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정근섭
주연 : 김상경, 엄정화, 송영창
개봉 : 2013년 5월 16일
관람 : 2013년 5월 16일
등급 : 15세 관람가
유아납치 영화는 안보려고 했다.
5월 16일에 개봉하는 영화들 중의 기대작이라 할 수 있는 영화는 모두 네편이었습니다. 그러한 기대작 중에서 제가 가장 후순위로 밀어뒀던 영화가 바로 [몽타주]입니다.
사실 [몽타주]를 후순위로 미뤄덨던 이유는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닌, 유아 납치라는 끔찍한 소재 때문입니다. 결혼을 하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되고나니 그 무엇보다도 유아납치만큼 끔찍한 것이 없더군요. 그래서 결혼한 후부터는 유아납치 소재의 영화를 되도록이면 안보려고 애쓰는 편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2007년에 개봉해서 큰 화제가 되었던 이형호군 유괴살해사건을 다룬 [그놈 목소리]를 보지 못했습니다. 영화 예고편에 '그놈 목소리'만 들어도 온 몸에 소름이 끼치는데 정말 그 어떤 공포 영화보다도 무서웠기 때문이죠.
[그놈 목소리]는 너무 리얼한 유아납치 영화라서 끝내 보지 못했다면, 약간은 영화적 설정이 섞인 [세븐 데이즈]는 큰 용기를 내서 봤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부들 부들 떨다가 집에 왔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저는 [세븐 데이즈]를 보고나서 부모의 절박한 마음을 상업적으로 이용한 유아납치 영화를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었습니다.
그러나 [고령화 가족], [전국노래자랑], [미나 문방구]를 연달아 보면서 조금은 강한 영화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서 본 영화들은 한결같이 착한 코미디 영화들이었기 때문이죠.
결국 [미나 문방구]를 본 후 약간의 망설임 끝에 저는 [몽타주]를 선택했습니다. 최소한 [그놈 목소리]처럼 리얼한 유아납치 영화는 아닐 것 같았고, 주연을 맡은 김상경이 '속 시원한 [살인의 추억]'이라고 영화를 소개해줬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김상경의 영화 소개는 유아납치 영화를 무서워하는 제게 용기를 불어 넣어준 셈입니다.
그렇게해서 저는 평일 오전에 텅빈 극장에서 [몽타주]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검은 비닐봉지를 뒤집어 쓴 엄정화의 모습과 차사고가 나는 김상경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영화의 오프닝에서 가슴이 철렁 내려 앉기는 했지만, 대체적으로 영화는 부들 부들 떨만큼 무섭지는 않았습니다.
일단 스릴러의 반전 장치는 꽤 성공한 편이었고, 주연 배우들의 연기도 참 좋았습니다. 수 많은 영화에 출연했지만 언제나 섹시 여가수의 이미지가 강했던 엄정화는 이번 영화를 통해 제게 가수가 아닌 배우로 인식될 듯합니다.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몽타주]의 영화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한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제 글을 읽는 것을 가급적 피하셨으면 합니다. 저는 영화의 스포를 노출하지 않으며 영화에 대한 제 느낌을 솔직하게 쓰는 것이 아직은 서툴기 때문입니다.
공소시효? 그딴거 몰라요. 내 딸 데려간 범인을 잡아주세요.
공소시효... 어떤 범죄에 대하여 일정 기간이 지나면 형벌권이 소멸되는 제도입니다. 말 그대로 공소시효가 지나면 그 어떤 범죄라도 법적인 처벌이 불가능해집니다.
2012년 11월에 개봉해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내가 살인범이다]는 그러한 법의 헛점을 정확히 파고든 스릴러 영화였습니다. 끔찍한 연쇄 살인사건을 벌인 살인마가 15년이라는 공소시효가 지난 후에 '내가 살인범이다'라고 스스로 밝히며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는 독특한 소재를 담고 있습니다.
[몽타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몽타주]를 본 후 [살인의 추억]이 아닌 [내가 살인범이다]가 떠오른 이유는 [몽타주] 역시 공소시효라는 법의 헛점을 파고든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15년 전, 유괴범에게 딸을 잃은 하경(엄정화)과 당시 담당 경찰이었던 청호(김상경)는 1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건만 그 날의 악몽을 절대 잊지 못합니다. 15년이라는 세월동안 딸을 죽인 범인이 잡히길 하염없이 기다리는 하경. 하지만 청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공소시효가 지나서 더이상 범인을 잡을 수 없다는 통보를 하는 것 뿐입니다.
