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2년 영화이야기

[저지 드레드] - 두 절대 권력자가 벌이는 B급 액션의 쾌감과 씁쓸함.

쭈니-1 2012. 12. 14. 11:42

 

 

감독 : 피트 트레비스

주연 : 칼 어번, 올리바아 썰비, 레나 헤디

개봉 : 2012년 12월 6일

관람 : 2012년 12월 13일

등급 : 18세 이상 관람가

 

 

17년 전의 나의 영웅은 어디에?

 

제가 실베스타 스탤론 주연의 SF액션영화 [저지 드레드]를 본 것은 1995년의 일입니다. 당시 [저지 드레드]는 1995년을 대표하는 망작 중의 한 편이었습니다. 미국 개봉 당시 제작비가 무려 9천만 달러였지만, 미국내 흥행 수입은 고작 3천4백만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월드 와이드 성적도 1억1천3백만 달러였으니 [저지 드레드]는 완벽한 흥행 실패작인 셈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국내 흥행 성적 역시 시원치 않았습니다. 80년대 [람보], [록키] 시리즈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실베스타 스탤론은 90년대 들어서 인기 하락세로 접어들었습니다. 웨슬리 스나입스가 악당으로 출연했던 [데몰리션 맨], 샤론 스톤과 주연을 맡은 [스페셜 리스트],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함께 찍은 [어쌔씬] 등이 고만고만한 흥행 성적을 내며 실베스타 스탤론의 흥행력에 의문이 제기되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전 나름 재미있었습니다. 제가 실베스타 스탤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저는 [람보]와 [록키] 시리즈도 거의 안봤습니다.) [저지 드레드]는 제게 실베스타 스탤론 영화 중에서 [클리프 행어], [데이 라잇]과 더블어 베스트 3에 들었을 정도였으니까요.

 

[저지 드레드]의 흥미로운 점은 디스토피아를 무대로한 절대선과 절대악의 숙명적 대결이었습니다. 핵 전쟁으로 인하여 사막으로 변해버린 지구. 사람들은 저주받은 땅을 피해 몇 안되는 거대 도시로 몰려 들게 됩니다.

사람들이 몰려 드니 도시는 폭력과 범죄로 물들게 되고, 이러한 혼란 속에 법을 집행하는 초강력 집단 '저지'가 탄생합니다. '저지'는 범죄자를 잡아 들이는 경찰이고, 범죄자들의 유, 무죄를 판단하는 배심원이며, 범죄자들에게 죄을 심판하는 판사입니다. 다시말해 '저지'는 그 시대의 법,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저지'는 유전자 결합에 의해 탄생되었습니다. 완벽한 정의를 구현을 위해서 유전자를 조합한 결과물인 것이죠. 재미있는 것은 '저지'를 탄생시킨 야누스 프로젝트에는 '저지' 뿐만 아니라 절대악 리코도 탄생됩니다. SF판 '지킬 박사와 하이드'인 셈입니다. [저지 드레드]는 바로 절대선 '저지'와 그와는 쌍둥이와도 같은 절대악 리코의 대결을 그렸습니다.      

그러한 [저지 드레드]가 17년이 지난 2012년에 리메이크되었습니다. 제 엄청난 기대 속에 리메이크된 [저지 드레드]는 그러나 제작비는 9천만 달러에서 5천만 달러로 줄어들었고, 미국내 흥행은 3천4백만 달러에서 1천3백만 달러로 추락했습니다. 월드 와이드 성적 역시 현재 3천만 달러로 95년작 [저지 드레드]를 넘어서는 흥행 실패작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국내 흥행 성적은? 개봉 첫주 2만명의 관객으로 박스오피스 10위에 턱걸이. 말 그대로 안습입니다.

 

 

이건 리메이크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영화이다.

 

제가 [저지 드레드]를 기대하면서도 이 영화가 국내 개봉한지 일주일이 지난 후에야 보게된 이유는 이 영화의 국내 흥행 부진이 한 몫을 했습니다.

제가 주로 영화를 관람하는 집 근처 메가박스와 CGV에서는 아예 [저지 드레드]가 상영을 안했습니다. 그나마 [저지 드레드]의 국내 배급사가 롯데엔터테인먼트인 덕분에 롯데 시네마에서는 상영을 해서 큰 맘 먹고 자주 안가는 롯데 시네마까지 가서 뒤늦게 볼 수 있었습니다.

