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토미 위르코라
주연 : 제레미 레너, 젬마 아터튼, 팜케 얀센, 필라 비탈라
개봉 : 2013년 2월 14일
관람 : 2013년 2월 15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착한 동화는 애초부터 없었다.
옛날 옛적에 헨젤과 그레텔이 가난한 나무꾼 아버지, 마음씨 고약한 계모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너무 가난했던 나머지 네 식구가 먹을 식량이 부족해지자 계모는 나무꾼에게 아이들을 깊은 숲속에 데려가 버리자고 제안합니다.
헨젤과 그레텔은 처음엔 하얀 자갈을 숲길에 흘려서 자갈을 따라 돌아올 수 있었지만, 두번째에는 빵조각을 흘렸습니다. 결국 새들이 흘린 빵 조각을 쪼아먹는 바람에 집에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숲길을 헤매던 헨젤과 그레텔은 과자집을 발견하고 과자집에 살고 있는 할머니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과자집의 할머니는 마녀였고, 마녀에게 잡아 먹힐 위기에 처한 헨젤과 그레텔은 꾀를 부려 마녀를 오븐 안에 밀어넣어 처치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와 함께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이상이 독일의 언어학자이자 작가인 그림 형제가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동화집>에 수록한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입니다. 동생 빌헬름 그림의 아내 도르첸 빌트에게 들은 구전 동화를 재구성한 것이라 합니다. 얼핏 들으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헤쳐나가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가 읽혀집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사실 초판에서는 계모가 아닌 친어머니가 등장하고 남매를 숲에 버리는 것도 친어머니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후 버전에서는 아이들의 정서를 고려하여 계모로 수정되었다고 합니다.
수 많은 동화에서 계모는 나쁜 짓을 도맡아하는 악당 캐릭터입니다. 그렇기에 헨젤과 그레텔을 숲 속에 버린 것이 계모라면 <헨젤과 그레텔>은 선과 악의 구분이 명확한 착한 동화가 됩니다. 하지만 헨젤과 그레텔을 숲 속에 버린 것이 계모가 아닌 친어머니라면? 아이들이 가장 믿고 의지해야하는 존재가 오히려 그깟 배고픔 때문에 아이들을 숲에 버리려는 끔찍한 이야기가 되고 맙니다.
부모에게 버림을 받은 헨젤과 그레텔의 충격은 얼마나 컸을까요?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아직 어린 나이에 가장 믿고 의지해야 하는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고 마녀에게서 죽을 고비를 넘긴 헨젤과 그레텔. 과연 그들은 동화의 마지막 이야기처럼 다시 집으로 돌아와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었을까요?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림 형제의 동화 <헨젤과 그레텔>은 상당히 섬뜩한 이야기입니다. 결코 착한 동화가 아닌 것이죠. 그래서일까요? '헨젤과 그레텔'을 모티브로 하고 잇는 영화들은 대부분 공포 장르의 영화들이 많습니다. 특히 2007년에 만들어진 임필성 감독의 [헨젤과 그레텔]은 슬픈 잔혹 동화와 같은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토미 위르코라 감독의 신작 [헨젤과 그레텔 : 마녀사냥꾼]은 아예 '착한 동화는 잊어라'라고 관객에게 선전포고를 하며 시작합니다.
철저하게 성인을 위한 잔혹 동화
[헨젤과 그레텔 : 마녀사냥꾼]은 그림 형제의 동화 <헨젤과 그레텔>을 고스란히 영상으로 옮기며 시작합니다. 여기에는 계모가 없습니다. 헨젤과 그레텔을 버리려 하는 것은 그들의 어머니, 아버지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헨젤과 그레텔은 과자집의 마녀를 물리친 이후에는 착한 동화의 끝맺음처럼 집으로 돌아가 자신을 버린 부모와 행복하게 잘 살지 않습니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포악한 마녀를 사냥하는 전문 사냥꾼이 되어 전국을 떠돕니다.
[헨젤과 그레텔 : 마녀사냥꾼]은 '과연 헨젤과 그레텔은 과자집 마녀를 무찌른 후, 정말 집으로 돌아가 자신을 버린 부모와 함께 행복하게 잘 살았을까?' 라는 의구심에서 시작한 것이 분명해보입니다. 사실 헨젤과 그레텔이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마녀 사냥꾼이 되어 전국을 떠돈다는 영화적 설정이 동화에서의 결말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이렇듯 [헨젤과 그레텔 마녀사냥꾼]은 원작 동화를 고스란히 스크린에 옮기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마지막 결말 부분을 살짝 비틀어 새로운 상상력으로 영화적 이야기를 만들어 나갑니다. 그리고 그러한 시도는 상당히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영화의 등급이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인 만큼 [헨젤과 그레텔 : 마녀사냥꾼]의 영상은 상당히 잔인합니다. 마녀의 모습을 최대한 무섭게 꾸미려는 노력도 보이고(하지만 무서운 것으로 따지면 머리 풀어헤친 처녀 귀신이 최고죠. ^^) 신체 절단은 다반사로 보여줍니다.
[헨젤과 그레텔 : 마녀사냥꾼]은 기왕 기존의 착한 동화를 찢어버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하려고 마음 먹은 이상 철저하게 성인을 위한 잔혹한 판타지 공포를 선보이기로 결심한 듯이 보입니다.
