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3년 영화이야기

[더 임파서블] - 가장 무서운 것은 쓰나미가 아닌 가족을 잃는 것이다.

쭈니-1 2013. 1. 22. 10:40

 

 

감독 :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주연 : 이완 맥그리거, 나오미 왓츠, 톰 홀랜드

개봉 : 2013년 1월 17일

관람 : 2013년 1월 21일

등급 : 12세 관람가

 

 

마흔... 인생의 쓰나미가 시작되었다.

 

어제가 저의 마흔번째 생일이었습니다.(구피는 마흔한번째 생일이라고 우기지만 저는 마흔번째 생일이라 믿고 싶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구피가 끓여준 미역국을 마셨고, 저녁에는 장모님께서 정성껏 만들어주신 아구찜에 맛난 저녁 식사를 했으며, 웅이의 생일 축하 노래를 들으며 고구마 케잌도 먹었습니다.

하지만 뭔가 부족하죠? 네, 맞습니다. 생일 선물을 받아야죠. 구피가 제 구식 스마트폰을 최신으로 바꿔주겠다고 했지만 제가 괜찮다고 했습니다. 사실 스마트폰으로 제가 하는 것이라고는 전화 걸고 받기, 문자 주고 받기, 그리고 DMB 시청과 블로그 확인하기 뿐인데, 그러한 것은 구식 스마트폰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거든요.

그 대신 제가 받은 것은 영화 보기입니다. 뭔가 제 마흔번째 생일을 기념할만한 그런 영화가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직 안보고 남겨둔 영화가 바로 [더 임파서블]입니다. [더 임파서블]은 2004년 12월 26일 태국을 강타한 쓰나미로 인하여 고난을 겪는 어느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실화영화입니다. 마흔이라는 인생의 쓰나미(?)를 맞은 제게 꽤 적절한 영화인 듯...

 

제 생일날 밤에 본 [더 임파서블]은 일단 제겐 꽤 인상깊은 영화였습니다. 쓰나미의 거대한 스펙타클을 기대했던 분들에겐 실망스러웠을지도 모르지만, [더 임파서블]은 쓰나미의 공포보다는 그로인하여 가족과 떨어진 사람들의 공포를 효과적으로 잡아냈습니다.

영화의 초반은 헨리 가족의 일상과 쓰나미가 몰아 닥친 후의 공포를, 영화의 중반은 첫째 아들인 루카스(톰 홀랜드)와 단 둘이 떨어진 마리아(나오미 왓츠)의 시점으로, 영화의 후반은 둘째, 셋째 아들과 함께 살아 남은 헨리(이완 맥그리거)의 시점으로 영화가 진행된 점도 영화적 긴장을 높이는데 좋은 효과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특히 저는 헨리가 빌린 전화로 장인에게 전화를 걸며 울먹이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뜨거운 몇 줄기 눈물이 땀을 타고 내려왔습니다. 헨리가 느꼈을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가장으로서의 죄책감이 마음에 와닿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최근 들어서 영화를 보며 흘렸던 눈물 중에서 가장 많은 눈물을 흘린 듯...

쓰나미의 공포가 아닌, 가족을 잃는 것에 대한 공포를 담아낸 [더 임파서블]. 제 마흔번째 생일을 맞이한 특별한 의미를 가진 이 영화의 이야기를 지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아들을 혼자 남겨둘 수 없다.

 

혹시 여러분은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려본 경험이 있나요? 저는 있습니다. 어렸을 적에 시골에서 살았는데, 여름이면 동네 형들과 개울가로 놀러 다녔습니다. 그때 어느 형이 제게 수영을 가르쳐줬는데, 타고난 콜라병인 저는 그만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동네 형이 구해줘서 아주 짧은 시간 물 속에서 허우적거린 것에 불과하지만 그날의 공포는 아직도 생생하답니다. 그로인하여 저는 아직도 물을 무서워하고 수영을 하지 못합니다.

