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브래드 버드
주연 : 크레이그 T.넬슨, 홀리 헌터, 제이슨 리
개봉 : 2004년 12월 15일
관람 : 2004년 12월 15일
2003년 미국에서는 워쇼스키 형제가 [매트릭스 2 : 리로디드]와 [매트릭스 3 : 레볼루션]을 연달아 개봉시키며 '2003년은 매트릭스의 해'라고 장담했었습니다. [캐리비안의 해적 : 블랙펄의 저주]가 의외의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반지의 제왕 3 : 왕의 귀환], [엑스맨 2], [나쁜 녀석들 2], [터미네이터 3]등 수많은 속편 영화들이 제작되어 영화팬들을 들뜨게 했습니다.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배우 짐 캐리는 여전히 [브루스 올마이티]로 건재를 과시했고, 가족 코미디 [엘프]도 미국 중산층 관객들을 효과적으로 공략하며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이 수많은 화제작들은 2003년 최고의 흥행작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픽사의 놀라운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토이 스토리]에서부터 시작하여 [니모를 찾아서]에 이르기까지 단한번도 애니메이션팬들을 실망시킨적이 없는 픽사는 올해도 어김없이 [인크레더블]로 겨울 극장가를 평정하였습니다. 슈퍼 히어로 가족을 소재로한 [인크레더블]은 미국에서만 개봉 6주동안 2억3천만달러가 넘는 놀라운 흥행을 기록중에 있다는군요. 단한번도 흥행 실패를 겪지 않는 픽사의 그 놀라운 흥행력이 [인크레더블]까지 이어진겁니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저로써는 당연히 [인크레더블]은 올 겨울 최고의 기대작이었습니다. 게다가 올 겨울은 [인크레블]외에도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 [샤크], 두말할 필요도 없이 세계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 로버트 저멕키스 감독의 [폴라 익스프레스]까지 애니메이션 기대작들이 한꺼번에 개봉되니 행복하다는 말밖에 달리 할 말이 없군요. 암튼 올 겨울 애니메이션의 선두주자인 [인크레더블]을 개봉당일 극장으로 달려가 봤습니다. 그리고 역시 픽사의 그 놀라운 기술력과 상상력에 입이 벌어진채 극장을 나섰습니다. 픽사는 이번에도 절 실망시키지 않았답니다.
사실 제가 애니메이션에 이토록 열광하게되기까지 디즈니의 공이 컸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극장에서 보게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인어공주]는 제가 처음으로 극장에서 본 애니메이션임과 동시에 처음으로 애니메이션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된 영화입니다. 그 이후로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언 킹]에 이르기까지 디즈니는 매년 한편씩 너무나도 매력적인 애니메이션들로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러나 디즈니의 시대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라이언 킹]을 정점으로 서서히 흥행 하락세를 기록하던 디즈니는 [포카혼타스], [노틀담의 꼽추], [헤라클레스]를 거치며 서서히 영화적인 재미를 잃어가더니 [아틸란티스 : 잃어버린 제국], [보물성]에 이르러서는 최악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로 실망스러운 애니메이션만을 생산했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릴로 & 스티치]라는 매력적인 애니메이션도 간혹 만들긴 했지만...)
그 와중에 디즈니는 탁월한 선택을 합니다. 바로 픽사라는 작은 애니메이션 회사와 애니메이션 제작 계약을 맺은거죠. 사실 1991년 디즈니가 픽사와 계약을 맺을 당시에는 모두들 픽사가 봉잡았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도그럴것이 그 당시 디즈니는 애니메이션으로 승승장구하고 있을 때였으며, 픽사는 가능성만을 보여준 작은 회사에 불과했으니까요. 하지만 몇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사정은 180도로 변했습니다. 디즈니가 잇단 셀애니메이션의 저조한 흥행으로 가슴앓이를 할때 픽사는 3D애니메이션으로 디즈니에 꾸준히 수익을 안겨줬으니까요. 이젠 그 누구도 픽사가 봉잡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분명 디즈니가 봉잡은 셈이죠.
