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3년 영화이야기

[장고 : 분노의 추적자] - 타란티노 스타일의 서부극, 그 재미에 빠져들다.

쭈니-1 2013. 3. 26. 13:08

 

 

감독 : 쿠엔틴 타란티노

주연 : 제이미 폭스, 크리스토프 왈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사무엘 L. 잭슨

개봉 : 2013년 3월 21일

관람 : 2013년 3월 25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두통의 원인?

 

지난 주에 열심히 극장에 간 덕분에 이제 제게 남은 기대작은 단 두편뿐, 바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서부극 [장고 : 분노의 추적자]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역사극 [링컨]뿐입니다. 이제 이 두 영화만 보면 이번 주에 개봉하는 [지.아이.조 2]를 개운한 기분으로 즐길 수가 있는 것이죠.

하지만 문제는 두 편의 영화가 러닝타임이 어마어마하다는 점입니다. 평일 밤에 보기에는 다음날이 걱정이 될 정도로 긴 러닝타임이 가지고 있으며, 국내 흥행 부진으로 상영하는 극장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도 [장고 : 분노의 추적자]와 [링컨]을 포기할 수 없었던 저는 집 근처 멀티플렉스의 영화 시간표를 전부 열어놓고 이리저리 짜맞추며 영화보기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 결과 월요일은 [장고 : 분노의 추적자]를, 화요일이나 수요일에는 [링컨]을 보기로 최종 결정을 내리고 [장고 : 분노의 추적자]를 예매했습니다. 제가 예매한 극장은 CGV 공항. 시간은 저녁 9시 35분이었습니다. 영화가 끝나는 시간은 새벽 12시 30분 가량이니 [장고 : 분노의 추적자]의 러닝타임은 거의 3시간을 육박하는 셈이죠.

 

솔직히 저는 CGV 공항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CGV 공항에서 오랫동안 영화를 보면 머리가 띵하고 아픈 현상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다른 극장에서는 그런 적이 없는데 이상하게 CGV 공항에서만 그러더군요.

그러한 현상을 처음 느낀 것은 2003년 2월, 사촌동생과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보면서부터였습니다. 당시에는 CGV 공항이 아닌 엠파크 9이라는 이름이었죠. 하지만 그 당시에는 영화를 맨 앞의 두번째 자리에서 봤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2007년 7월 CGV공항에서 '일본인디필름 페스티벌리턴'을 통해 [웃음의 대천사], [오페레타 너구리 저택], [카모네 식당]을 연달아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땐 정말 영화를 보고나서 머리가 깨지는 듯이 아파서 시간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영화를 보지 못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장고 : 분노의 추적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를 즐기는 동안은 별 이상을 느끼지 못했는데, 영화가 끝나고 극장 밖으로 나오면서 심한 두통을 느껴야 했습니다. 아무리 CGV 공항이라고해도 영화 한편을 볼땐 두통을 느끼지 않았는데, [장고 : 분노의 추적자]는 러닝타임이 워낙 길어서인지도.

 

 

페기처분된줄 알았던 서부극의 부활

 

비록 [장고 : 분노의 추적자]를 보고나서 두통을 느끼며 집으로 와야 했고, 집에 와서도 두통으로 인하여 잠을 설쳐야 했지만, 영화는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은 두통을 느낄 새가 없었을 정도이니까요.

[장고 : 분노의 추적자]는 서부극입니다. 이미 오래 전에 폐기처분된 장르라고 생각했던 서부극은 최근 들어서 다시 인기를 되찾고 있습니다. 서부극을 부활시킨 일등 공신은 누가 뭐래도 코엔 형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10년 12월에 개봉해서 북미 흥행 1억7천1백만 달러를 올린 코엔 형제의 [더 브레이브]는 서부극 사상 [늑대와 춤을]에 이은 북미 흥행 순위 2위를 기록했을 정도로 깜짝 흥행 대박을 일으켰습니다. 비록 우리나라에서는 조용히 개봉해서 소리소문없이 사라졌지만, [더 그레이브]의 흥행 성공은 미국에서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장고 : 분노의 추적자]는 바로 [더 브레이브]의 신선한 충격을 잇는 영화인 셈입니다. 이 영화의 북미 흥행 수입은 현재 1억6천2백만 달러이며, [늑대와 춤을], [더 브레이브]에 이어서 북미에서 서부극 흥행 3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비록 [장고 : 분노의 추적자]는 북미 흥행에서 [더 브레이브]에 뒤졌지만 이 영화의 진정한 가치는 해외 수입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더 브레이브]의 해외 수입은 7천9백만 달러. 분명 적은 수치는 아니지만 북미 흥행 수치와 비교한다면 절반도 안되는 기록인 셈입니다.

