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3년 영화이야기

[오블리비언] -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아니, 기억의 존재이다.

쭈니-1 2013. 4. 13. 08:01

 

 

감독 : 조셉 코신스키

주연 : 톰 크루즈, 모건 프리먼, 올가 쿠릴렌코, 안드레아 라이즈보로

개봉 : 2013년 4월 11일

관람 : 2013년 4월 11일

등급 : 15세 관람가

 

 

야근으로 인한 피곤함, 감기로 인한 몸 아픔도 잊었다.

 

[오블리비언]을 보고 왔습니다. 저는 회사 재고조사  준비때문에 며칠째 야근 중이었고, 구피는 감기로 인하여 몇주째 콜록거리고 있었지만, 야근으로 인한 피곤함과 감기로 인한 몸 아픔을 이겨낼 정도로 [오블리비언]은 기대작이었던 것입니다.

저와 구피가 [오블리비언]을 기대한 이유는 이 영화의 장르가 SF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구피는 새로운 상상력이 맘껏 발휘되는 SF영화를 좋아합니다. 특히 [오블리비언]은 단순하게 외계 생명체와 인류의 사활을 건 전쟁을 담은 SF영화가 아닌, 외계 생명체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후 황폐화된 지구의 마지막 정찰병 임무를 맡고 있는 잭 하퍼(톰 크루즈)가 지워진 기억 속에서 새로운 진실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라는 점이 제 관심을 끌었습니다.

황폐화된 지구를 보여주는 영화의 포스터와 스틸 이미지. 잭 하퍼가 말콤(모건 프리먼)을 통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상황을 암시하는 영화의 예고편. 그것만으로도 저는 피곤함 따위는 싹 잊고 극장으로 달려갈 충분한 이유가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컨디션이 안좋은 상태에서 영화를 봤기 때문인지 영화에 대한 집중도는 조금 떨어졌습니다. 제 경우는 영화의 스토리를 쫓아가다가 잠시 놓치는 바람에 2017년의 진실이 조금 헷갈렸고, 구피의 경우는 감기약 때문인지 영화를 보는 와중에 몇 번 졸았다고 하네요.

 

어찌되었건 드디어 영화가 시작됩니다. 영화의 시작은 잭 하퍼의 꿈 이야기입니다. 어느 낯선 여인이 등장하는 꿈. 그는 그녀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녀에게 애틋한 감정을 느낍니다. 

곧바로 이어진 것은 2077년 황폐화된 지구에 남아 있는 마지막 정찰병 잭 하퍼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나래이션을 통해 지구가 왜 이렇게 황폐화되었는지 관객에게 설명합니다.

2017년 정체 불명의 외계 우주선이 나타나 달을 파괴합니다. 달이 파괴되자 지구에는 지진, 쓰나미 등 온갖 자연 재해가 일어납니다. 그 틈을 타서 외계 생명체는 지구에 공격을 가하고, 인간은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핵무기를 사용합니다. 결국 외계 생명체와의 전쟁에서는 승리하지만 핵무기로 인하여 지구는 황폐화됩니다. 결국 인간은 지구를 버리고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으로 이주를 합니다. 잭 하퍼와 그의 동료인 빅토리아(안드레아 라이즈보로)는 바닷물을 에너지화하는 작업을 위해 지구에 남아 있습니다. 이미 전쟁에서 진 외계 생명체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지구에 남아 간간히 공격을 해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잭 하퍼는 임무의 보안을 위해 지워진 기억에 의한 혼란과 버려진 지구에 대한 애정으로 인하여 점점 감춰진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자! 이제 시작입니다. [오블리비언]의 상황이 간단하게나마 설명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관객 스스로 잭 하퍼와 함께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는 작업일 뿐입니다. 이제부터 저는 [오블리비언]이 감추고 있는 진실을 제 나름대로 하나씩 벗겨 나가겠습니다. 당연히 영화의 스포도 상당 부분 포함됨을 알려드립니다. 

 

 

그들의 팀웍은 왜 중요한가?

 

영화의 초반, 지구에 남아 있는 잭 하퍼와 빅토리아를 관리 감독하는 중앙 사령부 테트의 사령관 샐리(멜리사 레오)는 빅토리아에게 '자네들의 팀웍은 여전히 좋은가?'라고 묻습니다. 빅토리아와의 통신에서 샐리는 항상 같은 질문을 합니다.

[오블리비언]에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는 작업에서 첫번째 단서는 바로 잭 하퍼와 빅토리아의 팀웍입니다. 오직 빅토리아와 통신을 하는 샐리. 그녀는 유독 잭 하퍼와 빅토리아의 팀웍을 궁금해하고 중요시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 부분에서 중요한 것은 빅토리아의 역할입니다. 그녀는 잭 하퍼의 동료이면서 그를 관리 감독하며, 지구에 남아 있는 외계 생명체로부터 그의 안전을 지켜줍니다. 그리고 더불어 잭 하퍼와 사랑하는 관계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오프닝에서 [오블리비언]은 잭 하퍼가 꾸는 꿈 속의 여인 줄리아(올가 쿠릴렌코)를 보여주며 잭 하퍼의 사랑은 빅토리아가 아닌 줄리아에게 향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잭 하퍼의 앞에 줄리아가 실제로 나타납니다. 줄리아의 등장은 잭 하퍼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그와 더불어 빅토리아와의 팀웍을 깨트리고 맙니다.

