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브라이언 싱어
주연 : 니콜라스 홀트, 이완 맥그리거, 엘리너 톰린슨, 스탠리 투치
개봉 : 2013년 2월 28일
관람 : 2013년 3월 3일
등급 : 12세 관람가
동화라고 우습게 보지 마라.
요즘 할리우드는 동화를 판타지 영화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분명 그러한 열풍의 시작은 팀 버튼 감독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19살 소녀가 된 앨리스(미아 바시코브스카)가 이상한 나라에 다시가서 독재자인 붉은여왕(헬레나 본햄 카터)를 물리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2010년에 개봉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3억3천4백만 달러의 전미 흥행 수입을 올리며 [토이 스토리 3]에 이어 2010년 전미 박스오피스 2위에 올랐으며, 전 세계적으로 10억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는 그야말로 입이 쩌억 벌어지는 흥행 수입을 올린 영화입니다.
동화의 세계관을 확장시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흥행 성공 이후 <백설공주>를 소재로한 두 편의 영화, 타셈 싱 감독의 [백설공주]와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이 2012년에 나란히 선보였으며, 최근에는 <헨젤과 그레텔>을 소재로한 [헨젤과 그레텔 : 마녀사냥꾼]이 성인용 판타지 공포 액션으로 탈바꿈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 또 한편의 동화를 소재로한 영화가 있습니다. 잉글랜드 지방의 대표적인 민담인 <잭과 콩나무>를 소재로한 영화 [잭 더 자이언트 킬러]입니다.
[식스센스]와 더불어 반전 영화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유주얼 서스펙트]를 통해 명감독 반열에 오른 브라이언 싱어는 [엑스맨], [엑스맨 2], [수퍼맨 리턴즈], [작전명 발키리] 등의 영화를 통해 자신의 연출력을 과시했었습니다.
그러한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기에 영화에 대한 기대치가 더욱 높아질 수 밖에 없었던 [잭 더 자이언트 킬러]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헨젤과 그레텔 : 마녀사냥꾼]처럼 동화 그 이후의 이야기가 아닌 [백설공주],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처럼 동화의 세계관을 재해석한 영화입니다.
비록 12세 관람가 등급의 영화이지만 올해 11살이 되는 웅이를 극장에 데려간 이유는 바로 그러한 동화의 세계관을 재해석했다는 점 때문입니다. 웅이가 읽었던 단순한 동화가 사람의 상상력에 의해 어떻게 재해석되는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잭의 모험담은 어떻게 바뀌었는가?
<잭과 콩나무>의 이야기는 단순합니다. 홀어머니와 함께 사는 잭이라는 소년이 유일한 수입원인 소가 나이가 들어서 더이상 우유를 만들어 낼 수 없게 되자 소를 팔기 위해 길을 나섭니다.
하지만 순진한 잭은 어느 노인에게 마법의 콩을 받고 소를 넘기게 됩니다. 당연히 잭의 어머니는 화를 내며 콩을 창문 밖으로 던져 버리죠. 그런데 밤새 콩이 하늘까지 자라버립니다. 잭은 그러한 콩나무를 타고 하늘 나라에 있는 거인의 집에 도착하여 황금 알을 낳는 닭과 스스로 연주하는 하프 등 거인의 보물을 훔쳐 내려옵니다.
이를 눈치챈 거인은 콩나무를 타고 잭을 뒤쫓아 내려오지만 잭은 콩나무를 도끼로 베어 버리고 거인은 콩나무에서 떨어져 죽습니다. 그렇게해서 잭과 어머니는 거인의 보물들을 가지고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이러한 <잭과 콩나무>를 영화로 옮기며 꽤 많은 부분을 바꾸었습니다. [잭 더 자이언트 킬러]에서 잭(니콜라스 홀트)이 시장에서 팔려고 했던 것이 소가 아닌 말이라는 부분과 콩을 받고 돌아온 잭에게 화를 내는 것이 어머니가 아닌 삼촌이라는 부분은 영화의 말미에서도 언급했듯이 오랜 세월동안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바뀐 부분이라 할 수 있으니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자벨(엘리너 톰린슨) 공주의 등장은 어마어마한 변화입니다. 일단 이자벨의 존재로 인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콩나무를 타야 하는 잭의 동기가 좀 더 명확해집니다.
