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3년 영화이야기

[파파로티] - 꿈이 있기에 우리는 인간답게 살 수 있다.

쭈니-1 2013. 3. 20. 15:19

 

 

감독 : 윤종찬

주연 : 이제훈, 한석규, 오달수, 조진웅, 강소라

개봉 : 2013년 3월 14일

관람 : 2013년 3월 18일

등급 : 15세이상 관람가

 

 

조폭 코미디의 변주?

 

2013년 개봉한 한국영화 중에서 첫 흥행 성공작은 [박수건달]입니다. 조폭이 바뀐 운명으로 인하여 박수무당이 된다는 설정을 담은 [박수건달]은 조폭 코미디의 명맥을 잇는 영화였습니다.

2013년 한국영화의 흥행 돌풍이 예사롭지 않은 가운데 이번엔 [파파로티]가 새롭게 선을 보였습니다. [파파로티]는 조폭이 성악가라는 자신의 꿈을 이루는 과정과 그 속에 피어나는 사제지간의 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박수건달]과 [파파로티]는 어쩌면 조폭이 다른 직업을 선택한다는 설정에서 서로 맞닿아 있는 영화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과장된 웃음 속에서 전형적인 조폭 코미디 장르의 길을 선택한 [박수건달]과는 달리 [파파로티]는 SBS TV 예능프로인 <스타킹>에 출연하여 화제가 되었던 김호중씨의 이야기를 각색하여 웃음보다는 감동에 방점을 찍은 영화라는 점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지난 월요일, [제로 다크 서티]라는 무거운 영화를 본 저는 화요일에는 조금은 가벼운 영화를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링컨]을 볼 계획이었지만 무거운 주제와 긴 러닝타임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영화를 두 편 연속 보기엔 부담스러웠던 것입니다. 

[파파로티]에 대해서 너무 뻔한 신파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그래도 초반에 부담없이 웃을 수 있는 장면들이 많다는 다른 분들의 평가를 믿고 가벼운 마음으로 극장을 찾았습니다.

극장 안은 평일 밤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관객들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관객들 때문인지 영화 시작 전까지의 분위기는 약간 시끌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모두들 영화 속에 빠져 들었는지 조용해지더군요. 저 역시 2시간의 러닝타임동안 지루함을 느낄 틈도 없이 재미있게 [파파로티]를 관람했습니다.

 

 

조폭으로 코미디를 만들지는 않았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파파로티]는 조폭인 이장호(이제훈)가 성악가를 꿈꾸며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영화입니다. 이렇듯 조폭을 소재로한 영화의 경우는 [박수건달]처럼 조폭을 코미디의 소재로 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장르인 조폭 코미디의 공식에 충실하게 따르는 것이죠.

[파파로티] 역시 조폭 코미디의 유혹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조폭들이 세계적인 성악가 파바로티를 '파마로티'라고 부르며 '그 양반 파마도 했다'며 능청스럽게 말하는 장면은 조폭의 무식함을 코미디화한 전형적인 조폭 코미디의 장면입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파파로티]는 조폭의 코믹한 장면을 최대한 자제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조폭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외톨이가된 이장호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일 뿐입니다. 과거의 회상씬을 통해 이장호가 조폭에 들어가게된 계기를 보여주는 장면은 조폭을 웃음거리로 만들기 보다는 얼마나 '외로웠으면 폭력 조직에라도 기대려 했을까?'라는 이장호의 안타까움만을 드러내게 만듭니다.

 

제가 조폭 코미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조폭을 미화하기 때문입니다. 조폭이라는 것이 힘 없고 약한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해서 이익을 얻는 사회악입니다.

그런데 조폭 코미디 영화들은 그런 조폭을 코믹화하며 조폭의 이미지를 친숙하게 만듭니다. 실제로 조폭 코미디가 히트한 이후 어린아이들 사이에서 장래희망이 조폭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파파로티]에서 조폭은 코믹하고 친근한 대상이 아닌, 이장호가 넘어야할 장벽입니다. 비록 너무 외로워서 조폭이 되었지만, 그에겐 상악가라는 꿈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를 성악가로 이끌어줄 스승 나상진(한석규)이 있습니다. 더이상 외롭지 않은 그에게 조폭은 더이상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아닌 자신의 꿈을 이루는 것데 방해가 되는 장애물이 되는 것입니다.

상진은 장호에게 '먼저 사람이 되라'고 나무랍니다. 장호를 친동생처럼 아끼던 조폭 창수(조진웅)은 꿈이 있는 장호를 부러워하며, '인간답게 살아라'라고 조언합니다. 결국 [파파로티]는 조폭을 웃기는 존재가 아닌, 인간 이하의 존재로 그려 놓은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웃음은 조폭이 아닌 학교에 맡겨라.

 

조폭이 웃기지 않는다고해서 [파파로티]가 웃음끼라고는 전혀 없는 영화는 아닙니다. [파파로티]는 조폭 코미디의 유혹을 뿌리치고 웃음을 조폭이 아닌 학교에서 찾아냈습니다.

김천예고의 교장인 장덕생(오달수)의 존재가 바로 그러합니다. 상진의 학교 후배인 덕생은 학교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 상진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장호를 학교에 입학시킵니다.