청호의 동료 형사가 하경에게 공소시효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은 하경 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는 제게도 분노를 느끼게 합니다. 시간이 많이 지남에 따라 증거 판단이 어렵고, 범인도 15년이라는 시간동안 충분히 괴로워하며 뉘우쳤을 것이라는 설명에서 하경은 울부짖습니다. "공소시효... 그딴거 몰라요. 내 딸 데려간 범인을 잡아주세요. 범인을 잡아주신다고 약속했잖아요."
[몽타주]가 영리한 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정근섭 감독은 공소시효라는 법의 헛점을 이용해서 관객이 분노를 느끼게끔 만듭니다. 하경의 울부짖음을 통해 피해자 가족은 괴로움 속에 사는데, 범인은 오히려 발 뻗고 편하게 살 수 있는 공소시효의 부조리함을 꼬집습니다.
그러면서 하경과 청호에게 범인을 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줍니다. 공소시효가 몇 시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범인과 맞딱뜨린 하경과 청호.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범인은 또 다시 유유히 사라집니다. 그러한 장면들 속에서 저는 '저 놈을 꼭 잡고 싶다.'라는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사실 [몽타주]는 위험 요소가 많았습니다. 그 위험 요소는 바로 15년 전의 사건을 관객 앞에 풀어서 보여줄 수 없다는 점입니다. 영화는 15년 후의 사건에 집중해야 하는 만큼 15년 전의 사건은 잠깐의 회상씬으로 마무리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15년 전의 사건을 보여 주지 않는다면 범인에 대한 관객의 분노를 이끌 어낼 수가 없습니다. [몽타주]는 기본적으로 하경과 청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이고, 그들은 15년 전의 사건에 옭아매어 있습니다.
[몽타주]는 바로 그러한 약점을 공소시효라는 관객 모두가 느낄 법의 부조리함과 안타깝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범인의 마지막 행적을 관객들이 손에 땀을 쥐며 지켜보게 함으로서 해소하는 것이죠. 이제 하경과 청호가 그러했듯이 영화를 보는 저 역시 '공소시효건 뭐건간에 저 놈을 꼭 잡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영화에 몰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속 시원한 [살인의 추억]'의 함정
그렇게 공소시효가 지나고 하경 혼자 부질없이 15년 전의 범인을 뒤쫓고 있는 상황. 그러한 가운데 15년 전의 사건과 똑같은 수법의 유괴 사건이 다시 발생합니다. 그리고 무기력하던 청호도 다시 활기를 되찾습니다. 이번엔 그 놈을 꼭 잡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어쩌면 이것은 청호에겐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비록 피해자 가족들은 어린 딸이 유괴되는 아픔을 겪지만, 새로운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집의 쇼파에서 무기력하게 누워 있던 청호는 강형사(조희봉)의 방문을 받고 다시 의욕을 불태웁니다.
[몽타주]는 이때부터 새로운 사건으로 진행됩니다. 영화를 보는 저도 이번 사건을 통쾌하게 마무리하여 공소시효가 지난 15년 전 사건의 한풀이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영화에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범인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지능적으로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가던 범인은 급기야 피해자 가족 중의 한명인 한철(송영창)에게 누명을 씌웁니다.
그런데 이쯤에서 저는 [몽타주]를 소개한 김상경의 한마디가 번뜩 생각이 났습니다. '속 시원한 [살인의 추억]' 어쩌면 저는 이 한마디에 잠시 잊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유아납치를 소재로한 영화에서 속 시원함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아무리 범인을 잡는다고 해도 납치되었던 아이의 상처와 자녀를 납치당한 부모의 두려움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저는 잠시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점이 이 영화의 맹점입니다. 공소시효가 지나 범인을 잡아도 어쩔 수가 없는 상황. 그런데 새로운 사건이 벌어지고, 범인은 15년 전의 사건과 같은 범인으로 추정됩니다.