하지만 [장고 : 분노의 추적자]는 해외 흥행에서 현재까지 2억5천1백만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북미에서보다 해외 흥행 수입이 훨씬 높은 셈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라는 스타의 존재 때문일 것입니다. [더 브레이브]에서도 맷 데이먼이라는 스타가 출연하지만 아직 이름값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실제로 [장고 : 분노의 추적자]는 레오르도 디카프리오의 내한으로 개봉 전부터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었습니다. 조용히 개봉했다가 사라진 [더 브레이브]와는 상당히 시끄러운 행보를 보인 것이죠.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흥행 성적은 합격점을 줄 만큼은 되지 못하지만 그래도 북미 뿐만아니라 우리나라 관객에게도 서부극이라는 장르가 아직 살아있음을 확실하게 알린 셈입니다.

결국 [더 브레이브]가 서부극을 가까스로 살려냈다면, [장고 : 분노의 추적자]는 서부극을 완벽하게 부활시켜 다시 할리우드의 주류 장르로 되돌려 놓은 셈입니다. 서부극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굉장히 반가운 일입니다.

 

 

무엇이 이 영화의 러닝타임을 지탱해 주는가?

 

[장고 : 분노의 추적자]는 꽤 단순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미국 남북 전쟁이 일어나기 2년 전. 흑인 노예로 팔려갈 처지에 놓인 장고(제이미 폭스)는 현상금 사냥꾼 닥터 킹 슐츠(크리스토프 왈츠)를 만나게 되고 그와 함께 현상금 사냥꾼이 됩니다.

하지만 그의 최종 목표는 아내인 브룸힐다(케리 워싱턴)을 구하는 것. 그는 킹 슐츠와 함께 브룸힐다가 노예로 있는 칼빈 캔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농장에 가게됩니다.

뭐 그 다음의 이야기는 뻔합니다. 칼빈 캔디는 괜히 악당이 아니죠. 순순히 브룸힐다는 장고에게 내줄리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장고가 브룸힐다를 포기할리도 없으니 장고와 칼빈 캔디의 만남은 피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결국 장고는 총격전 끝에 브룸힐다를 구해냅니다.

만약 제게 이 영화를 만들라고 한다면 저는 기껏해야 2시간 분량의 이야기 밖에 만들어내지 못할 것입니다. 등장 인물이 제한적이고, 스토리 라인이 단순합니다. 아내를 구하기 위한 장고의 모험. 이 한 문장으로 이 영화는 모든 것이 설명됩니다. 그런데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이 영화를 무려 2시간 45분 동안 늘어 놓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2시간 45분 동안 이 영화를 지탱해준 것은 무엇일까요? 이 단순한 스토리 라인을 긴 러닝타임 동안 쓸고 갔음에도 지루하다는 관객보다 재미있었다는 관객이 더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가 [장고 : 분노의 추적자]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장고 : 분노의 추적자]를 만들며 특유의 수다로 영화를 가득 채워 놓습니다. 사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수다는 그의 영화를 보다보면 항상 만나게 됩니다. [장고 : 분노의 추적자]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이 영화의 수다를 쫓아가다보면 어느 사이에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지도 모를 지경입니다.

그 대표적인 장면은 백인우월주의자인 KKK단이 킹 슐츠와 장고를 기습하기 이전에 흰 복면을 가지고 투덜거리는 장면입니다. 스토리 진행에 분명 필요가 없는 이 장면은 하지만 백인우월주의에 대한 비아냥과 함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특유의 유쾌한 유머를 안겨준 명장면이기도 합니다.

