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3년 영화이야기

[박수건달] - 새롭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식상하지도 않다.

쭈니-1 2013. 1. 14. 11:09

 

 

감독 : 조진규

주연 : 박신양, 정혜영, 엄지원, 김정태

개봉 : 2013년 1월 9일

관람 : 2013년 1월 11일

등급 : 15세 관람가

 

 

2013년 첫 실망작.

 

지난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영화 이야기에서도 밝혔지만 저는 영화를 영화 상영 시간동안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 극장을 찾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볼땐 그 영화의 장점을 찾아 최대한 그 위주로 영화를 감상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재미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코미디 영화인데 웃기지 않은 경우, 멜로 영화인데 영화 속의 사랑이 아름답지 않은 경우처럼 장르적 재미에 충실하지 못한 경우에는 실망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박수건달]이 그러했습니다. 제가 조폭 코미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에 애초에 [박수건달]은 관람 목록의 후순위였습니다. 그런데 [박수건달]의 시사회 이후 '영화가 웃긴다. 마지막 감동코드에서 눈물을 흠뻑 쏟았다.' 등의 의견을 보고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금요일 저녁, 야근을 하던 구피에게 문자 메시지가 왔습니다. "오늘 밤에 영화 한 편 볼까?". 혼자 쓸쓸하게 밥을 먹던 저는 구피의 문자를 받고 신이 나서 집 근처 멀티플렉스의 영화 시간표를 검색했습니다. 일단 시간대가 되는 영화는 [박수건달]과 [마이 리틀 히어로]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구피와 저의 선택은 [박수건달]이었습니다.

 

제가 [박수건달]을 선택한 이유는 시사회 반응이 좋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영화를 보며 실컷 웃어보자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박수건달]은 어찌되었건 코미디 장르의 영화였으니까요.

분명 [박수건달]은 웃겼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가 기대한 웃음보다 덜 웃겼습니다. 조폭이 어쩔 수 없는 운명 탓에 박수무당이 된다는 설정 자체가 웃겼지만, 그러한 웃음이 2시간이라는 러닝타임 내내 지속될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결국 [박수건달]은 박신양의 무당 분장으로 인한 코믹 코드가 끝날 때쯤 감동 코드를 꺼내듭니다. 초반엔 실컷 웃기고, 후반엔 실컷 울리는 감동 코미디의 정석을 걷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저는 [박수건달]을 보며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습니다. 아니, 눈시울이 뜨거워지지도 않았습니다. [박수건달]의 감동 코드는 초반부터 너무 눈에 뻔히 보였고, 그러한 감동 코드는 이미 [헬로우 고스트]에서 써먹었던 수법이기에 그저 무덤덤하기만 했습니다.

2013년 제 목표는 '2012년보다 많은 영화를 극장에서 보기'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양이 아니고 질입니다. 그저 많은 영화를 극장에서 보기에 그치지 않고 극장에서 본 영화들을 모두 재미있게 본다면 더욱 완벽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박수건달]은 2013년 제 첫 실망작이 되고 말았습니다.

 

 

내가 처음부터 조폭 코미디를 싫어한 것은 아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저는 조폭 코미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2011년 국내 박스오피스 TOP 20의 영화 중에서 제가 유일하게 안 본 영화가 [가문의 영광 4 : 가문의 수난]였고, 2012년 개봉한 영화 중 100만 관객을 넘긴 영화 중에서 제가 유일하게 안 본 영화 역시 [가문의 영광 5 : 가문의 귀환]입니다.

하지만 제가 처음부터 조폭 코미디를 싫어했던 것은 아닙니다. [조폭 마누라], [두사부일체], [달마야 놀자], [가문의 영광] 등 1세대 조폭 코미디의 경우 저는 꽤 재미있게 봤었기 때문입니다.

