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3년 영화이야기

[제로 다크 서티] - 서로의 두려움에 의한 광기의 전쟁.

쭈니-1 2013. 3. 19. 13:23

 

 

감독 : 캐서린 비글로우

주연 : 제시카 차스테인, 제이슨 클라크

개봉 : 2013년 3월 7일

관람 : 2013년 3월 18일

등급 : 15세이상 관람가

 

 

포기했었는데...

 

[링컨]과 [파파로티] 중에 한 편을 보기 위해 집근처 멀티플렉스의 영화 시간표를 펼쳐 놓고 이리 저리 시간대를 맞추고 있었습니다. 지난 주에 달랑 [웜 바디스] 한 편밖에 보지 못했기에 이번 주에는 월요일부터 바쁘게 영화보기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던 와중에 제 눈에 들어온 한 편의 영화가 있었으니 바로 [제로 다크 서티]입니다.

지난 주초에 볼 계획이었던 [제로 다크 서티]. 하지만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야근이 있었고, 수요일에는 뜬금없이 음악회에 초대되어 극장에 갈 수가 없었으며, 목요일에는 신작들의 개봉으로 [제로 다크 서티]의 개봉관이 거의 사라져버린 후였습니다. 결국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전작인 [허트 로커]처럼 [제로 다크 서티]는 극장에서 놓칠 위기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집 근처 멀티플렉스 시간표에서 다시 이 영화를 발견한 것입니다.

물론 고민에 빠져야 했습니다. 지난 주말 박스오피스 2위를 기록한 [파파로티]와 서두르지 않으면 극장에서 볼 기회를 놓칠 것이 분명한 [링컨]이 자꾸 눈에 밟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제로 다크 서티]를 극장에서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제로 다크 서티]의 영화 시작 시간은 밤 10시. 이 영화의 러닝타임은 무려 2시간 40여분이기에 영화가 끝나는 시간은 새벽 12시 40분이었습니다. 월요일부터 피곤함을 안고 시작해야한다는 부담감도 마음에 걸렸지만, 저는 그런 모든 것을 감안하고 드디어 [제로 다크 서티]를 보기 위해 극장 좌석에 앉았습니다. 

[제로 다크 서티]는 2001년 9월 11일에 발생하여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들었던 9.11 테러 이후 테러의 주동자인 빈 라덴을 잡기 위한 미국 CIA의 활동을 그린 영화입니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관련자들의 인터부를 토대로 만들어졌다는 자막이 나오고, 영화 자체도 극영화의 재미보다는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방식으로 무미건조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제로 다크 서티]는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전작인 [허트 로커]와 맞닿아 있습니다. [허트 로커]는 이라크 바그다드에 투입된 미군 폭발물 제거반 EOD의 활약을 그린 영화로, 영화의 극적 재미보다는 마치 이라크 현지에 서있는 듯한 생생한 현장감이 돋보였던 영화입니다. 

자! 그렇다면 직딩에겐 가장 힘든 요일이라는 월요일. 그것도 밤 10시부터 새벽 12시 40분까지. 쭈니의 눈으로 생생하게 체험한 CIA의 빈 라덴 사살 작전 [제로 다크 서티]의 영화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야... 그녀의 집착에 대해서...

 

[제로 다크 서티]는 시작하자마자 테러조직인 알카에다의 자금책인 한 남자가 CIA 요원들에 의해 고문을 당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솔직히 이 영화의 고문 장면은 [남영동 1985]보다는 수위가 낮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 고문 장면이 나온다고 해서 바짝 긴장했는데, [남영동 1985]를 보며 단련이 되어서인지 생각보다는 끔찍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고문 장면의 끔찍함이 아닌 고문을 지켜보는 마야(제스카 차스테인)의 표정입니다. 이제 막 현장에 투입된 마야. 풋내기 CIA요원인 그녀는 애써 강인한척 합니다. 팀장인 댄(제이슨 클라크)이 모니터로 고문 장면을 지켜보라고 해도 현장에서 보겠다며 고집을 피우고, 복면을 쓰라고 해도 팀장님도 안쓰지 않았냐며 거부합니다.

어린 여성의 몸으로 거친 현장에 투입된 마야는 이렇게 스스로 자기 자신을 강하게 단련시킵니다. 그러나 고문 장면을 지켜보는 그녀의 표정은 거짓말을 하지 못합니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싶을 정도로 고문 현장의 끔찍함이 싫었던 것입니다.

 

어찌보면 [제로 다크 서티]는 마야의 CIA 요원으로서의 성장담입니다. 겉으로는 강한 척 하지만 막상 고문 현장에서는 표정을 일그러뜨렸던 마야. 그랬던 그녀가 점점 고문에 무감각해지고, 빈 라덴을 잡아야 한다는 임무에 집착하기 시작합니다.

[제로 다크 서티]는 끈질기게 마야를 뒤쫓습니다. 빈 라덴을 잡겠다는 신념에 찬 마야. 하지만 빈 라덴의 은신처는 찾을 수가 없고, 알 카에다의 테러는 세계 곳곳에서 이뤄지며 무고한 희생자를 냅니다.

결국 마야의 가장 친한 동료조차 알카에다의 함정에 빠져 죽음을 당하자 그녀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입니다. 이건 마치 그녀가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닌, 임무가 그녀를 집어 삼킨 것처럼 보여집니다. 그녀의 상관조차 그녀에게 '미쳤다.'며 피할 정도로 빈 라덴 검거에 강한 집착을 보이던 마야의 모습을 지켜보며 분노가, 그리고 테러에 대한 두려움이 사람을 어떻게 광기에 빠뜨리는지 느꼈습니다.

