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3년 영화이야기

[웜 바디스] - 멈춘 심장을 뛰게 하는 특별한 로맨스

쭈니-1 2013. 3. 15. 14:36

 

 

감독 : 조나단 레빈

주연 : 니콜라스 홀트, 테레사 팔머, 데이브 프랑코, 존 말코비치

개봉 : 2013년 3월 14일

관람 : 2013년 3월 14일

등급 : 15세 관람가

 

 

화이트데이에 좀비영화를?

 

모두들 아시겠지만 3월 14일은 화이트데이, 남성이 여성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사탕을 주는 날입니다. 저야 뭐 이미 구피와 사랑을 이루었기에 사랑을 고백할 일이 없지만(염장질), 구피가 회사 여직원들에게 나눠 주라며 사탕을 챙겨주더군요.

결국 아침부터 여직원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며 "사랑합니다."라는 멘트와 함께 하트를 마구 발사하다가 눈빛으로 맞아 죽을뻔 했습니다. (어찌나 날카롭게 째려보던지... ^^;)

암튼 화이트데이 사탕은 비록 회사 여직원들에게 나눠줬지만, 화이트데이를 맞이하여 극장에서 구피와 달달한 로맨스영화를 보기로 약속했습니다. 극장에서 로맨스영화 보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구피이기에 오랜만에 찾아온 이 기회에 무슨 영화를 볼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그런데 구피가 고른 영화는 바로 [웜 바디스]라는 좀비영화입니다. 화이트데이에 좀비영화라니... 암튼 구피의 취향도 참 독특합니다. 

그러고보니 화이트 데이라고 해도 달달한 멜로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을 찾기가 힘드네요. 매번 보고 싶은 멜로영화나 로맨틱코미디를 구피가 극장에서 안보겠다고 선언하는 바람에 놓치곤했던 저로서는 이럴때 괜찮은 멜로영화나 로맨틱코미디가 새롭게 개봉하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짙게 남았습니다. 

 

그렇다고해도 [웜 바디스]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좀비영화만은 아닙니다. [웜 바디스]를 설명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트와일라잇]의 좀비 버전입니다. [트와일라잇]은 공포영화의 소재인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을 하이틴 로맨스에 접목시킨 영화로 인간 여자와 뱀파이어, 늑대인간의 삼각 로맨스를 오글거리게 그렸던 영화입니다. 

결국 [웜 바디스] 역시 공포영화의 단골 소재인 좀비를 내세운 하이틴 로맨스 영화로 인간 여자와 좀비의 사랑을 그린 영화입니다. 좀비라고 하면 일단 징그러운 외모와 어정쩡한 걸음걸이가 특징인데, 아무리 [트와일라잇]이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했다고 해도 좀비와 인간의 사랑이 관객에게 먹힐 수 있을까요?

하지만 그러한 제 우려와는 달리 지난 2월 1일 미국 개봉당시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으며, 현재까지 북미 흥행 6천3백만 달러, 월드와이드 9천2백만 달러를 벌어들였다고 합니다. [웜 바디스]의 제작비가 3천5백만 달러임을 감안한다면 짭짤한 흥행을 거둔 셈이죠.

우리나라에서도 개봉 첫 날 7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신세계], [파파로티] 등 한국영화들을 제치고 일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하긴 [웜 바디스]를 보러 간 극장에 화이트데이를 맞이한 커플 관객들이 많았음을 감안한다면 [웜 바디스]는 좀비라는 소재보다는 로맨스라는 영화의 장르가 관객에게 더 먹혔나봅니다. 

 

 

좀비의 사회 정치학

 

좀비는 쉽게 말하면 살아있는 시체를 뜻합니다. 아메리카 서인도 제국의 부두교 주술사가 마술적인 방법으로 소생시킨 시체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주술사의 지배하에 있기 때문에 듣지도 못하고, 의지도 없다고합니다.

