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3년 영화이야기

[고령화 가족] - 콩가루 가족이라도, 가족이기에 힐링!

쭈니-1 2013. 5. 16. 18:28

 

 

감독 : 송해성

주연 : 박해일, 윤제문, 공효진, 윤여정, 진지희

개봉 : 2013년 5월 9일

관람 : 2013년 5월 15일

등급 : 15세 관람가

 

 

나의 힐링도 가족에게 찾아라!!!

 

지난 월요일은 제 몸과 마음의 피곤이 절정에 치닫았었습니다. 몸의 피곤은 한달 가까이 저를 괴롭히는 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피곤은 웅이와 함께 부자녀 캠프에 다녀온 이후 함께 간 웅이의 친구 아버지들과 집 근처에서 낮술을 과다하게 먹은 것이 발단이 되었습니다. 제가 낮술에 취해 주책(제 술버릇은 UP된 기분을 주체하지 못하는 주책입니다.)을 부리는 것을 본 웅이가 '아빠에게 실망했어요.'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순간 밀려오는 마음의 피로는 육체의 피로보다 훨씬 강력했습니다.

지금까지 구피에게 좋은 남편은 되어 주지 못해도, 웅이에게 만큼은 멋진 아빠가 되어 주고 싶었는데... 감기 기운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자녀 캠프에 참가한 것도 웅이에게 멋진 아빠가 되어 주고 싶었기 때문인데... 제 술버릇으로 인하여 난생 처음 웅이에게 실망감을 안겨준 것입니다.

그 후유증은 생각보다 컸습니다. 웅이의 실망스러운 표정이 자꾸 눈 앞에 아른거려서 참을 수가 없더군요. 내 자신에 대한 자괴감도 들고, 내가 저지른 실수가 너무 창피하기도 하고, 실망감을 안겨준 웅이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월요일은 낮술 후유증으로 인한 숙취 때문에, 화요일은 밀린 업무에 집중하면서 조금이라도 그날의 실수를 잊을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수요일이었습니다. 밀린 업무를 모두 끝내고 종합소득세 자료를 세무사 사무실에 넘기고 나니 술에 너무 취해서 기억조차 나지도 않은 그날의 실수가 다시금 저를 괴롭혔습니다.

 

사실 저는 목요일에 연차 휴가를 낸 상태였고, 종합소득세 업무가 끝나고 나면 혼자 1박 2일로 바닷가라도 가서 조용히 내 자신을 뒤돌아볼 생각이었습니다. 다른건 몰라도 아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는 아빠는 되기 싫었기에, 뭔가 조용히 내 자신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구피에게 혼자 1박으로 여행을 떠나겠다고 문자를 보내려던 찰나, 종로3가에서 1호선을 5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가는 길에 우연히 지하철과 연결된 피카디리 극장의 영화 상영 시간표가 눈에 띄었습니다. 마치 운명처럼 10분 후면 [고령화 가족]이 시작되더 군요.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에반게리온 : Q]를 본 후 2주가 넘도록 극장에서 영화를 보지 못한 저는 일단 [고령화 가족]을 본 후 여행을 떠나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고령화 가족]을 보고 극장을 나서니 곧바로 [전국노래자랑]이 상영하더군요. 피카디리의 같은 상영관에서 [고령화 가족]과 [전국노래자랑]이 교차로 상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저는 나 혼자만의 여행이라는 계획을 까맣게 잊고 화창한 봄날 오후, [고령화 가족]과 [전국노래자랑]을 연달아 보고 말았습니다. 

[고령화 가족]과 [전국노래자랑]을 보고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몸과 마음의 피곤을 왜 혼자만의 여행으로 치유하려 했을까? 내겐 가족이 있는데... 미우나 고우나 가족의 안에서 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혼자만의 여행은 결국 가족 안에서의 나의 문제에 대해 도망가는 것은 아닐까? 결국 저는 혼자만의 1박 여행을 포기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웅이에게 달려갔습니다.

 

 

[고령화 가족]을 만난 것은 운명이었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드는 영화가 있습니다. 내가 지금 이 영화를 보게된 것은 운명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닐까? 

