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2년 영화이야기

[타워] - 감동을 위해 그렇게 쥐어짤 필요는 없었는데...

쭈니-1 2012. 12. 27. 11:10

 

 

감독 : 김지훈

주연 : 설경구, 김상경, 손예진, 김인권

개봉 : 2012년 12월 25일

관람 : 2012년 12월 26일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어쩌면 나의 2012년 마지막 영화

 

우와! 2012년이 이제 5일만 지나면 막을 내리고 새롭게 2013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2012년을 맞이하며 당찬 계획을 세웠던 것이 엊그제같은데 이렇게 1년이 훌쩍 지나고나니 1년 전에 세웠던 계획 중에서 이룬 것이 하나도 없네요.

특히 120편의 영화를 극장에서 보기 계획은 분명 무리였습니다. 2012년 내내 정말 열심히 영화를 봤지만 120편은커녕 110편도 채우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아쉽지만 제가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영화는 1년에 100편 정도가 적당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암튼 2012년을 마감하며 2012년의 마지막 영화를 선택해야 하는 시간. 사실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2012년의 마지막 영화는 뭔가 의미있는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나름 심사숙고했습니다.

물론 현재 극장에서 상영하고 있는 영화 중에서 거의 대부분의 영화를 본 만큼 2012년의 마지막 영화를 골라야하는 제게 선택의 폭은 상당히 좁았습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 중에서 아직 극장에서 안 본 영화라고는 [가문의 귀환]과 [타워] 그리고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정도 뿐이었으니... 

 

결국 당연하게도 제 선택은 [타워]가 되었습니다. 제게 친분(?)이 있는 정용기 감독의 영화 [가문의 귀환]으로 2012년을 마무리할 생각도 잠시 해봤지만, 아무래도 가벼운 조폭 코미디보다는 [해운대]를 잇는 한국형 블록버스터 재난영화 [타워]가 2012년의 마지막 영화로 적당해 보였습니다.

2012년의 마지막 영화라는 부푼 마음으로 본 [타워]. 영화를 보고 처음 든 생각은 '김지훈 감독이 흥행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구나.' 였습니다. 

김지훈 감독은 [화려한 휴가]로 730만명을 동원하는 흥행 대박을 일궈냈습니다. 하지만 곧이어 발표한 블록버스터 [7광구]의 흥행 성적은 224만으로 제작비에 비해 실망스러운 기록이었습니다. 천당과 지옥을 오간 셈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타워]는 '꼭 흥행에 성공하겠다.'라는 김지훈 감독의 의지가 엿보입니다. 김지훈 감독은 일단 1,145만 관객을 돌파한 한국형 블록버스터 재난영화인 [해운대]와 자신의 영화 중에서 흥행에 성공한 [화려한 휴가]를 접합시키는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타워]는 [화려한 휴가]에서 보여준 캐릭터의 사연과 [해운대]가 가지고 있는 재난영화로서의 스펙타클을 동시에 갖춘 영화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흥행에 대한 강박관념은 결국 [타워]를 망치기도 했습니다. 80%의 만족과 마지막 20%의 실망을 동시에 제게 안겨준 [타워]. 어쩌면 2012년의 마지막 영화 이야기...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봅니다.

 

 

타워스카이에 모인 사람들의 캐릭터를 담기엔 부족했지만...

 

[타워]는 본격적인 재난이 발생하기 이전에 초고층 주상복합 빌딩 타워스카이에 모인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포착합니다.

어린 딸 하나(조민아)를 키우고 있는 시설관리팀장인 싱글남 대호(김상경)와 대호가 짝사랑하는 푸드몰 매니저 윤희(손예진), 전설로 불리우는 여의도 소방대장 영기(설경구)와 그의 소방대원인 병만(김인권)과 신입 소방대원 선우(도지한). 노년의 사랑을 싹 틔우는 윤노인(송재호) 커플과 아들의 대학 등록금 마련을 위해 3개월치 가불을 신청한 청소부, 그리고 푸드몰의 주방장(박철민)과 사고뭉치 인건(김성오) 등등. 영화는 쉴새없이 여러 캐릭터들을 흝어 나갑니다.

