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3년 영화이야기

[연애의 온도] - 사랑의 온도가 식지 않게 하려면...

쭈니-1 2013. 3. 22. 11:52

 

 

감독 : 노덕

주연 : 이민기, 김민희

개봉 : 2013년 3월 21일

관람 : 2013년 3월 21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왜 이 영화는 화이트데이에 개봉하지 않았을까?

 

지난 화이트데이. 구피와 함께 달달한 로맨스 영화를 보기 위해 상영작을 고르고 고른 끝에 결국 선택했던 영화는 [웜 바디스]였습니다. 이 영화는 분명 신선하고 재미있는 영화이기는 했지만 화이트데이의 로맨틱한 분위기를 꿈꾸는 제겐 그날의 분위기와는 조금 맞지 않은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화이트데이날 [웜 바디스]를 보며 저는 [연애의 온도]가 왜 화이트데이에 맞춰 개봉하지 않았는지 의아했습니다. 이민기와 김민희를 내세운 이 로맨틱 코미디는 화이트데이용 로맨스 영화로 딱 알맞아 보였거든요. 

어쩌면 화이트데이는 구피와 함께 [연애의 온도]를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습니다. 로맨스 영화는 극장이 아닌 안방에서 봐야한다고 생각하는 구피는 제가 로맨스 영화를 보러 가자고 조를 때마다 냉정하게 거절했었습니다. 화이트데이였다면 구피에게 '오늘은 날이 날인만큼 [연애의 온도]를 꼭 봐야겠어.'라고 강하게 밀어부칠 수 있었을텐데 [연애의 온도]가 개봉하지 않는 바람에 그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연애의 온도]를 극장에서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이번주 내내 [제로 다크 서티], [파파로티]를 혼자 극장에서 보며 다른 연인 관객들을 부럽게 지켜봐야 했던 저로서는 [연애의 온도]마저 혼자 보며 그들을 부러워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무리수를 두기로 결심했습니다.

구피에게 전화로 "오늘 [연애의 온도] 보라 가자."고 이야기했습니다. 당연히 구피의 대답은 "싫어. 피곤해." 하지만 여기에서 물러날 생각이라면 애초에 시작도 않했을 것입니다.

"몰라. 난 오늘 [연애의 온도]를 너랑 꼭 보러 갈거야. 예매해놓을께."라는 말과 함께 저는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핸드폰을 뚫어져라 쳐다봤습니다. 만약 구피가 다시 전화해서 '예매하지마!"라고 한다면 [연애의 온도]를 포기하려 했는데, 전화가 없더군요. 

그렇게해서 목요일 밤, 저를 째려보며 "이 웬수야!"를 외치는 구피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연애의 온도]를 보고야 말았습니다. 얼마나 흐뭇하던지... 역시나 극장 안을 가득 채운 연인 관객들 틈에서 저는 그들을 향한 부러움이 아닌 당당함으로 구피의 손을 꼭 잡고 영화를 관람했답니다.

 

 

이별했지만 사랑의 온도는 식지 않았다.

 

[연애의 온도]는 어느 은행을 중심으로 사내커플인 이동희(이민기)와 장영(김민희)의 사랑과 이별을 그리고 있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여느 로맨틱 코미디와는 조금 다릅니다.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 자체가 사랑을 최대한 아름답게 꾸미는데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연애의 온도]는 사랑하는 남녀의 뜨겁게 달아올랐다가, 금방 차갑게 식는 사랑의 온도를 그려낸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연애의 온도]는 작년에 개봉해서 흥행에 성공한 [러브픽션]의 연장선에 있는 영화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러브픽션]은 주월(하정우)과 희정(공효진)의 심하다 싶을 정도의 찌질한 사랑을 담은 영화였습니다. 저는 [러브픽션]을 보며 12년전의 나의 찌질했던 사랑이 떠올라 맘껏 웃으면서도 뜨끔했었습니다. [연애의 온도]는 [러브픽션]처럼 사랑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것보다 관객의 공감을 얻는데 주력한 영화인 것입니다.