영화 속의 상황과 똑같이 당시 연상의 여친에게 이별을 통보받았던 [봄날은 간다]가 그랬고, 실연의 아픔으로 최악의 상황이었던 때에 만난 내 인생 최고의 영화인 [반지의 제왕 : 반지 원정대]가 그랬습니다. 그리고 [고령화 가족] 또한 그러합니다.

[고령화 가족]의 주인공들은 육체적으로는 성인이지만, 정신적으로는 마치 성장이 멈춘 듯이 너무나도 한심해 보였습니다. 첫째 아들인 44세 한모(윤제문)는 전형적인 백수입니다. 전과가 있는 탓에 변변한 직업을 구할 수 없는 그는 집에서 뒹굴거리며 엄마(윤여정)에게 빌붙어 살고 있습니다.

학창 시절에 공부를 곧잘 한 덕분에 남매 중 유일하게 대학을 나온 둘째 아들인 40세 인모(박해일). 그는 대학 졸업 후 영화 감독이 되었지만 첫번째 연출작품이 흥행에서 쫄딱 망하는 바람에 지금은 한모와 마찬가지로 백수건달 신세입니다. 아내는 체육관 관장과 바람이 났고, 월세가 밀려 집주인에게 쫓겨나기 일보직전입니다. 결국 그 역시 엄마에게 빌붙어 살기 위해 들어옵니다.

35세 막내 미연(공효진)은 두번째 이혼 후에 15세 딸인 민경(진지희)과 함께 역시 엄마 집에 들어옵니다. 성인이 되면 독립을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이들 3남매는 늙은 엄마에게 기대기 위해 옹기종기 모여듭니다.

 

하지만 엄마는 이들은 따뜻하게 감싸 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나잇값을 못하는 자식들에게 뭐라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감싸 안아줍니다.

한모에게도, 인모에게도, 그리고 미연과 민경 모녀에게도 엄마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줍니다. 누구나 한번쯤 인생의 전성기가 있다면, 인생의 슬럼프가 있기 마련입니다. 인생의 전성기에는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박수를 쳐주고 몰려듭니다. 하지만 인생의 슬럼프가 되면 주위 사람들은 외면하고 혼자가 됩니다. 

모든 사람이 외면을 해도 가족만은 쳐다봐줍니다. 왜냐하면 가족이기 때문이죠. [고령화 가족]에서 엄마만은 이 한심한 3남매를 따뜻하게 감싸 안습니다. 그리고 한모, 인모, 미연은 서로 티격태격하며 서로에게 막말하고, 다툽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그들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뭉칩니다. 이들 가족이 월미도로 놀러 갔다가 횟집의 건너편 테이블과 싸움이 났을 때 함께 힘을 합쳐 싸우는 모습은 그렇기에 유쾌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겠죠. 술을 마시고 주책을 부린 그 다음날, 저는 제가 주책을 부린 웅이의 친구 아버지, 어머니들에게 사과 전화를 했습니다. 하지만 모두들 '아니, 괜찮아요. 덕분에 재미있었어요. 사람이 술을 먹다보면 그럴 수도 있죠. 신경쓰지 않으셔도 되요.'라고 웃으며 이야기하더군요. 하지만 구피는 저를 경멸스러운 표정으로 비난했고, 웅이는 '아빠에게 실망했어요'라며 제게 상처를 줬습니다. 그러나 제가 난처한 일을 생기면 저를 비난하고, 제게 실망했던 구피와 웅이만이 제 편이 되어 주겠죠. 그것이 가족이니까요.

 

 

가족의 범위를 식구로 확장시키다.

 

[고령화 가족]은 정말로 한심한 3남매가 엄마의 집에서 모여 살면서 가족애를 다시 깨닫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의미는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진정 [고령화 가족]이 박수를 받아야 마땅한 것은 가족의 범위를 식구로 확장을 시켰다는 점입니다.

가족과 식구는 얼핏 같은 단어로 보이지만 이들 단어를 구성한 한자를 풀어서 보면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가족(家族)은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을 뜻합니다. 결국 친족 관계에 있는 집단은 혼인이나 혈연으로 맺어진 사람들입니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미연은 한모의 출생의 비밀을 공개합니다. 한모는 인모, 미연과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엔 한모가 미연의 출생의 비밀을 털어놓습니다. 마치 막장 드라마의 한장면과도 같은 후반부의 출생의 비밀 장면은 이 콩가루 가족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가족입니다. 아니, 식구(食口)입니다. 식구는 한집에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고령화 가족]에서 유난히 이들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는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특히 찌개에 다섯 숟가락이 함께 담기는 장면은 의미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들이 함께 밥을 나눠 먹는 이상 그들은 피한방울 섞이지 않았더라도 식구가 되는 것입니다.

