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2년 영화이야기

[레미제라블] - 벅찬 감동이란 이런 것!

쭈니-1 2012. 12. 20. 13:35

 

 

감독 : 톰 후퍼

주연 : 휴 잭맨, 러셀 크로우, 아만다 사이프리드, 앤 해서웨이

개봉 : 2012년 12월 18일

관람 : 2012년 12월 18일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영화가 끝난 시간은 새벽 1시... 그러나...

 

2012년 12월 19일은 대한민국의 앞으로의 5년을 책임질 지도자를 뽑는 대선일입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선택의 날인 만큼 많은 회사들이 12월 19일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했고, 저와 구피의 회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선거 전날인 12월 18일, 대한민국 국민의 소중한 권리인 선거를 앞둔 저는 설래이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명박 정권의 잘못된 환율 정책과 친재벌 정책으로 인하여 지난 5년 간의 제 삶은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았기에 과연 앞으로의 5년 동안 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얼굴이 되어 우리를 이끌어 나갈지 저는 굉장히 궁금했습니다.

뒤숭숭한 마음에 잠이 오지 않아 그냥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침대에서 잠도 못자고 뒤척이는 것보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늦은 시간에 갑작스럽게 영화를 보기로 결정한 것이라 신작 중에서 비교적 러닝타임이 짧은 [반창꼬]를 보려고 했지만, 어쩌다보니 2시간 40분이라는 어마어마한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레미제라블]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영화가 끝난 시간은 거의 새벽 1시. 집에 도착해서 씻고나니 시계 바늘은 2시를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다음날을 위해 빨리 잠자리에 들어야 했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던 이유는 영화를 보기 전과 본 후가 서로 달랐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다음날 있을 대선에 대한 설래임과 걱정 때문이었지만, 영화를 보고 난 이후에는 [레미제라블]에서 판틴(앤 해서웨이)의 그 애절한 눈빛과 혁명을 염원하던 프랑스 시민들의 간절한 노래가 머릿속을 맴돌았기 때문입니다.

너무나도 힘든 삶 속에서 변화를 외치던 프랑스 군중들의 외침. 그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사랑, 희생, 용서. [레미제라블]은 이 모든 이야기를 벅찬 감동으로 표현해냈습니다. 어쩌면 변화를 외치던 프랑스 군중의 그 외침은 대통령 선거를 몇 시간 앞둔 제 마음과 같았기에, 더욱 영화에 대한 잔상이 오랫동안 남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알던 장발장 이야기가 아니다.

 

처음 [레미제라블]의 개봉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모두가 아는 '장발장' 이야기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러닝 타임이 거의 3시간에 육박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혼란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내가 아는 '장발장' 이야기가 이렇게 길었던가? 내가 '장발장' 이야기를 잘 못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실제로 제 기억 속의 '장발장' 이야기를 가만히 더듬어 보니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20여년을 감옥 생활한 장발장이 출소 후 어느 신부의 도움으로 착하게 살기로 결심하지만, 그의 뒤를 끝까지 쫓는 경찰로 인하여 위기를 맞이하는...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이야기 속에는 프랑스 혁명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물결은 없었습니다. 아마도 저는 어린이용으로 짧게 각색한 '장발장'을 읽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영화 속의 장발장(휴 잭맨)의 이야기는 제게는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던 장발장의 깨달음은 어린이용 축약판으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가슴 떨리는 감동을 안겨줬기 때문입니다.

 

[레미제라블]은 그런 영화입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많은 이들이 제대로 알고 있지는 못한 '장발장' 이야기를 [레미제라블]은 거대한 스펙타클로 완벽하게 잡아 냅니다.

영화를 보며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와도 같았던 '장발장'은 제 기억 속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져 버렸고, 영화 속에 펼쳐지는 장발장의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제 심장 깊숙히 박혀 버렸습니다.