이후 덕생과 상진은 서로 치고 받는 웃기는 상황을 많이 만들어냅니다. 직장 상사라고도 할 수 있는 학교 교장과 음악 선생의 관계, 하지만 학교 밖에서는 선후배이기도 하며, 상진의 스승이 덕생의 아버지이자 김천예고의 창립자라는 설정은 덕생과 상진의 관계를 통한 코믹한 장면들을 배출해냅니다.

김천예고의 선생들의 충격적 비주얼과 그들의 닭살 애정 행각 또한 코미디로 승화됩니다. 어디에서 저렇게 충격적이면서 보는 것만으로도 웃기는 비주얼의 배우들을 골랐는지 궁금할 정도로 김천예고의 커플 선생은 생긴 것만으로도 웃음을 주는 훈훈한 광경을 연출합니다.

 

선생으로도 모자랐는지 [파파로티]는 장호를 좋아하는 엉뚱소녀 숙희(강소라)를 내세워 무뚝뚝한 장호와의 로맨스를 통해 웃음을 만들어냅니다.

솔직히 숙희를 내세운 웃음은 약간은 무리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써니]에서 보여줬던 강소라의 톡톡 튀는 연기 덕분에 부담없이 웃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파파로티]는 굳이 조폭을 코믹화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영화의 코믹함을 잘 살려냈습니다. 무시무시한 조폭보다는 우리에게 친근한 학교의 풍경을 통해 [파파로티]는 부담없는 웃음을 구축해낸 것입니다.

제가 [파파로티]에게 가장 큰 점수를 주고 싶은 것은 바로 그러한 점입니다. 조폭 코미디의 유혹을 뿌리치고, 조폭이 아닌 학교의 선생과 학생들을 통해 만들어 놓은 이 영화의 웃음은 [박수건달]보다 건전하고 신선했습니다.

물론 이 영화의 후반부가 너무 뻔한 감동의 연속입니다. 특히 세종 콩쿨에 가다가 상대 조폭을 만나 콩쿨에 늦는 장면은 감동을 위해 너무 꾸민 티가 팍팍 나서 아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파파로티]는 건전한 웃음으로 초중반을 채웠기에 충분히 부담없고 감동스러운 영화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답게 사는법? 꿈을 가져라.

 

네, 이 영화는 뻔합니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앞서 언급한 장호가 세종 콩쿨에 늦는 장면은 영화의 감동을 위한 과한 설정이라 눈쌀이 살짝 찌푸려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명불허전 한석규와 [건축학개론], [점쟁이들], [분노의 윤리학] 등 군대 가기 전에 자신의 매력을 맘껏 뽐낸 이제훈의 거친 조폭 연기가 잘 어우러져 영화의 재미를 더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 영화의 주제 역시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꿈을 가져라.' 어쩌면 너무 흔한 주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파파로티]가 뻔한 영화이듯이 '꿈을 가져라'라는 이 영화의 주제 역시 뻔한 주제인 셈입니다. 하지만 우린 어린 시절 꾸었던 꿈조차 바쁜 일상 속에 새카맣게 잊고 생활하고있습니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너무 당연하기에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을 [파파로티]는 다시 한번 일깨워줍니다.   

어느 햄버거집에 앉은 창수는 장호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여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누군줄 아니? 바로 나야, 난 꿈이 없거든." 창수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루 하루 그냥 사는 것, 그것이 얼마나 불쌍한 인생임을...

 

인간이 짐승과 다른 것은 꿈을 가지기 때문이 아닐까요? 본능에 의해 움직이고, 본능에 의한 욕망만을 갖는 짐승과는 달리, 우리 인간들은 이루고 싶은 꿈을 향해 자신의 본능을 제어합니다.

장호도 꿈이 있었습니다. 성악가가 되겠다는 꿈. 그가 만약 꿈도 없이 동물적인 본능만을 갖고 살고 있었다면 성악가라는 이루기 힘든 꿈보다 조폭의 중간 보스라는 쉬운 길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죽는 것보다 꿈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 더욱 두려웠던 것입니다.

종양으로 인하여 꿈을 포기했던 상진은 꿈을 이루지 못하는 아픔을 알기에 상진을 성악가로 이끕니다. 초반, 그는 꿈이 없는 무기력하고 까칠한 선생이었지만 장호를 만난 이후 그는 장호를 세계적 성악가로 키우겠다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됩니다. 그것이 그가 장호의 보스에게 자신의 발목을 걸고, 자신의 불행을 비웃은 친구에게 자존심을 버린 이유입니다.

네, 맞습니다. [파파로티]는 뻔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꿈을 꾸는 장호와 그의 꿈을 이끌어주는 상진이 있기에 이 영화는 꿈을 잃은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좋은 우화와 같은 영화가 된 것입니다. 영화의 엔딩 타이틀에 나오는 <행복을 주는 사람>을 들으며 내게 행복을 주는 꿈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제훈은 입대하며 그의 꿈을 잠시 접었다.

하지만 제대후 다시 그의 꿈이 우리 관객들을 행복하게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