 보리. 그녀는 후라이드 치킨, 햄버거도 사주지 않는 할아버지를 싫어하지만 막상 엄마와 함께 캐나다로 떠나야하는 날이 다가오자 혼자 남겨진 할아버지를 걱정하며 노래를 부릅니다.

솔직히 오영감과 보리의 에피소드 역시 너무 짧아 [집으로...]의 감동을 느끼기에 부족했지만 후반부에 보리가 오영감을 위해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코 끝이 찡해졌습니다. 역시 감동 코드에는 어린 아역 배우의 눈물 연기만큼 좋은 것이 없음을 다시한번 증명한 셈입니다.

두번째 카드는 회사 동료인 동수(유연석)를 짝사랑하는 현자(이초희)의 에피소드입니다. 이 에피소드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외형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유연석과 이초희의 풋풋한 매력이 중요합니다. 짝사랑에 빠진 순진한 여성의 마음을 너무 오버하여 표현한 이초희의 연기가 조금 눈에 거슬렸지만, 마지막에 현자가 동수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 만큼은 로맨틱 코미디의 매력이 흠뻑 묻어났습니다.

 

세번째 카드는 주시장(김수미)을 '전국노래자랑'의 본선에 진출시키고자 고군분투하는 맹과장(오광록)의 모습을 통한 정치 코미디입니다.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하여 시민들에게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고자 하는 주시장과 음치인 주시장이 본선에 진출하게 만들기 위해 진땀을 빼는 맹과장의 모습은 우리나라 정치의 현실을 잘 보여줬습니다.

이렇듯 이종필 감독이 내민 카드들은 분명 각각의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1시간 50분이라는 제한된 러닝타임동안 봉남의 이야기는 물론 이들 에피소드를 전부 풀어 내놓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너무 많은 이야기가 한꺼번에 전개되니 이들 에피소드는 어느 정도의 매력은 지니고 있지만, 관객에게 큰 웃음과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매력은 미처 갖추지 못한 것입니다.

이경규의 첫번째 제작 영화인 [복면달호]가 트로트 기획사인 '큰소리 기획'의 여러 캐릭터들을 보여주면서도 봉달호(차태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영화를 진행시켰던 것에 반에, [전국노래자랑]에서 박봉남은 여러 캐릭터 중의 하나일뿐, 극의 중심을 잡아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국노래자랑]이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다가 너무 어수선해져버린 느낌을 받았습니다.

 

 

현실을 포기하고 판타지를 택하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좋았습니다. 홀로 남겨진 할아버지를 위한 보리의 노래도 좋았고, 동수에게 고백을 하는 현자의 노래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특히나 좋았던 것은 역시 봉남의 노래입니다. 가끔 노래방에서 싸이의 <챔피언>을 부르는 사람이 있는데, 이 노래는 정말 열정을 다해서 부르지 않으면 오히려 노래방의 분위기를 '싸~'하게 만드는 노래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봉남이 부르는 <챔피언>은 정말 흥겨웠습니다. 현실에 벽 때문에 가수의 꿈을 포기한 봉남이 그 모든 한과 서러움을 단숨에 날려버리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부르는 무대. 그 자체만으로도 [전국노래자랑]은 충분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한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영화에서 부활의 김태원이 나오는 장면부터 뭔가 불안하더니, 급기야 영화가  끝나기 전 6개월 후의 모습을 통해 모두가 행복한 기적을 보여줍니다. 아마도 코미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감동 코드만 내세운 것이 마음에 걸려, 마지막 엔딩만으로도 코미디적으로 마무리하자는 결정에서 나온 무리수인 듯이 보입니다.

 

그 결과 이 영화의 에피소드가 '전국노래자랑'에 참가한 우리 이웃들의 사연을 엮은 것이라는 영화 초반의 자막과는 달리, 6개월 만에 스타가 되어 광화문 광장에서 공연을 하는 봉남의 모습이 낯설게 보여졌습니다.

이경규는 [전국노래자랑]으로 칸 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하고, 보리는 할아버지의 곁으로 돌아오고, 동수와 현자는 결혼을 하고, 맹과장은 국장으로 승진하고, 주시장의 지지도는 올라가고...

분명 모두가 행복한 마무리이긴 하지만 현실의 이야기를 통해 서민의 이야기를 잘 잡아낸 영화의 마무리치고는 너무 판타지로 흘러가 버려서 이 영화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라리 현실적으로 봉남이 미애와 미용실을 잘 운영하며 틈틈히 취미 생활로 공연을 하는 마무리였다면 더 현실적이지 않았을까요?  

[전국노래자랑]을 총평한다면 여러 에피소드를 통한 볼거리를 준비했지만 너무 무난하여 오히려 심심한 그런 영화였습니다. 봉남의 중심으로 에피소드를 정리하고, 마지막의 판타지만 자제했다면 더 재미있는 서민 코미디가 되지 않았을런지... 조금은 아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김인권의 영화도 아니고, 이종필 감독의 영화도 아닌,

33년 전통의 <전국노래자랑>과 코미디계의 대부 이경규의 영화가 되어 버렸다.

[복면달호]와는 달리 자신의 색깔을 조금 더 내고 싶어한 이경규의 욕심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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