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3년 영화이야기

[호스트] - 감성이 폭발하는 SF

쭈니-1 2013. 4. 5. 11:40

 

 

감독 : 앤드류 니콜

주연 : 시얼샤 로넌, 맥스 아이언스, 제이크 아벨, 다이앤 크루거

개봉 : 2013년 4월 4일

관람 : 2013년 4월 4일

등급 : 15세 관람가

 

 

유토피아 속의 디스토피아

 

유전자 조작을 통해 인간의 유전자적 우성인자만을 조합하여 태어난 인간들이 지배하는 사회. 자연의 섭리로 인하여 태어난 빈센트(에단 호크)는 유전자적 열성인자이기에 우주비행사라는 자신의 꿈을 접고 청소부로만 일하는 처지입니다.

앤드류 니콜의 감독 데뷔작인 [가타카]의 미래는 얼핏 유토피아의 세계처럼 보입니다. 유전자 조작으로 인하여 태어난 인간들은 지능도 높고 병에 걸리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두 남녀의 사랑으로 인하여 태어난 것이 아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인간에 가깝다보니 인간다운 감정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만약 인간다운 감정이 결여된 사회라면 그것이 아무리 완벽하다고해도 과연 우리 인간들은 행복할 수 있을까요? 겉보기에는 완벽해 보이지만 별다른 감정을 가지지 않은채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  [가타카]가 그려낸 미래는 이렇듯 유토피아로 보이지만 안을 드러다보면 디스토피아의 세계입니다.

 

앤드류 니콜 감독이 2011년에 연출한 [인 타임]도 [가타카]와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인 타임]의 미래에는 모든 인간들이 25세가 되면 노화를 멈추고 잔여 1년의 시간이 주어집니다. 이 시간으로 사람들은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구매합니다. 하지만 잔여 시간이 0이 되면 심장마비로 죽게됩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시간을 벌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합니다.

25세라는 나이로 평생을 살 수 있다면 그러한 삶은 굉장히 매력적일 것입니다. 인간의 인생에서 25세라는 나이는 너무 어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많지도 않은, 딱 꽃다운 나이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25세라는 나이로 오랜 세월을 장수하며 보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간을 구할 수 없어서 심장마비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태반입니다. 

[가타카]는 결코 완벽할 수 없는 인간의 불완전한 감정이 사라진 세상을 통해 유토피아 속의 디스토피아를 그렸다면, [인 타임]은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토대로 대다수 서민의 디스토피아를 발판삼아 유토피아를 완성한 부유층의 모습을 그려냈습니다.

 

 

인간에게 유토피아는 가능한가?

 

유토피아 속 디스토피아의 세계. 앤드류 니콜 감독이 [가타카]와 [인 타임]을 통해 그려낸 가까운 미래의 세계는 그의 최신작인 [호스트]에서도 다시 그려집니다.

물론 [호스트]의 경우는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원작자로 유명한 스테파니 메이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앤드류 니콜의 각본으로 다시 태어난 [호스트]는 영락없이 앤드류 니콜 감독 특유의 SF영화입니다.

소울이라는 외계 생명체가 인간의 몸을 기생하여 정신을 지배하는 가까운 미래. 소울에 의해 정신이 지배당하는 인간 사회는 유토피아에 가깝습니다. 전쟁, 폭행, 살인, 사기 등 범죄가 사라집니다. 인간들은 친절하고 서로를 믿습니다. 돈을 벌기위해 아둥바둥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필요한 것이 있다면 가서 가져오기만 하면 됩니다. 돈을 내지 않는다고 그것을 탓하지도 않습니다.

어쩌면 소울은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며 인간을 그리고 지구를 구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지구의 자원은 모든 인간이 나눠 가져도 모자라지 않을만큼 풍족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합니다. 결국 인간은 그러한 욕심으로 인하여 전쟁을 일으키고, 지구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수 많은 SF 영화에서 그려낸 미래의 디스토피아는 그러한 인간의 욕심이 자초한 재앙의 세계인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소울이 만들어낸 유토피아를 거부합니다. 그들은 소울에게 정신을 지배당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합니다. 소울은 그러한 인간의 저항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영화의 초반 소울에게 쫓기는 멜라니(시얼샤 로넌)에게 소울은 "우린 널 해치려는 것이 아니야. 널 도와주려는거야."라며 회유하려합니다.

그러한 소울의 말은 어쩌면 틀린 것은 아닐 것입니다. 소울의 입장에서는 인간의 불완전한 감정을 소울의 정신 지배로 제어하는 것은 지구를, 그리고 지구에서 살고 있는 인간을 도와주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마치 [아이, 로봇]에서 로봇의 3원칙에 따라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인간을 강제적으로 지배하려 했던 인공지능 컴퓨터 비키의 선택이 떠오르는 순간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호스트]의 세계는 워쇼스키 남매가 창조한 [매트릭스]와는 정반대의 세계입니다. 인간의 육체를 에너지원으로 삼기 위해 인간들이 정신세계 속에서 자유롭게 살도록 내버려둔 [매트릭스]의 인공지능 컴퓨터의 선택과는 달리 [호스트]의 소울들은 인간의 육체는 내버려두는 대신 인간의 정신에 기생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호스트]를 보며 지금까지 봤던 수 많은 SF 영화들이 제 뇌리 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러면서 과연 우리 인간에게 미래의 유토피아는 가능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까지는 그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부정적이네요.

 

 

거대한 세계관을 포기하고 사랑에 올인한다.