잭 하퍼와 빅토리아의 팀웍이 깨졌다는 것은 잭 하퍼가 망각(오블리비언)에서 깨어나고 있음을 뜻합니다. 결국 테트의 사령관 샐리가 별 의미없다는 듯이 웃으며 '자네들의 팀웍은 여전히 좋은가?'라고 묻는 것은 잭 하퍼가 망각에서 깨어났는가? 를 묻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한가지 주목할 것은 빅토리아의 정체입니다. 그렇다면 빅토리아는 [토탈리콜]에서 주인공의 아내처럼 테트에서 잭 하퍼를 감시하기 위해 심어놓은 스파이일까요?

하지만 잭 하퍼를 향한 그녀의 눈빛은 진심이었고, 또 그만큼 간절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잭 하퍼처럼 망각에 빠졌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줄리아와 함께 나타난 잭 하퍼에게 '항상 그녀 뿐이었지!'라며 질투섞인 원망의 눈빛을 보냅니다. 그것은 결국 그녀가 이미 잭 하퍼와 줄리아의 관계를 알고 있었음을 뜻합니다. 그녀는 잭 하퍼와는 달리 망각에 빠져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쩌면 빅토리아는 망각에 빠진 잭 하퍼와 지구에서 천국의 나날을 즐기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샐리와 통신을 하면서 '여긴 항상 천국이죠.'라며 활짝 웃던 빅토리아의 모습은 진심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빅토리아가 이야기하는 천국은 어디일까요? 분명한 것은 지구는 아닙니다. 빅토리아는 어서 빨리 지구를 떠나기만을 바라고 있으며, 잭 하퍼가 지상으로 함께 가자고 해도 겁을 내며 거부합니다. 결국 빅토리아의 천국은 잭 하퍼와 단 둘만의 공간인 스카이타워입니다. 마치 천국처럼 구름 위에 지어진 스카이타워의 풍경은 우연이 아닌 것이죠.   

결국 잭 하퍼가 망각에서 깨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 것은 샐리가 아닌 빅토리아였을 것입니다. 잭 하퍼가 줄리아를 구해서 스카이타워로 데려오는 장면에서 빅토리아는 샐리에게 무언가를 주사하려합니다. 그녀는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줄리아가 있는한 잭 하퍼의 망각으로 인해 건설된 그녀만의 천국은 모래성처럼 무너질 것이라는 사실을... 

 

 

왜 잭 하퍼여야 했는가?

 

그렇다면 여기에서 또 다른 의문점이 듭니다. 그것은 바로 '왜 잭 하퍼인가?'입니다. 잭 하퍼는 임무를 위한 보안 문제라는 명목으로 기억이 지워진채 지구에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잭 하퍼의 지워진 기억은 이 영화가 감추고 있는 진실에 접근하는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단서가 된다는 사실을...

그렇다면 남겨진 의문은 하나입니다. 왜 테트는 잭 하퍼의 기억을 지우면서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지구에 남겨둔 것일까요? 굳이 잭 하퍼가 아니면 안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러한 질문의 해답은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마지막 반전의 가장 중요한 키포인트입니다.

일단 우리가 유추해볼 수 있는 것은 두가지 가능성입니다. 그 중 하나는 테트가 지구에서 해야할 남은 임무가 잭 하퍼만이 해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추론입니다. 저 역시 처음엔 그런 생각으로 영화의 스토리를 쫓아 갔습니다.

하지만 이상합니다. 잭 하퍼가 하는 일이라고는 그저 바닷물을 에너지로 바꾸는 발전소를 외계 생명체로부터 지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잭 하퍼가 직접 전투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가공할만한 살상 무기 드론이 있기 때문입니다. 잭 하퍼의 실제 임무는 드론을 고치는 것 뿐입니다. 고작 외계 생명체의 공격으로 고장이난 드론을 고치는데 꼭 잭 하퍼여야 하는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아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은 단 하나뿐입니다. 남아 있는 인간이 잭 하퍼 뿐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타이탄에 인간들이 이주했다고하는 하지만 그것은 영화 오프닝에서 잭 하퍼의 나래이션에 의해 밝혀진 것 뿐입니다. 잭 하퍼의 기억이 지워졌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러한 나래이션을 완벽하게 믿을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영화에 등장하는 테트의 유일한 인간은 샐리 뿐입니다. 그런데 샐리와의 통신 장면을 보면 화면이 자주 끊기며 부자연스러운 모습이 보입니다. 구름 위에 스카이타워를 지을 정도로 최첨단 기술을 지니고 있는 테트에서 빅토리아와의 통신이라는 중요한 부분에서 부족한 기술력을 드러낸 것입니다. 샐리와의 통신이 진짜인지조차 의심해볼만한 상황인 셈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잭 하퍼는 지구에 남아있는 비밀 조직원인 말콤을 만나게 됩니다. 드론을 공격하는 것이 외계 생명체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이 오히려 인간이라는 점을 알게된 잭 하퍼는 혼란에 빠집니다. 이 영화가 지구를 떠나려는 인간과 지구를 지키려는 인간의 전쟁을 다룬 영화가 아니라면 답은 단 한가지입니다. 잭 하퍼가 속한 테트는 인간의 편이 아닌 외계 생명체의 편이라는 사실입니다. 결국 잭 하퍼는 외계 생명체의 편에서 임무를 수행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잭 하퍼일 수 밖에 없는 이유, 잭 하퍼의 기억이 지워진 이유 역시 자연스럽게 해결됩니다. 지구를 침략한 외계 생명체에겐 지구를 보낼 수 있는 인간이 잭 하퍼 밖에 없으며, 그의 기억을 지우고 조작해서 오히려 그가 인간을 공격하는 드론을 수리하도록 한 것입니다.

