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2년 영화이야기

[주먹왕 랄프] -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쭈니-1 2012. 12. 7. 13:23

 

 

감독 : 리치 무어

더빙 : 존 C. 라일리(정준하), 제인 린치, 잭 맥브레이어, 사라 실버맨

개봉 : 2012년 12월 19일

관람 : 2012년 12월 6일

등급 : 전체 관람가

 

 

웅이의 첫 영화 시사회!!!

 

제가 여러번 이야기하지만 저는 영화 시사회를 자주 가는 편이 아닙니다. 대개 기자 시사회의 경우는 평일 낮에 하고, 일반 시사회의 경우는 평일 밤에 합니다. 기자 시사회에 참가하려면 회사에 연차 휴가를 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일반 시사회에 참가하려면 회사에서 칼 퇴근을 한 후 저녁밥도 굶어가며 시사회장으로 죽어라 뛰어가야 시사회 시간에 겨우 맞출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볼 때 웬만하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한 후 영화를 관람하는 저로서는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본다는 것은 최악의 컨디션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럴 바엔 차라리 내 돈을 내고 내 집 근처에서 여유롭게 컨디션을 조절하며 보는 것이 훨씬 낫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최근 저는 [원 데이]에 이어 [주먹왕 랄프]까지 연달아 두번의 시사회에 참가했습니다. [원 데이]의 경우는 제 블로그에 영화 시사회 이벤트를 하기도 했고, 저와 구피가 워낙 앤 해서웨이를 좋아하기 때문에 오랜만에 데이트를 하는 기분으로 시사회에 참가했습니다. 그렇다면 [주먹왕 랄프]는? 바로 웅이 때문에 야근을 해야 하는 개인적 스케쥴을 포기하고(덕분에 금요일인 오늘 야근해야합니다.) 시사회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아니, 오해는 하지 마세요. 그렇다고 웅이가 [주먹왕 랄프] 시사회에 참가하겠다고 보챈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목요일 밤에는 <세상에 이런 일이>를 봐야 해요.'라며 [주먹왕 랄프] 시사회에 시큰둥한 웅이한테 가자고 조른 것은 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주먹왕 랄프] 시사회는 웅이 때문에 봤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바로 [주먹왕 랄프]가 웅이 인생의 첫 영화 시사회이기 때문입니다.  2012년 극장에서 영화 20편 보기를 새해의 계획으로 세웠을 만큼 웅이는 제 뒤를 잇는 영화광 기질이 다분히 보입니다. 그러한 웅이에게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영화를 보는 영화광의 특권(?)을 느끼게 하고 싶었습니다.

저 역시 그러했습니다. 제가 처음 영화광이라고 자부를 하게 된 것은 제 용돈을 쪼개서 로드쇼라는 영화잡지를 사면서 부터였습니다. 그때 처음 로드쇼 이벤트에 응모해서 황규덕 감독의 [꼴찌에서 일등까지 우리 반을 찾습니다]라는 영화 시사회에 당첨되었습니다. 비록 [꼴찌에서 일등까지 우리 반을 찾습니다]는 흥행에 실패하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지만, 제게는 내 인생의 첫 시사회 영화로 오랫동안 기억되고 있습니다. 제가 웅이에게 선물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그러한 특별한 추억인 셈입니다.

 

 

[가디언즈]보다 재미있다?

 

제 애원으로 그토록 좋아하는  TV프로인 <세상에 이런 일이>도 포기하고 길을 나선 웅이. <세상에 이런 일이>의 본방을 놓쳤기 때문인지 뽀루뚱한 웅이는 '영화가 개봉하면 보면되지, 왜 시사회를 봐야 해요?'라며 묻습니다.

그런 웅이에게 저는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 이렇게 시사회로 먼저 영화를 보고 그 영화가 재미있는지, 없는지 진실된 평가를 해주는 것은 영화광의 의무이고, 특권이야'라고 과장해서 둘러댔습니다. 뭐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웅이가 영화 시사회를 보는 것에 대해서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시사회장인 영등포 CGV에 도착하여 시사회 티켓을 받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영화 홍보사 직원분들이 저를 아는 척 해주시더군요. '어머, 쭈니님이세요. 안녕하세요.' 제게 화사한 미소로 반가운 인사를 건네주는 영화 홍보사 직원분들의 모습을 본 웅이는 제게 묻습니다. '아빠, 아빠는 이제 유명 인사인 거예요? 그러면 아빠가 영화를 먼저 보고 블로그에 영화를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겠네요.'     