사실 너무 많은 캐릭터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등장하다보니 감정이입이 어려웠습니다. 그러한 수 많은 캐릭터 중에서 대호와 윤희, 그리고 영기가 주축이 되어 있지만, 너무 많은 캐릭터들을 잡고 있다보니 주축이 될 캐릭터들 마저도 대강 설명만 하고 넘어갑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캐릭터들은 본격적인 재난이 시작되고 그러한 재난으로 캐릭터들이 하나씩 희생될 때 막강한 힘을 발휘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대호와 윤희, 영기의 캐릭터를 초반부터 좀 더 세세하게 잡았다면 영화 후반부의 감동이 더했겠지만, 그 대신 다른 캐릭터들을 잠시나마 잡은 덕분에 영화 중반의 가슴 아픔이 잘 살아났으니 그리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었던 셈입니다.

김지훈 감독도 주연 캐릭터들에 대한 구축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한 듯이 보입니다. 그래서 김지훈 감독이 택한 방법은 배우들의 익숙한 이미지를 통한 자연스러운 캐릭터 구축입니다.

 

일단 김상경이 연기한 대호라는 캐릭터부터 살펴보죠. 그는 윤희에 대한 지고지순한 짝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대호의 짝사랑은 사실 [화려한 휴가]와 맞닿아 있습니다.

[화려한 휴가]에서 김상경이 연기한 민우는 동생 진우(이준기)를 끔찍히 아끼고, 간호사 신애(이요원)에 대한 사춘기 소년같은 짝사랑을 앓았었습니다. 그러한 [화려한 휴가]의 민우는 [타워]에 와서는 동생에 대한 끔찍한 마음이 어린 딸에 대한 마음으로, 신애를 향한 짝사랑이 윤희를 향한 짝사랑으로 바꾸었을 뿐입니다. [타워]에서 대호의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면 [화려한 휴가]에서 이미 구축된 김상경의 캐릭터가 [타워]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설경구가 연기한 영기라는 캐릭터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자신이 맡은바 책임에 대해서는 저돌적이고, 약간은 똘끼가 있는 소방대장 영기. 그의 캐릭터는 [공공의 적]을 통해 구축된 것입니다. 아내와의 크리스마스 데이트를 포기하고 화재 현장을 달려가는 그의 모습은 마치 설경구 그 자체의 캐릭터로 여기질 정도입니다.

그 외에도 [화려한 휴가]에서 코믹한 조연 캐릭터로 인기를 얻은 박철민, [해운대]에서 죽도록 고생하면서도 끝까지 살아남았던 김인권 등 조연 캐릭터들 역시 이전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이어나가며 캐릭터 설명에 들어갈 시간을 단축시키는 효과를 냅니다. 

 

 

부족한 CG를 완벽하게 메꾼 사실적인 세트 촬영

 

타워스카이에 모인 사람들을 간단하게나마 관객에게 설명한 [타워]는 본격적으로 재난영화의 재미를 이끌어냅니다.

사실 [타워]의 특수효과는 그다지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워낙 할리우드의 진일보한 기술력을 앞세운 영화들을 많이 보다보니, 아무래도 한국영화의 기술력이 부족해 보이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타워]는 그러한 부족한 기술력을 사실적인 세트 촬영으로 만회합니다. 타워스카이 전체를 비추는 CG에서는 가짜티가 팍 났지만, 타워스카이 안에서 불과 직접 싸우는 실내 씬에서는 손에 땀을 쥐게 할만큼 실감이 났습니다.

특히 김지훈 감독은 꽤 다양한 장면을 준비하는 철두철미함을 선보였습니다. 단순한 화마에 대한 공포 외에도 강화 유리로 만든 구름 다리에서의 아슬아슬한 장면, 엘리베이터를 이용한 탈출씬 등 지루할 틈을 주지 않고 다양한 장면들을 통해 재난영화의 영화적 재미를 충분히 살려냈습니다.

영화의 러닝타임은 2시간. 캐릭터를 설명하는 초반 장면은 거의 흝고 지나가는 정도에 그쳤음을 감안한다면 [타워]는 '초고층 빌딩에 불이 났다.'라는 단순한 소재를 가지고 2시간에 가까운 시간동안 영화적 재미를 유지한 것입니다.

 

[타워]의 성과는 바로 이러한 부분입니다. 사실 이러한 것은 [해운대]에서 이미 선보인 바가 있습니다.

