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2년 영화이야기

[나의 PS 파트너] - 뻔한 사랑 노래라도 진심이 담겼다면 좋다.

쭈니-1 2012. 12. 10. 12:59

 

 

감독 : 변성현

주연 : 지성, 김아중, 신소율, 강경준

개봉 : 2012년 12월 6일

관람 : 2012년 12월 9일

등급 : 18세 이상 관람가

 

 

[나의 PS 파트너]와의 엇갈린 인연에 종지부를 찍다.

 

매서운 한파가 몰아닥친 지난 주말. 저는 구피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주말에 [나의 PS 파트너]를 보러 갈 계획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혼자 극장에 가는 것이 한두번이 아니지만 [나의 PS 파트너]가 로맨틱 코미디이고, 야한 장면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는 소문을 들은 저로서는 아무래도 구피와 함께 가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은 구피는 끝내 [나의 PS 파트너]의 관람을 거부했습니다. '내가 안 본다고 그랬잖아!'라며 버럭 화를 내는 구피를 남겨 두고 결국 저 혼자 커플들이 득실댈 [나의 PS 파트너]가 상영하는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제가 홀로 커플천국, 솔로지옥으로 스스로 들어가면서까지 [나의 PS 파트너]를 보려 했던 이유는 솔직히 영화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이 영화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습니다. 영화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미안함으로 영화를 봤다? 선뜻 이해가 안되시겠지만 사연인즉 이러합니다.

지난 11월 7일 저는 [나의 PS 파트너]의 제작발표회에 초대한다는 메일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평일 오전 11시에 하는 제작발표회에 참가하려면 회사에 연차휴가를 내야 했기 때문에 저는 어쩔수 없이 '참가할 수 없다'는 메일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11월 22일에 열린 [나의 PS 파트너]의 쇼케이스 초대 메일이 왔습니다. 장소가 저희 집에서 먼 압구정 CGV였고, 평일 8시로 시간대도 애매했지만 지난 제작 발표회에 가지 못한 것이 죄송스러워서 참가하겠다는 메일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날 하필 웅이의 학교에서 저녁에 '아빠와 함께 하는 별빛 축제'를 하는 바람에 제작 발표회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아빠와 함께 하는 별빛 축제'는 날씨가 좋지 않아 별을 볼 수가 없다는 이유로 뒤늦게 연기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않아도 [나의 PS 파트너]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진 제게 마지막 기회가 왔습니다. 11월 27일 용산 CGV의 VIP시사회에 초대된 것입니다. 이번 만큼은 꼭 참가하겠다고 영화 홍보사에 답장 메일까지 보냈지만 이게 웬일인가요. 지난 11월 22일에 기상 악화로 연기된 '아빠와 함께 하는 별빛 축제'가 11월 27일로 잡힌 것입니다. 또 다시 좌절. 이렇게 [나의 PS 파트너]와 저는 세번의 엇갈린 인연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영화는 나중에 개봉하면 집 근처 극장에서 보면 그만이지만, 저를 믿고 초대해준 영화 홍보사에겐 미안한 마음 뿐이었습니다. 세 번이나 초대에 불응했고, 두 번이나 약속을 어겼으니 말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저는 커플천국, 솔로지옥의 현장에 홀홀단신으로 걸어들어가야 했던 것입니다.

 

 

실연을 당한 찌질이만이 이 기분을 이해한다.

 

[나의 PS 파트너]가 상영하는 극장 안에는 정말 거짓말 하나도 안보태고 커플들 뿐이었습니다. 저는 일부러 구석진 자리로 예매했지만 눈치없는 닭살 커플이 제 뒤에 앉는 바람에 뻘쭘함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비록 [나의 PS 파트너]에 대한 미안함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고, 커플천국 속에서 홀로 솔로지옥을 맛보며 영화를 감상했지만, 그래도 [나의 PS 파트너]에 대한 냉철한(?) 이성을 유지하며 영화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나의 PS 파트너]는 어느 남녀의 음담패설로 시작합니다. 웃고 떠들며 낯뜨거운 음담패설을 주고 받는 이들. 하지만 그 속에서 현승(지성)은 멍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습니다. 그는 실연을 당했습니다. 7년간이나 사귄 소연(신소율)에게 매몰차게 차인 현승. 그는 마치 세상이 끝난 것과 같은 표정으로 앉아 있더니 급기야 온갖 청승과 민폐로 분위기를 망쳐 버립니다.

