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3년 영화이야기

[부도리의 꿈] - 이 세상의 모든 부도리를 위해서...

쭈니-1 2013. 2. 4. 11:31

 

 

감독 : 스기이 기사부로

더빙 : 오구리 슌, 쿠츠나 시오리

개봉 : 2013년 1월 31일

관람 : 2013년 2월 2일

등급 : 전체 관람가

 

 

역시 영화를 볼땐 컨디션이 좋아야 한다.

 

전 날 과음을 하고 말았습니다. 금요일 저녁이고, 오랜만에 회사 동료들과의 술자리라서 너무 마음이 들떠버렸었나 봅니다. 술자리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니 토요일 새벽이었습니다. 구피는 도끼눈을 하며 왜그리 술을 많이 마시냐며 잔소리를 해대고, 속은 쓰리고, 머리는 아프고...

그런데 그날 하필 웅이와 [부도리의 꿈]을 보러 가기로 약속까지 되어 있었습니다. 목, 금요일 연속으로 약속이 있어서 웅이와 못 놀아준 저로서는 토요일 약속 마저 깨뜨릴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쓰린 속을 움켜 잡고 웅이와 [부도리의 꿈]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집 근처 멀티플렉스에서 [부도리의 꿈]을 상영하긴 했지만 모두들 더빙버전을 상영하더군요. 더빙버전은 자막버전에 비해 10분 가량이 삭제되어 상영한다는 정보를 미리 들었기 때문에, 자막 버전을 상영하는 집에서 먼 극장으로 예매를 해놓은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러 가는 길이 제겐 더욱 힘이 들었습니다.

 

[부도리의 꿈]의 자막 버전을 상영하는 신촌 메가박스. 처음 가보는 극장이기에 웅이와 몇 분간 헤맨 끝에 겨우 극장에 도착. 드디어 영화 보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부도리의 꿈]을 보기 위해 극장 좌석에 앉은 저는 심한 두통을 느껴야 했습니다. 극장 안의 온풍이 전 날 과음한 제 컨디션을 더욱 안좋게 한 것이죠.

그래서일까요? 저는 [부도리의 꿈]을 집중해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영화의 초반은 그런대로 버틸 수 있었는데 중반이 넘어가면서 두 눈이 자꾸 감기고, 머리 속에는 '이게 도대체 무슨 내용이야?'라며 정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컨디션이 안좋은데 내용 전개도 혼란스럽고 지루했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언제나처럼 웅이에게 물었습니다. "재미있었니?" 웅이는 자신있게 "네!"라고 대답하더군요. 저는 "난 재미없었어. 도대체 뭔 내용인지 이해도 안되고..." [부도리의 꿈]이 재미없었다는 제 말에 웅이는 약간 놀란 눈치였습니다.

그런데 극장 밖으로 나와 찬 바람을 조금 맞으니 정신이 점점 맑아지더군요. 게다가 집에 가기 전에 일본식 라멘집에 가서 해장을 하고나니 살 것 같았습니다. 그제서야 [부도리의 꿈]에 담긴 주제들이 하나씩 정리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부도리의 꿈]을 재미있게 봤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역시 영화를 볼 땐 제 몸의 컨디션을 먼저 체크해야 겠습니다.    

 

 

현실과 환상... 그 혼란스러운 경계

 

먼저 제가 [부도리의 꿈]이 재미없었던 이유부터 설명을 해야 겠네요. 제가 [부도리의 꿈]이 재미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 영화를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으로 잘 못 이해를 했다는데에서 비롯됩니다.

물론 일본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아무리 전체 관람가 등급의 영화라고 해도 미국 애니메이션에 비해 내용이 조금 어렵다는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도리의 꿈]은 기본적으로 고양이를 의인화한 애니메이션입니다. 동물을 의인화하는 이유는 어린이 관객에게 친숙하게 다가서기 위한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영화의 장르는 판타지. 제가 [부도리의 꿈]을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이라고 오해한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듯이 저는 [부도리의 꿈]을 보며 혼란을 느껴야 했습니다. 내용 전개는 혼란스러웠고,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선뜻 마음에 와닿지 않았습니다. 특히 부도리(오구리 슌)의 동생인 네리(쿠츠나 시오리)를 데려가는 의문의 사나이 코토리의 등장부터 제 혼란은 시작되었습니다.

 

[부도리의 꿈]을 보기 전에 저는 이 영화가 동생 네리를 구하기 위한 부도리의 모험담이라 예상했습니다. 영화의 홍보도 그렇게 맞춰져있고요. 하지만 코토리가 네리를 데려간 이후 그러한 제 예상은 보기 좋게 엇나갔습니다. 부도리는 동생을 구하기 위한 모험을 하기 보다는 그저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저를 더욱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바로 현실과 환상의 경계입니다. 네리가 납치된 이후 만나는 비단공장주의 에피소드가 그러합니다. 네리를 구하기 위해 집 밖으로 뛰쳐 나가던 부도리는 비단공장주에 붙잡혀 네리를 구하는 것은 잊고 일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 장면은 부도리의 환상인데, 영화는 이런 식으로 부도리의 환상과 현실을 마구 섞어 놓습니다.