굶주린 조카를 위해 빵 한조각을 훔쳤다는 이유로 19년을 감옥살이로 보낸 장발장. 그는 가석방 후에도 위험 인물로 낙인찍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한 그에게 미리엘 주교의 따스한 용서는 깨달음이 됩니다. 그에겐 언제나 무자비했던 세상과 법의 테두리. 그 속에서 그 어떤 희망도 볼 수 없던 그가 미리엘 주교의 용서를 통해 희망을 얻게 됩니다.

서민에게 무자비한 법, 그 자체와도 같았던 자베르(러셀 크로우)는 말합니다. 한번 범죄자는 영원한 범죄자일 뿐이다라고... 그는 장발장을 끊임없이 뒤쫓으며 그를 압박합니다. 하지만 장발장은 그러한 그를 용서합니다. '자네는 그저 자네가 해야할 일을 충실히 한 것 뿐일세'라며. 결국 [레미제라블]은 용서라는 테마를 통해 각박한 삶 속에서 우리가 잊고 지냈던 인간의 진정한 가치를 관객에게 되묻습니다.

 

 

장발장... 그의 역동의 인생기.

 

프랑스 혁명은 1789년에 시작해서 1799년 나폴레옹이 '혁명은 끝났다'라고 선언하며 막을 내립니다. 프랑스 혁명은 전 국민이 평등한 권리를 얻기 위해서 일어선 시민 혁명의 대표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 국민들은 그토록 힘겹게 투쟁해서 얻으려 했던 평등을 차지했을까요?

[레미제라블]의 시대적 배경은 1830년대 프랑스입니다. 프랑스 혁명이 끝난 이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도 나타났지만 당시 국민들은 인간보다도 못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법의 잣대는 가혹했고, 사람들은 굶주림으로 거리를 떠돌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노래합니다. '우리는 혁명을 통해 왕을 몰아냈지만 새로운 왕 또한 전과 다르지 않다'라고 자조 섞인 노래를 부릅니다.

1830년대는 프랑스 혁명을 이룩한 시민 세력과 왕정 복고를 추진하던 샤를 10세가 충돌한 격동의 시기입니다. 하지만 [레미제라블]은 이러한 격동의 시대를 세세하게 잡아내지는 않습니다. 그저 장발장이라는 한 명의 사람을 중심으로 격동의 시대를 대변하려 합니다.

장발장. 그는 굶주린 조카를 위해서 빵 한 조각을 훔쳤다고는 하지만 엄연히 법을 어긴 범죄자이며, 가석방 중에서 자신의 신분을 위장해서 살아가는 도망자입니다. 그러한 그가 용서를 통한 인간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고 자신의 깨달음을 위해 노력합니다. 

 

파리의 명망 높은 시장으로, 수 백명의 여공을 거느린 공장의 사장으로 승승장구하던 장발장. 하지만 그는 장발장이라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힐 위기에 처한 낯선 이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법정에 가서 '내가 바로 장발장이다'라고 선언하기에 이릅니다.

과연 여러분이라면 그럴 수 있을까요? 영화 속에서 장발장은 고뇌에 빠집니다. 자신이 입을 다물면 누명을 쓴 한 사람은 억울한 피해를 볼 것이고, 자신이 정체를 밝히면 그의 공장에서 일하는 수 백명의 여공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입니다.

만약 보통 사람들이라면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라는 명분으로 입을 굳게 다물 것입니다.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 그러한 명분은 과거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루었던 군사 독재 정권이 내세운 명분이며, 우리 국민들이 여전히 독재자를 그리워하고 그의 딸을 지지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장발장은 그러한 명분을 내던져버립니다. '나로 인하여 단 한 명이라도 억울한 이가 생긴다면 내 어찌 떳떳할 수 있겠는가?' 라며 자신을 위한 완벽한 변명이었던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라는 명분을 거부합니다. 그로 인하여 그가 겪게 되는 고난은 험난했지만 마지막 순간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가 있게 되는 것이죠. 경제 발전이라는 명분을 위해서 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켰던 과거 군사 독재 정권을 그리워하는 분들이라면 장발장의 선택에 멍청한 놈이라며 돌을 던질지도 모르겠네요. 

