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3년 영화이야기

[7번방의 선물] - 철조망에 걸린 순수

쭈니-1 2013. 1. 29. 13:36

 

 

감독 : 이환경

주연 : 류승룡, 박신혜, 갈소원, 오달수, 박원상, 김정태, 정만식, 정진영

개봉 : 2013년 1월 23일

관람 : 2013년 1월 28일

등급 : 15세 관람가

 

 

[박수건달]은 만족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7번방의 선물]은?

 

월요일 아침부터 바빴습니다. 부하 직원이 휴가인데다가 해야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서 아침부터 쉴 틈없이 일에 열중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구피한테 문자 메시지가 왔습니다. '오늘 7번방 보러갑시다.'

지난 주말 내내 감기몸살로 앓아 누웠던 구피. 아직 감기기운이 전부 낳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제게 [7번방의 선물]을 보러가자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입니다.

저는 '몸은 괜찮냐? 괜히 무리했다가 감기몸살이 재발하는 것은 아니냐?'며 걱정을 해줬지만 구피는 '괜찮다.'는 답장을 보내왔습니다. 정신없이 바쁜 월요일이었지만 드디어 [7번방의 선물]을 보러 간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그날의 진실은 이러했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제 블로그에 접속한 구피. 그런데 제가 쓴 글마다 '구피가 아파서 [7번방의 선물]을 못봤어요.'라는 투정이 쓰여 있더랍니다. '이번주 개봉작' 소개글에도... 이웃들의 댓글에 대한 답글에도... 주말에 [7번방의 선물]을 보지 못한 투정이 잔뜩 쓰여 있는 것을 본 구피는 '에휴! 이 투정을 듣느니 내가 그냥 아프고 말지.'라는 심정으로 감기몸살 기운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게 [7번방의 선물]을 보자며 문자를 보낸 것이죠.

 

그러한 사정을 알리가 없는 저는 신이 나서 [7번방의 선물]을 예매한 후, 야근을 해야할 정도로 산더미처럼 쌓인 일을 미뤄두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습니다.

사실 [7번방의 선물]은 제가 그렇게 안달을 할 정도로 기대작은 아니었습니다. 류승룡이라는 배우를 좋아하긴 하지만 영화의 스토리 라인에서부터 뻔히 보이는 이 영화의 감동코드는 제 취향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7번방의 선물]이 개봉 첫 주 압도적인 차이로 주말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흥행 질주를 벌인다는 소식은 제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7번방의 선물] 이전에 흥행 질주를 하던 [박수건달]의 경우도 그랬습니다. 처음엔 그다지 기대하지 않다가 흥행 소식을 듣고 뒤늦게 극장으로 향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박수건달]이 기대만큼 재미있지 않았습니다.

[박수건달]과 [7번방의 선물]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코미디 장르의 영화이며, 연기 잘하는 어린 여자 아역 배우를 내세운 감동코드를 지니고 있다는 점까지도... 그렇다면 [박수건달]에 만족하지 못했던 저는 과연 [7번방의 선물]에는 만족했을까요? 

 

 

류승룡의 바보 연기를 기대하다.

 

[7번방의 선물]를 보기 전에 제가 가장 기대를 했던 것은 류승룡의 연기입니다. 예고편에서 선보인 류승룡의 바보 연기는 [7번방의 선물]에 대한 제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사실 류승룡이 흥행 배우로 이름을 올린 것은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닙니다. 2009년 12월에 개봉한 스릴러 [시크릿]에서 악역으로 카리스마 가득 넘치는 연기를 선보였던 그는 [평양성], [고지전], [아이들...] 등의 영화로 워밍업을 하더니 결국은 [최종병기 활]과 [광해, 왕이 된 남자],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연속 3연타석 흥행 홈런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영화에서 류승룡은 주인공이 아닌 주연급 조연 정도의 비중이었습니다. [최종병기 활]에서는 박해일,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는 이병헌,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는 이선균과 임수정을 뒷받침하며 영화의 재미를 끌어 올리는 역할에 충실했었습니다.

