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존 무어
주연 : 브루스 윌리스, 제이 코트니
개봉 : 2013년 2월 6일
관람 : 2013년 2월 12일
등급 : 15세 관람가
25년을 함께한 친구다.
[다이하드]에 대한 제 추억은 참 길고 깊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용돈을 쪼개서 사기 시작한 <로드쇼>라는 영화 잡지에서 부록으로 나온 [다이하드]와 [다이하드 2]의 포스터가 제 기억 속에서 [다이하드]에 대한 추억의 시작입니다.
저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고나서야 처음 생긴 제 방의 벽에 당시 제가 좋아하던 이미연, 소피 마르소 등 여배우들의 사진을 덕지덕지 붙였었는데, [다이하드]와 [다이하드 2]의 포스터도 한 자리를 차지했었습니다. 그땐 왜그리 [다이하드]의 포스터가 멋지게 보였는지...
결국 저는 1990년 12월 12일. 종로 3가에 위치한 단성사로 [다이하드 2]를 보러 갔습니다. 친구들과 갔었는지, 가족들과 갔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단지 단성사라는 극장의 허름한 시설로 인하여 앞좌석에 가려 영화가 잘 보이지 않았고, 결국은 입구에 서서 영화를 봐야 했던 기억만 또렷이 납니다. 제가 단성사에 대해 그다지 좋은 기억을 갖지 못한 이유입니다.
이렇게 저와 극장에서 첫 만남을 가진 것은 [다이하드 2]였지만, 제 기억속에 최고의 [다이하드]는 바로 1편이었습니다. 테러리스트들에게 인질로 잡힌 아내를 구하기 위한 존 맥클레인(브루스 윌리스)의 혈투는 비록 비디오로 봤지만 제게 최고의 긴장감은 안겨주었습니다.
이후 1편의 빌딩, 2편의 공항에서 이어 뉴욕 전체로 활동 범위를 넓힌 [다이하드 3]가 개봉했지만 1, 2편에 비해 부진한 흥행을 남기고 [다이하드] 시리즈는 그렇게 제 추억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왕년의 액션 히어로를 차례대로 불러 들이기 시작한 할리우드는 결국 존 맥클레인을 다시금 부활시켰고, 결국 [다이하드 3]가 만들어진지 12년 만에 시리즈의 4번째인 [다이하드 4.0]이 만들어졌습니다.
관계가 소원해진 아내 홀리를 위해 고군분투하던 존 맥클레인은 [다이하드 4.0]에서는 최악의 디지털 테러리스트에게 인질로 붙잡힌 딸 루시를 구하기 위해 또다시 죽도록 고생했습니다. 제가 [다이하드 4.0]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대표적인 아날로그 영웅 존 맥클레인이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디지털 테러리스트에 맞서 싸운다는 설정입니다. 12년 만에 귀환한 존 맥클레인에게 너무나도 걸맞은 설정이었던 셈입니다.
그리고 이제 시리즈의 5편인 [다이하드 : 굿 데이 투 다이]가 새롭게 선보였습니다. 비록 국내 개봉 첫 주 [7번방의 선물]과 [베를린]에는 막혔지만 그래도 설날 연휴 한국영화 빅3인 [남쪽으로 튀어]를 흥행 성적으로 앞지르며 여전히 식지 않은 인기를 과시했습니다. 설날 연휴가 끝나고 명절 후유증으로 비몽사몽했던 화요일. 저는 25년이나 함께 한 이 친구를 만나고 왔습니다.
이번엔 붕어빵 아들이다.
[다이하드 4.0]은 존 맥클레인에게 딸 루시를 선사했습니다. 아내인 홀리를 위해서 죽도록 고생했던 존 맥클레인을 이제 아내가 아닌 자식들을 위해 죽도록 고생하는 우리 시대의 아버지로 탈바꿈시킨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이하드 : 굿 데이 투 다이]는? 바로 존 맥클레인의 아들 잭 맥클레인(제이 코트니)을 등장시킵니다. 하지만 부전자전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잭 맥클레인은 어머니인 홀리, 여동생인 루시와는 달리 존 맥클레인과 함께 총을 들고 직접 나쁜 놈들을 처단하러 나섭니다. 바로 이러한 설정은 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이 됩니다. 일단 장점부터 이야기하겠습니다.
