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3년 영화이야기

[런닝맨] - 나는 이 영화의 액션보다 드라마가 좋더라.

쭈니-1 2013. 4. 11. 11:21

 

 

감독 : 조동오

주연 : 신하균, 이민호, 김상호, 조은지

개봉 : 2013년 4월 4일

관람 : 2013년 4월 10일

등급 : 15세 관람가

 

 

한때 나는 웅이에게 나쁜 아빠였다.

 

제가 영화 블로그를 운영하지만 제 블로그의 글 중에서는 아들인 웅이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저를 닮아서인지 유난히 영화 보기를 좋아하고, 저와 함께 야구하기를 좋아하며, 잠들기 전에는 제가 지어낸 옛날 이야기를 꼭 들어야 하는 웅이. 그러한 웅이가 있기에 저는 행복한 아빠입니다.

하지만 저와 웅이 사이가 처음부터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말을 막 배우기 시작하던 어린 시절의 웅이는 저만 보면 '아빠 미워!'라며 고개를 휙 돌리면서 엄마인 구피의 폼으로 달려갔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굉장히 서운했고, 그러한 서운한 마음은 웅이와 제 사이를 더욱 갈라 놓았습니다. 

그랬던 웅이와 제 사이가 좋아진 것은 웅이가 다니는 태권도장의 진급 심사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그날따라 구피도, 장모님도 일이 생겨서 진급 심사에 갈 수가 없다고 연락이 왔고, 결국 저는 회사에서 일찍 퇴근하여 태권도 진급 심사장으로 갔었습니다. 수 많은 아이들 틈에 앉아 불안한 눈빛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웅이. 다른 아이들은 모두 엄마, 아빠가 와서 응원하고 있었지만 웅이만은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던 웅이가 저를 발견하고는 너무나도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쪼르르 달려왔습니다. 그리고는 '아빠 최고!'라며 제 폼에 꼬옥 안겼습니다. 그날의 감격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웅이의 해맑은 웃음이 제게 그 무엇도 가져다줄 수 없는 행복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은 것입니다.

 

아마도 그날부터였을 것입니다. 저는 웅이의 해맑은 웃음이 또 보고 싶고, '아빠 최고'라는 말이 또 듣고 싶어서 웅이와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열심히 찾았습니다.

그 전에는 혼자 영화 보기를 좋아했지만, 웅이와 함께 볼 수 있는 영화가 개봉하면 비록 제가 보기 싫은 유치한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일지라도 제가 보고 싶어하는 영화를 포기하면서까지 웅이와 함께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웅이와 운동장에서 야구를 하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고, 웅이에게 옛날 이야기를 해주기 위해서 제가 봤던 영화들의 내용들을 조합하며 머리를 짜내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입니다. 저는 제가 웅이를 위해서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짜냈고, 다행히 웅이도 그러한 것들을 좋아해줬습니다.

지금 저는 웅이에게 친구같은 아빠라고 자부합니다.(물론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만...) 그리고 웅이가 '아빠 미워!'라며 저를 외면했던 그날들을 반성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웅이가 저를 싫어했던 것은 순전히 제가 웅이에게 소홀했기 때문입니다. 웅이에게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좀 더 일찍 웅이와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했더라면 웅이가 제게 '아빠 미워!'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최악의 아빠가 되거나, 최고의 아빠가 되는 것은 우리 아빠들이 하기 나름인 것입니다. 우리 아빠들이 아무리 자녀들을 사랑한다고해도 그러한 마음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자녀들은 그러한 아빠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죠. 아무리 회사일이 바빠도, 피곤해도, 자녀들과 함께 놀아주고, 애정을 충분히 표현한다면 우리 모두 최고의 아빠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최악의 아빠 차종우?

 

여기 최악의 아빠 차종우(신하균)가 있습니다. 그는 너무 어린 나이에 아들 기혁(이민호)을 책임져야 했기에 학교를 중퇴해야 했습니다. 제대로된 교육을 받지 못했으니 제대로된 직업을 가질 수도 없었고, 제대로된 직업이 없으니 결국 범죄의 길에 빠져서 전과 4범이 되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기혁은 할머니의 손에서 키워졌고, 교도소를 왔다갔다하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은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기혁의 반항적인 눈빛, 그리고 그러한 눈빛이 두려워 더욱 기혁을 멀리하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종우. 이 두 부자의 관계는 회복할 수 없는 거대한 벽에 갇힌 것처럼 보였습니다.