그러나 [7번방의 선물]에서는 다릅니다. 이 영화에서 류승룡은 당당하게 단독 주연으로 이름을 올렸고, 탄탄하게 다져진 연기력을 바탕으로 6살 지능을 가진 용구라는 캐릭터로 다시한번 연기 변신을 선언한 것입니다. 주로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를 연기하던 류승룡의 바보 연기는 [7번방의 선물]이 야심차게 내 놓은 첫 번째 흥행 요소인 셈입니다.

 

[7번방의 선물]을 보기 위해 극장 좌석에 앉은 저는 류승룡의 명품 바보 연기를 잔뜩 기대했습니다. 그는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외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느끼한 바람둥이 역할을 천연덕스럽게 해낸 전력이 있습니다. 그러한 그였기에 바보 연기 역시 잘 해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확실히 류승룡은 [7번방의 선물]에서 6세 지능을 가진 순수한 바보 연기를 잘 소화해냅니다. 예고편에서부터 빵 터진 '엄마, 아팠어요, 내 머리 커서...'라는 대사는 예고편을 통해 그렇게 수도 없이 봤음에도 불구하고 극장에서 보니 또 웃기더군요.

그러나 류승룡의 코믹한 바보 연기가 영화의 초반을 장악할 것이라는 제 예상과는 달리 류승룡은 스스로 영화를 장악하려 하지 않고 다른 조연 배우들과 함께 융합하려 합니다. 그 결과 류승룡의 바보 연기에 의한 영화적 재미는 덜 했습니다. 예고편에서 보여줬던 장면들이 전부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 대신 이 영화의 코믹한 분위기는 용구가 아닌 7번방 패밀리인 소양호(오달수), 강만범(김정태), 신봉식(정만식), 최춘호(박원상) 등이 책임집니다. 류승룡은 단독 주연으로 영화를 장악하기 보다는, 조연같은 주연으로의 역할에 만족하며 7번방 패밀리를 이룬 막강 조연진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영화 속에 스며든 것입니다.

 

 

요즘 연기 잘하는 아역 배우가 너무 많다.

 

단독 주연으로 영화를 장악하지 않고, 막강 조연 배우들로 구성된 7번방 패밀리와 함께 자연스럽게 녹아든 류승룡의 연기는 영화의 중반부터 그 진가를 발휘합니다.

사실 [7번방의 선물]은 예고편에서 류승룡의 바보 연기를 통한 코믹한 재미를 선보였지만, 이 영화의 진정한 재미는 웃음이 아닌 눈물입니다. 만약 류승룡의 코믹한 바보 연기가 영화를 장악했다면 후반부의 감동코드와 충돌이 일어날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류승룡은 코믹한 연기를 어느 정도 자제함으로서 영화가 과도한 코믹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아냅니다. 류승룡이 코믹 연기를 자제하는 동안 7번방 패밀리들이 관객이 원하는 웃음을 책임지는 영리한 전략을 선택한 것이죠.

그 결과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예승(갈소원)에 의한 감동코드는 제대로 힘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류승룡의 바보 연기 역시 웃기는 바보가 아닌, 예승을 사랑하는 순수함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만약 [7번방의 선물]이 초반에 용구라는 캐릭터로 인한 웃음에 집착했다면 분명 영화는 더 많은 웃음을 관객에게 전해줄 수 있었겠지만 예승을 향한 용구의 순수한 사랑은 빛을 잃었을 것입니다.

 

용구가 웃기는 바보가 아닌, 순수한 바보가 됨으로서 [7번방의 선물]은 중반부터 감동코드로의 준비를 착실하게 해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어린 예승이를 연기한 아역 배우 갈소원이 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재미없게 보았던 [박수건달]에서도 아역 배우인 수민 역의 윤송이의 연기만큼은 빛났습니다. 만약 윤송이의 빛나는 연기가 없었다면 [박수건달]은 제게 더욱 재미없는 영화로 기억되었을 것입니다.