 

소울이라 불리우는 외계 생명체가 인간의 정신을 지배한다면... 사실 [호스트]는 그러한 설정만으로도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분리시킴으로서 거대한 세계관을 완성했던 [매트릭스]처럼, [호스트] 역시 거대하고 철학적인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트와일라잇]의 스테파니 메이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영화답게 [호스트]는 거대한 세계관 대신 인간과 외계 종족의 사랑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킵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스테파니 메이어의 원작 소설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사실 앤드류 니콜 감독은 유토피아에 가려진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그리면서 사랑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즐겨 하는 감독이기 때문입니다. [가타카]에서 빈센트와 아이린(우마 서먼)의 사랑, [인 타임]에서 윌 살라스(저스틴 팀버레이크)와 실비아(아만다 사이프리드)의 사랑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뱀파이어와 늑대인간 그리고 인간 여성의 삼각 로맨스를 전세계 독자의 열광 속에 그려낸 스테파니 메이어의 원작 덕분인지, 아니면 매력적인 설정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이상하게 흘러갔던 [인 타임]의 흥행 실패 때문에 앤드류 니콜 감독이 각성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호스트]의 사랑 이야기는 영화의 재미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는 점입니다.

 

[호스트]에서의 사랑 이야기가 영화의 재미를 풍성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의 몸 속에 두개의 자아가 공존한다는 설정 덕분입니다.

멜라니는 제라드(맥스 아이언스)를 사랑합니다. 그러한 멜라니의 정신을 드러나본 멜라니의 육체안에 들어간 소울인 완다는 제라드를 찾아 나섭니다. 하지만 완다는 인간 반항군의 아지트에서 이안(제이크 아벨)에게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호스트]는 인간의 정신을 강탈하는 외계 생명체라는 설정을 토대로 [트와일라잇]에서 보여줬던 스테파니 메이어 특유의 삼각 로맨스를 다시 선보입니다. 제라드를 사랑하는 멜라니, 이안을 사랑하는 완다. 하지만 멜라니와 완다는 하나의 육체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자칫 심각해 보일 수 있는 상황에서 멜라니와 완다가 서로 다른 사랑 때문에 티격태격하는 장면은 웃음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멜라니와 완다 둘 중의 하나는 자신의 사랑을 포기해야 하기에 영화는 후반이 되면 될수록 안타까운 분위기로 흘러나갑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호스트]는 자연스럽게 [트와일라잇]에 이은 또 한편의 독특한 소재의 절절한 러브 스토리로 완성되어집니다.

 

 

감성이 폭발하는 SF

 

[호스트]를 관람하는데 있어서 주의해야할 점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SF 영화와는 다르다는 점을 빨리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어쩌면 SF 영화보다는 멜로 영화로 보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호스트]에서 인간 반란군을 끈질기게 쫓는 씨커(다이앤 크루거)가 등장합니다. 그녀는 이성적인 다른 소울과는 달리 인간 반란군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점점 폭력성을 가지게 됩니다. 소울이 그토록 경계하는 인간의 불완전한 감정 중에서 완다가 사랑이라는 좋은 감정을 가진 대신 씨커는 집착, 분노, 폭력이라는 나쁜 감정을 가진 셈입니다.

하지만 씨커와 인간 반란군의 SF 영화다운 전투씬은 이 영화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애초부터 [호스트]가 관심을 가진 것은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는 외계 생명체 소울과 인간의 전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인간 반란군에 집착하는 씨커에게 다른 소울들은 인간은 더이상 우리의 위협요소가 아니라고 설득하기도 합니다. 소울은 인간과의 전쟁을 원하지 않은 것입니다.

영화의 후반부에는 인간과 소울의 공존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소울이 만들어낸 유토피아의 세계를 어느 정도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점은 [가타카]와 [인 타임]과 비교해서 상당히 파격적인 부분입니다. 특히 [인 타임]에서 앤드류 니콜 감독은 혁명에 가까운 유토피아의 전복을 그려냈기에 [호스트]에서 소울과의 타협은 다소 의외였습니다.

 

하지만 시종일관 잔잔한 러브송이 흘러나오며 멜라니와 제라드, 완다와 이안의 사랑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소울과의 타협은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멜라니에게 몸을 돌려주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완다. 소울과의 타협이 아니라면 결국 완다와 이안의 사랑은 비극적인 사랑으로 끝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앤드류 니콜 감독은 소울과의 타협을 통해 이들의 사랑을 지켜낸 것입니다.     

앤드류 니콜 감독의 마지막 선택이 조금 의외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완다라는 캐릭터에 푹 빠져서 완다와 이안의 사랑을 응원하다보면 앤드류 니콜 감독의 선택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만약 모든 인간들이 완다와 같다면 그땐 정말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유토피아가 완성되겠죠. 그만큼 완다는 매력적인 캐릭터였던 것입니다.

솔직히 저는 [호스트]를 [가타카]와 같은 조금은 사회 전복적인 SF 영화이기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완다와 이안의 사랑에 흠뻑 취해 버렸습니다. 결국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오는 길, 기대하지 않았던  제 감성의 폭발을 경험했습니다. 

 

P.S. 1  마지막 완다의 모습은 실망스러웠습니다. 아마 겉으로 티는 안냈지만 이안도 실망했을 듯... 물론 사람이 외모가 전부는 아니지만... ^^

P.S. 2  완다에게 육체를 빼앗긴 멜라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저는 시얼샤 로넌 주연의 [러블리 본즈]가 자꾸 떠올랐답니다. 그러고보니 [호스트]를 보며 굉장히 많은 영화들이 제 머리 속을 스쳐지나간 듯.

P.S. 3  영화를 보고 집에 들어온 시간은 새벽 12시. 예상하지 못한 감정의 폭발을 잠재우기 위해 라면 하나 끓여먹고 잤습니다. -_-;

 

 

그래, 뱀파이어, 좀비하고도 사랑을 나누는데...

까짓거 외계 생명체와의 사랑이 대수랴!!!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