종우는 말합니다. "내가 누구때문에 이렇게 고생하는데... 너만 아니었으면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살지 않았어." 하지만 기혁이 반격합니다. "누가 낳아달랬어? 아무도 원하지 않는 나를 왜 낳았어?" 이 두 사람의 대화는 전형적으로 서로를 미워하는 부자의 모습입니다.

나쁜 아빠들은 이렇게 자신의 희생에 대해서 가족들이 스스로 알아주기를 원합니다. 내가 상사의 눈치를 보며 뼈빠지게 일해서 돈을 버는 것은 모두 가족을 위해서인데, 아무도 그것을 알아주지 않고 고마워하지 않는다고 불평합니다. 그래서 집에 오면 대접을 받으려 하고, 그러면 그럴수록 가족 사이에서 소외됩니다.

 

하지만 반지하에 사는 기혁이 등교하기 전에 창피해서 혹시 반 친구들이 있는지 없는지 살피는 것처럼, 자식들은 아빠의 희생보다는 더 많은 것을 해주지 못하는 아빠를 원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더 많은 것을 소망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이며, 자본주의 사회가 추구하는 인간의 본질입니다. 아직 경제권이 없는 어린 자녀들이 더 많은 것을 갖고 싶다는 욕망을 아빠에게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입니다.

나는 충분히 내 가족들을 위해 희생했다고 생각하는 아빠와 그러한 아빠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자녀들. 그 순간 아빠와 자녀들의 관계가 멀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관계가 멀어진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원망하게 됩니다. [런닝맨]의 차종우와 차기혁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차종우는 깨닫습니다. 비록 쫓기는 중이지만 기혁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기혁과 함께 커피숖에서 커피를 마시고, 기혁이 입던 옷을 입고... 그러한 소소한 것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기혁이 입던 옷을 받던 종우의 표정은 '아빠 최고!'라며 달려오는 웅이의 해 맑은 웃음을 봤을 때의 제 심정과 같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기혁도 깨닫습니다. 비록 종우는 겉으로 표현은 하지 못하지만 기혁을 충분히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종우는 기혁과 함께 햇볕이 드는 집에서 살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고 있었고 미국으로 이민간 어머니에게 기혁의 사진을 매년 보냈던 것입니다. [런닝맨]은 이렇듯 기본적으로 서로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서투른 나쁜 아빠와 나쁜 아들이 함께 위기를 헤쳐나가며 서로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관계를 회복하는 드라마입니다.

 

 

보기 드문 액션... 제법 치밀한 스릴러

 

아! 물론 [런닝맨]의 장르는 액션 스릴러입니다.  이 영화를 이루고 있는 스토리 라인의 뼈대는 살인 누명을 쓴 차종우가 경찰과 국정원, 그리고 의문의 사나이에게 쫓기면서 자신의 누명을 벗는 것입니다. 누명을 쓴 사나이의 도망극. 이것은 액션 영화의 전형적인 전개입니다. 조동오 감독은 이러한 전형적인 액션의 틀 속에서 [런닝맨]을 쉴새없는 액션으로 만들어냈습니다.

특히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인 차종우를 연기한 신하균이 고생을 많이 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옥상에서 뛰어 내리고, 달리는 차에서 몸을 내던지고, 쇼핑 카트를 타고 위태롭게 자동차를 피하는 장면 등은 특수효과에 기댄 액션보다는 날 것 그대로의 액션이었습니다. 마치 한창시절 성룡의 영화를 보는 듯한 액션 쾌감이 [런닝맨]에서 느껴졌다는 것은 이 영화의 커다란 장점입니다.

그 속에서 차종우를 쫓는 이들의 정체가 스릴러 영화처럼 꼬여 있습니다. 우리 정부의 차세대 전투기 사업. 그 사업에 따내기 위해 경쟁하는 미국과 프랑스. 그리고 중요한 기밀을 빼돌리는 로비스트의 음모와 우연히 그러한 음모에 빠져 버린 차종우의 관계는 영화의 긴장감을 후반부까지 팽팽하게 조여놓습니다.