청호와 하경에겐 그러한 새로운 사건은 기회입니다. 잡아도 처벌할 수 없는 범인을 이번에야말로 처벌할 수 있는 기회. 그런데 그것을 기회라고 한다면 딸을 납치당한 가족들에겐 너무 가혹한 일입니다. 설사 범인을 잡는다고 해도 그들의 상처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김상경은 [몽타주]를 속 시원한 [살인의 추억]이라 표현했습니다. 과연 그러한 표현은 김상경의 말 실수일까요? 한철이 범인으로 몰리는 상황에서 저는 '속 시원한 [살인의 추억]이 뜻하는 바가 무엇일까?'라는 궁금증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15년 전의 사건을 위주로 [몽타주]를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공소시효가 지나 딸을 죽인 유괴범을 잡아도 처벌할 수 없는 하경의 가슴 아픈 사연 때문에 한철 가족의 아픔은 잠시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철이 돈 때문에 손녀딸을 유괴한 매정한 할아버지가 되는 상황에서 저는 한철의 억울함 보다는 이러다가 진범을 또다시 놓칠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잘못 그려진 '몽타주'로 범인찾기
저는 [몽타주]가 굉장히 영리한 스릴러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15년 전의 사건을 자세히 보여주지 않아도 공소시효라는 법의 헛점과 공소시효 만료 이전에 아슬아슬하게 범인을 놓치는 장면만으로 제가 하경과 청호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그와는 반대로 15년 후의 유괴 사건은 제가 피해자 가족들에게 감정을 이입할 수 없도록 최대한 막아냅니다. 영화 자체가 15년 전의 사건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닌, 한철 손녀 딸의 유괴 사건으로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몽타주]는 관객이 한철과 감정을 이입하는 것을 철저하게 방해합니다.
그러한 결과 한철은 손녀딸이 유괴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화면에서 사라집니다. 한철에게 감정이입을 할 시간도, 그를 불쌍하게 생각할 시간도 [몽타주]는 주지 않은 셈입니다. 아무도 한철이 사라진 것에 대해서 신경쓰지 않는 이상한 상황. 결국 저는 새로운 사건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15년 전의 사건에 매달리는 청호에게 계속 감정을 이입하게 되고 하경이 불쌍하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보게 되는 것이죠.
그렇기에 한철이 다시 나타나 누명을 썼을 때에도 한철의 억울함보다는 진범을 놓치는 것이 더 안타깝게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영화의 진실이 밝혀지는 그 순간 김상경의 말 그대로 속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몽타주]가 '속 시원한 [살인의 추억]'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정근섭 감독의 철저한 계산에 의한 연출 덕분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저는 정근섭 감독의 반칙에 속고 있었습니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청호는 15년 전 범인의 '몽타주'를 보며 "몽타주가 잘 못 그려졌으니 범인을 잡을리가 없지."라고 한탄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비단 청호에게 국한된 대사가 아닙니다. [몽타주]를 보며 나름 반전을 추리하던 저와 같은 관객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관객의 입장에서 영화 속의 범인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단서는 영화 속에서 찾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스릴러 영화의 감독들은 반전을 숨기기 위해 온갖 반칙을 동원하기도 합니다. 영화 속에 관객이 범인을 추리할 수 있는 단서를 안보여주거나, 말도 안되는 억지를 쓰기도 합니다. 그럴 경우 그 영화는 영락없이 재미없는, 억지스러운 스릴러가 됩니다.
정근섭 감독은 분명 관객들에게 단서를 충분히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억지를 쓰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대신 편집을 시간의 순서대로 나열하지 않음으로서 관객에게 혼돈을 준 것입니다. 대부분의 영화들이 시간의 순서대로 편집되어 있기에 저는 [몽타주] 역시 시간의 순서대로 편집되어 있을 것이라 섣불리 판단한 것입니다.
결국 15년 전, 청호가 잘 못 그려진 '몽타주'로 범인을 잡으려 했듯이, 저 역시 잘못된 영화 속의 정보로 진범을 찾아려 한 셈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본 후 극장을 나서며, 정근섭 감독의 반칙에 기분이 나쁘기 보다는, 이런 방법으로도 마지막 반전을 감출 수가 있구나... 하는 신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잘못 그려진 '몽타주'로 범인을 찾겠다고 나섰지만, 결국 범인이 늦게나마 죄의 댓가를 받는 장면만으로도 속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스릴러 영화였습니다.
사실 '속 시원한 [살인의 추억]'이라는 말 자체가 어패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범인이 잡혀도 희생자는 살아 돌아오지 않고,
희생자 가족들의 상처는 아물지 않을테니까...
하지만 최소한 법의 헛점으로 인한 억울함은 해소되었기에
조금이나마 속 시원할 수 있지 않을까?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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