[더 임파서블]의 초반에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쓰나미가 밀려 오고 사람들이 쓰나미에 밀려 떠내려가는 장면이었습니다.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은 바로 이 장면에서 쓰나미의 거대한 위력을 표현하기 보다는 물에 빠진 마리아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바로 이 장면에서 제가 깜짝 놀란 것은 탁월한 음향 효과 때문입니다. 물에 빠졌을 때 물로 인하여 느끼게 되는 귀가 먹먹함. 뭐라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그 기분을 [더 임파서블]은 완벽하게 재현해냈습니다. 눈 앞은 깜깜하고, 귀는 먹먹하고, 몸은 붕 뜬 기분에 자꾸 밑으로 가라 앉는 느낌. [더 임파서블]의 그러한 장면을 보며 저는 어린 시절, 개울가에서 빠져 허우적댔던 그 짧은 순간이 떠올라 온 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더 임파서블]은 마리아와 루카스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더 임파서블]이 인상깊었던 것은 이 영화가 쓰나미를 바라보는 시선을 엄마의 시선과 아빠의 시선으로 효과적으로 나눠 놓았다는 점입니다.

쓰나미가 헨리 가족을 덮친 후 [더 임파서블]의 시선은 곧바로 마리아에게 넘어갑니다. 그녀는 쓰나미에 휩쓸리며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당했지만 아들 루카스를 위해서 힘을 냅니다.

하지만 제대로된 치료를 받을 수 없었던 그녀는 점차 죽어갑니다. 의사인 그녀도 그러한 자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죽어가는 그 순간에도 굳은 의지를 보입니다. 루카스를 혼자 남겨둘 수는 없다는 엄마의 강한 의지.

마리아의 시선으로 바라본 쓰나미의 공포는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이미 남편과 두 아들의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황. 만약 자신마저 죽게 된다면 루카스는 이 낯선 땅에서 혼자 남게 됩니다. 아마도 마리아는 죽는 것에 대한 공포보다는 루카스가 혼자 남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공포가 더욱 컸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죽어가는 그녀의 모습에서 살겠다는 강한 의지가 보였습니다.  

"이미 저 아이는 아버지와 두 동생을 잃었어요. 내가 죽으면 저 아이는 혼자예요."라며 울먹이는 마리아. 홀로 남겨질 아들을 지키기 위해 죽어가는 순간에도 결코 죽을 수 없었던 그녀의 심정. 그러한 마리아의 모습이 제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아이는 고난으로 성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고난의 순간에 루카스는 소년에서 어른으로 성장을 합니다. 처음 쓰나미에 휩쓸리다가 겨우 마리아를 만난 루카스는 울먹이며 말합니다. "저는 원래 겁이 없었는데... 지금은 너무 무서워요."

어린 두 동생 앞에서 어른인척 흉내를 내고 있었지만 사실 그는 아직 어린 아이였던 것입니다. 마리아의 다리에 흐르는 피를 보지 못해 외면하고, 어린 아이가 구해달라고 소리를 쳐도 "우리가 사는 것이 먼저예요."라며 외면하려합니다. 그는 너무나도 무서웠던 것입니다.

하지만 죽어가는 마리아를 지키며 루카스는 어른이 됩니다. 더이상 겁을 내며 뒤로 숨으려 하는 어린 아이가 아닙니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도와주고, 마리아가 죽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처음에는 마리아가 루카스를 돌봐주는 것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루카스가 마리아를 돌봐줍니다. 

[더 임파서블]을 보며 루카스의 성장이 흐뭇했습니다. 루카스가 홀로 남아 두려움에 떨 것이 무서워 죽지 못하던 마리아에게도 루카스는 어느순간부터 마음의 짐이 아닌 마음의 힘이 되어줍니다. 