 

 

나는 진정 앤 해서웨이에게 사랑에 빠졌다.

 

어린 시절 읽었을 때에는 느끼지 못했던 '장발장'에 담긴 깊은 의미를 저는 영화 [레미제라블]을 통해 벅찬 감동으로 느꼈습니다.

그가 자신을 집요하게 쫓는 자베르를 용서할 때, 그리고 코제트(아만다 사이프리드)를 위해 희생할 때의 감동은 영화를 위해 억지로 꾸며진 감동이 아닌 가슴 깊은 곳을 울리는 진정한 감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레미제라블]을 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장면은 장발장이 자베르를 용서하는 장면도, 코제트를 위해 희생하는 장면도 아니었습니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저는 [레미제라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판틴이 출연하는 장면이었습니다.

판틴은 장발장이 운영하는 공장의 여공이었습니다. 하지만 장발장의 무관심 속에 억울하게 공장에서 쫓겨나고 어린 딸인 코제트를 위해 거리를 나서게 됩니다. 그녀가 처음엔 머리카락을 팔고, 이빨을 팔고, 결국 몸을 팔게 되는 과정은 짧게 생략되어 있지만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그녀의 모습이 무참히 짓밟히는 장면 만으로도 저는 그녀가 느꼈을 아픔을 생생하게 전달 받았습니다.

장발장의 파란만장의 인생이 막을 내리는 마지막 순간, 판틴이 장발장에게 나타나 '이제 그만 무거운 짐을 내려 놓으라'고 노래하는 장면에서는 뜨거운 눈물 한줄기가 제 뺨을 흘러 내렸습니다. 장발장의 인생은 그녀의 한마디로 보상을 받은 것입니다. 그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장발장. 자신의 무관심 속에 죽음을 맞이하는 판틴에 대한 죄책감도 코제트를 훌륭하게 키워냄으로서 그는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진정 행복하게 죽음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사실 판틴은 영화의 초중반부에 잠시,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잠시 등장합니다. 하지만 진정 제게 [레미제라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캐릭터를 묻는다면 주인공인 장발장도 아닌, 카리스마 넘치는 자베르도 아닌, 인형처럼 아름다웠던 코제트도 아닌, 바로 조연에 불과한 판틴이라고 큰 소리로 대답할 것입니다.

이 비극적인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 넣은 것은 앤 해서웨이입니다. 최근 [러브 & 드럭스], [다크 나이트 라이즈], [원 데이]를 통해 강한 인상을 남겼던 그녀는 [레미제라블]을 통해 그녀가 이 시대 최고의 여배우로 성장했음을 보여줍니다.

판틴이 처음으로 몸을 팔고 비참한 심정으로 부르는 'I Dreamed A Dream'이라는 곡은 순진했던 한 여성의 몰락과 1830년대 프랑스 시민의 아픔을 담고 있는 명곡이었습니다. 앤 해서웨이는 여배우로서는 선택하기 힘들었을 판틴이라는 캐릭터를 너무나도 완벽하게 스크린 속에 그려 넣습니다.

그 외에도 에포닌을 연기한 사만다 바크스의 매력(솔직히 그녀의 거친 매력은 인형같았던 아만다 사이프리드보다 빛났습니다.)과 영화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던 사챠 바론 코헨과 헬레나 본햄 카터의 코믹 연기도 영화의 재미를 더해줬습니다.

영화의 대사의 거의 대부분이 노래로 이루어진 진정한 뮤지컬 영화인 [레미제라블]. 비록 나의 현실 속의 혁명은 실패했지만, [레미제라블]의 벅찬 감동은 내 가슴 깊은 곳에 울러 퍼졌습니다. 12월 19일의 아쉬움은 [레미제라블]의 벅찬 감동으로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혁명을 꿈꾸던 프랑스 시민들의 바람처럼...

현실의 혁명을 꿈꾸는 나 역시 5년 후를 기약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