[연애의 온도]에서 동희와 장영의 시작은 이별부터입니다. 3년간 사내 비밀커플로 한때는 무척이나 뜨거웠던 사이였음이 분명한 그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이별을 맞이합니다. 그들이 왜 이별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 거의 대부분의 사랑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수 없는 만큼, 왜 끝났는지도 불가사의하기 때문입니다. 

 

동희와 장영이 왜 이별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지만, 이별 후 그들의 모습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연애의 온도]는 인터뷰 형식으로 그들의 모습을 열심히 뒤쫓습니다.

"왜 슬퍼야해요? 저는 기분 굉장히 좋은데."라며 애써 미소짓던 장영은 집에 들어가 방에서 소리를 죽여가며 울음을 터뜨립니다. 장영과의 이별 이후 "해방이다. 난 자유인이다."라며 만세를 부르던 동희 역시 술에 취하자 자영을 찾으며 주정을 부립니다. 동희와 장영이 왜 헤어졌는지는 중요하지 않지만 그들의 이별 후 모습들을 통해 [연애의 온도]는 아직도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장영은 동희의 미니홈피를 몰래 들여다 보고, 동희가 새롭게 사귀고 있다는 여대생의 뒤를 몰래 쫓아다닙니다. 동희는 장영이 새롭게 소개받은 본사 직원의 앞에서 행패를 부리며 아직 장영에게 마음이 남았음을 드러냅니다.

그들의 모습은 어찌보면 찌질해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서로를 향한 찌질한 복수는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님에게 관심받고 싶어서 일부러 못 된 짓을 저지르는 것처럼, '나 아직 너에게 관심있어.'라는 처절한 몸부림으로 보였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이별했지만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의 온도는 식지 않고 여전히 뜨겁게 달아 오르고 있었습니다.   

 

 

헤어진 연인의 82%는 다시 만난다. 하지만 97%는 또다시 헤어진다.

 

[연애의 온도]는 이별했지만, 서로를 아직 사랑하는 동희와 장영의 모습을 그립니다.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동희와 장영은 다시 사랑하게 될 것임을... 아직 사랑의 온도가 식지 않은 그들은 다시금 사랑에 빠지게 예정되었던 것입니다.

만약 [연애의 온도]가 이별했다가 결국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동희와 장영의 모습으로 영화를 끝맺었다면 이 영화는 다른 로맨틱 코미디와 별반 다르지 않은 영화가 되었을 것입니다. 

어느 귀여운 커플이 이별 후 티격태격하다가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스토리는 흔하디 흔한 로맨틱 코미디의 약간의 변주에 불과할테니까요. 하지만 [연애의 온도]의 진정한 가치는 동희와 장영이 다시 사랑을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다시 시작하자는 동희에게 장영은 이런 말을 합니다. "헤어진 커플의 82%가 다시 만나지만, 97%는 결국 같은 이유로 헤어진대. 우리가 3% 안에 들 수 있을까?" 그러한 장영에게 동희는 '3%도 굉장히 큰 확률이다.'라며 확신을 줍니다. 만약 그 부분에서 영화가 경쾌한 음악과 함께 엔딩 타이틀이 나왔다면 [연애의 온도]는 뻔하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로맨틱 코미디가 될 수는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연애의 온도]는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갑니다.

 

동희와 장영은 다시 사랑을 시작하며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부터 이 영화는 무미건조해집니다. 동희와 장영의 사랑의 온도가 식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별 후 서로에게 찌질한 복수를 할때조차 식지 않았던 사랑의 온도가 왜 사랑을 다시 시작하자 차디차게 식어버린 것일까요? 

비 오는 날의 놀이공원. 개인적으로 저는 이 장면이 [연애의 온도]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합니다. 서로에게 최선을 다한 그들. 장영은 순수 도시락을 준비하고, 동희는 비오는 놀이공원에서 재미있는 척 웃어줬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최선의 노력이 이들 커플의 사랑의 온도가 식어버린 이유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개인적인 옛 이야기를 하자면... 대학 졸업때쯤, 여후배와 사귈뻔 했었습니다. 그녀는 저희 과에서 퀸카 대접을 받을 정도로 예뻤고, 남자들의 인기를 독차지할 정도로 매력적인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제게 먼저 사귀자고 고백했던 것도 그녀였습니다. 저는 '이게 웬 횡재냐.'라며 그녀와의 사랑을 시작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녀를 만날 때마다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녀를 재미있게 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모든 것을 그녀에게 맞추려했습니다. 분명 내 옆에 있는 그녀는 예쁘고 매력적인데 그러한 매력이 부담이 되어 버렸습니다. 결국 저는 그녀와의 사랑을 시작조차 하지 못한채 서둘러 끝내야 했습니다.