하하! 뭐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웅이가 저를 대단하게 생각하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이렇게 [주먹왕 랄프] 시사회는 웅이에게 생애 첫 시사회라는 특별한 추억을 안겨주고, 제게는 '아빠는 시사회에도 초대받는 유명인사야.'라고 웅이한테 과시할 수 있었던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웅이와 함께 한 첫 영화 시사회였기에 [주먹왕 랄프]는 평생동안 제게 아주 특별한 영화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영화에 대한 제 평가를 무조건 좋게만 할 수는 없죠. 제 영화 이야기의 모토는 '솔직함'이니까요.

제가 웅이의 첫 영화 시사회로 [주먹왕 랄프]를 선택한 이유는 이 영화에 대한 입소문 때문입니다. 대규모 시사회를 진행중인 [주먹왕 랄프]는 그 덕분에 개봉하기 휠씬 전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리뷰가 이미 인터넷에 올라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리뷰들 대부분이 '재미있다'라는 평가였습니다.

특히 제 이목을 끈 것은 [가디언즈]보다 재미있다는 어느 분의 평가였습니다. [가디언즈]는 지난 주말에 극장에서 웅이와 함께 본 영화입니다. [가디언즈]를 본 웅이는 '최고'라는 평가를 내려줬기에 [주먹왕 랄프]가 [가디언즈]보다 재미있다면 웅이에게도 2012년 최고의 영화가 될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기왕 웅이 인생의 첫 영화 시사회라면 최고로 재미있는 영화이기를 바랬던 저는 [주먹왕 랄프]를 선택한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주먹왕 랄프]는 과연 제가 기대했던 것 만큼 최고로 재미있는 영화였을까요? 웅이와 함께 한 첫 영화 시사회 체험기 [주먹왕 랄프]의 영화 이야기... 사설이 조금 길긴 했지만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하겠습니다. ^^

 

 

악당의 고충

 

[주먹왕 랄프]는 <다고쳐 펠릭스>라는 8비트 게임에서 악당 역할을 하고 있는 랄프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게임 속 역할 탓에 어쩔 수없이 악당 역할을 해야 하는 랄프(정준하). 하지만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게임 속 캐릭터들 마저도 영웅인 펠릭스만 좋아하고 자신은 냉대합니다. <다고쳐 펠릭스>은 탄생 30주년을 맞이했지만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랄프는 자신도 영웅만이 가질 수 있는 메달을 획득해서 게임 속 캐릭터들에게 인정을 받겠다고 선언을 합니다.

예전에만 해도 선과 악이 뚜렷이 구분되는 영화들이 인기였습니다. 하지만 [슈퍼 배드], [메가 마인드]처럼 어쩔 수 없이 악당이 된 캐릭터를 주목하는 애니메이션들이 하나씩 등장하면서 선과 악의 구분은 불분명해졌습니다. [주먹왕 랄프]는 바로 그러한 점을 스토리 라인에 이용합니다.

게임 속 역할로 인하여 악당이 될 수 밖에 없는 랄프. 하지만 과연 그는 실제로도 악당일까요? 마치 드라마에서 악역을 맡은 배우가 드라마와 현실을 헷갈려하는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다는 웃지못할 에피소드가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누구라도 당연히 영웅이 되고 싶고, 누구라도 당연히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며 환호를 받고 싶습니다. 랄프가 원한 것은 바로 그러한 일반적인 소망일 것입니다.

 

결국 이 영화의 주제는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랄프가 하고 싶은 것은 영웅입니다. 하지만 <다고쳐 펠릭스>에서 그가 해야하는 것은 악당의 역할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산다면 참 행복할텐데, 세상이라는 곳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이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웅이의 경우 예를 들면 웅이는 [주먹왕 랄프]의 시사회에 참가하기 위해 숙제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로인하여 [주먹왕 랄프]를 보고나서 구피한테 혼났습니다. 웅이에게 하고 싶은 것은 [주먹왕 랄프] 시사회 관람이고, 해야할 것은 학교 숙제일 것입니다. 물론 웅이에게 [주먹왕 랄프] 시사회에 가자고 조른 것은 저이기 때문에 저 역시 구피한테 웅이와 함께 혼났습니다. 제 경우도 하고 싶은 것은 웅이와 [주먹왕 랄프] 시사회에 가는 것이고, 해야할 것은 부모로서 웅이가 학교 숙제를 하도록 지도하는 것이겠죠.