[박수건달]에 윤송이가 있다면 [7번방의 선물]에는 갈소원이 있습니다. 그녀의 연기는 [7번방의 선물]에서 감동의 90% 이상을 차지합니다. 특히 귀엽지만 똑 부러지는 예승이와 6살 지능을 가진 순수한 바보 용구의 조화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감동을 대폭발시킵니다. [7번방의 선물]이 어디에서 울릴지 잘 알고 있으면서 후반에 저 역시도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막지 못했을 정도입니다.

류승룡의 바보 연기가 의외로 웃기지 않아서 실망했는데, 후반이 되니 '아! 이러려고 용구가 웃기지 않았구나.' 라고 깨달았습니다. 이환경 감독의 영리한 연출과 류승룡의 완숙한 연기, 그리고 갈소원의 아역답지 않은 연기등이 빚어낸 효과입니다. 아! 물론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 7번방 패밀리의 코믹 연기도 빼놓을 수는 없겠죠.

 

 

철조망에 걸린 순수

 

여기 저기에서 여성 관객의 훌쩍이는 울음 소리가 넘쳐납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니 구피의 눈도 새뻘겋게 충혈이 되어 있습니다. 구피도 엄청 울었나봅니다.

그렇게 영화가 끝나고 곰곰히 생각하니 사실 [7번방의 선물]은 참 말이 안되는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감옥 안에 어린 아이가 들어온다는 설정도 말이 안되지만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한 용구의 탈옥 장면은 말 그대로 판타지였습니다.

그런데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이 영화가 참 말이 안되고 관객을 울리려는 뻔한 의도가 보이지만, 감성적으로 생각하면 참 가슴아프고 슬프고,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상반된 이성과 감성의 차이는 바로 강자에 희생당하는 약자의 슬픔이라는 정서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2011년 [도가니]가 예상 외의 흥행 성공을 거두며 영화의 감동코드는 강자에 의해 희생당하는 약자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부러진 화살]이 그러했고, [남영동 1985], [26년]이 그러했습니다. 힘 없는 약자가 강자들에 의해 희생당하는 장면을 보는 관객의 감동은 다른 감동코드보다 클 수 밖에 없음을 영화 제작사들이 눈치를 챈 것입니다.

 

[7번방의 선물]도 마찬가지입니다. 6살의 지능을 가진 용구는 억울한 피해자이고, 경찰청장은 비열한 가해자입니다. 물론 딸을 잃은 경찰청장의 분노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진실보다는 희생양을 원하는 그의 모습은 가해자의 비열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7번방의 선물]은 힘 없는 피해자 용구가 어떻게 희생되는지 그 과정을 보여줍니다. 냉소적인 교도소 과장(정진영)은 물론이고, 흉악한 교도소의 죄수들 마저도 용구의 순수함에 물들어 가지만, 정작 경찰, 변호사, 검사 등 권력을 가진 이들은 오히려 용구의 순수함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합니다.

영화의 초반 성인이 된 예승(박신혜)이 교도소를 찾았다가 철조망에 풍선이 걸리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그 장면을 보며 '어쩌면 저 장면이 [7번방의 선물]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구나.'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제 예상은 후반부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옴으로서 맞아 떨어졌습니다.

철조망에 걸린 풍선. 저 날카로운 철조망은 사회의 편견, 가진 자의 폭력이고, 금새라도 터질 것 같은 풍선은 용구의 순수함과 딸 예승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그런 생각을 하니 이 영화가 말이 안되는 영화임을 알면서도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렇게 [7번 방의 선물]은 분명 뻔한 감동 코드를 준비한 뻔한 영화이지만 용구와 예승의 순수함만으로도 충분히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영화입니다.

 

[7번방의 선물]은 강추위에 떠는 관객을 위한 

진정한 선물이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