1, 2편에서 홀로 악당을 무찌르던 존 맥클레인에게 처음으로 파트너를 안겨준 것은 바로 [다이하드]의 창시자인 존 맥티아난 감독입니다. 그는 [다이하드 3]를 연출하며 존 맥클레인에게 제우스(사무엘 L. 잭슨)라는 파트너를 안겨줬습니다. [48시간], [리쎌웨폰] 등 당시 유행하던 흑백 버디무비의 정석을 밟은 셈입니다.
그리고 [다이하드 3]이후 12년 만에 귀환한 [다이하드 4.0]에서도 존 맥클레인에게 파트너가 있었습니다. 컴퓨터 해킹 용의자인 매튜(저스틴 롱)입니다. 디지털 테러리스트와 맞서 싸우기엔 너무 아날로그적이었던 존 맥클레인을 도와준 매튜는 디지털 테러리스트를 무찌르는데 한 몫을 해냅니다. 이로써 [다이하드 4.0]는 신구 조화를 이루어냈습니다.
그렇다면 잭 맥클레인은 어떤 역할을 할까요? 바로 [다이하드] 시리즈가 가지고 있는 가족주의의 완성입니다.
[다이하드]가 25년이라는 세월동안 큰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존 맥클레인이 미국을, 나아가 인류를 지키려는 확고한 의지를 지닌 영웅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단지 아내와 잘 지내보고 싶었지만, 자꾸 일이 꼬이며 죽도록 고생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그는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악당을 무찌르고 결국은 아내를 지켜냅니다. [다이하드 4.0]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딸 루시가 인질로 잡혔기 때문에 존 맥클레인은 더욱 죽기 살기로 악당과 맞서 싸운 것입니다.
그리고 [다이하드 : 굿 데이 투 다이]에서 잭 맥클레인의 등장은 3편부터 이어진 존 맥클레인 파트너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존 맥클레인의 가족을 완성시키는 역할을 해냅니다. 그래서 아들인 잭과 티격태격하며 악당을 무찌르는 존 맥클레인의 모습은 가족주의적 성격이 강한 [다이하드] 시리즈에서만 나올 수 있는 독특한 버디 무비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설정은 이 영화의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이전의 존 맥클레인은 가족을 지켜야한다는 절박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이하드 : 굿 데이 투 다이]에서는 그러한 절박감이 부족합니다. 단지 임무 수행에 실패해서 의기소침한 잭을 위해 죽도록 고생하기를 자처하고 나선 것뿐입니다.
시리즈 사상 최고의 액션.
사실 [다이하드 : 굿 데이 투 다이]의 스케일은 [다이하드] 시리즈 중에서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편이 고층 빌딩, 2편이 국제 공항, 3편이 뉴욕 시내, 4편이 미국 전역으로 활동 무대를 넓혔던 이 시리즈는 5편에서는 아예 러시아로 활동 무대를 옮기면서 이제는 전 세계적인 핵위기 상황을 만들어냅니다.
존 맥클레인의 활동 무대가 넓어진 만큼 영화의 스케일도 상당히 커졌습니다. 러시아의 도로 한복판에서의 카체이싱 장면은 나도 모르게 '우와!'라는 탄성을 지르게 하고, 공격형 헬리콥터가 잭과 존 맥클레인을 향해 총을 난사하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움찔하며 몸을 피하게 됩니다. 영화를 보면서 저렇게 때려 부숴도 괜찮은 것일까? 라는 걱정이 될 정도로 [다이하드 : 굿 데이 투 다이]는 아주 시원스럽게 건물을, 도로를 부숴버립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 무대가 체르노빌인 점도 좋았습니다. [다이하드]의 재미는 제한된 공간에서의 액션이었는데, [다이하드 3]가 존 맥클레인의 활동 영역을 뉴욕 전체로 옮기며 그러한 제한된 공간에서의 액션의 재미가 사라졌었습니다. 그런데 [다이하드 : 굿 데이 투 다이]는 체르노빌이라는 무대를 통해 그러한 제한된 공간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제 4호 원자로에서 발생한 20세기 최악의 대사고로 일컬어지는 체르노빌 원전사고. 1991년 4월까지 5년 동안 7,000여명이 사망했고, 70여만명이 치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터진지 27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체르노빌은 방사능에 오염된 죽음의 도시로 불리워지고 있습니다.
