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3년 아짧평

[후세 : 말하지 못한 내 사랑] - 가짜라도 최선을 다해 살면 진짜가 된다.

쭈니-1 2013. 4. 24. 08:21

 

 

감독 : 미야지 마사유키

주연 : 코토부키 미나코, 미야노 마모루

 

 

<난소사토미팔견전>이 [후세 : 말하지 못한 내 사랑]이 되기까지...

 

교쿠테이 바킨이 1814년부터 1842년까지 28년간 쓴 <난소사토미팔견전>이라는 제목을 가진 요미혼 문학 장르의 소설이 있습니다. 요미혼 문학이란 일본 에도 시대 후기에 유행한 전기 소설로 일본의 실록, 전설, 야사 등 역사적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들을 소재로 하고 있는 문학 작품을 말합니다. 

<난소사토미팔견전>의 내용은 아와국 사토미 가문의 딸인 후시히메와 신견(神犬)인 아와의 인연으로 이어진 8명의 팔견사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습니다. 팔견사는 말 그대로 사람과 개의 혈통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후세 : 말하지 못한 내 사랑]은 <난소사토미팔견전>을 사쿠라바 가즈키가 재해석한 <후세 위작. 사토미팔견전>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후세 위작. 사토미팔견전>은 팔견사라 불리우는 이들의 활약상 보다는 후세인 시노와 사냥꾼인 하마지의 인연을 담은 소설이라고 합니다.

<난소사토미팔견전>으로부터 시작되어 <후세 위작. 사토미팔견전>를 거쳐 [후세 : 말하지 못한 내 사랑]에 도달하는 동안 이들 세 작품은 인간과 개의 혈통을 이어받은 '후세'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냅니다. '후세'... 어찌보면 서양의 전설인 늑대인간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 신기한 것은 서양과 동양의 전설은 많은 부분에서 비슷하다는 점입니다.

 

 

 

사냥꾼과 사냥감이 서로 통하다!

 

[후세 : 말하지 못한 내 사랑]은 원작인 <후세 위작. 사토미팔견전>과 비교해서 시노(미야노 마모루)와 하마지(코토부키 마니코)의 로맨스가 매우 강화되었다고 합니다. 사냥꾼인 하마지와 사냥감에 불과한 시노의 로맨스라니... 그 순간부터 [후세 : 말하지 못한 내 사랑]의 스토리 라인은 정해진 것과 같습니다.

외딴 산골에서 타고난 사냥꾼으로 자란 소녀 하마지는 할아버지의 죽음 이후 오빠인 도세츠를 만나기 위해 수도인 에도에 옵니다. 그녀는 복잡한 도시인 에도에서 길을 잃었다가 시노를 만납니다. 시노가 '후세'라는 사실을 모르는 하마지. 도세츠는 하마지에게 '후세'를 사냥해서 돈도 벌고 벼슬도 얻자고 제안하고 하마지가 본격적으로 '후세'를 사냥을 시작하며 하마지와 시노의 질긴 인연은 시작됩니다.

이 영화에서 재미있는 점은 선머슴같은 하마지가 시노에 의해 점점 여성스럽게 변해가는 과정입니다. 시노가 하마지에게 기모노를 사주는 장면은 시노와 하마지가 이성으로 서로에게 통(通)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자신이 사냥을 해야 하는 사냥감과 이성으로 통한 하마지. 그들의 운명은 그렇기에 비극으로 치달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엔 잘못 태어난 존재는 없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후세'를 사냥하려고 하는 걸까요? 개와 인간의 혈통을 가졌다고 하지만 엄연히 '후세'는 인간의 피를 물려 받은 존재입니다. 게다가 애초에 '후세'가 태어나게 된 것은 인간의 약속에 의한 것입니다. 적장의 목을 베어오면 자신의 딸과 결혼을 시키겠다던 군주는 개가 적장의 목을 베어 오자 어쩔 수 없이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공주와 개를 결혼시킨 것입니다. 하지만 군주는 공주가 개의 아이를 잉태하자 그들을 죽이려합니다.