[조폭 마누라]는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서로 바꿈으로서 관객의 웃음을 이끌어냅니다. 이는 여성의 사회 참여가 높아지고, IMF로 인하여 직장을 잃은 힘없는 남성 가장들이 늘어나던 당시 사회적 분위기와도 맞아 떨어진 절묘한 기획이었습니다.

[달마야 놀자]는 폭력적 조직인 조폭과 비폭력적 조직인 스님의 순수한 대결을 통한 웃음을 안겨줬고, [가문의 영광]은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 안에 조폭을 끌어들여 로맨틱 코미디의 식상함을 없애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1세대 조폭 코미디 중에서 [두사부일체]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두사부일체]는 어쩔수없이 고등학교에 들어가게된 조폭의 좌충우돌 소동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하지만 [두사부일체]는 학교라는 조직과 조폭이라는 조직을 서로 비교하며 학교가 조폭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냐며 우리나라의 교육 문제를 절묘하게 비판했습니다.

이렇게 신선한 기획이 돋보였던 1세대 조폭 영화들을 뒤로 하고 2세대 조폭 영화들은 전 편의 흥행을 이으려는 안일한 속편이 대부분을 이루었습니다. 이들 영화는 기획 자체가 식상할 뿐만 아니라 코믹 코드 역시 조폭들의 폭력으로 인한 몸개그와 조폭들의 무식함을 이용한 언어개그가 주를 이루었고, 막판에 적당히 감동 코드를 삽입하면서 오히려 사회악인 조폭을 미화했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습니다. 제가 조폭 코미디를 싫어하게 된 것은 이러한 2세대 조폭 영화들의 식상한 기획으로 인한 장르적 재미의 실종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박수건달]은 조금 다를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일단 조폭과 무당의 조합은 [달마야 놀자]의 조폭과 스님의 조합 만큼이나 이질적이고, [조폭 마누라], [어깨동무], [조폭 마누라 3] 등 조폭 코미디만 꾸준히 연출한 조진규 감독의 뚝심은 뭔가 새로운 조폭 코미디를 탄생시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반은 박신양의 고군분투

 

일단 저는 [박수건달]의 초반은 꽤 좋았습니다. 꽤 간지나는 조폭 2인자 박광호(박신양). 초반 박광호와 차태주(김정태)가 벌이는 카체이싱 장면은 이 영화가 조폭 코미디의 몸개그, 언어개그가 아닌 액션에 의한 재미를 안겨줄 것을 선언했습니다.

특히 2007년 [눈부신 날에] 이후 오랜만에 스크린에 복귀한([미쓰GO]의 특별출연은 제외) 박신양은 자신을 망가뜨리면서까지 영화적 재미를 위해 살신성인의 자세로 이리 저리 뛰어다닙니다.

그 덕분에 [박수건달]의 초반은 꽤나 재미있었습니다. 얼떨결에 박수무당이 되면서 망가지는 박신양의 모습도 재미있었고, 조폭과 박수무당의 이중 생활을 해야 하는 박광호의 소동기도 웃겼습니다. 특히 박광호가 처녀 귀신에게 빙의되어 황검사(조진웅)와 격한 사랑을 나누는 씬은 정말 웃겼습니다. 그야말로 박장대소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박광호가 처녀 귀신에게 빙의되는 장면을 정점으로 [박수건달]의 코믹 코드는 내리막길을 타기 시작합니다. 더이상 박신양의 박수무당 분장이 웃기지도 않았고, 박광호와 황검사의 러브씬 외에는 웃기는 에피소드 역시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가장 아쉬운 것은 박광호의 뒤를 받쳐줄 코믹 캐릭터의 부재였습니다. 박광호 혼자 웃기는 것은 어차피 한계가 있습니다. 처음엔 박신양의 박수무당 분장이 웃음을 안겨주지만 그러한 장면도 중반까지 계속되면 더이상 웃기지 않는 법입니다.

그렇다고 박수무당의 웃기는 에피소드로 영화 전체를 가득 채울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영화는 단편적 코믹 에피소드에 기댄 <개그 콘서트>가 아니니까요.