[다이하드 : 굿 데이 투 다이]는 바로 그러한 체르노빌을 잭과 존 맥클레인의 활동 무대로 설정함으로서 제한된 공간에서의 액션이라는 [다이하드]가 애초에 가지고 있던 재미를 재현해놓습니다. 원전 사고로 폐허가 된 체르노빌은 1편의 고층 빌딩까지는 아니더라도, 2편의 국제 공항과 같은 효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정신을 차릴 틈도 주지 않고 계속 액션이 터져 나오고, 헬기를 이용한 마지막 액션씬에서는 입이 쩌억 벌어질 만큼의 스펙타클을 안겨줍니다. 다시말해 [다이하드 : 굿 데이 투 다이]는 시리즈 사상 최강의 액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액션의 강도가 굉장히 쎄졌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영화의 긴장감은 줄어들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이 영화의 긴장감이 이전 시리즈와 비교해서 떨어지는 이유는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감의 부재 때문입니다. 그러한 절박감의 부재는 영화를 보면서는 강력해진 액션에 의해서 '우와!'라는 탄성을 지르게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는 그저 쉴틈없는 액션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는 느낌만을 안겨줍니다.
존 맥클레인은 휴가 중이다.
존 맥클레인이 이 영화에서 자주 내뱉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난 지금 휴가중이란 말이야.'라는 대사입니다. 이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결코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 존 맥클레인의 캐릭터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영화의 성격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시리즈 처음으로 미국을 벗어나 러시아에 온 존 맥클레인. 그에겐 그 자체가 휴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휴가는 체르노빌에서의 한바탕 액션입니다.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감도 없고, 관계가 소원해진 아들 잭과 함께 악당을 무찌를 수 있으니 어쩌면 그 자체가 존 맥클레인에게는 하나의 신나는 휴가가 아니었을까요? 영화의 마지막 부분, '재미있었다'며 씨익 웃는 그의 모습에서 아들과 함께 러시아에서 제대로 휴가를 보내고 있는 존 맥클레인의 모습이 읽혀졌습니다. 체르노빌에서의 휴가라... 존 맥클레인다운 휴가인 셈입니다.
[다이하드 : 굿 데이 투 다이]를 보고 나오면서 든 생각은 존 맥클레인이 아들인 잭과 함께 체르노빌에서 아주 특별한 휴가를 맞이한 만큼, 우리 관객들 역시 이 영화를 시리즈에서 벗어난 잠시 동안의 휴가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점입니다.
솔직히 [다이하드 : 굿 데이 투 다이]를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쉴새없이 쏟아지는 액션 속에 속빈 강정 같은 드라마' 정도가 될 것입니다.
시리즈가 애초에 가지고 있던 긴박감이, 가족을 구해야 한다는 존 맥클레인의 절박감 부족으로 인해 사라지면서 남는 것은 결국 잭과의 액션 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금 너그럽게 [다이하드 : 굿 데이 투 다이]를 평가한다면 '25년동안 가족을 지키기 위해 죽도록 고생한 존 맥클레인이 자신과 붕어빵처럼 닮은 아들 잭과 함께 체르노빌에서 보낸 아주 특별한 휴가'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까짓거 가족 지키기 위해 그 동안 수고 많았으니 체르노빌에서 잭과 함께 신나게 영웅 놀이를 한 존 맥클레인의 25년 만의 휴가를 우리 모두 이해해주자고요.
존 맥클레인다운 휴가지 체르노빌.
이제 잭과 함께 실컷 즐겼으면 6편에선 다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일하자!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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