그렇다면 이토록 짧은 시간에 디즈니가 몰락하고 픽사가 뜬 이유는 무엇일까요? 분명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제 개인적으로 상상력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즈니가 이미 널리 알려진 동화나 설화의 각색을 통해 손쉽게 애니메이션의 소재를 얻었다면 픽사는 순수 오리지널 스토리를 창작해내며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 겁니다. 디즈니의 최악의 애니메이션 [보물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SF와 애니메이션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이 영화는 그러나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고전에 철저하게 기댄 너무나도 잘 알려진 스토리 라인때문에 재앙과도 같은 흥행성적을 올리며 디즈니를 당황하게 만들었었죠.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무한한 상상력입니다. 실사 영화가 기술력의 한계로 상상력의 표현에 제한이 있다면 애니메이션은 상상력의 한계에서 좀 더 자유로운 편입니다. 그러나 디즈니는 이 상상력을 잘 활용하지 못해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걸었으며, 픽사는 너무나도 완벽하게 상상력의 극치를 관객에게 선사하여 새로운 애니메이션의 강자로 군림하게 된 것입니다.
[인크레더블]은 애니메이션의 상상력을 극대화시킨 영화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영화가 헐리우드에서 흔하게 써먹는 슈퍼 히어로를 소재로 삼았다는 이유만으로 픽사의 이전 영화들보다 상상력이 결여되었다고 생각하시는데 그것은 단순하게 겉모습만을 보고 내린 결과일 뿐입니다. 이 영화는 분명 [슈퍼맨]류의 슈퍼 히어로를 소재로 삼고 있지만 그것이 이 영화의 상상력에 흠집을 내지는 못합니다.
저는 [인크레더블]이 [슈퍼맨]보다는 [언브레이커블]과 더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식스센스]로 유명한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영화 [언브레이커블]은 슈퍼 히어로를 소재로 하고 있으면서도 슈퍼 히어로의 활약에 촛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데이비드 던(브루스 윌리스)이 슈퍼 히어로로써의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무덤덤한 이야기임과 동시에 슈퍼 히어로에 대한 열등감으로인하여 악인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엘리야 프라이스(사무엘 L.잭슨)의 사연에 촛점을 맞춥니다. 그러한 이유로 이 영화는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지만 저에게는 너무나도 독특해서 특별했던 영화였습니다.
물론 [인크레더블]이 [언브레이커블]처럼 무덤덤하고, 어두운 스타일의 영화는 아닙니다. [인크레더블]은 슈퍼 히어로 가족의 활약을 적극적으로 영화의 재미로 활용하고, 재치있는 유머로 온가족이 다함께 즐길수 있는 밝은 애니메이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이 영화는 슈퍼 히어로의 활약상에만 멈추지 않습니다. 자신과는 다른 특별한 능력을 가진 슈퍼 히어로에 열광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경계하는 보통 사람들의 이중적인 면모를 풍자하며 시작되는 이 영화의 오프닝과 그로인해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감추며 살아가는 슈퍼 히어로 가족의 지루한 삶을 담은 초반은 이 영화가 얼마나 독특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과연 그 어떤 슈퍼 히어로 영화에서 이렇게 영웅의 시시꼴꼴한 면을 담아낼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그것도 마블의 어두운 영웅들이 아닌 애니메이션의 밝은 수퍼 히어로를 가지고 말입니다. 게다가 인크레더블에 대한 열등감때문에 스스로 악당이 된 신드롬은 [언브레이커블]의 엘리야처럼 얼마나 매력적인 악당인지...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 영화는 슈퍼 히어로 영화에 가족주의를 덧입힙니다. 눈을 씻고 찾아보세요. 과연 슈퍼 히어로 영화에 가족이라는 것이 어울리기나 한지... 그 유명한 [스파이더맨]조차도 사랑에 빠지기를 두려워하는 마당에 이 영화는 아예 가족 단위로 슈퍼 히어로를 등장시킵니다. 슈퍼 히어로는 혼자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외롭죠. 그런데 [인크레더블]이 그러한 슈퍼 히어로의 공식을 간단하게 깨버립니다. 별거아니라고요? 아뇨.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된 법칙을 깬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법입니다.(설마 '[스파이 키드]가 있잖아요?'라고 반문하시는 분은 안계시겠죠?) 그런 측면에서 [인크레더블]은 충분히 그 상상력을 인정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크레더블]에 상상력만 있다면 그것 역시 시대에 뒤떨어지는 애니메이션일 수 밖에 없습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상상력은 부족했지만 기술력 하나만큼은 탁월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픽사가 만약 기술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디즈니를 앞지를 수는 절대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인크레더블]은 완벽한 기술력마저 갖추고 있습니다.
