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2년 아짧평

[더블] - 흥미로운 소재, 아쉬운 결말

쭈니-1 2012. 12. 12. 12:49

 

 

감독 : 마이클 브랜트

주연 : 리차드 기어, 토퍼 그레이스

 

 

리차드 기어 VS 토퍼 그레이스. 이 정도면 A급 아닌가?

 

지난 11월 15일 개봉작 중에서 [브레이킹 던 PART 2]와 [자칼이 온다]를 제외하고 제 눈길을 끌었던 것은 [더블]이라는 영화였습니다. 리차드 기어, 토퍼 그레이스, 마틴 쉰 등 믿음이 가는 배우들이 주연으로 이름을 올린 이 영화는 20년전 사라진 소련 KGB의 전설적인 킬러를 쫓는 은퇴한 CIA요원과 신참 FBI요원의 활약을 담은 영화입니다.

제가 리차드 기어를 좋아하는 관계로 은근 기대한 영화였지만 [더블]은 결국 11월 15일에 개봉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주후 11월 29일 다시 개봉작 리스트에 제목을 올렸습니다. '이번주 개봉작'을 정리하면서 이런 식으로 영화를 위장 개봉하고, 영화의 인지도를 높여 결국 다운로드 시장을 직행하는 영화를 너무 많이 봐온 저로서는 [더블]에 대한 관심이 확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궁금했습니다. 리차드 기어와 토퍼 그레이스. 이 정도면 S급은 아니더라도 A급 캐스팅 정도는 될텐데, 왜이리도 국내 개봉에서 천대를 받은 것일까요? 그래서 미국 박스오피스 성적을 살펴봤는데, 미국 흥행 성적 역시 처참했더군요. 2011년 10월 28일에 미국에서 개봉한 [더블]은 개봉 첫주 11개관으로 시작했고 둘째주에 45개 관으로 상영관을 늘렸지만 6만 달러 흥행으로 순위는 41위. 결국 3주간 상영한 후에 13만 달러라는 어이없는 흥행을 남기고 쓸쓸히 퇴장했습니다.

 

시대착오적 소재? 그래서 더욱 흥미로운 소재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이상하게 흥행에 실패한 영화에 '왜 흥행에 실패했을까?'라는 쓸데 없는 호기심이 발동한 저는 결국 [저지 드레드]를 보러 극장으로 가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더블]을 봤습니다.  

일단 [더블]은 꽤 흥미로운 소재를 지닌 영화입니다. 구소련의 붕괴로 냉전체제가 무너진 것이 어느덧 20년 전의 일입니다. 소련이 무너지자 미국은 새로운 적으로 공산주의 국가에서 이라크를 중심으로한 아랍 국가들로 설정하였습니다. 따라서 전설적인 KGB 킬러가 등장하는 [더블]은 굉장히 시대착오적 영화인 셈입니다.

그런데 [더블]은 그러한 시대착오적 소재를 흥미롭게 이용합니다. 20년 전에 사라진 소련의 전설적 킬러 카시우스. 그의 악령이 새로운 시대에 다시 고개를 든 것입니다. 오랜 기간 카시우스를 추적했지만 이제는 은퇴한 CIA요원 폴(리차드 기어)은 카시우스는 죽었다며 그의 부활을 믿지 않으려 하지만, FBI의 신참 요원 벤(토퍼 그레이스)은 카시우스가 부활했다며 자신합니다. 

이제는 구시대의 유물이 된 구소련의 킬러. 게다가 CIA와 FBI의 공조, 은퇴한 수사관과 신참 수사관의 파트너쉽, 저는 이 모든 것이 꽤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카시우스가 죽었다고 믿는 폴과 카시우스가 부활했다고 믿는 벤. 과연 진실은 무엇이며, 그들은 카시우스라는 구시대의 킬러를 어떻게 잡을까요?

 

너무 빨리 공개된 첫번째 반전 (스포 포함)

 

그런데 [더블]은 제가 생각했던 영화의 전개와는 전혀 딴판으로 진행됩니다. 구시대 유물인 KGB의 전설적인 킬러를 잡으려는 폴과 벤의 활약을 기대했던 저는 폴이 사실 카시우스라는 첫번째 반전이 공개되면서 잠시 당황스러웠습니다. 제가 [더블]에 너무 복고적인 스릴러 영화의 재미를 기대했던 것이죠.

하지만 폴의 정체는 [더블]을 더욱 흥미롭게 만듭니다. 자신의 신분을 위조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뒤쫓는 CIA요원이라니... 기발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매력적인 첫번째 반전은 영화의 거의 초반부에 밝혀집니다. 결국 [더블]은 폴의 정체에 대한 반전은 그저 영화의 설정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폴의 정체가 너무 빨리 공개되면서 과연 [더블]이 담고 싶었던 이야기, 스릴이 무엇일까 궁금해졌습니다. 그리고 [더블]은 바로 그 이후의 이야기를 천천히 꺼내 놓습니다. 첫번째 반전이 매력적이었기에 이후의 이야기 역시 기대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쉬운 결말

 

그러나 [더블]은 폴의 정체를 담은 첫번째 반전을 뛰어 넘는 영화적 재미를 제게 선사하지 못했습니다. 폴의 정체를 알고부터 꽤 흥미롭게 영화가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저는 영화가 후반으로 흐르면 흐를수록 점점 힘을 잃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영화 초반에 가졌던 흥미를 잃고 말았습니다.

결국 [더블]은 벤의 정체에 대한 두번째 반전을 꺼내놓지만 그것은 첫번째 반전에 대한 되풀이에 불과했기에 그다지 놀랍지가 않았습니다. 그저 무덤덤해지기만 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벤이 폴의 정체를 알아내는 과정인데, 카시우스의 범죄 현장에 폴의 사진이 전부 찍혔다는 것만으로 '그래, 폴이 카시우스였어.'라고 단정짓는 벤의 모습은 실망스러웠습니다. 전설적인 킬러가 사건 현장을 되찾고 사진 찍히는 것에 안일하게 대처했다는 것도 우습지만 카시우스 담당 요원인 폴이 카시우스의 범죄 현장에 사진이 찍힌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더블]은 어려운 심리학 용어까지 들먹이며 마치 벤이 대단한 발견을 하는 것처럼 표현했지만, 제가 보기엔 하나도 대단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더블]은 신인 감독의 패기가 넘치는 소재로 시작했지만 막판 뒷심이 딸리며 점점 그 한계가 드러난 심심한 스릴러 영화였습니다. 극장에서 봤다면 '이 매력적인 배우들과 매력적인 소재로 이따위 밖에 못하겠어?'라고 투덜거릴 뻔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