차종우를 끝까지 쫓는 킬러의 캐릭터가 조금은 과하다 싶기는 하지만 이런 류의 영화에서 없어서는 안될 절대악의 존재이기에 마지막엔 그러한 절대악의 최후에서 쾌감이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다시말해 [런닝맨]은 액션 스릴러 영화로서도 꽤 좋은 평가를 받을만한 영화인 셈입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조동오 감독은 캐릭터 구성에서도 꽤나 영리한 선택을 합니다. 음모에 빠져서 쉴새없이 쫓겨야 하는 차종우와 그를 도와 음모를 파해치는 캐릭터들의 구성은 꽤 치밀하게 짜여져 있는 것입니다.  

어린 나이에 천재 소리를 들으며 멘사 클럽에 가입했던 기혁은 번뜩이는 두뇌로 사건의 음모를 파헤칩니다. 비록 여자의 몸이지만 기자가 지니고 있어야 할 진실에 대한 욕구와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물불 안가리는 추진력을 가진 박선영(조은지). 그리고 어리버리한 형사이며, 중요한 순간에 공권력을 동원해서 도움을 주는 안상기(김상호). 그리고 분위기가 조금 다운되었다 싶을 때 등장하는 장도식(오정세)이라는 코믹한 캐릭터까지 [런닝맨]은 완벽하게 구성해 놓은 것입니다.

차종우와 기혁 부자에겐 가족과도 같은 문목사(주현)의 죽음을 통해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능수능란함까지... 조동오 감독은 전작인 [중천]에서 보여주지 못한 치밀한 캐릭터 구성을 이번 [런닝맨]에서 보여줍니다.

차종우가 성룡식 날것 액션을 펼치며 쫓기는 사이 조연 캐릭터들은 사건의 진실을 캐내고, 악당 캐릭터들은 긴장의 끈이 느슨하지 않도록 악랄하게 그들을 방해합니다. 조금은 전형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러한 전형적인 구성까지도 재미있게 느껴질 정도로 [런닝맨]은 액션 스릴러 영화로서도 합격점을 주고 싶은 영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액션보다 드라마에 한 표.

 

[런닝맨]은 지난 주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지.아이.조 2]를 물리치고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비록 관객수에서 큰 차이가 나지는 않았지만 스크린수와 상영횟수의 열세를 딛고 거두어낸 1위이기에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런닝맨]의 액션 영화로서의 재미를 칭찬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에 관객의 눈물을 짜내기 위한 신파로 흘러가지 않고 마지막까지 액션 영화로서의 쾌감을 유지했다는 것에서 많은 점수를 따낸 것 같습니다.

물론 저 역시 [런닝맨]의 액션이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진실을 캐내는 장면도 부족함이 없이 치밀해 보였습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정말 저런 일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할리우드의 메이저 제작사인 20세기 폭스에서 제작과 배급을 맡아서인지 할리우드의 액션 스릴러와 비교해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 재미를 [런닝맨]은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진정 [런닝맨]이 재미있었던 것은 그러한 액션 만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아빠와 아들인 차종우와 기혁의 이야기가 정말 마음에 와닿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서로를 미워하는 마음의 벽을 부수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저는 좋았습니다.

결국 [런닝맨]은 액션 영화로서의 쾌감을 가지고 있고, 스릴러 영화로서의 치밀함도 부족하지 않게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그러한 액션 스릴러의 재미를 꽉 채워 넣는 드라마의 힘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런닝맨]에 아쉬운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차종우와 기혁의 갈등을 좀 더 긴 시간을 내서 표현했다면 마지막 그들의 화해가 더욱 감동적일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고, 조연 캐릭터들인 안상기, 박선영의 캐릭터 묘사를 너무 건너 뛰었다는 것도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을 생략했음에도 불구하고 러닝타임이 2시간을 훌쩍 뛰어넘었을 정도로 [런닝맨]은 많은 이야기와 액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오락 영화의 재미 속에 충실히 넣어 두었다는 점에서 저는 [런닝맨]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고생많았다, 신하균.

특수효과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날 것 그대로의 액션을 보여준 그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