현실에서의 부도리는 농부인 붉은수염의 밭에서 몇 년간이나 묵묵히 일을 하고, 도시로 간 후 구보 박사와 펜넨 소장을 만나 화산을 관리하는 일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부도리의 환상 속에는 네리를 찾기 위해 코토리를 뒤쫓습니다. 더빙버전에서 생략된 도시의 기차 역에서 코토리를 뒤쫓는 부도리의 장면이 대표적인데, 만약 이 장면이 삭제된 더빙버전을 봤다면 저는 [부도리의 꿈]을 본 후 더욱 이 영화에 대해서 이해못하고 혼란스러워했을 것입니다.

 

 

왜 부도리는 환상에서만 네리를 찾아 나서는 것일까? (스포 포함)

 

처음에 저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의문의 사나이 코토리가 네리를 데려갔는데, 부도리는 붉은수염의 밭에서 몇 년간 네리를 찾지 않고 열심히 일합니다.

[부도리의 꿈]이 네리를 구하기 위한 부도리의 모험을 그린 영화일 것이라 생각하고 봐서인지 부도리의 현실 부분이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더빙버전에서 삭제된 기차역에서의 모험 장면을 보고나니 조금 이해가 되더군요. 아마도 더빙버전을 보신 분들은 저보다 더 혼란스러우실 듯... 도대체 이 영화의 수입사가 무슨 생각으로 그 부분을 삭제한 것인지 참... 어이상실입니다.

결국 제가 이해한 부도리의 환상은 사자(死者)의 세계입니다. 쉽게 말해서 코토리는 저승사자인 셈이죠. 네리는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죽었으며 코토리는 그런 네리를 사자의 세계로 데려간 것이죠. 부도리가 코토리를 쫓아가다가 만난 비단공장주 역시 사자의 세계 속의 인물입니다. 부도리 역시 죽을 뻔했지만 다행히 고비를 넘기고 다시 현실의 세계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도시에서 구보 박사를 만나고, 펜넨 소장을 만나는 것은 현실입니다. 부도리가 현실에서 네리를 찾아 헤매지 않은 이유는 네리가 죽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해 도시의 기차 역에서의 모험은 다시 사자의 세계입니다. 현실의 세계에서와는 달리 사자의 세계에서 부도리는 네리를 찾아 헤맵니다. 결국 코토리는 사자의 세계에 자꾸 발을 들여 놓는 부도리에게 경고를 하기에 이릅니다.(환상의 세계에서의 재판씬)

마지막 또다시 찾아온 냉해를 없애기 위해 화산을 폭파시키려는 부도리에게 다시 코토리가 나타납니다. 부도리가 목숨을 걸기로 결심한 순간 코토리는 부도리에게 '네가 날 소환했다.'고 이야기하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부도리의 희생은 표현되지 않았지만 코토리가 부도리를 찾아온 것만으로도 결국 부도리가 자기 자신을 희생시켜 이하토브의 위기를 구해냈음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부도리를 위해서...

 

사실 저 역시 [부도리의 꿈]을 볼 당시에는 도저히 영화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왜 부도리는 네리를 구하러 가지 않지?', '도대체 현실과 환상의 저 이상한 경계는 무엇을 뜻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아도 숙취로 인하여 띵한 제 머리 속은 이 영화로 인하여 더욱 복잡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부도리의 환상이 사자의 세계임을 인식하는 그 순간 [부도리의 꿈]에 대한 제 의문점은 술술 풀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스기이 기사부로 감독이 하고자하는 메시지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한국인 청년 故이수현씨를 떠올리며 제작했습니다."  스기이 기사부로 감독이 밝힌 연출변입니다. 故 이수현은 2001년 1월 일본 유학 중 선로에 추락한 사람을 구하고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자신을 희생하여 남을 구한 故이수현. 자기 자신을 희생함으로서 세상을 구하려 했던 부도리. 그들의 희생 정신은 일맥상통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도리의 꿈]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남을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희생 정신. 점점 개인주의로 치닫는 현대 사회에서 어쩌면 그러한 희생 정신이야 말로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영웅이 아닐까요?

하지만 이런 좋은 주제를 가지고 있더라도 저 개인적으로 [부도리의 꿈]에 좋은 점수를 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영화를 볼 당시의 제 컨디션이 안좋았음도 감안을 해야 겠지만, [폭풍우 치는 밤에]를 재미있게 본 저로서는 솔직히 실망스러운 영화였습니다.

'동생 네리를 구하기 위한 부도리의 모험'에 포커스를 맞춘 국내 수입사의 광고도 패착이었고,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너무 혼란스러웠던 것 역시 영화를 집중하는데 방해를 줬으며, 마지막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부도리의 희생 장면은 직접적인 감동보다는 장면의 생략을 통한 간접적인 감동을 선택함으로서 밋밋하게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제가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는지도... 하지만 웅이가 재미있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부도리의 꿈]은 겉보기에 완벽한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으로 치장되어 있다.

하지만 어린이가 보기엔 너무 심오한 애니메이션이다.

차라리 좀 더 성인용으로 치장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