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2년 영화이야기

[돈 크라이 마미] - 세상에서 가장 슬픈 위로

쭈니-1 2012. 11. 26. 14:30

 

 

감독 : 김용한

주연 : 유선, 남보라, 유오성, 동호

개봉 : 2012년 11월 22일

관람 : 2012년 11월 23일

등급 : 15세 관람가

 

 

부모가 되면 내 마음을 알거다.

 

웅이는 초등학교 3학년, 나이가 벌써 10살입니다. 하지만 아직 학교와 학원갈 때 외할머니와 함께 다니고, 밖에 외출할 때도 왠만하면 저와 구피가 함께 다닙니다.

과잉보호라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제가 어렸을 적을 생각해보면 10살이면 혼자 학교에 다니는 것은 물론이고, 버스를 타고 멀리 가는 것이 아니라면 동네에서는 혼자 잘 다녔거든요. 저도 이제 웅이가 혼자 학교를 다녀야 할 때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제 결심이 무너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저희 동네에서 벌어진 사건인데, 중학생 남자 아이들이 재미삼아 혼자 걷는 초등학생을 뒤에서 발차기를 한 것입니다. 발차기를 한 중학생 아이들은 영문도 모르는채 갑자기 발차기를 당한 초등학생 아이가 넘어지며 우는 모습을 보며 깔깔거리며 즐겼다는 군요.

하지만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갑자기 발차기를 당한 아이의 상처는 어떻게 할까요? 물론 몸에 난 상처는 별 것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에 난 상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클 것입니다. 발차기를 당한 초등학생 아이는 그 이후로는 길을 걸으면서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될 것이며, 중학생 형들을 보면 발차기를 하지 않을까 겁을 먹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심해지면 대인기피증에 걸릴 수도 있고요. 보이는 상처는 약을 바르면 그만이지만 이렇게 보이지 않는 상처는 치료하기 쉽지 않습니다.

 

부모가 되어 보지 않은 사람은 어쩌면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혼자 길을 걷다가 개념없는 중학생에게 발차기를 당하는 경우는 확률 자체가 굉장히 희박하니까요. 

하지만 부모가 되어 보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우리 아이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최대의 노력을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부모의 마음이니까요.

제가 11월 23일, 회사에 연차 휴가를 낸 이유는 며칠간 시골집에 내려가신 장모님을 대신하여 웅이를 돌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웅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오후엔 웅이를 학원에 데려다주고, 간식과 밥도 챙겨주기 위해 황금같은 제 연차 휴가를 하루 소모한 것입니다.

물론 저도 압니다. 언제까지 저와 구피가 웅이를 보호해줄 수는 없다는 사실을요. 내년이면 웅이도 혼자 학교에 등하교를 해야 할 것이고, 학원에도 혼자 다녀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혼자 간식과 밥도 챙겨 먹어야 할 날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제가 웅이를 보호해줄 수 있는한은 최선을 다해야 겠죠. 저는 부모니까요.

웅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시간이 남아 영화를 봤습니다. 그날 제가 본 영화는 [돈 크라이 마미]와 [남영동 1985]입니다. 두 영화 모두 어두운 우리 서민의 아픔을 다룬 영화입니다. 특히 [돈 크라이 마미]를 보고나서는 더욱 많이 마음이 아팠습니다.

 

 

은아는 왜 희생되어야 했는가?

 

제가 [돈 크라이 마미]를 보며 마음이 아플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너무 어린 은아(남보라)의 희생과 금쪽같은 자식인 은아를 보내야 했던 유림(유선)의 심정이 이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은아의 죄라면 조한(동호)를 좋아한 것입니다. 조한이 좋아 손수 초코렛을 만들고, 그 초코렛을 전해주기 위해 혼자 그를 만나러 간 것 뿐입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댓가는 가혹했습니다. 그녀는 강간을 당했고,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여러분이 은아의 부모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도 법에 호소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법치 국가입니다. 법을 통해 잘잘못을 따지고 그에 합당한 벌을 주는 국가입니다. 은아를 강간한 아이들을 법으로 고발하는 것은 이러한 법치 국가에 사는 유림으로서는 아주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이가 없는 것은 은아를 강간한 조한 일행은 법으로 벌을 줄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그들이 미성년자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미성년자라는 이유 만으로 벌을 면해 주거나, 아주 작은 벌만을 주는 것입니다. [돈 크라이 마미]에서 판사가 조한 일행의 범죄에 대한 판결문을 읽을 때 저는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조한에게 먼저 만나자고 했으니 은아에게도 잘못이 있고, 은아의 상처가 전치 4주 밖에 안나오는 미미한 상처뿐이라는 말로 조한 일행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판사의 판결문은 영화를 보는 제게도 진정 충격을 안겨줬습니다.

