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3년 영화이야기

[사이코메트리] - 사람을 죽이는 손과 살리는 손

쭈니-1 2013. 3. 8. 14:09

 

 

감독 : 권호영

주연 : 김강우, 김범

개봉 : 2013년 3월 7일

관람 : 2013년 3월 7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소재가 영화를 집어삼키는 경우

 

2010년 2월 [평행이론]이라는 제목의 스릴러영화가 개봉했었습니다. 제목 그대로 '평행이론'을 스릴러의 소재로 삼았던 이 영화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최연소 부장판사로 출세가도를 달리던 석현(지진희)은 미모의 아내 윤경(윤세아)과 귀여운 딸까지 남부럽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윤경이 살해됩니다. 석현의 법대 동기이자 윤경을 짝사랑하던 강성(이종혁)이 자진해서 이 사건을 맡게 되고, 과거 석현의 판결에 불만을 품은 수영(하정우)을 범인으로 검거합니다. 

하지만 이 사건에 숨겨진 진실이 있음을 눈치챈 석현은 30년 전 한상준 검사도 자신과 똑같은 사건을 겪었고, 결국 한상준과 자신이 '평행이론'으로 연결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석현은 윤경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기위해 30년 전의 한상준 사건에 더욱 집착하게 됩니다. 

[평행이론]은 30년전의 한상준 검사 아내의 살인 사건과 석현 아내의 살인 사건을 매치시키고, 한상준과 석현을 '평행이론'으로 묶어 놓습니다. 결국 철저하게 진실이 감춰졌던 30년 전의 사건을 파해쳐야 윤경 살인 사건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구조인 것입니다. 

하지만 [평행이론]은 결코 성공적인 스릴러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윤경 살인사건의 진실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꼬여 있었고, 석현이 진실을 파해치면 파해칠수록 점점 파멸을 맞이하며 마지막엔 충격적인 결말을 위해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까지 가미됩니다.

 

제가 [평행이론]을 성공적인 스릴러영화가 아니라고 평가하는 이유는 '평행이론'이라는 독특한 소재가 영화 자체를 집어 삼켰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평행이론]은 서로 다른 시대를 살고 있지만 같은 삶을 사는 각기 다른 두 사람이 존재한다는 흥미로운 '평행이론'을 스릴러 영화에 접목시키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그 이상의 것은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저 역시도 [평행이론]을 본지 2년이 흘렀지만 영화의 내용보다는 '평행이론'이라는 독특한 소재만 기억에 남았을 뿐입니다.

[평행이론]의 권호영 감독이 2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평행이론'을 스릴러에 접목시킨 권호영 감독은 이번에는 '사이코메트리'라는 소재를 가지고 스릴러영화 [사이코메트리]를 내놓은 것입니다. '사이코메트리'는 시계나 사진등 특정인의 소유물에 손을 대어 소유자에 관한 정보를 읽어내는 심령적 행위를 뜻합니다. '평행이론'만큼이나 독특한 소재임에 분명합니다.

두 편 연속 독특한 소재의 스릴러영화에 도전한 권호영 감독. [평행이론]이 소재의 벽에 갇혀 복잡하게 꼬여 버린 영화라는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사이코메트리]에서는 독특한 소재가 영화에 어떻게 작용하게 될까요? [사이코메트리]가 개봉한 3월 14일 목요일.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향하는 제 머리 속에는 '사이코메트리'라는 독특한 소재가 영화에 득이 될지, 아니면 실이 될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코믹한 양춘동. 그 선택의 결과는?

 

일단 [사이코메트리]는 독특한 소재의 스릴러라는 측면에서 [평행이론]과 이어지지만, 많은 부분에서 [평행이론]과의 차별화를 선언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주인공 양춘동(김강우)이 버티고 있습니다.

아마도 권호영 감독은 [평행이론]의 미지근한 흥행이 너무 무거운 분위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듯 보입니다. 실제로 [평행이론]은 웃음끼라고는 전혀 없는 시종일관 숨막히는 분위기로 관객을 몰아 넣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영화의 분위기는 당시에는 스릴러영화의 대세였습니다.