[저지 드레드]가 SF액션영화라는 설명을 듣고 '그럼 나도 보지 뭐.'라며 따라나온 구피. 하지만 2012년판 [저지 드레드]는 1995년판 [저지 드레드]와는 완전히 딴판인 영화였습니다. SF액션 영화를 기대하며 오랜만에 극장을 찾은 구피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 '이게 무슨 SF영화야? 내가 제일 싫어하는 총알 난사 전쟁 영화잖아.'라고 투덜거렸습니다.

실제로 새롭게 리메이크된 [저지 드레드]는 리메이크된 영화라기 보다는 완전히 갈아 엎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영화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핵전쟁으로 황폐화된 지구라는 배경도 같고, 경찰이자, 배심원이며, 판사인 '저지'가 악을 소탕한다는 설정도 같았지만 그 외에는 1995년 [저지 드레드]와는 비슷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영화가 되어 있었습니다.

 

최근 들어서 거세게 불고 있는 리메이크 열풍 속에서 흥행에 실패한 [저지 드레드]의 리메이크를 결정한 영화 제작사의 선택은 전작의 전철을 밟지 않는 것입니다.

1995년 당시만 해도 [저지 드레드]의 설정이 새로울 수 있었지만 한 해에도 수십편, 아니 수백편의 SF영화가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저지 드레드]의 설정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새로운 것이 전혀 없는 영화의 설정. 그렇다면 새롭게 리메이크되는 [저지 드레드]는 영화의 설정에 얽매일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SF적 배경, 설정보다는 2012년판 [저지 드레드]가 선택한 것은 B급 액션 쾌감입니다.

실제로 [저지 드레드]는 1시간 30분이라는 영화 러닝타임 내내 쉴새없는 액션을 쏟아붓습니다. 총알은 마치 비가 온 세상을 덮듯이 영화 내내 화면을 뒤덮어 버리고, 그 속에서 악당들은 수도 없이 죽어 나갑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베테랑 '저지'인 드레드(칼 어반)와 신참 '저지'인 앤더슨(올리비아 썰비)의 고뇌 따위는 최대한으로 생략됩니다. 이 영화는 '복잡한 것은 필요없어. 그냥 때려 부수면 돼'라고 선언하며 앞뒤 가리지 않고 마구 총을 쏴대고, 악당들을 죽이고,  건물을 파괴합니다.

만약 매끈한 SF영화를 기대하신 분이라면 [저지 드레드]에서 쉴 새없이 쏟아지는 B급 액션에 당황스러우셨을 것입니다. 특히 저처럼 1995년 [저지 드레드]의 기억을 간직하신 분이라면 더욱더 그러셨을 것입니다.

 

 

B급 액션 영화의 설정이 흥미로운 이유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흥미로웠습니다. 저는 B급 액션영화보다 SF영화를 좋아합니다. 게다가 제게 [저지 드레드]는 실베스타 스탤론 주연의 영화 중에서 몇 안되는 재미있게 본 영화입니다. 저야말로 새롭게 리메이크된 [저지 드레드]에 실망할 이유가 충분한 관객 중의 한 명인 셈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악의 근원이라는 피치트리스의 건물 방어막이 내려지고, 드레드와 앤더슨이 피치트리스에 갇히는 그 순간 '앗! 이 설정... 신선한데...'라며 느슨했던 자세를 고쳐 잡고 앉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저지 드레드]가 제게 흥미로웠던 이유는 1995년 [저지 드레드]와 마찬가지로 절대선과 절대악의 대결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의 대결은 갇힌 공간에서의 대결이었습니다. 비록 1995년 [저지 드레드]처럼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연상하게 하는 독특한 구성의 대결은 아니었지만, 마마(레나 헤디)와 드레드, 앤더슨의 대결은 제게 꽤 흥미로웠습니다. 그것은 빗발치는 총알과 수도 없이 죽어나가는 악당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서로 '내가 법이다'라고 주장하는 절대 권력을 가진 이들의 대결이 흥미로웠던 것입니다.

 

드레드는 '저지'의 최고 요원으로 영화의 배경이기도한 메가시티원의 절대 권력입니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그는 경찰이고, 배심원이며, 판사입니다. 메가시티원의 일반인들을 통제하는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셈입니다.

마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메가시티원이라는 도시 안에서 또 하나의 작은 도시를 이루고 있는 피치트리스. 200층의 건물에 수 많은 저소득층 주민들이 사는 이 건물에서 마마는 절대 권력입니다. 