1932년 빅터 헬퍼린 감독, 벨라 루고시 주연의 [화이트 좀비]가 좀비를 소재로 삼은 첫 영화로 기록되고 있으며, 조지 로메로 감독의 공포영화 걸작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기점으로 [좀비오], [바탈리언] 등 좀비를 내세운 공포영화들이 만들어지며 좀비는 서양 영화의 대표적인 공포 소재로 지금까지 활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좀비가 과연 공포영화의 단순한 소재에 불과할까요? 애초에 서인도 제국에서 좀비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주술사에 의해 조종되기 때문에 의지라고는 전혀 없는 좀비는 무보수의 노예로 농장 등의 노역에 동원되었다고 합니다. 낮에는 무덤 안에 있다가 밤이되면 일을 하는데, 무거운 죄를 지은 인간이 그 형벌로 좀비가 되었다고 전해지기도 합니다. 결국 서인도 제국의 사람들은 좀비를 두려워한 것이 아닌, 좀비가 되는 것을 두려워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좀비의 존재는 영화를 통해 공포의 소재로 재탄생되었습니다. 좀비가 사람을 먹는다는 설정에서부터 좀비에게 물리면 물린 사람도 좀비가 된다는 설정 역시 영화 속에서 창조된 좀비의 이미지입니다.

이렇게 좀비는 영화를 통해서 공포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러한 좀비영화들에서 조차 좀비는 아무런 의지도 없이 하루 하루 변화없는 삶을 사는 소시민을 은연 중에 표현하곤 합니다. 그렇기에 좀비영화는 가끔 사회 정치학적으로 재평가되기도 합니다.

[웜 바디스]는 그러한 좀비의 사회 정치학을  교묘하게 이용합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좀비가 된 R(니콜라스 홀트)은 아무 것도 기억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저 공항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것이 그의 일과입니다. 하지만 [웜 바디스]는 R의 나래이션을 통해 그가 인간으로서의 의지를 완전히 잃지 않았음을 나타냅니다. 비록 좀비가 되어 공항 주변을 어슬렁거리지만, 그는 마음 속으로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는 것입니다.

'징그러운 좀비의 로맨스?'라며 [웜 바디스]에 의문부호를 가졌던 저 역시 R의 나래이션을 들으며 그가 의지를 되찾는다면 어쩌면 [트와일라잇]처럼 썩 괜찮은 독특한 소재의 하이틴 로맨스물이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기대를 갖게 되었습니다. 

 

 

의지가 없는 좀비가 인간성을 되찾기까지...

 

[웜 바디스]는 좀비가 된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R을 통해 의지라고는 전혀 없는 좀비가 인간성을 되찾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 첫번째는 스스로를 향한 질문이고, 두번째는 타인과의 관계를 통한 사회 활동입니다.

R에게는 절친이 있습니다. 물론 R의 절친인 M도 좀비입니다. 그렇기에 그의 대화는 좀비 특유의 '그르렁' 거리는 소리 뿐입니다. 하지만 R과 M은 눈빛을 나누고 의사 소통을 합니다. 비록 몰려 다니지만 의지가 없기 때문에 타인과의 관계가 불가능한 좀비에게 R과 M의 우정을 통한 관계는 특이한 케이스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R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좀비가 된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려 하고, M과의 관계를 통해 타인과의 관계를 쌓아갑니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 단계로 멈췄던 심장을 뛰게할 인간 여성 줄리(테레사 팔머)와의 만남을 이루게 됩니다.

인간에게는 1차적인 욕구와 2차적인 욕구가 있습니다. 1차적인 욕구는 배고픔, 졸리움, 대소변이 마려움 등 동물적인 욕구이고, 2차적인 욕구는 더 나은 인간적인 삶에 대한 조금은 고차원적인 욕구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1차적 욕구가 해결되어야만 인간은 2차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인간으로서의 의지가 없는 좀비에게 1차적 욕구가 전부임은 당연한 일입니다. [웜 바디스]에서는 바로 배고픔에 대한 욕구입니다. 하지만 줄리를 향한 R의 행동은 1차적 욕구를 뛰어 넘습니다.

살아있는 인간은 먹는다는 좀비의 1차적 욕구. 하지만 R은 줄리에 대한 1차적 욕구보다 줄리와 함께 있고 싶다는 인간적인 삶에 대한 2차적 욕구를 느끼게 됩니다.

