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2년 아짧평

[캐치 44] - 쓸데없는 말이 너무 많더라.

쭈니-1 2012. 12. 13. 11:13

 

 

감독 : 에런 하비

주연 : 말린 애커맨, 포레스트 휘태커, 브루스 윌리스

 

 

요즘 내 영화 선택은 할리우드 유명배우의 망작 시리즈이다.

 

지난 며칠간 저는 할리우드 스타급 배우들이 출연했지만, 국내 개봉은 물론이고, 미국에서 조차도 개봉 자체가 무산되거나 소규모로 개봉한 이른바 망작 영화들을 골라 보고 있습니다. 꼭 그럴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첫 시작은 리차드 기어와 토퍼 그레이스가 출연한 첩보 스릴러 [더블]이었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뒤에 가서 김이 빠진 콜라처럼 밍숭맹숭했지만 초반까지는 꽤 흥미진진한 전개를 보여주며 최악은 면했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진 영화가 모건 프리먼, 안토니오 반데라스 주연의 범죄 스릴러 [코드]였습니다. 이 영화는 캐릭터간의 관계, 감정 등이 굉장히 서툴러서 보는 내내 짜증이 났던 영화입니다. 

그리고 할리우드 유명배우의 망작 시리즈의 마지막은 바로 [캐치 44]입니다. [캐치 44]는 할리우드 액션 배우의 대명사인 브루스 윌리스와 개성넘치는 흑인 배우 포레스트 휘태커, 그리고 [왓치맨]에서 독특한 매력을 선사했던 여배우 말린 애커맨이 주연을 맡은 범죄 스릴러 영화입니다.

[캐치 44]를 보고난 후 처음 들었던 생각은 '망작에는 이유가 있더라'였습니다. [더블], [코드], [캐치 44]를 보는 동안 영화 감상을 했다는 느낌보다 시간 낭비를 했다는 느낌이 강했던... 그 중 [캐치 44]는 세 편의 망작 중에서도 최악이었습니다.

 

[펄프픽션]이 되고 싶었나? 

 

[캐치 44]는 테스(말린 애커맨)와 카라, 도니 이렇게 세 명의 여성이 허름한 식당에서 시시껄렁한 잡담을 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녀들은 잡담 도중 총을 꺼내들고 식당 안은 갑작스러운 총격전으로 난장판이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영화는 시간을 앞으로 되돌립니다.

이러한 [캐치 44]의 오프닝 장면을 보며 저는 '이런 구성을 어느에선가 본 적이 있는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펄프 픽션]의 오프닝이 대강 이런 식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허름한 식당에서 두 남녀 커플이 갑자기 강도 행각을 벌이고, 영화의 시간은 앞으로 되돌려지고...

[펄프 픽션]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을 유명 감독으로 만든 화제작이었습니다. 94년 당시 이 영화의 독특한 편집은 신선한 충격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했고, 세계적 권위의 칸 영화제에서는 이 할리우드의 풋내기 감독에게 황금종려상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분명 [캐치 44]는 그러한 [펄프 픽션]의 구성을 따라한 것으로 보입니다. 범죄 스릴러 영화이면서 영화의 캐릭터들은 영화의 내용과는 상관없는 대화를 끊임없이 해대고, 영화의 편집은 영화 속 사건의 시간대와는 상관없이 왔다 갔다합니다.

 

그런데 이게 굉장히 쓸데없이 느껴진다.

 

뭐 좋습니다. [캐치 44]가 [펄프 픽션]의 후예를 자처한다고 해서 비난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캐치 44]의 이러한 전개 방식이 굉장히 쓸데없이 느껴진다는 것이 진짜 문제입니다.

캐릭터 간의 대화는 그냥 헛소리에 불과했고, 여러번 반복해서 다시 보여준 식당에서의 총격전 장면은 도대체 이 장면을 왜 여러번 반복해서 보여줘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불필요했습니다. 뭔가 굉장한 의미가 있는 장면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진짜 문제는 식당에서 한바탕 총격전에 펼쳐진 이후입니다. 테스와 빌리, 그리고 로니(포레스트 휘태커)가 서로 대치하는 장면은 영화를 보는 제 짜증을 극대화시킵니다. 테스는 멜(브루스 윌리스)이 그럴리가 없다며 징징거리고, 그냥 테스를 쏘면 될텐데 빌리는 굳이 벌벌 떨고 있는 테스를 향해 총만 겨누고 대치합니다.

더 어이가 없는 것은 뒤늦게 나타난 로니입니다. 난데없이 테스에게 사랑을 고백하기도 하고, 테스에게 빌리를 쏘라고 재촉합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빌리는 '쏘면 안돼'라며 테스를 설득하고, 테스는 쉴새없이 징징거리기만 합니다. 도대체 이 어이없는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영화를 보면서 난감하더군요.

 

쓸데없는 말을 하느라 영화적 재미는 엿바꿔 먹었나보다.

 

애초에 브루스 윌리스의 비중이 작을 것이라는 것은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최근 들어서 그는 작은 비중으로 출연한 적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캐치 44]와 비슷한 분위기의 영화인 [셋업]에서도 그러했고, 최근 많은 관객들은 당황하게 만들었던 [콜드 라잇 오브 데이]에서도 그는 주연이 아닌 조연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브루스 윌리스의 비중과는 상관없이 [캐치 44]는 영화적 재미가 떨어져도 너무 떨어집니다. 로니가 영화 중반에 경찰을 죽이는 이유가 2년전 테스가 '관복을 입으면 더욱 매력적일 것 같다'라는 농담 때문입니다. 이런 어이없는 설정을 [캐치 44]는 반복합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식당에서의 대치 장면은 긴장감보다 짜증감만 불러 일으키고, 마지막에 나타난 멜과 갑자기 살아난 테스의 장면은 '그래, 니 맘대로 해라.'라며 저를 완전히 체념하게 만들었습니다. 

지난 월요일만 하더라도 '어쩌다가 이 화려한 캐스팅으로 영화가 망했지?'라는 호기심으로 시작된 할리우드 스타 배우들의 망작 시리즈 감상은 [캐치 44]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제 왕성한 호기심보다 영화를 보는 시간이 제겐 더욱 소중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