 

 

같은 기억을 가진 우리는 하나일까? 서로 다른 둘일까?

 

사실 여기까지는 잭 하퍼가 말콤을 만나는 영화의 중반 부분이면 쉽게 드러납니다. 하지만 [오블리비언]이 감추고 있는 진실은 그 이후입니다. 그리고 그것의 키포인트는 방사능 누출 지역의 비밀입니다.

영화의 중반, 잭 하퍼는 자신만의 은신처를 찾아갑니다. 호수가 있고, 작은 오두막이 있는 그곳은 아무런 일도 없는 듯한 태초의 자연을 간직한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러한 곳이 존재한다는 것은 영화 초반 인간의 핵무기 사용으로 인하여 지구가 황폐해졌다는 것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테트는 잭 하퍼에게 방사능 누출 지역에 가지 못하도록합니다. 인간이 모두 지구를 떠날 정도로 황폐해졌다는 지구. 그것의 진실을 의심하는 순간 마지막 반전은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반전의 시작은 방사능 누출 지역에 가보라는 말콤의 충고로 시작됩니다.

[오블리비언]은 이렇게 2시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점점 거대해지는 진실을 털어 넣습니다. 처음부터 진실을 벗겨나가다보면 어느 순간에는 잭 하퍼가 마주치는 충격적이고 거대한 진실과 만나게됩니다. 그리고 그 순간 조셉 코신스키 감독은 철학적 질문을 관객에게 던집니다. [오블리비언]이 그저 특수효과가 멋진 할리우드의 SF 블록버스터에 그치지 않고 SF영화의 한 획을 그은 [매트릭스]를 연상시키는 것은 바로 그러한 철학적 질문이 있기 때문입니다.

[매트릭스]가 인간의 존재를 육체와 정신으로 따로 분리시켜서 육체적 삶과 정신적 삶에 대한 질문을 관객에게 던졌다면, [오블리비언]은 기억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만약 같은 기억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같은 사람일까요? 아니면 서로 다른 사람일까요?

 

수 많은 잭 하퍼를 창조해낸 테트는 잭 하퍼에게 '내가 너를 창조해낸 신이다.'라고 선언합니다. 테트는 인간이 살고 싶다는 욕망과 종족 보존의 본능을 가졌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하지만 테트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것은 그러한 기본적인 본능보다 좀 더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본능으로는 설명이 안되는 부분이 더욱 크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자기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인간의 문화를 지키려는 잭 하퍼의 결정은 테트로서는 예상하지 못한 변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줄리아는 또 다른 잭 하퍼와 마주하게 됩니다. 유전자도, 기억도 같은 또 다른 잭 하퍼. 과연 그는 줄리아가 사랑하는 잭 하퍼라고 해도 될까요? 아니면 다른 사람이라 해야 할까요? 그것에 대한 선택은 영화를 보는 우리 관객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오블리비언]은 생각외로 철학적인 SF였습니다. 사실 볼거리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황폐화된 지구와 잭 하퍼가 타는 버블쉽, 그리고 드론의 위력등은 충분히 볼만했지만, 그 외의 부분에서는 잭 하퍼가 감춰진 진실에 다가가는 이야기로 대부분 채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동안은 약간은 지루함을 느껴야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서는 뭔가 여운이 남습니다. 특히 빅토리아가 망각에서 깨어난 잭 하퍼를 보며 슬퍼하는 그 눈빛은 영화 후반부의 2017년 장면과 함께 더욱 애처롭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또다른 잭 하퍼와 마주친 줄리아의 모습을 보며 '나라면 그를 잭 하퍼로 인정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봅니다. 그것만으로도 조셉 코신스키 감독의 전작인 [트론 : 새로운 시작]보다 저는 [오블리비언]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잭 하퍼가 결국 망각에서 깨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줄리아를 지키고 싶다는 사랑 때문이 아닐까?

우리 곁에 지켜야할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망각에서 깨어나길 바라지 않았던 빅토리아처럼 불행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