<잭과 콩나무>에서는 잭이 콩나무를 타는 이유는 단순한 호기심 때문입니다. 하지만 [잭 더 자이언트 킬러]에서 잭은 공주를 구해야 한다는 좀 더 명확한 동기를 가지게 된 셈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이자벨의 등장으로 인하여 <잭과 콩나무>의 세계관은 확대됩니다. <잭과 콩나무>는 잭의 개인적인 모험담입니다. 하지만 이자벨이 등장하고 잭이 공주를 구하는 기사의 역할을 하면서 [잭 더 자이언트 킬러]는 더이상 잭의 개인적 모험담이 아닌 인간과 거인의 거대한 전쟁으로 확대됩니다.
그로인하여 인간과 거인의 전쟁이라는 영화 이전의 전설이 새롭게 구축되고, 영화의 말미에는 인간의 세계에 내려온 거인과의 생사를 건 거대한 전쟁이 펼쳐지기도 합니다. 이 모든 변화는 이자벨 덕분입니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잭 더 자이언트 킬러]를 통해 동화가 블록버스터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을 이자벨 공주를 통해 만들어낸 셈입니다.
[잭 더 자이언트 킬러]의 장점은 바로 그러한 세계관의 확대에서 비롯됩니다. [엑스맨], [수퍼맨 리턴즈]를 통해 블록버스터 영화의 쾌감을 관객에게 전해주는데 익숙한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잭 더 자이언트 킬러]에서도 그러한 자신의 장기를 마음껏 발휘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상상력
하지만 아쉽게도 [잭 더 자인언트 킬러]의 단점 역시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구축한 블록버스터의 세계관 안에서 확대된 이야기에서 나옵니다. 분명 인간과 거인의 전쟁이라는 스토리 전개는 블록버스터로서의 [잭 더 자이언트 킬러]에겐 장점이 되지만 그러한 장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의 상상력을 갉아먹습니다.
우선 거인의 심장으로 만들어졌다는 왕관의 존재가 그러합니다. 거대한 힘을 가진 거인과 인간의 전쟁. 이건 인간에게는 이길 수 있는 확률이 부족한 불리한 전쟁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불리한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을 때의 영화적 쾌감은 더욱 짜릿합니다. [잭 더 자이언트 킬러]는 그러한 짜릿함을 잘 살렸어야 합니다.
그러나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거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손 쉬운 방법을 선택합니다. 바로 거인의 심장으로 만들어졌다는 왕관입니다. 이 왕관만 있으면 거인들이 복종을 하기 때문에 굳이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왕관을 손에 넣고 거인들에게 너희들의 세계로 돌아가라고 명령만 하면 됩니다. 인간과 거인의 전쟁이라는 거대한 블록버스터의 소재를 완성해놓고는 정작 인간과 거인의 전쟁은 보여주지 않은채 왕관 하나로 급하게 마무리한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고작 왕관 하나로 거인들이 인간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설정 자체도 무리가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왕관으로 만들어진 거인의 심장이 거인족 왕의 심장인 듯이 보이지만 아무리 그렇다고해도 인간과 거인의 거대한 전쟁을 생략해도 될만큼 거인의 심장으로 만든 왕관은 매력적인 소재는 아니었습니다.
엘몬트(이완 맥그리거)라는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자벨 공주라는 캐릭터가 새롭게 합류한 탓에 공주를 지키는 기사단인 가디언 역시 새롭게 합류함이 맞습니다. 하지만 엘몬트라는 든든한 존재는 거인의 나라에서 잭이 겪게 될 모험의 긴장감을 살짝 반감시키는 역할을 하고 맙니다. 잭이 홀로 무시무시한 거인에 맞서 싸우는 것보다, 잭에게 든든한 동료가 있으니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안심이 되는 것이죠.
<잭과 콩나무>에서는 잭이 거인의 집에서 겪게 되는 아슬아슬한 모험담이 주를 이룹니다. 무시무시한 거인이 잠든 틈을 타서 거인의 소중한 보물을 훔쳐내는 잭의 모험은 어린 시절 참 두근두근거리며 읽은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잭 더 자이언트 킬러]는 동화의 세계관을 확대하면서 잭이 거인의 집(?)에서 겪게 되는 모험담을 확 줄입니다. 이는 개인적으로 아쉬웠는데, 특히 기대했던 인간과 거인의 전쟁이 겨우 왕관 하나로 너무나도 쉽게 마무리되면서 그러한 아쉬움은 더욱 커져 버렸습니다.