그렇다면 박광호에 의한 웃음이 주춤할 때 그 대신 후반의 감동 코드로 넘어가기 전까지 웃음을 책임질 조연 캐릭터가 필수입니다. [박수건달]에서 그러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명보살(엄지원)입니다. 걸죽한 경상도 사투리에 '나는 조선의 국모다'를 외치는 이 허당 무당은 박광호에 의한 웃음이 무뎌질 때쯤 그 진가를 발휘해서 코믹 코드와 감동 코드 사이의 공백을 최대한 줄였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일까요? 명보살은 그러한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합니다. 엄지원은 최선을 다해서 관객을 웃기려고 노력하지만 그러한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는 저는 그저 안타까움만 느껴졌습니다. 그녀의 노력은 가상하지만 제가 보기에 명보살은 엄지원에게 맞는 캐릭터가 아니었습니다.

결국 [박수건달]의 문제점은 박신양 혼자 고군분투를 했다는 점입니다. 그의 뒤를 받쳐줄 웃기는 캐릭터 하나만 더 있었어도 최소한 [박수건달]은 제게 웃기는 영화가 될 수 있었을텐데... 아쉽기만 했습니다.

 

 

수민이가 없었으면 어쩔뻔 했어.

 

어찌되었건 [박수건달]은 코믹 코드를 뒤로 하고 감동 코드에 돌입합니다. 박신양 혼자 고군분투하고 조진웅과의 불멸의 러브씬이라는 명장면을 탄생시켰지만, 2% 부족했던 코믹 코드는 영화의 후반부가 되면서 감동 코드로 변환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박광호에게 죽은 자가 보인다는 설정 때문에 저는 이 영화가 지니고 있는 감동 코드를 쉽게 눈치채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박수건달]의 감동 코드는 새롭지도 않았습니다. 이미 2010년 연말에 개봉해서 흥행에 성공한 차태현 주연의 영화 [헬로우 고스트]에서 [박수건달]과 비슷한 감동 코드로 관객의 눈물을 흠뻑 빼놓았던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예정된 수순으로 감동적인 설정 속에 빠져드는 [박수건달]의 후반부가 그저 무덤덤하기만 했습니다. 극장 여기 저기에서 여성 관객들의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저는 '이렇게 진행될줄 알았어.'라는 생각만 들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수민역을 연기한 아역배우 윤송이가 연기를 굉장히 잘해줬다는 점입니다. 영화의 중반부터 당돌한 어린아이의 귀여움으로 무장한 맛깔스러운 연기로 오히려 명보살보다 박광호 캐릭터를 뒷받침했던 윤송이. 그녀는 영화의 후반부도 아역 배우답지 않게 분위기를 휘어 잡았습니다.

아마도 [박수건달]을 보며 눈물을 흘린 여성 관객들 대부분이 윤송이의 연기에 눈물을 흘린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 역시 [박수건달]의 감동 코드가 무덤덤하긴 했지만 영화를 보며 '저 아역배우, 연기 정말 잘한다.'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박수건달]을 보고 집으로 향하는 길. 영화를 보며 실컷 웃고 싶었지만 박신양의 고군분투에 의한 초반 재미와 박광호와 황검사의 러브씬이라는 불멸의 명장면을 제외하고는 그닥 웃지 못했고, 후반의 감동 코드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싶었지만 아역배우답지 않은 윤송이의 명연기 외에는 그닥 슬프지 않았습니다.  

[박수건달]은 제가 기대했던 영화적 재미를 완벽하게 채우지 못하고 오히려 아쉬움만 남겨줬습니다. 그래도 굳이 이 영화의 의미를 따진다면 2세대 조폭 코미디의 짜증나는 식상함만큼은 어느 정도 벗어버린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듯합니다.

 

 

 사회악인 조폭, 귀신들린 박수무당.

당신이라면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남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조폭보다 그래도 무당의 인생이 낫지 않겠는가?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