흑인 노예의 두개골을 들고 흑인의 노예근성을 설명하는 칼빈 캔디의 장면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사랑하는 수다의 진면목을 보여줍니다. 칼빈 캔디가 늘어놓는 개똥철학은 불필요한 장면처럼 보이지만 영화의 긴장감을 한층 더 고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장고 : 분노의 추적자]의 러닝타임이 2시간 45분이나 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식입니다. 스토리만 진행시킨다면 2시간이면 충분한 내용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수다를 늘어 놓으며 단순한 스토리 진행 이상의 그 무엇인가를 추구합니다. 그것은 노예 정책에 대한 유머 섞인 바판이기도하고, 영화의 긴장감을 높이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수다가 있었기에 [장고 : 분노의 추적자]의 영화적 재미는 더욱 풍성해진 것입니다.

 

 

서부극에서도 자신의 매력은 잃지 않은...

 

이렇듯 [장고 : 분노의 추적자]는 서부극이라는 역사가 긴 오래된 장르로 만들어졌지만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매력을 결코 잃지 않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장고 : 분노의 추적자]에서 찾을 수 있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매력은 수다 뿐만이 아닙니다. 영화 전반에 걸친 B급 감수성과 잔인함 역시 [장고 : 분노의 추적자]는 고스란히 물러 받은 것입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주특기는 누가 뭐래도 B급 감수성이 넘쳐나는 호러 영화입니다. 그가 기획을 맡은 호러 영화 [황혼에서 새벽까지], [호스텔], 제작을 맡은 [그라인드 하우스]와 [플래닛 테러], [마셰티], 그리고 감독을 맡은 [킬빌], [데쓰 프루프] 등은 사지 절단은 기본이고, 피가 난무하는 B급 영화를 추구하는 작품들입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B급 감수성과 서부극은 사실 안 맞아보이기도합니다. 서부극의 묘미는 단 한방의 총알이니까요. 하지만 [장고 : 분노의 추적자]는 그러한 편견을 부숴버립니다. 사냥개를 뜯겨 죽는 흑인 노예의 모습과 한 명이 죽을 때까지 격투를 해야하는 만딩고 격투씬 등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아니라면 시도하기 힘든 서부극 속의 B급 감수성이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후반 캔디 랜드에서의 총격씬은 내가 서부극을 보고 있는 것인지 [황혼에서 새벽까지]를 보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피가 난무하고, 살점이 튀어 날아가는 B급 장면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한 장면들을 보며 역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답다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더군요.

 

물론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이 영화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하기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영화에 흐르는 올드한 느낌의 음악들로 서부극을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바꾸는 것에만 집착하지 않은, 서부극 특유의 올드한 분위기를 한껏 살려내기도 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대단했습니다.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크리스토프 왈츠의 연기는 물론 제이미 폭스, 그리고 기대하지 않았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까지 2시간 45분 동안 이 영화에 빠져들게끔 만들었습니다.

특히 저는 사무엘 L. 잭슨의 연기가 가장 좋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악역인 칼빈 캔디가 너무 허무하게 죽어서 아쉬웠다고 하지만 제가 보기에 이 영화의 진정한 악당은 칼빈 캔디보다는 칼빈 캔디의 집사인 스티븐(사무엘 L. 잭슨)입니다. 백인에 빌붙어 동족인 흑인을 괴롭히는 집사 스티븐. 그는 어쩌면 칼빈 캔디가 말하던 흑인의 노예 근성의 대표적인 예일 것입니다.

[장고 : 분노의 추적자]는 많은 것을 담은 영화입니다. [더 브레이브]에 이어 서부극을 살려냈고, 그러면서 쿠엔틴 타란티노 특유의 영화적 분위기를 잃지 않았으며, 배우들의 명연기 역시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더해줬습니다. 그러면서 아직도 인종 차별이 만연한 미국 사회에 통렬한 카운터 펀치를 날리며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속 시원한 쾌감까지 안겨줍니다. 과연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명성에 전혀 부끄러움이 없는 그런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코엔 형제 특유의 서부극 [더 브레이브]에 이어

이젠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만의 서부극 [장고 : 분노의 추적자]까지...

앞으로 서부극을 만들 감독들은 부담이 크겠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