한국형 스릴러의 붐을 가지고 온 [세븐 데이즈]와 [추적자] 역시 무거운 분위기의 스릴러 영화였습니다. 그러한 분위기는 당시에 개봉한 대부분의 스릴러 영화에 도입되었는데, 원작이 있었던 [백야행 : 하얀 어둠속을 걷다]는 물론이고, 차승원 주연의 [시크릿], 설경구 주연의 [용서는 없다] 역시도 무거운 분위기로 관객을 압도하려 시도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 영화 모두 기대만큼의 흥행 성공은 거두지 못했습니다. [평행이론] 역시 전국 관객 100만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권호영 감독은 [사이코메트리]에서 양춘동을 내세워 무거운 분위기를 조금은 가벼운 분위기로 변화시키려 시도합니다. 덕분에 [사이코메트리]는 [평행이론]과는 달리 관객을 숨막히게 하는 스릴러가 아닌, 관객과 함께 웃고 즐길 수 있는 스릴러가 되었습니다.

 

솔직히 양춘동의 캐릭터는 [평행이론]의 석현처럼 무거움만이 가득한 캐릭터의 분위기를 물씬 풍깁니다. 양춘동이 가지고 있는 과거의 트라우마가 그러한 분위기를 잘 설명합니다.

어린 시절 동생의 유괴 살인을 목격하고 그에 대한 죄책감에 빠져 있었던 양춘동. 그는 여아유괴살인사건이 발생하자 과거의 트라우마에 빠져 버립니다. 그러한 트라우마에서 빠져 나오려면 어떻게 해서든지 여아유괴살인사건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가 다른 형사들과는 달리 절박하게 사건에 매달리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양춘동은 분명 절박한데 그의 얼굴에는 장난끼가 가득합니다. 진지하게 사건에 매달려야 하는데, 영화는 오히려 양춘동에게 진지함을 벗고 관객에게 웃음을 주라고 요구합니다. 그것도 모자라 양춘동에게 사기전과가 있는 양수(이준혁)를 동료로 붙여줘서 영화의 코믹한 부분을 더욱 부각시키려 시도합니다.

어쩌면 그러한 이 영화의 코믹함은 조금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특히 [가면], [마린보이], [돈의 맛] 등에서 진지한 연기를 주로 하던 김강우가 양춘동을 연기했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사이코메트리]의 분위기는 [평행이론]에 비해 부드러워졌습니다. 그것은 이 영화의 코믹한 부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영화의 장점도, 단점도 될 수 있는 양날의 검이 됩니다.  

  

 

복잡함을 버리고 단순함을 선택하다.

 

권호영 감독이 [평행이론]과 차별점을 둔 것은 영화의 코믹한 캐릭터와 분위기 뿐만이 아닙니다.  스토리 라인의 단순함 역시 [평행이론]과의 크나큰 차이입니다.

사실 [평행이론]은 상당히 복잡한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평행이론'이라는 소재로 인하여 현재의 사건과 과거의 사건을 오고가야했고, 사건의 용의자 역시도 장수영에서  이강성으로, 그리고 다시 서정운으로 여러번 바뀌더니 결국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며 사건의 진실을 여러 갈래로 찢어 놓습니다.

하지만 [사이코메트리]는 매우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양춘동 형사가 '사이코메트리' 능력이 있는 김준(김범)을 만나 그와 함께 여아유괴살인사건을 해결한다는 것입니다. 영화를 조금이라도 복잡하게 꼬아 놓으려면 관객에게 '혹시 김준이 진범은 아닐까?'라는 혼란을 줘야 하지만 권호영 감독은 그러한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

사건의 진범도 영화의 중반에 스스로 밝혀냅니다. 영화가 끝나는 마지막까지 진실을 털어 놓지 않았던 [평행이론]과는 상당히 다른 선택을 한 것입니다. 결국 [사이코메트리]에는 반전 따위는 없습니다. 그저 약간은 코믹한 양춘동과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지닌 김범이 여아유괴살인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그릴 뿐입니다.

 

그러한 단순함을 선택한 권호영 감독은 대신 진범의 섬뜩한 정체로 영화의 긴장감을 높입니다. 이는 [추격자]와 비슷한 선택입니다.

[추격자] 역시 단순한 스토리 라인에 반전도 없었지만 섬뜩한 영민(하정우)과 그를 쫓는 중호(김윤석)의 대결만으로도 영화의 긴장감을 높였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미진(서영희)이라는 가녀린 희생자가 있었습니다.