[인크레더블]은 애니메이션임과 동시에 액션 영화이며 코미디 영화입니다. 애니메이션과 코미디는 오래전부터 찰떡 궁합이었지만 애니메이션과 액션은 별로 어울리지 않습니다. 실제로 애니메이션으로 액션을 가장 잘 표현한 영화로는 제 기억으로는 [타잔]입니다. 딥 캔버스라는 첨단 기술을 이용하여 관객들에게 롤러코스터를 탄듯한 스피드한 액션을 선보였던 [타잔]은 그러나 액션 영화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 영화에서의 액션은 그만큼 작은 부분만을 차지했던 겁니다.
그 이후 앞에서도 언급했던 디즈니 최악의 애니메이션 [아틸란티스 : 잃어버린 제국], [보물성]은 물론이고, 디즈니에게 당찬 도전장을 내밀며 20세기 폭스사가 의욕적으로 제작을 했던 [타이탄 A.E.], 인간보다 더욱 인간적인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완성하는 쾌거를 올렸던 [파이널 판타지]에 이르기까지... 애니메이션은 끊임없이 진보한 기술력을 이용하여 애니메이션과 SF 액션과의 접목을 시도했지만 언제나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도로 관객들의 평가면에서 실패라는 결과만을 안겨줬습니다.
그런면에서 [인크레더블]은 액션 애니메이션 영화중에서 가장 성공한 영화라고 칭할만 합니다. 이 영화의 완벽한 액션씬은 애니메이션의 재미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실사 영화의 스펙타클한 액션씬을 보는 것만같은 쾌감을 안겨줍니다. 신드룸이 개발해낸 로봇의 가공할만한 파워는 영화를 보는내내 몸을 움찔거리며 봐야했습니다. 애니메이션을 보며 이렇게 긴장한 것은 아마도 이 영화가 처음이었을 겁니다.
결국 [인크레더블]은 애니메이션의 최대 장점인 상상력의 극치를 보여줬으며, 액션 장르의 성공적인 안착으로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활로를 활짝 열어준 영화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를 보며 픽사의 존재가 마치 [인크레더블]의 슈퍼 히어로처럼 보였습니다. 이미 몰락해버린(부활할 기미가 아직까지도 보이지 않는) 디즈니와, 픽사의 상상력을 뒤쫓기에 바쁜 드림웍스(이번 개봉작인 [샤크] 역시 [니모를 찾아서]에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드네요.), 그리고 [아이스 에이지]의 성공이후 조용한 20세기 폭스, 아직 극장용 애니메이션에서는 힘이 딸려 보이는 워너 브라더스등 고만고만한 미국의 애니메이션계에서 픽사의 존재는 정말 엄청난 슈퍼 히어로인 셈입니다. 부디 픽사의 이 특별한 능력이 앞으로도 계속 발휘되기를만을 애니메이션의 팬으로써 바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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