 

죽어가는 마리아와 그러한 고난 속에 어른으로 성장하는 루카스를 뒤로 하고 [더 임파서블]의 카메라는 다시 쓰나미가 휩쓸고간 바닷가 리조트로 돌아갑니다. 그곳에는 아내와 큰 아들을 애타게 찾는 헨리가 있습니다.

어린 두 아들과 함께 가까스로 살아 남은 헨리. 그는 쓰나미에 휩쓸린 마리아와 루카스를 애타게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상황은 희망보다는 절망적입니다. 주위에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부지기수이고, 쓰나미에 휩쓸린 시체들이 도처에 깔려 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저는 [더 임파서블] 중에서 장인에게 전화를 걸어 울먹이는 장면이 가장 슬펐습니다. 가족을 지키지 못한 가장의 죄책감은 쓰마니의 공포보다도 더욱 제 마음을 아프게 후벼판 것이죠.

하지만 그는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든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한 가장의 다짐. 헨리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다시 힘을 내면서 [더 임파서블]의 절망적인 분위기는 다시 힘을 되찾습니다. 그리고 운명처럼 한발 한발 다가서는 이 가족의 기적이 영화 속에 펼쳐집니다.

 

 

가족을 잃고 혼자 남는 것에 대한 두려움

 

[더 임파서블]은 재난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재난은 갑자기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거대한 쓰나미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그려내고 있는 것은 쓰나미에 대한 공포가 아니었습니다.

어린 아들을 홀로 두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마리아의 두려움, 가족을 잃고 홀로 살아남을지도 모른다는 헨리의 두려움. 네, 그렇습니다. [더 임파서블]은 그러한 두려움을 완벽하게 잡아냈기 때문에 감동적인 가족 드라마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저는 헨리가 느꼈을 두려움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가족을 지키지 못하고 혼자 살아 남을 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헨리를 압박했을 것입니다. 죽음은 한 순간이지만 가족을 잃고 혼자 살아 남은 것에 대한 고통은 살아있는 동안 영원할 것입니다.

희망이 없어보이지만 아주 작은 희망도 놓치지 않고 마리아와 루카스를 애타게 찾는 헨리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만약 그가 희망을 잃고 마리아와 루카스의 죽음을 받아들였다면, 그 순간부터 헨리는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느꼈을 것입니다. 헨리는 그러한 고통을 가느다란 희망으로 이겨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헨리가 애타게 마리아와 루카스를 찾는 장면은 아슬아슬한 엇갈림으로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저는, 결국 그들이 만날 것을 알면서도 손에 땀을 쥐며 속으로 마음 속으로 응원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은 스케일을 줄이고 그 대신 특별한 것들을 영화속에 삽입시켰습니다. 이 영화의 쓰나미 장면은 예고편의 장면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짧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쓰나미의 거대함을 기대한 분들에겐 분명 실망스러운 결과물일 것입니다.

하지만 마리아의 두려움과 루카스의 성장, 헨리의 두려움을 [더 임파서블]은 효과적으로 잡아냄으로서 최소한 제겐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습니다. 마리아의 두려움을 잡아낼 때엔 헨리가 생사를 알 수 없게 처리하고, 헨리의 두려움을 잡아낼 때엔 마리아의 생사를 알 수 없게끔 처리한 것은 영화의 긴장감을 높이는 좋은 장치였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만약 내가 저 현장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 역시 웅이에 대한 걱정이 앞설 것 같습니다. 웅이를 남기고 먼저 죽건, 웅이를 먼저 보내고 혼자 남건, 그 어떠한 상황이라도 끔찍하긴 매한가지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니 그 어떤 공포 영화를 봤을 때부다 더욱 극심한 공포가 밀려오더군요. 그래서일까요? 구피도, 저도 그날 밤 쓰나미가 밀려오는 악몽을 꿨답니다.

 

 

쓰나미가 무섭다고?

아니 그로인하여 가족을 잃는 것이 나는 더 무섭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