그러한 구조는 [사이코메트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권호영 감독은 섬뜩한 살인마의 정체를 만들어내기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한 흔적이 영화 곳곳에 보입니다. 특히 범인 역할을 한 배우의 경우, 푸근한 인상으로 이웃집 아저씨 같은 역할을 자주 하던 조연 배우였습니다. 그는 [사이코메트리]에서 친절한 미소와 음흉한 웃음을 매치시켜 다른 스릴러 영화에서는 볼 수 없던 살인마 캐릭터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추격자]의 미진과 마찬가지로 귀여운 아역 배우 김유진이 살인마에게 유괴되면서 영화의 긴장감을 높이는 역할을 합니다.    

물론 이러한 부분에서도 호불호가 갈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반전의 쾌감을 원하는 관객에게 [사이코메트리]의 단순함은 오히려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푸근한 아저씨 인상의 살인마 역시 분명 새롭기는 하지만 [추격자]의 영민 만큼은 섬뜩하지 않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소재보다는 캐릭터에 주목하라!

 

결국 권호영 감독은 [평행이론]과 마찬가지로 독특한 소재의 스릴러영화를 선택했지만, 그러한 스릴러를 이루고 있는 세부적인 사항은 [평행이론]과는 정반대의 모양새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사이코메트리]는 최소한 [평행이론]처럼 독특한 소재에 먹혀버리는 우를 범한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스릴러의 걸작 반열에 오를 만큼 잘 만들어진 스릴러영화 또한 아닙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복잡한 스토리 라인과 난무하는 반전에만 기댄 [평행이론]보다는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제가 흥미로웠던 것은 양춘동과 김준의 관계입니다. 동생을 잃은 춘동의 죄책감과 자신의 능력 때문에 어머니를 잃은 김준. 이 두 사람은 과거의 트라우마에 갇혀 사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이 둘이 서로 힘을 합치면서 두 사람의 트라우마는 치료가 됩니다. 김준을 보호하면서 춘동은 죽은 동생에 대한 죄책감을 씻어내고, 김준이 자신을 괴물이 아닌 사람으로 봐주는 춘동 덕분에 자신의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가진 손이 사람을 죽이는 손이 아닌 사람을 살리는 손임을 깨닫게되는 과정도 좋았습니다.

자신의 능력 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았던 김준이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어가는 과정이 어쩌면 이 영화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아니었을까요? 그러한 부분이 여아유괴살인사건의 진범을 찾아 나서는 춘동의 활약상이 미지근해도 제가 [사이코메트리]를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여기에서 더욱 흥미로운 부분은 김준과 여아유괴살인범의 상관관계입니다. 김준은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가지고 있는 자신의 손 때문에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손이 사람을 죽이는 손이라 믿고 부정하는 이유입니다. 그에 반에 유아유괴살인범은 사람을 살리는 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각자의 선택으로 운명을 달리합니다. 자신의 손이 사람을 죽이는 손이라 믿었던 김준은 양춘동을 만나면서 자신의 손이 사람을 살릴 수 있음을 깨닫게 되고, 사람을 살리는 손을 가진 범인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만심으로 인하여 오히려 사람을 죽이는 손이 되고 맙니다. 그러한 김준과 여아유괴살인범의 모습을 비교하는 것 만으르도 [사이코메트리]는 상당히 흥미로운 영화가 됩니다.

물론 객관적으로 따진다면 [사이코메트리]는 헛점이 많은 영화입니다. 김준과 양춘동의 첫 만남을 우연으로 설정한 부분은 처음부터 영화의 짜임새를 헐겁게했고, 김준이 사건 현장을 볼 수 있었던 이유가 설명되는 부분에서는 실소가 터져나옵니다. 양춘동의 너무 가벼운 캐릭터와 여아유괴살인범을 연기한 배우의 푸근한 인상 등은 영화의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스릴러영화로 헛점이 많은 영화이지만 양춘동과 김준이 서로 협력하며 과거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좋았고, 김준이 자신의 능력을 부정하다가 결국 그러한 능력을 사람을 살리는데 쓰기 시작하는 부분에서는 새로운 영웅의 탄생기를 보는 것 같아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권호영 감독은 최소한 [평행이론]보다 나아진 연출력을 보이는 만큼 차기작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가진 능력이 사람을 살릴 것인지, 아니면 죽일 것인지는

자신의 선택에 달렸다.

당신은 사람을 살리고 싶은가? 죽이고 싶은가?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