R이 1차적 욕구를 뛰어 넘어 2차적 욕구를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의지가 없던 좀비 R이 점점 인간화되고 있음을 뜻합니다. 결국 R은 줄리를 지켜주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그녀가 떠난 후에는 가슴 아픈 시련의 감정을 느끼며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이렇듯 [웜 바디스]는 인간화가 되어 가는 좀비 R을 통해 좀비와 인간의 사랑을 완성시킵니다. 특히 알수 없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인간이 좀비가 되었듯이, R과 줄리의 사랑이 좀비 사이에서 마치 바이러스처럼 번져 다른 좀비들도 인간화되어가는 과정이 꽤 흥미롭게 진행됩니다. 줄리에 의해 R이 변하고, R의 사랑으로 인하여 다른 좀비들이 바뀌며, 좀비들의 인간회된 모습을 통해 좀비에 대한 인간들의 선입견이 바뀌는 과정이 [웜 바디스]에서 흥미롭게 진행되는 것입니다.

 

 

너무 짧은 러닝타임이 문제?

 

하지만 개인적으로 [웜 바디스]는 100% 만족스러운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좀비의 사회 정치학을 이용하여 좀비와 인간의 로맨스를 다룬 점은 상당히 신선했고, 좀비인 R이 변하고, 그로인하여 다른 좀비들과 인간이 바뀌는 장면 역시 흥미로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한 부분들이 너무 짧게 처리된 아쉬움이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R이 다른 좀비들과 달라지기 시작한 지점이 불분명하다는 점입니다. 제가 보기엔 R이 비행기 활주로에 있는 비행기 안에 자신의 터전을 잡은 것이 그가 다른 좀비들과 달라진 계기로 보이지만, 영화는 그러한 부분을 그다지 중요하게 처리하지 않습니다.

좀비와 인간이 서로 이해하고 힘을 합치기 위해서는 공공의 적이 필요한데 그러한 공공의 적은 좀비 중에서도 진화된 보니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보니는 다른 좀비 영화에서도 보기 힘든 캐릭터로 그야말로 [웜 바디스]를 위해 창조된 캐릭터입니다. 그렇다면 [웜 바디스]는 보니라는 새로운 캐릭터 창조에 심혈을 기울였어야 했는데, 보니라는 괴물 캐릭터 역시 공공의 적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은 것 역시 [웜 바디스]에서 아쉬운 점입니다.

 

R과 줄리가 서로 이해하게 되는 과정은 대체적으로 세세하게 묘사된 반면 R의 사랑으로 인하여 다른 좀비들도 인간화 되어가는 과정은 조금 느닷없게 느껴졌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니 만큼 시간을 두고 좀 더 천천히 진행시켰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결국 그러한 이 영화의 개인적인 아쉬움은 96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문제로 보입니다. 요즘 영화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기 위해서 러닝타임 2시간을 훌쩍 넘는 것이 추세인 요즘, [웜 바디스]는 너무 짧은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영화의 스토리 전개상 중요한 부분까지도 서둘러 진행시키는 단점을 보이게 된 것이죠.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웜 바디스]가 꽤 재미있게 봤습니다. 줄리의 집 테라스 밑에서 줄리를 기다리는 R의 모습은 금지된 사랑의 대명사인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시켰고, 줄리가 R을 화장시키는 장면에서 흘러나온 [귀여운 여인]의 주제곡은 유쾌한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트와일라잇]의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연상시키는 줄리 역의 테레사 팔머의 외모와 줄리의 남친 페리 역의 배우가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의 주인공,  제임스 프랭코의 동생인 데이브 프랭코라는 점 등등은 영화 외적으로도 흥미로웠습니다. 개인적으로 화이트 데이에 데이트용으로 본 영화로는만족스러웠다고 평가할 수 있겠네요.

 

가끔 나도 좀비가 된 내 자신을 느낀다.

아무런 의지없이 짜여진 시간표대로 움직이는 내 자신을 보면서...

하지만 영화와 사랑에 빠지면서 내 심장은 뛰기 시작했다.

다양한 상상력을 지닌 새로운 영화가 계속 나오는 이상

나의 삶은 좀비처럼 무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