 

처음엔 '뭐 저런 콩가루 집안이 다 있어?'라는 심정으로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를 보던 당시 제 상황이 조금은 복잡했기에 그저 아무 생각없이 웃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고령화 가족]을 가볍게 즐겼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콩가루 집안이라 생각했던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특히 민경이 가출을 하자 모두 힘을 합쳐 민경을 찾아 나서는 장면은 '만약 남이라면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송해성 감독이 3남매 중에서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한모를 중심으로 영화를 진행시켜 나간 것은 그렇기 때문에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한심한 3남매 중에서도 가장 한심하고, 인모, 미연과는 가족 관계라고 할 수도 없는 한모. 하지만 그는 인모, 미연과 식구였고, 자신의 식구를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영화의 후반부에 갑자기 액션 느와르 영화와 같은 장면들이 나와서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콩가루 집안의 웃기는 에피소드를 가볍게 보려고 들어간 극장에서 가족을 넘어선 식구라는 위대한 관계에 대해 감동을 느끼며 숙연한 마음으로 영화에 흠뻑 빠져 들었습니다.

 

 

콩가루 가족이라도, 가족이기에 힐링!

 

어찌보면 [고령화 가족]은 힐링 무비입니다. 자신의 감독 데뷔작은 흥행에 실패하고, 아내는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며 이혼을 요구하고, 집주인은 밀린 월세를 내놓으라며 막말을 하는 상황. 인모는 자살을 결심하고 목을 매답니다.

하지만 그는 엄마의 전화 한통화에 자살을 포기하고 엄마의 집에 들어갑니다. 희망이라고는 어느 하나도 보이지 않는 상황. 하지만 그는 형과 여동생 사이에서 티격태격하며 여러 사건을 겪는 동안 열심히 살아나갈 새로운 희망을 발견합니다.

두번의 이혼을 경험한 미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또다시 결혼하겠다며 집으로 데려온 근배(김영재). 두번이나 실패해놓고 또 결혼하겠다는 미연을 모두들 한심한 듯이 쳐다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미연을 향한 근배의 사랑은 그 어느 누구의 사랑보다도 커 보입니다. 막장 드라마와도 같은 미연의 집안 사정과 시끌벅적한 소동 속에서도 조용히 미연의 곁을 지켜주는 근배의 모습을 보며 미연은 두번의 실패를 딛고 세번째 결혼만큼은 굉장히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한 사정은 한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모두들 그에게 막장 인생이라고 손가락질 하지만 그에겐 든든한 식구가 있었기에 인생을 다시 시작할수 있는 발판이 됩니다. 남들은 콩가루 가족이라고 손가락질해도 한모, 인모, 미연 모두 그러한 콩가루 가족 덕분에 가슴에 남겨진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고령화 가족]을 보고 제가 혼자만의 여행을 포기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혼자 바다를 보는 것보다, 영화를 보고나니 구피와 웅이가 더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내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벌어진 일이고, 그날의 실수 때문에 상처를 입은 것은 저 뿐만 아니라 구피와 웅이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이겨낼 것입니다. 저를 원망하는 구피도.. 제게 실망한 웅이도... 우린 가족이니까요.

그리고 이번 기회에 술이여, 안녕!!! 제 즐거움은 영화, 프로야구, 블로그, 그리고 한잔의 시원한 맥주였는데, 술로 인하여 저희 가족이 상처를 받았다면 당연히 제 즐거움을 하나쯤은 포기해야 겠죠. 시원한 맥주라는 즐거움을 포기해도 내겐 아직 영화와 프로야구, 블로그라는 즐거움이 남아 있기 때문에...

 

나에게 가족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든든한 일이다.

우린 가끔 이 든든한 가족을 귀찮아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가족이 없다면 나 혼자만의 삶은 과연 의미가 있을까?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