[해운대] 역시 '부산의 해운대에 거대한 쓰나미가 몰려 온다.'라는 단순한 소재를 가지고 2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을 가득 채웠었습니다. 물론 [해운대]의 경우는 [타워]에 비해 캐릭터 설명에 좀 더 비중을 둔 편이긴 하지만 말이죠. [타워]는 이렇게 [해운대]로 완성된 한국형 블록버스터 재난영화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면서 좀 더 업그레이드된 영화적 재미를 선사합니다.

[해운대]가 여름에 개봉한 것에 비해 [타워]가 추운 겨울에 개봉한 것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제가 [타워]를 본 12월 26일은 올 겨울 들어서 가장 추웠던 날입니다. 한파가 절정에 오른 날이었지만, 2시간 내내 불과 함께 사투를 벌이고나니 영화를 보고나서도 추위를 느끼지 못하겠더군요. [타워]의 마케팅이 탁월했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대로 [타워]가 끝이 났다면 [해운대]처럼 [타워] 역시 한국형 블록버스터 재난영화로서 손색이 없는 재미와 감동을 지닌 영화로 제 기억 속에 남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문제는 바로 이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꼭 흥행에 성공하겠다.'는 김지훈 감독의 강박관념은 [타워]의 후반부에 억지 감동을 넣는 최악의 선택을 하게끔 만듭니다. 

 

 

감동이란 것이 이렇게 쥐어짠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타워]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재난영화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영화 초반에 등장한 수 많은 캐릭터들은 영화 중반에 적절하게 희생되며 재난영화의 장점인 감동을 제게 자연스럽게 안겨줍니다. 가끔 감동스러워야할 장면에서 코믹이 함께 묻어나 저를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지만 영화의 재미를 느끼기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김지훈 감독은 이것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나봅니다. 그는 영화적 재미를 위해서라면 영웅이 필요하고, 영웅이 장렬하게 희생되면 관객이 더욱 감동을 받을 것이라 계산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그는 영화의 후반부에 억지로 영웅을 만들고, 억지로 그를 희생시켜 관객의 감동을 얻으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억지로 영웅을 만들 필요가 사실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연스럽게 영웅은 이미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린 딸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대호의 용기, 최악의 상황에서도 침착했던 윤희의 모습, 엘리베이터에 갇힌 인건 커플을 구해주는 임산부의 결단력, 대학생 아들에게 꼭 등록금을 전해주고 싶었던 청소부의 희생 등등. 이 영화에는 이미 자연스럽게 최악의 화마에서 용감하게 싸워 이겨나가는 수 많은 영웅들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그들만으로도 충분했던 것입니다.

 

결국 영화 후반부의 억지 영웅 스토리는 김지훈 감독의 과욕입니다. 그렇게 억지로 만들어진 영웅이 장렬히 희생당하는 장면에서 감동을 느끼라고요? 아뇨, 저는 오히려 오글거림을 느꼈습니다.

특히 대호 일행이 타워스카이를 무사히 빠져 나간 후에 소방대원들이 희생한 영웅을 향해 경례를 하는 장면에서는 성조기 가 나풀거리지 않았을 뿐, 영락없는 미국 영웅주의 영화의 오글거리는 장면을 보는 것만 같아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왔습니다.

[타워]를 숨죽여 보던 관객들 사이에서도 후반부의 장면에서 노골적으로 '킥킥' 웃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제 앞에 김지훈 감독이 있었다면 그를 붙잡고 묻고 싶었을 지경입니다. 왜 그랬냐고... 그냥 그대로 끝을 냈어도 충분히 감동스러운 재난영화가 될 수 있었을텐데, 왜 억지 영웅을 만들어 감동을 쥐어짜려고 했냐고...

영화의 80%가 만족스러웠기에 마지막 20%의 선택은 더욱 아쉬웠습니다. 분명 [타워]는 재난영화의 재미를 충실하게 가지고 있는 영화이지만 흥행에 대한 김지훈 감독의 강박관념이 결국 마지막에 가서 영화의 재미에 재를 뿌린 격이 되고 말았습니다.

 

타워스카이에 걷힌 수 많은 사람들 중에서 정치권의 유력 인사를 먼저 구하려는 장면.

그 장면이 진정 슬픈 것은 실제로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