 

 

사랑! 그것도 '너'가 아닌 '나'를 먼저 생각해야한다.

 

동희와 장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사랑의 온도가 차갑게 식은 이유는 서로가 서로에게 부담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미 한번 이별을 경험했던 그들은 다시 이별하지 않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잘 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말과 행동을 조심합니다.

사랑. 그것도 내 자신이 행복해야 뜨겁게 달아 오를 수가 있습니다. 과연 자기 자신을 접고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기 위해 끊임없이 상대방의 눈치를 보게 된다면 그러한 사랑이 과연 행복할까요? 내가 행복하지 않은데 사랑이 잘 될리가 없습니다.

당당한 매력을 영화 내내 뿜어내던 동희와 장영. 하지만 다시 사랑을 시작한 이후 그들의 얼굴엔 웃음이 보여지지만, 그들의 행동은 당당하다기 보다는 뭔가에 억눌려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놀이공원에서 결국 그 억눌려 있던 모든 것이 동시에 폭발하는 모습은 약간은 답답하던 영화의 후반을 속시원하게 만듭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 장면 이후 영화가 다시 밝아졌다는 것입니다. 다시 이별하면 안된다는 생각에 자기 자신을 억눌렀던 두 사람은 비를 맞으며 그 모든 것을 폭발시킵니다. 그 장면 이전에는 사람조차 없던 비오는 놀이공원의 풍경은 칙칙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 장면 이후 맑개 개인 하늘과 수 많은 사람들의 환호성으로 놀이공원은 활기를 되찾습니다. 그러한 놓이공원의 분위기 전환만으로도 노덕 감독은 두 사람의 상황을 설명한 것입니다. 노덕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순간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그들은 비록 다시 뜨거워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예전처럼 다시 차가워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당당한 모습으로 극장을 나서는 동희와 장영의 모습은 이 커플이 결국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서로의 눈치를 보던 그때보다는 행복할 것임을 예감하게 만듭니다.

사랑이란 결국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지진 두 사람이 만나 서로에게 맞춰 나가는 과정입니다. 그렇다보니 서로 다른 생각으로 인해 당연히 싸울 수 밖에 없습니다. 오랜 기간 지니고 있던 가치관이 사랑으로 인하여 순식간에 바뀌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렇게 싸우며 서로의 개성을 이해하고 가치관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죠. 그것이 사랑입니다.

하지만 만약 내가 무조건 상대방의 개성과 가치관에 맞추려 한다면 어떨까요? 당장은 다툼이 없을 것이며, 그러한 모습은 그들의 사랑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킬 것입니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무조건 맞춰 나가는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그 사랑이 행복할리가 없습니다. 행복하지 않은 사랑의 온도가 뜨겁게 달아오를 리가 없습니다. 결국 사랑이라는 것이 서로에게 맞춰나가는 과정이라고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지울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로맨스 영화를 극장에서 보기 싫은 구피는 제게 맞추기 위해 억지로 극장에 끌려 나왔지만, 그 대신 "피곤한데, 꼭 이렇게 극장에 데려와야 겠어?"라며 따졌고, 저는 구피에게 맞추기 위해 하기 싫어도 빨래를 널지만, 그 대신 "양말을 뒤집어서 벗어놓지 말란말야."라며 잔소리를 합니다. 서로에게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로의 눈치를 보며 하고 싶은 말을 참는 그 순간, 사랑의 온도가 식어버림을 저와 구피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답니다. 제가 [연애의 온도]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것은 그러한 점을 정확하게 집어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다툼을 두려워하지 마라.

사랑하는 그대들이 진정으로 두려워할 것은 다툼이 아닌,

무관심과 더불어 서로에 대한 부담감이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