이제 피치트리스에 들어갈 수도, 빠져 나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이 두 절대 권력이 서로 맞붙게 된 것입니다. '내가 법이다'라고 외치는 드레드와 마마의 대결. 그 속에서 희생되는 마마의 부하들은 제가 보기엔 죽어 마땅한 악당 들이 아닌, 두 권력자의 다툼 속에 희생되는 무고한 생명들로 보였습니다.

사실 이 영화에서 수도 없이 죽어나가는 마마의 부하들을 향한 안타까운 시선은 딱 한번 나옵니다. 그것은 '세상을 바꾸고 싶다'라는 포부로 '저지'가 된 앤더슨의 흔들리는 눈빛에서입니다. 그녀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가진 돌연변이입니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서 마마 부하들의 추격을 뿌리치고 피치트리스의 한 여성의 집에 숨어듭니다. 하지만 그 여성은 드레드와 앤더슨이 죽인 악당의 아내였습니다. 결국 드레드와 앤더슨이 죽인 그 수 많은 마마의 부하들은 누군가의 남편이고, 아빠이며, 아들이었던 것이죠.

 

 

절대 권력이 한 개인에게 부여되는 안된다.

 

제가 [저지 드레드]에 느낀 그러한 흥미로운 부분이 영화가 의도했던 것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의도했던 부분이라고 하기엔 앤더슨의 흔들리는 눈빛은 잠시 뿐이었고, 이후 앤더슨은 더욱 강인한 전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저지'는 절대선일까요? 그리고 마마는 절대악일까요? 글쎄요. 영화를 보면서 '저지'도 마마도 서로 다르지 않은 존재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절대 권력을 가진 그저 한 명의 개인일 뿐입니다. 그들이 서로 다른 것은 드레드는 자신이 가진 절대 권력을 제어하는 조직의 규칙을 가지고 있고, 마마는 그러한 규칙 없이 피치트리스에서의 절대 권력을 마구 휘두른다는 것 뿐입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결코 완벽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완벽한 법 체제와 조직의 규칙에 따라 행동한다고 해도 그 속에는 헛점이 있고, 실수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경찰, 검찰, 변호사, 판사 등 다양한 조직으로 나눠 법을 수행하게 하는 이유는 바로 인간이 결코 완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경찰이라는 조직의 헛점, 실수를 검찰, 변호사, 판사에 이르며 걸러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1995년 [저지 드레드]에서는 그러한 인간의 불완전함을 유전자 결합으로 메꾸려 했습니다. 하지만 유전자 결합도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 하는 일이기에 리코라는 절대악이 탄생하게 된 것이죠. 2012년 [저지 드레드]에서는 유전자 결합이라는 설정을 빼고 그 대신 절대 권력을 지닌 두 권력자의 싸움을 통해 인간의 불완전함을 설명합니다. 

 

완벽하지도, 완벽할리도 없는 '저지'라는 조직의 규칙에 따라 행동하는 절대 권력자 드레드. 하지만 앤더슨은 그러한 드레드의 행동에 반하는 결정을 합니다. 피치트리스의 전산 관리자를 처벌하지 않고 풀어준 것입니다.

'저지'라는 존재가 완벽하다면 마마의 명령에 의해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드레드와 앤더슨에게 총을 든 이들은 모두 즉결 사형감입니다. 하지만 앤더슨은 생각합니다. 과연 그들은 그렇게 죽어도 되는 존재들일까?

앤더슨의 그러한 고뇌가 좀더 심도있게 그려졌다면 영화 자체가 더욱 깊이있고 좋았을텐데, 사실 [저지 드레드]는 앤더슨의 고뇌는 그저 영화의 약간의 장식품 따위로 취급하고 넘깁니다. 그래도 이렇게 생략하지 않고 표현해준 것만으로도 다행일지도...

마약으로 인해 시간의 흐름을 느리게 인식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아름다운 화면으로 표현하고, 죽어 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세밀하게(특히 마마의 마지막 최후는 3D로 봤다면 끔찍했을 듯...) 잡아내는 등 [저지 드레드]는 분명 B급 액션의 재미에 충실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아무런 거리낌없이 인간의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절대 권력을 움켜쥔 두 권력자의 전쟁을 보며 씁쓸함을 느꼈습니다. 한때 절대 권력을 움켜 잡았던 독재자의 딸이 과거의 향수를 되새기며 다시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하는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씁쓸한 영화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아무리 미래의 영웅 '저지'라 할지라도

개인에게 부여된 절대 권력은 심각한 사태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