어쩌면 서방 세계를 향한 아랍의 분노와 두려움도 같은 것이 아닐까요? 석유 이권에 눈이 멀어 아랍에 대한 영향력을 높이려던 미국. 그러한 미국을 향한 분노와 두려움은 테러로 이어지고, 테러는 또 다시 미국의 복수를 낳고, 미국의 복수에 아랍은 테러로 맞서고... 분노가, 두려움이 마야를 점점 광기에 빠뜨렸듯이, 미국도, 아랍도 광기에 빠뜨린 것은 아닐까요?  

 

 

2시간 40분 동안 심장이 쿵쾅거렸다.

 

마야의 변화를 통해 분노와 두려움에 빠진 인간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준 [제로 다크 서티]는 2시간 40분 동안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바짝 고삐를 조여듭니다.

사실 [제로 다크 서티]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영화적인 극적 재미가 부족합니다. 영화의 스토리 전개 자체가 10년 동안 빈 라덴의 행적을 쫓는 마야의 모습을 담담하게 비춰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긴장감이 넘쳐 흐릅니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긴장감의 원동력은 바로 생생한 현장감입니다.

언제 어디에서 테러가 자행될지도 모르는 상황. 그것은 마야가 직장 동료와 편안하게 식사를 하는 호텔일 수도 있고, 마야가 임무를 잠시 놓고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집일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의 90%는 빈 라덴의 은신처를 쫓는 마야의 임무이고, 나머지 10%는 마야와 그녀 주변의 일상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10%의 일상이 오히려 더 긴장감 넘쳤습니다.

언제 어디서건 일어날 수 있는 테러의 무서움을 [제로 다크 서티]는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조용한 일상이 폭탄의 폭발음과 함께 얼룩지는 상황의 끔찍함을 [제로 다크 서티]는 생생한 현장감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특히 영화의 후반에 펼쳐지는 빈 라덴 은신처의 습격 장면은 [제로 다크 서티]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긴장감 넘치는 명장면입니다.

비록 빈 라덴 측근과 미국 특수부대의 격렬한 총격전은 없지만, 현장에 투입된 요원의 시선으로 처리된 습격 장면들은 마치 영화를 보는 저도 그들과 함께 빈 라덴의 은신처를 습격하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너무나도 조용한 빈 라덴의 은신처. 하지만 어디에서 총이 난사되고, 어디에서 갑자기 폭탄이 터질지 알 수 없는 상황. 그러한 현장의 생생한 긴장감을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은 잡아낸 것입니다.

[허트 로커]에 이은 이러한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현장감에 의한 긴장감 조성은 왜 그녀의 영화가 아카데미 영화제의 단골이 되었는지 보여줍니다. 할리우드가 자랑하는 거대한 스펙타클과 물량공세에 의한 총격씬이 없어도 관객이 긴장하게 만드는 그녀의 연출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것으로 보입니다.

 

 

마야의 눈물... 그 의미는?

 

2011년 5월 빈 라덴은 파키스탄의 수도인 이슬라마바드의 외곽에 있는 가옥에서 미군 특수부대의 공격을 받고 사실되었습니다. 9.11 테러가 일어난 시기가 2001년이니 무려 10년 동안 빈 라덴은 미국의 가공할만한 정보력을 비웃으며 은신해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직속 상관을 협박하면서 은신처에 숨어 있는 것이 빈 라덴 임을 100% 확신했던 마야. 그녀는 결국 자신의 모든 것을 걸면서까지 그토록 잡고 싶었던 빈 라덴을 잡아낸 것입니다.

하지만 파키스탄 정부의 승인 없이 남의 나라 영공을 침략하여 속전속결로 빈 라덴을 처결하는 이 장면의 긴장감이 끝난 이후 놀랍게도 마야는 눈물을 흘립니다. 빈 라덴을 잡은 미군 특수부대원의 환호성과는 달리 담담하게 빈 라덴의 시체를 확인한 그녀는 결국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과연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요?

 

기쁨의 눈물? 그것은 분명 아니었습니다. 제가 보기엔 10년이라는 세월동안 자기 자신을 집어 삼킨 집착에 대한 허탈감으로 보입니다. 

그녀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잡은 빈 라덴. 그러나 막상 빈 라덴의 실체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아닌 50대 중반의 사람일 뿐입니다. 그러한 빈 라덴의 시체를 확인한 마야. 그 순간 10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녀를 지배하던 집착이 그녀를 풀어줬을 것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빈 라덴이 잡혔다고 해서 서방 세계와 아랍의 테러 전쟁은 끝이 났을까요? 서로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으로 시작된 이 전쟁은 빈 라덴이 죽었다고 해서 쉽게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테러에 대한 뉴스를 접하곤 하니까요.

두려움 앞에서 인간은 두가지 선택을 하게 됩니다. 숨거나, 맞서 싸우거나... 결국 알카에다도, 미국도, 이 전쟁을 멈추는 길은 서로에 대한 분노의 복수가 아닐 것입니다. 그들을 광기로 내모는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겠죠. 서로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는 어느 한쪽이 숨지 않는다면 결국 서로 맞서 싸우는 광기의 역사가 반복될 것입니다. 마지막 마야의 눈물은 그러한 깨달음이 아니었을까요?

  

[제로 다크 서티]는 빈 라덴을 처결한 어느 CIA 요원의 영웅담이 아니다.

오히려 이 광기의 전쟁에 대한 허무의 기록이 아닐까?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