어쩌면 '참 찌질하다. 그깟 이별 쿨하게 받아들이면 안되나?'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하지만 한때 찌질한 실연남이었던 저는 현승의 기분을 이해합니다. 지나고 나면 별 것 아니지만, 실연당한 당시만 하더라도 세상이 끝난 것만 같은 느낌. [나의 PS 파트너]는 그러한 현승의 상황을 잘 표현해내며 영화를 시작합니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이상한 전화가 옵니다. 낯선 여자의 야릇한 신음소리. 현승은 난데없이 걸려온 윤정(김아중)의 전화에 그만 폰섹스를 하게 됩니다. [나의 PS 파트너]에서 'PS'가 의미하는 것은 바로 폰섹스인 것입니다.

소연과의 이별로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한 현승에게 윤정은 새로운 돌파구가 됩니다. 사실 실연을 당한 사람에게 친한 친구들은 아무런 도움이 안됩니다. [나의 PS 파트너]에서 현승의 친구인 석운과 영민이 그러하듯이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역할만 합니다.

오히려 현승의 실연의 아픔에 도움을 주는 것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낯선 여자인 윤정입니다. 윤정과의 통화를 통해 현승은 소연에 의한 상처를 점점 치유받습니다. 그렇게 현승은 윤정에 대한 새로운 사랑의 감정을 싹틔워나갑니다.

그렇다면 윤정은? 그녀는 결혼을 전제로 연애를 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윤정의 상황 역시 현승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남자친구인 승준(강경준)은 윤정에게 무감각하기만 합니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린 청혼은 깜깜무소식입니다. 외모도, 능력도 무엇하나 빠지지 않는 윤정이지만 승준의 그러한 태도는 그녀를 점점 비참하게 만듭니다. 그러한 와중에 핸드폰 번호를 잘 못 눌러 현승과 통화를 하게 되고, 현승과의 통화를 통해 그녀 역시 새로운 사랑의 감정을 싹틔워나갑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통화를 오래해도 질리지 않는 것?

 

어찌보면 현승과 윤정의 관계는 불건전합니다. 잘 못 걸린 폰섹스로 관계가 시작된 것 역시 불건전하고, 소연에 대한 실연의 상처를 윤정과의 통화, 만남으로 치유하려는 현승의 의도 역시 불건전합니다.

승준을 사귀면서 현승과 만남을 이어나가는 윤정은 속된 말로 양다리입니다. 이렇듯 현승과 윤정의 관계는 얼핏보면 불건전한 것 투성이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사랑을 하고 있다면? 잘 못 걸린 폰섹스는 새로운 인연의 시작이었고, 윤정과의 새로운 사랑으로 현승은 옛 사랑에 의한 실연의 상처를 치유하고 있으며, 윤정 역시 현승과의 사랑을 통해 승준과의 거짓된 사랑을 깨달아가는 과정이라면... 그럴려면 현승과 윤정의 관계가 불건전한 관계가 아닌 사랑임을 증명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 내내 현승과 윤정은 서로의 관계를 '친구사이'라고 강조합니다. 첫 통화에서 폰섹스를 나눴고, 첫 만남에서 섹스를 즐겼던 그들이 '친구사이'라며 서로의 관계를 애써 정의 내리려합니다. 현승은 아직 소연에 대한 미련이 남았고, 윤정은 아직 승준의 사랑을 믿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저는 그들이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영화의 초반부터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통화는 길고 서로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것 또한 제 경험담인데, 제 경험담에 비춰보면 사랑이라는 것은 결국 얼마나 오래, 그리고 얼마나 즐겁게 통화를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조금 뜬금없죠? 하지만 사실입니다. 제가 20대 초반이었을 때, 제 친구가 사귀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그녀와 제가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정말 너무 즐겁게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하며 두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통화를 한 것입니다. 당시에는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제 통화는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처음에 저는 그저 친구 애인과의 통화라고 스스로에게 변명했습니다. 하지만 제 친구는 그녀와의 통화가 몇 분을 절대 넘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통화를 하다보면 할 이야기가 없어서 그냥 짧은 안부와 용건만 말하고 끊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제 친구에게 죄책감이 들었고, 그녀와의 만남을 자제했습니다. 그녀와 제 친구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관계가 깨졌습니다.