[주먹왕 랄프]는 해야할 일을 내팽개치고, 하고 싶은 일을 했을 경우에 대해서 영웅이 되고 싶었던 악당 랄프를 통해 우회적으로 보여줍니다. <다고쳐 펠릭스>에서 해야할 악당의 일을 외면하고 영웅이라는 하고 싶은 일을 했던 랄프는 <다고쳐 펠릭스>는 물론이고, <슈가 러시>마저도 위기에 빠뜨립니다.

 

 

획기적이다.

 

[주먹왕 랄프]는 다분히 디즈니적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 영화입니다. 지금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고, 최선을 다하자는 어찌보면 너무 보수적이기까지한 교훈을 [주먹왕 랄프]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불만은 없습니다. 디즈니는 항상 그래왔고, 그러한 메시지는 디즈니가 오랜 기간동안 영화팬의 사랑을 받아온 원동력이니까요.

[주먹왕 랄프]는 이렇게 디즈니 영화들이 으레 가지고 있는 교훈을 가지고 있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먹왕 랄프]는 지금까지 디즈니 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획기적인 느낌이 드는 영화입니다. 그 이유는 이 영화의 영상 때문입니다.

[주먹왕 랄프]는 8비트 게임인 <다고쳐 펠릭스>로 시작합니다. 거친 입자와 부자연스러운 캐릭터의 움직임은 어린 시절 8비트 게임을 좋아했던 제게 추억의 향수를 안겨줍니다. 그런데 랄프가 영웅이 되길 원하면서 무대는 <다고쳐 펠릭스>에서 슈팅게임 <히어로즈 듀티>로 이어집니다. 요즘의 게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실사같은 캐릭터와 잿빛 영상, 그리고 캐릭터들의 현란한 움직임은 <다고쳐 펠릭스>와는 정반대 지점에서 제 눈을 현혹시킵니다.

그에 그치지 않고 예쁘장한 화면이 매력인 레이싱 게임 <슈가 러스>로 무대가 옮겨집니다. <다고쳐 펠릭스>에서 <히어로즈 듀티>를 거쳐 <슈가 러시>로 이어지는 이 영화의 동선은 그 자체만으로도 시각적 충격입니다.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각각의 개성을 가진 게임들이 한데 엮여 있는 모습이라니...

 

더욱 재미있는 것은 <다고쳐 펠릭스>, <히어로즈 듀티>, <슈가 러시>의 각 캐릭터들이 한 화면에 등장하는 장면들입니다. 워낙에 뚜렷한 개성을 지닌 캐릭터들이다 보니 이들이 한 화면에 함께 서있는 것만으로도 [주먹왕 랄프]는 획기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주먹왕 랄프]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8비트 게임 <다고쳐 펠릭스>의 펠릭스와 <히어로즈 듀티>의 칼훈 병장의 러브 라인을 통해 랄프의 깨달음과는 별도로 새로운 재미를 구축해냅니다. 생각해보세요.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운 8비트 게임의 캐릭터와 실사보다 더 실사같은 최신 게임의 캐릭터가 사랑에 빠지다니... 그러한 소소한 재미가 [주먹왕 랄프]를 획기적인 애니메이션으로 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프로그램 오류로 태어난 <슈가 러시>의 바넬로페와 랄프의 교감, 그리고 <슈가 러시>를 둘러싼 어마어마한 음모, 마지막 반전 등 [주먹왕 랄프]는 영화적 재미를 꼼꼼하게 채워놓은 정말 잘 만든 디즈니표 애니메이션입니다. 비록 해야할 일을 뒤로 미루고 봤기에 웅이는 혼나야 했지만, 이렇게 가끔은 랄프처럼 해야할 일을 잠시 잊고, 하고 싶은 일을 저질러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 

 

 

해야할 일을 잠시 잊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도 좋지만,

결국 하고 싶은 일을 끝내면 해야할 일을 다시 해야한다는 것.

목요일에 해야할 숙제를 하지 못한 웅이는 금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숙제를 해야했고,

목요일에 야근을 하지 못한 나는 금요일 밤을 야근으로 지새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