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3년 아짧평

[여친남친] - 영원할 수 없는 사랑과 우정의 슬픔

쭈니-1 2013. 4. 9. 13:33

 

 

감독 : 양야체

주연 : 계륜미, 장효전, 봉소악

 

 

우정과 사랑사이?

 

[여친남친]이라는 제목의 대만 영화가 개봉했을 때 저는 '사랑과 우정사이'를 그린 달달한 멜로 영화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의 내용 자체가 학창 시절부터 친구 사이인 메이바오(계륜미)와 리암(장효전), 아론(봉소악)의 서로 엇갈린 사랑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유추해볼 수 있는 영화의 내용은 한 여자(메이바오)를 사이에 둔 두 남자(리암, 아론)의 삼각관계입니다.

하지만 [여친남친]은 그러한 제 예상을 비웃듯 제가 예상하지 못한 삼각관계를 제시합니다. 메이바오는 리암을 사랑합니다. 그러한 메이바오를 아론이 사랑합니다. 그런데 리암의 마음은 동성인 아론에게 향해 있습니다. 결국 메이바오는 아론과 사귀고, 리암은 그러한 메이바오와 아론의 주위를 맴돌 뿐입니다.

[여친남친]은 '사랑과 우정사이'를 그린 멜로 영화가 맞습니다. 하지만 '우정과 사랑사이'에 동성애가 끼어들고, 대만의 근현대사가 배경이 되면서 영화 자체는 달달하다기 보다는 오히려 씁쓸한 맛을 냅니다.

 

 

 

1985년 여름... 그들의 사랑은 풋풋했다.

 

[여친남친]은 크게 세개의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 첫번째 단락이 바로 1985년 여름입니다. 고등학생인 그들은 검열관의 통제 속에서 반항하며 그들의 풋풋한 우정과 사랑을 만들어 나갑니다. 검열관의 통제에 반항하는 아론과 그러한 아론을 다독여주는 메이바오. 그리고 소심하게 그들의 주위를 맴도는 리암의 모습은 영락없이 '청춘 얄개시대'류의 영화처럼 포장이 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초반 남자 샤워실을 습격한 여학생들이 남자 속옷을 들고 도망치고, 벌거벗은 남학생들이 뒤쫓는 장면은 이 영화가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가볍게 웃으며 1985년이라는 꽉 막힌 시대에 반항하는 젊은이들의 풋풋한 사랑을 즐기는 것. [여친남친]은 그렇게 가볍게 시작합니다.

그러한 초반부에서 돋보이는 것은 메이바오를 연기한 계륜미의 매력입니다. 얼핏 선머슴같은 메이바오는 소심한 리암과 대책없이 반항적인 아론 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며 그들 간의 사랑과 우정을 완성해놓습니다.

 

 

 

1990년 봄... 그들의 사랑은 혼란스러웠다.

 

메이바오가 아론과 사귀게 되면서 영화는 1990년 봄으로 뛰어 넘습니다. 국민당은 계엄령을 선포했고, 대학생들은 독재에 맞서 투쟁을 벌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아론이 있습니다. 그러한 아론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메이바오. 그리고 여전히 아론과 메이바오의 곁을 서성이는 리암.

1985년 그들의 모습이 풋풋했다면 1990년 그들의 모습은 혼란스러웠습니다. 계엄령 선언 이후의 혼란스러운 사회의 모습과 함께 서로를 향한 엇갈린 시선은 풋풋했던 그들의 표정에 긴장감을 불어 넣습니다.

얼핏 보면 그들의 관계는 정리가 된 것처럼 보입니다. 메이바오와 아론은 연인이 되어 서로를 챙기고, 동성애자인 리암 역시 자신의 성정체성을 유지한채 메이바오, 아론과의 관계를 유지시킵니다. 이처럼 정리된 것처럼 보이는 그들의 관계 속에 하나의 균열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러한 균열은 아론이 군대 가기 전의 파티에서 혼란스러운 분장을 한 그들의 얼굴에 고스란히 내비칩니다.

 

 

 

1997년 가을... 영원할 수 없는 사랑은 슬프다.

 

1990년의 혼란스러움을 뒤로 하고 시간은 다시 1997년으로 훌쩍 뛰어 넘습니다. 메이바오와 아론은 여전히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하지만 아론에게는 아내와 자식이 있습니다. 총리의 딸인 아론의 아내. 그녀는 1990년 메이바오와 아론의 관계에 균열을 일으킨 장본인입니다.

리암은 그러한 그들을 피합니다. 메이바오를 버리고 총리의 딸과 결혼한 아론도, 그러한 아론의 곁에 맴돌며 여전히 그와의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메이바오도, 리암은 바라볼 용기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그들의 사랑과 우정은 파멸을 예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론은 '영원한 우정'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세월은 아론을 변하게 했고, 그러한 아론의 변화와 함께 '영원한 우정'은 의미없는 헛소리에 불과합니다. 부당한 권력에 적극적으로 반항하던 아론의 변화. 그리고 당당하던 메이바오의 슬픈 어깨. 어쩌면 리암이 그들을 피했던 것은 아론과 메이바오의 사랑이, 그들의 우정만큼이나 영원하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화를 보고나서야 밀려오는 씁쓸함.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여친남친]을 그다지 재미있게 보지 못했습니다. 초반의 '얄개시대' 풍의 분위기는 유치하게 느껴졌고, 중반의 혼란은 영화를 보는 저 역시도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저는 대만의 근현대사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기에 계엄령 이후의 혼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유지되던 아론과 메이바오의 사랑이 그다지 공감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현실과 타협한 아론의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씁쓸함을 느껴야 했습니다. 여전히 메이바오를 사랑하지만 총리의 딸과 결혼한 아론. 고등학생 때에는 검열관에 반항하고, 대학생 때에는 독재 정권에 투쟁하던 아론이 장인인 총리의 전화에 어쩔줄 모르며 당황하는 모습은 안타깝기까지 했습니다.

메이바오와 떠나면서도 아들의 전화를 받으며 가슴 아파하는 아론. 어쩌면 성인이 된다는 것은 여친도 남친도 영원할 수 없게끔 만드는 가족이라는 단단한 울타리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한 울타리 속에는 가족을 위해 자기 자신을 버려야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친남친]은 더욱 씁쓸함을 느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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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