통화를 오래 한다는 것. 그것은 상대방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게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상대방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방에게 솔직해질 수 있다는 것을 뜻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 기울려 듣게 된다는 것은 그 만큼 상대방에게 관심이 많다는 것을 뜻합니다.

실제로 저는 구피와 사귈때 밤새워 통화를 한 적이 많았습니다. 그땐 핸드폰이 보편화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그만큼 구피와 저는 밤새 이야기를 해도 이야기를 끝내지 못할 정도로 하고 싶은 이야기,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30년을 서로 모르고 살았으니 당연한 것이죠. 만약 지금 내 곁의 사람이 사랑인지, 아닌지 헷갈린다면 그 사람과의 통화가 길고 즐거운지를 따져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뻔하지 않은 사랑 노래란?

 

이렇듯 [나의 PS 파트너]는 꽤 잘만든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지성과 김아중의 매력도 좋았고, 그들의 관계가 점차 사랑으로 발전해가는 과정 역시 꽤 진솔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지금까지의 로맨틱 코미디하고는 다른 독특하고 새로운 로맨틱 코미디인가? 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면 의문부호가 뒤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분명 [나의 PS 파트너]는 폰섹스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내세웠고, 성적인 농담과 직절설적인 대화를 통해 일반적인 로맨틱 코미디와의 차별화를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자극적인 소재와 직절적인 성적 대화만으로 [나의 PS 파트너]를 독특한, 새로운 로맨틱 코미디의 반열에 올려 놓기엔 무리가 따릅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현승과 윤정의 만남과 사랑으로의 발전하는 과정이 전혀 독특하지도, 새롭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의 관계에 폰섹스, 성적농담, 직설적인 대화들이 끼어 있지만 그러한 것들을 벗겨내고 본다면 이전의 로맨틱 코미디와 전혀 다르지 않은 전개 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사랑 노래는 너무 뻔하다'는 윤정에게 '그럼 내가 뻔하지 않은 사랑 노래를 만들어주겠다'는 현승의 약속과 비슷합니다.

실제로 영화의 후반부에 현승이 부른 사랑 노래는 파격적입니다. 일반적으로 아름다운 사랑 가사와는 달리 '너의 팬티를 보여줘. 난 그 팬티 속이 더 궁금해.' 등 성적으로 직설적인 가사를 삽입한 'Show Me Your Panty' 하지만 직설적인 가사를 뺀 'Show Me Your Panty'는 그저 멜로디가 좋은 평범한 사랑 노래에 불과합니다.

[나의 PS 파트너]는 'Show Me Your Panty'와 같습니다. 이 곡의 파격적으로 야한 가사를 제외하면 평범한 사랑 노래가 되는 것처럼 [나의 PS 파트너] 역시 파격적인 소재, 성적 농담, 자극적 대사 등을 제외하면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가 되는 것이죠.

물론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라는 점이 [나의 PS 파트너]가 '재미없다'라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의 PS 파트너]는 그 자체만으로도 분명 재미있는 로맨틱 코미디이니까요. 하지만 너무 특별함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는 것은 금물입니다. 

 

 [나의 PS 파트너]가 꼭 독특하고 새로운 로맨틱 코미디일 필요가 있을까?

독특하고 새롭지 않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재미있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