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2년 아짧평

[워리어] - 격투기 영화라기 보다는 가족간의 용서에 대한 영화

쭈니-1 2012. 12. 24. 01:22

 

 

감독 : 개빈 오코너

주연 : 톰 하디, 조엘 에저튼, 닉 놀테

 

 

난 격투기 영화가 싫다.

 

저는 영화에 대해서는 잡식성임을 자랑하지만, 좋아하는 장르의 영화만큼 싫어하는 장르의 영화도 뚜렷합니다. 일단 머리 풀어헤친 귀신나오는 영화는 무서워서 못보고, 영웅주의에 휩싸인 전쟁 영화는 역겨워서 못보며, 격투기 영화 역시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닙니다.

[워리어]는 격투기를 소재로한 영화입니다. 16명의 선수들이 챔피언 혼자 독식하는 5백만 달러라는 거액의 상금을 가지고 격돌하는 것이 이 영화의 기본 스토리 라인입니다. 평소의 저라면 당연히 이 영화에 조금의 관심조차 갖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제가 좋아하는 장르의 영화도 차고 넘치는데 굳이 내 소중한 시간을 싫어하는 장르의 영화를 위해 소모시킬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워리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 2012년 2월 26일에 개최된 8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워리어]에 출연한 기 놀테가 남우 조연상 후보에 올랐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비기너스]의 크리스토퍼 플리머에 밀려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닉 놀테의 노미네이트만으로도 [워리어]는 충분히 제 관심 속으로 뛰어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이 가족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워리어]는 아버지 페디(닉 놀테)와 그의 첫째 아들 브렌든(조엘 에저튼), 둘째 아들 토미(톰 하디)의 과거를 생략하고 시작합니다. 도대체 이 부자지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영화가 진행되며 이들 간의 대화를 통해 조금씩 예상을 할 뿐입니다.

하지마 [워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부자지간의 증오와 용서입니다. 관객 입장에서는 과연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아들은 아버지를 증오하고, 동생은 형을 인정하지 않는 것인지 답답할 따름이죠. 하지만 [워리어]는 그러한 관객의 답답함 따위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단지 과거를 생략한 대신 현재 그들이 처한 상황을 좀 더 세밀하게 잡아냅니다. 

페디는 1000일 동안 술을 끊은 상태입니다. 그는 두 아들에게 끊임없이 용서를 구하지만 브렌든과 토미는 아버지를 증오하기만 합니다. 브렌든은 고등학교 선생입니다. 하지만 은행빚으로 인하여 집을 빼앗길 처지에 처하자 돈을 벌기위해 다시 위험천만한 거리의 투사로 나섭니다. 토미는 전쟁영웅입니다. 하지만 그는 전사한 동료의 미망인을 위해 거리의 투사가 됩니다. 탈영으로 인한 군재판에 회부될 각오를 하고... [워리어]에서 중요한 것은 이들의 과거가 아닙니다. 증오에 물들은 이들 부자가 격투기라는 스포츠를 통해 서로 화해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모비 딕이 의미하는 것

 

[워리어]는 과거를 생략해 놓고, 과거에 대한 증오로 똘똘 뭉쳐진 이 부자들을 격투기라는 스포츠를 통해 서로에 대한 용서를 진행시킵니다. 그런만큼 이 영화는 스토리 라인을 통한 관객과의 소통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한 점이 [워리어]의 가장 큰 고민이었을 것입니다.

과거를 세세하게 표현하자니 영화가 너무 길어질 것이 뻔했고(이 영화는 격투기 영화치고는 긴 2시간이 훌쩍 넘는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를 생략하자니 페디와 브렌든, 토미 사이의 증오와 용서를 이야기하는데 관객의 공감을 사지 못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개빈 오코너 감독이 선택한 것은 미국의 소설가 H. 멜빌의 장편소설 '모비 딕'을 차용하는 것입니다.

천일동안 금주를 한 페디가 항상 듣는 것은 바로 '모비 딕'입니다. 우리에겐 '백경'으로도 잘 알려진 이 소설은 '모비 딕'이라는 머리가 흰 고래에게 한쪽 다리를 잃은 에이햅 선장의 복수극을 담은 소설입니다. 그는 복수를 위해 동료들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대서양, 인도양, 태평양으로 항해를 계속하며 '모비 딕'을 찾아 해맵니다. 결국 에이햅은 '모디 빅'과 3일 간의 사투를 벌이고 작살을 명중시키지만 '모비 딕'에 끌려 바다 밑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워리어]의 페디와 브렌든, 토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부자지간의 끝 없는 증오는 결국 서로를 끝 없는 절망으로 이끌 뿐입니다. 이들이 이 절망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것은 복수가 아닌 용서입니다.

 

격투기 영화라기 보다는 가족간의 용서에 대한 영화

 

사실 [워리어]는 일반적인 격투기 영화로서는 불합격입니다. 2시간이 훌쩍 넘는 러닝타임 동안 이 영화의 본격적인 격투기 장면은 라닝타임의 잘반이 지난 1시간 후에나 펼쳐 집니다. 하지만 카메라는 격투기의 생생한 현장을 잡아 내는데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브렌든의 경기는 초반엔 일방적으로 밀렸다가 후반에 단 한방의 기술로 역전시키는 경기가 반복되고, 토미의 경기는 언제나 단 한방으로 끝이 납니다. 격투기 장면에 의한 영화적 재미를 느끼기에는 굉장히 부족합니다.

하지만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브렌든과 토미의 경기 장면은 다릅니다. 브렌든과 토미의 경기는 이들이 서로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과정이 됩니다. 어쩌면 우승자가 가져가는 5백만 달러라는 거액은 중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오랜 시간 동안 서로를 증오했던 가족이 결국 서로를 용서했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격투기 영화를 싫어하는 제가 [워리어] 만큼은 꽤 집중해서 볼 수가 있었습니다. 물론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톰 하디의 증오에 가득찬 표정과 과거의 증오를 원인이었지만 이제는 무기력하기만한 닉 놀테의 아버지 연기가 좋았기 때문이기도합니다. 저처럼 격투기 영화를 싫어하시는 분이라도 [워리어]는 꽤 재미있게 관람하실 수 있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