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데이비드 O. 러셀
주연 : 브래들리 크퍼, 제니퍼 로렌스, 로버트 드니로
개봉 : 2013년 2월 14일
관람 : 2013년 2월 18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연애멘탈이 완전히 붕괴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해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이건 당해본 사람만이 압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으로인한 상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큽니다. 실연이라면 나름 다양하게 당해봤지만, 그 중에서 제게 최악의 실연은 사랑하는 그녀를 친구에게 빼앗겼을 때의 상처였습니다.
낙천적인 성격이라 자부(!)하던 저는 그녀가 술자리에서 남들 모두 보는 앞에서 제 친구와 키스를 했다는 다른 친구의 증언을 들은 이후 며칠 동안 베개를 끌어 안고 펑펑 울었었습니다. 너무 창피하고, 억울하고, 속에서는 분노가 치미는데, 그러한 분노를 풀 방법이 없으니 눈물만 하염없이 나오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니 제가 찬란했던 20대를 연애 한번 번번히 하지 못하고 허송세월했던 이유도 어쩌면 그녀의 배신으로 인해 연애멘탈이 무너졌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당시 저는 복학생이었고 여자 후배들에게 인기가 꽤 있었지만 (믿지는 못하시겠지만... ^^) 무너진 저의 연애멘탈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제가 연애멘탈을 회복하기까지는 거의 3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후였습니다.
여기 팻(브래들리 쿠퍼)이라는 이름의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 니키가 직장 동료와 바람피우는 현장을 목격합니다. 결국 그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직장 동료에게 폭력을 가했고, 그로인하여 정신병원에 8개월 동안이나 갇히게 됩니다.
어머니의 도움으로 정신병원을 나온 그는 니키와의 재결합을 꿈꾸며 자신은 정상이고 앞으로 더욱 긍정적으로 바뀔 것이라며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주문을 겁니다.
하지만 헤밍웨이의 고전 <무기여 잘 있거라>가 비극으로 끝난다며 새벽에 부모를 깨우고, 결혼 비디오를 찾는다며 생 난리를 쳐서 이웃집에 신고가 들어가게 할 만큼 그의 정신 상태는 굉장히 불안정해보였습니다. 어쩌면 말 그대로 그는 '미친놈'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본 기억이 있는 저는 팻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비록 저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눈물로 애써 참았고, 팻은 그 분노를 참지 못하고 분출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에 의한 충격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바로 그러한 팻의 연애멘탈 회복기를 다룬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사람은 누구가 어느 정도의 정신병이 있다.
팻은 말 그대로 정신병자입니다. 조울증이 있고,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폭발을 하기도 합니다. 팻을 퇴원시키려는 어머니에게 정신병원 측은 '그가 이제 병원에 적응하려 하는데 퇴원시키면 어떻게 하냐?'며 만류합니다. 하지만 팻의 어머니는 '내가 진정으로 걱정하는 것은 팻이 이 곳에 적응하는 것이다.'라며 맞섭니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정신병자인 팻을 내세워 '과연 당신은 정상인가?'라고 묻습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저는 팻을 이해합니다. 만약 그러한 상황을 맞이한다면 과연 참을 수 있는 사람이 몇 이나 있을까요? 어쩌면 분노해야 하는 상황에서 분노를 표출한 팻의 행동은 분노를 애써 참았던 저보다는 정상일지도 모릅니다.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의 정신병이 있다고 합니다. 팻의 아버지(로버트 드니로)는 풋볼 경기를 보며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위한 강박증을 보입니다. 팻과 함께 응원을 하면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이길 것이라 믿고, TV 리모컨을 가지런히 정리정돈하기도 합니다. 풋볼을 볼땐 손수건을 손에 쥐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그러한 그의 강박증은 사실 저도 있습니다. 한때 과하다 싶을 정도로 신문에 실린 영화 광고지에 집착했고, (그 결과물이 영화노트에 고스란히 실려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 리뷰를 꼭 써야하는 것 역시 강박증일 것입니다. 정도의 문제일 뿐, 어쩌면 우리 모두는 약간의 정신병을 모두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약간의 정신병을 약으로 치료할 수 있을까요? 몸이 아프면 약을 먹으면 나을 수 있지만, 과연 정신이 아픈데 그깟 알약 몇 개로 치료가 가능할까요?
팻은 병원에서 처방한 약을 끊임없이 거부합니다. 약을 먹으면 정신이 멍해지고 속이 거북하기 때문이죠. 그 대신 그는 운동으로 자신의 정신병을 극복하려 합니다. 하지만 영화 초반 팻의 난동에서 알 수 있듯이 러닝을 통한 운동 역시 그다지 효과적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한 팻이 점차 자신의 정신병을 극복하는 것은 티파니(제니퍼 로렌스)를 만난 후부터입니다. 남편의 죽음 이후 회사 동료들과 잠자리를 같이해서 분란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했다는 그녀는 팻을 노골적으로 유혹합니다. 그러한 티파니를 보는 팻의 표정은 '이런 미친 여자를 봤나!'입니다.
하지만 팻과 티파니는 서로 닮은 구석이 많습니다. 그들은 과거의 상처로 인하여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회적 통념상 정신병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밖으로 드러낸다는 부분에서 팻과 티파니는 너무나도 닮았습니다. 비록 팻은 그러한 사실을 깨닫는데 시간이 좀 더 필요했지만...
이렇듯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어쩌면 정신병자들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팻과 티파니에 사랑에 웃음을 짓게 됩니다. 약간의 정신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정상인척 행동하는 제게 팻과 티파니는 말합니다. '우리처럼 솔직하게 사랑하라!'라고...