왜 사람들은 '후세'와 함께 더불어 살지 못하는 것일까요? 사실 이 부분이 [후세 : 말하지 못한 내 사랑]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아쉬움입니다. '후세'는 인간의 몸 안에 있는 생령을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마치 뱀파이어가 인간의 피를 빨아야 살 수 있듯이 말입니다. 그로인하여 결국 '후세'와 인간은 서로 공존할 수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시노는 말합니다. '이 세상엔 잘못 태어난 존재는 없다'라고. 하지만 인간의 입장에서 '후세'는 없애야할 존재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는 잘못 태어난 존재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인간과 공존할 수 없는 존재는 맞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 '후세'가 인간의 생령을 먹어야 한다는 부분을 없앴다면 더욱더 시노와 하마지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이 가슴에 와닿았을텐데... 아쉬웠습니다.

 

 

 

가짜라도 최선을 다해 살면 진짜가 된다.

 

물론 모든 '후세'가 인간의 생령을 먹는 것은 아닙니다. 에도의 유명한 기생으로 위장한 '후세'의 경우는 생령을 먹지 않고 버텼으니까요. 사실 저는 [후세 : 말하지 못한 내 사랑]에서 시노와 하마지의 사랑보다는 기생으로 위장한 '후세'의 슬픈 눈빛이 더욱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그녀는 비록 인간과 개의 혈통을 물려 받은 '후세'이지만 인간답게 살려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시노에게 가짜라며 칼을 휘두르던 군주. 그러한 군주에게 시노는 '가짜라도 최선을 다해 살면 진짜가 된다.'라며 항변합니다. 비록 개와 인간의 이종교배로 인하여 태어난 가짜 인간 '후세'이지만 시노는 하마지와의 사랑을 통해 깨달았을지도 모릅니다. 최선을 다해 살면 자신도 진짜 인간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사람들의 눈을 피해 도망다니지 않고 하마지와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후세 : 말하지 못한 내 사랑]을 보고나니 [늑대아이]가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늑대인간과 결혼한 하나는 그와의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시골로 이사를 갑니다. 그러한 하나의 노력이 있었기에 늑대인간과 인간의 사이에서 태어난 유키와 아메는 인간들과 더불어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마지막 시노의 표정에서 저는 그러한 희망을 볼 수 있었습니다.

 

 

 

외색 짙은 것을 싫어하지만 않는다면 배경은 아름답다.

 

[늑대아이]가 2012년에 국내 개봉해서 33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성과를 이룬 반면 [후세 : 말하지 못한 내 사랑]은 지난 3월 28일에 개봉하여 누적관객 3만2천명을 기록했을 뿐입니다. 어쩌면 이 영화는 애초부터 극장 수입보다는 다운로드 수입을 노린 영화일지도 모릅니다. 

[늑대아이]와 [후세 : 말하지 못한 내 사랑]이 이렇게 개봉관에서 극과 극의 차이를 보인 이유는 제가 보기엔 배경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현대극인 [늑대아이]는 우리나라 관객에게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비록 늑대인간의 혈통을 물려 받은 아이들이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를 키우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후세 : 말하지 못한 내 사랑]은 시대극입니다. 이 영화의 배경인 에도 시대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다면 영화를 즐기는데 도움이 될텐데... 아쉽게도 우리에게 일본의 역사는 너무나도 생소하기만 합니다. 캐릭터들이 주로 입고 나오는 기모노, 사무라이 복장 등도 생소하긴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생소한 배경을 제외하고는 [후세 : 말하지 못한 내 사랑]은 기억에 남을 만큼 아름다운 배경을 가진 애니메이션입니다. 생소한 일본의 역사적 배경과 왜색 짙은 풍경을 특별하게 싫어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