헨젤(제레미 레너)과 그레텔(젬마 아터튼)의 마녀를 상대로한 액션 활극은 빠른 화면 전개와 함께 청소년 관객을 염두에 두지 않은 온갖 고어적인 장면으로 잔뜩 포장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헨젤과 미나(필라 비탈라)의 러브 라인을 통해 예상하지 못한 노출씬까지 보너스로 보여줍니다.(노출 수위는 그다지 높지 않으니 그냥 기대안하시는 것이 나을 듯)
[헨젤과 그레텔 : 마녀사냥꾼]은 약속을 지킨 셈입니다. '착한 동화는 잊어라'라며 관객에게 호기롭게 선전포고를 했던 이 영화는 그 약속 그대로 철저하게 성인 관객을 위한 서양식 호러 영화로 재탄생한 것입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갖출 것은 다 갖췄다.
하지만 [헨젤과 그레텔 : 마녀사냥꾼]은 고어적 영상을 갖춘 헨젤과 그레텔의 액션 활극에만 멈추지 않습니다. 분명 이 영화는 87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동안 쉴 틈 없이 시대를 가늠할 수 없는 판타지 액션을 선보이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갖출 것은 빼놓지 않고 전부 갖춘 영화이기도 합니다.
먼저 '왜 헨젤과 그레텔의 친부모는 어린 남매를 숲에 버렸을까?' 라는 궁금증을 영화가 나름대로 새로운 해석을 하려 했던 부분을 높게 사고 싶습니다. 사실 단지 배고픔 때문이라고 하기엔 헨젤과 그레텔의 어머니가 친자식을 숲에 버리려 했던 이유가 쉽게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대마녀인 뮤리엘(팜케 얀센)이 친절하게도 헨젤과 그레텔의 어머니가 갖고 있던 슬픈 비밀을 구구절절 이야기하는 것은 영화의 전개상 불필요했습니다. 헨젤이 '너무 말이 많군.'이라고 투덜거리는 것이 이해가 될 정도였으니까요. ([다이하드 : 굿 데이 투 다이]에서도 그렇고, 암튼 악당은 참 말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불필요한 전개가 아니라면 헨젤과 그레텔의 어머니가 친 자식을 숲에 버려야 했던 이유를 설명할 방법이 없었기에 토미 위르코라 감독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 덕분에 착한 동화에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자식을 버린 어머니의 사연을 다시금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헨젤과 미나의 러브 라인도 너무 액션으로만 일관하는 영화에서 좋은 활력소가 되어 줍니다. 특히 미나는 뜬금없이 옷을 벗어주면서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의 가치를 한껏 드높여주는 역할과 함께 영화의 마지막 헨젤의 복수심을 불태우게 하는 기폭제 역할도 수행하며 영화의 재미를 높여 줍니다.
트롤의 재발견도 [헨젤과 그레텔 : 마녀사냥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입니다. 큰 덩치에 어머어마한 힘을 가졌지만 지능이 낮은 것으로 표현되던 다른 영화에서의 트롤과는 달리, 이 영화에서는 트롤은 에드워드라는 이름과 함께 그레텔을 향한 순정을 드러내며 귀여운(?) 매력을 한껏 과시합니다. 제 옆의 관객은 트롤과 그레텔 커플이 너무 잘 어울린다며 좋아하더군요.
헨젤과 그레테을 추종하며 그들의 조수가 되기를 자처하는 벤(토마스 만) 역시 고어적 분위기의 영화에 약간의 코미디를 가미시키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합니다. 만약 2편이 나온다면 벤의 역할이 더욱 커지면서 영화의 분위기 역시 코믹적인 재미가 추가될 것으로 보입니다.
분명 [헨젤과 그레텔 : 마녀사냥꾼]은 단순함으로 무장한 판타지 액션영화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단순함 속에 새로운 이야기와 다양한 영화적 재미를 담아내려 했던 시도 만큼은 영화를 보는 내내 참 좋았습니다.
이 영화, 시리즈가 될 수 있을까?
[헨젤과 그레텔 : 마녀사냥꾼]은 미국에서는 지난 1월 25일 개봉해서 개봉 첫 주 1,969만 달러라는 양호한 성적으로 당당히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습니다.
물론 개봉 2주차에 52.1%의 드롭율을 기록하여 2위로 내려 앉았고, 현재까지 흥행 성적은 4,533만 달러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제작비가 5,000만 달러임을 감안한다면 아직 갈 길이 멉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월드와이드 성적은 현재 1억2천9백3십3만 달러이니다. 미국외의 다른 나라에서 힘을 낸 덕분입니다. 미국내 성적 만으로는 '2편은 힘들겠다.'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월드와이드 성적을 보니 잘 하면 시리즈화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갖게 만듭니다.
제가 2편을 기대하는 이유는 헨젤과 그레텔의 무조건적인 액션 일변도였던 이번 영화와는 달리 2편이 만들어진다면 헨젤과 그레텔, 그리고 벤과 트롤인 에드워드까지 합세한 팀웍을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 때문입니다. 그러한 기대감 자체가 단순한 재미 속에 갖출 것은 전부 갖춘 [헨젤과 그레텔 : 마녀사냥꾼]의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이하드 : 굿 데이 투 다이]와 [헨젤과 그레텔 : 마녀사냥꾼]을 연달아 보고나니
이제는 조금 잔잔한 영화가 보고 싶어진다.
이들 영화는 정말 짧은 러닝타임 동안 쉴틈없이 액션을 쏟아내더라.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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