티파니와 제니퍼 로렌스에게 매료당하다.
사실 티파니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저는 팻이 그러했듯이 티파니라는 캐릭터를 탐탁치않게 생각했습니다. 자신을 식사에 초대한 언니에게 당혹스러울 정도로 적대감을 드러내고, 팻을 노골적으로 유혹합니다.
대부분의 남성는 자신을 노골적으로 유혹하는 여성을 그저 하룻밤의 상대로 생각할뿐, 사랑해야할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티파니는 자신의 감정에 너무 솔직했기에 팻의 사랑을 받을 캐릭터가 되기에 부적합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며 팻이 서서히 티파니에게 마음의 문을 열듯이 저 역시 티파니라는 캐릭터에 점점 매료되고 있었습니다. 내숭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그녀는 자신의 속마음을 꾸밈없이 적나라하게 표출합니다. 티파니가 자신을 탐탁치않게 생각하는 팻의 아버지에게 속 시원하게 한마디하는 장면에서는 그녀의 과감한 솔직함이 갖는 매력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입만 열만 자신을 배신하고 상처를 준 신기루같은 니키를 찾는 팻. 어느사이 티파니에게 매료된 저는 바보같은 팻이 답답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이 갖는 로맨틱 코미디로서의 진정한 재미입니다. 비록 정신병자들끼리의 사랑으로 시작했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그들의 사랑을 응원하게 되는 저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니퍼 로렌스... 티파니를 연기한 배우입니다. 놀랍게도 그녀는 [헝거게임 : 판엠의 불꽃]에서 잔인한 생존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하는 어린 소녀로 출연했습니다. 그러고보니 그녀의 나이는 고작 23살. 아직 소녀티가 채 가시지 않은 배우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그녀가 남편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에 정신적 방황을 겪는 미망인으로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 출연합니다. [헝거게임 : 판엔의 불꽃]과는 전혀 다른 상반된 캐릭터인 것입니다.
게다가 그녀의 상대역은 38살인 브래들리 쿠퍼입니다. 무려 15살이나 차이가 나는 브래들리 쿠퍼와 제니퍼 로렌스. 그런데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을 보다보면 오히려 티파니가 팻을 리드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제가 제니퍼 로렌스에게 놀란 것은 바로 그러한 그녀의 연기력입니다. [헝거게임]은 시리즈 영화입니다. 올해 [헝거게임 : 캐칭 파이어]가 개봉 대기 중입니다. 그러한 와중에 제니퍼 로렌스는 생존 게임에 뛰어든 어린 여전사에서부터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남편을 잃은 미망인까지 폭넓은 연기력을 선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저 앳띤 얼굴로 저렇게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니... 정말 대단한 배우입니다.
한줄기 빛을 찾아나선 팻. 그 빛은 자신에게 있었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기본적으로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영화입니다. 그리고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은 이 독특한 영화 속에 로맨틱 코미디가 갖춰야할 영화적 재미를 충실하게 쌓아 올립니다.
처음엔 당혹스러울 정도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팻과 티파니의 캐릭터로 인하여 이 영화가 로맨틱 코미디의 길을 제대로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그러한 걱정은 기우임이 밝혀집니다.
팻과 티파니가 댄스 경연대회의 연습을 통해 서로에게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여는 과정은 전혀 억지스럽지 않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경연대회의 절박감을 높이는 장치 역시 팻의 아버지의 강박증을 이용하는 영특함을 보입니다. 그러면서 팻의 병원 친구인 대니(크리스 터커)를 심심할만하면 등장시켜 영화의 웃음을 증폭시키기도 합니다.
특히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댄스 경연대회 장면은 최고의 명장면이었습니다. 솔직히 그들의 춤은 다른 참가자의 춤에 비한다면 막춤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해냅니다. 비록 막춤이지만 남들이 보는 앞에서 스스로를 만족시킬 춤을 추며 정신병이라는 사회의 통념이 만들어낸 두꺼운 껍질을 스스로 벗어낸 것입니다.
초반은 약간 당혹스러웠고, 중반은 약간 지루했던 부분도 분명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결코 서두르지 않고 서서히 팻과 티파니의 사랑을 완성해나갑니다.
그 결과 영화 후반의 댄스 경연대회 장면에서는 저도 모르게 마음 속으로 박수를 치며 영화에 흠뻑 빠질 수 있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막춤이지만 그들에겐 세상 그 무엇보다도 멋진 춤의 향연을 보며 팻을 바라보는 그의 부모처럼 저 역시 뿌듯함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영화의 초반부터 팻에게 감정이입을 제대로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팻과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너무 들이대는 티파니에게 당혹스러워하다가, 점점 그녀의 매력에 빠져들고, 결국 마지막 팻이 자신을 힘들게 하던 그 모든 것으로부터 극복하는 장면에서는 뿌듯하고 행복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팻은 니키와의 재결합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다시 일으켜줄 한줄기 빛을 찾으려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팻은 깨닫습니다. 자신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 뿐이라는 사실을... 지금 만약 실연의 고통으로 아파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을 추천합니다. 스스로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던 팻과 티파니의 유쾌한 사랑 이야기를 보다보면 어느새 상처를 잊고 웃고 있을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앞만 보는 팻과 팻만 보는 티파니.
팻의 러브맨탈은 티파니가 회복시켜줬지만,
세상을 비춰줄 한줄기 빛은 팻 스스로 찾아냈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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