물론 영화를 보는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잭이 거인의 집에 가서 공주를 구해오는 것으로 영화가 마무리되었으면 더욱 나았을 것 같았습니다. 동화의 세계관을 블록버스터의 세계관으로 확대한 것도 좋지만, 너무 거대해져버린 블록버스터의 세계관을 잘 마무리할 특별한 아이디어가 없다면 동화의 세계관의 확대보다는 단순한 재해석만으로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는 것이죠.
'동화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라는 자세의 문제.
이자벨 공주의 등장으로 잭이 콩나무를 타고 미지의 세계로 가야할 동기가 마련되었고, 음모를 꾸미는 로더릭(스탠리 투치)이라는 악당과 잭을 도와줄 엘몬트까지 새롭게 합류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들과 함께 거인의 왕국에서 신나는 모험을 하고 공주를 구하는 것으로 영화가 마무리되었다면 어땠을까요? <잭과 콩나무>에서의 황금 알을 낳는 닭과 스스로 연주하는 하프 등 거인의 보물은 이자벨 공주로 대체가 가능했을 것이고, 거인의 심장으로 만든 왕관이라는 무리한 설정도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규모를 줄였다면 거인의 왕국이라는 판타지의 공간에서 잭의 모험담은 오히려 더 많은 상상력을 불어 넣을 수 있는 여지가 충분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엄청난 성공으로 인하여 제작사와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동화의 재해석에 만족하지 않고, 블록버스터로의 확대라는 욕심을 부렸습니다. 그러한 욕심은 1억9천5백만 달러라는 엄청난 제작비와 함께 인간과 거인의 거대한 전쟁을 제대로 끝내지 못하는 무리한 설정을 낳고 말았습니다.
실제로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 웅이는 제게 "왜 거인들은 심장을 보면 인간들에게 복종을 해야만 해요?"라며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제게 묻습니다. 저는 "아마도 그 심장이 거인 왕의 심장으로 만들었기 때문일거야."라고 애써 설명을 해줘야 했습니다. 그제서야 웅이는 "그런것 같네요."라며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석연치 않은 표정이었습니다.
이건 앞서 이야기한 동화를 대하는 사람들의 상상력의 문제입니다. [잭 더 자이언트 킬러]에서는 두 부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거인과 인간의 전쟁이라는 오래된 전설을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로 치부하는 사람들과 어쩌면 그것이 실제 있었던 일일지도 모른다고 믿는 사람들. 결국 [잭 더 자이언트 킬러]는 전설을 믿는 사람들로 인하여 사건이 벌어지고, 사건이 마무리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그러한 장면은 나옵니다. 수 세기가 흘러 현재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왕관. 박물관의 안내원은 왕관에 얽힌 전설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러한 전설을 재미있는 이야기로만 생각할 것이고, 어떤 누군가는 왕관의 전설을 믿고 상상의 날개를 펼칠 것입니다.(마지막 장면에서 의미심장한 소년의 미소를 두고 구피와 저는 서로 다른 해석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잭과 콩나무>를 대하는 [잭 더 자이언트 킬러]의 제작사와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어떠했을까요? 어쩌면 그들은 새로운 상상의 날개를 펼치는 것보다, 어떻게하면 좀 더 거대한 블록버스터로 영화를 꾸며서 돈을 벌 수 있을까? 라는 욕심을 부린 듯이 보입니다.
그러한 욕심이 영화를 과한 스펙타클의 세계관으로 이끌었고, 너무 커져버린 세계관을 마무리하려다보니 거인의 심장으로 만든 왕관이라는 무리한 설정이 등장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비록 저희 가족은 거대한 블록버스터로 변한 동화의 세계를 재미있게 관람했지만, 이 영화가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영화임을 감안한다면 [잭 더 자이언트 킬러]는 제 기대치에 훨씬 밑도는 영화임에는 분명합니다.
블록버스터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좀 더 동화의 재해석에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이 영화의 문제점은 규모에 집중하다가 상상력을 맘껏 펼치지 못한 것이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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