 

그런데 정말 무서운 것은 그러한 판결이 영화의 재미를 위해서 과장된 것이 아닌 실제 우리나라의 법 체제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영화가 끝나면 엔딩 크레딧에서 자막으로 미성년자라는 이유 만으로 성폭력 사건에서 면죄부를 얻은 사례를 일일히 나열합니다. 이것이 법치 국가라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면서...

우리는 분노를 해야합니다. 그저 영화 보기에 그치지 않고 이러한 부끄러운 현실에 분노를 하며 끔찍한 성폭력 사건을 일어날 때마다 여론을 의식한 별 효과했는 대비책만 내놓는 정부에 더 강력한 처벌을 요구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돈 크라이 마미]는 상당히 정치적인 영화입니다. 김용한 감독은 [돈 크라이 마미]를 통해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주제를 직설적으로 관객에게 풀어 보여줍니다. 그리고는 유림이 느끼는 분노에 동참하라고 재촉합니다.  

그러한 김용한 감독의 직설법은 영화의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심해집니다. 김용한 감독은 박준과 한민구가 재판이후 은아를 상대로 벌이는 충격적인 짓거리를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미성년자 성폭행범의 재범률을 효과적으로 표현합니다. 법이 그들을 처벌하지 못하면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하거나, 이미 피해를 본 이들에게 더 큰 아픔을 줄 것이라며 직설적으로 관객에게 호소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범죄자는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자이다.

 

그렇다면 과연 왜 미성년자의 범죄에도 단호한 법의 처벌을 내려야 하는 것일까요? 단지 피해자의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그러한 이유 때문만은 아닙니다. 가해자에게 '이건 끔찍한 범죄다.'라는 인식을 줘서 다시는 이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끔 죄책감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미성년자 범죄가 무서운 것은 정신적으로 아직 성숙하지 못한 아이들이 저지르는 범죄이기 때문입니다. [돈 크라이 마미]에서 재판 이후 박준과 한민구는 이런 대화를 나눕니다. '예전에는 그냥 합의만 하면 끝났었는데, 이번엔 재판까지 가서 겁 먹었다'라고...  

미성년자의 범죄를 가혹하게 처리하면 안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이제 막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성인이 되기 전에 이미 범죄자라는 굴레를 씌우는 것은 가혹하다고 합니다. 성인이 되기 전에 범죄자가 된 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취업에 제한을 받게 되고, 결국 범죄의 길을 접어 들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법으로 처벌하기 보다는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들이 그런 범죄의 길에 접어든 것은 그들을 가르쳐야 하는 어른이 옳고 그름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시 곰곰히 생각하다면 그러한 논리는 틀렸습니다. 법으로 그들의 옳고 그름을 가르치지 못한다면 과연 그들은 자신의 행위가 잘못이라는 인식을 할 수 있을까요? 법으로도 처벌할 수 없는 그들을 어떻게 올바른 길로 인도하겠다는 건가요?

 

결국 미성년 범죄자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 역시 법이 해야할 일입니다. 그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 그에 합당한 죄의 댓가를 치루게 함으로서 '내가 한 행동이 잘못된 것이구나.'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 반성하고, 죄책감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하는 것입니다.

[돈 크라이 마미]는 미성년자 범죄에 대한 좀 더 강력한 처벌을 통해 요구합니다. 그러면서 김용한 감독은 영화적 재미를 위해 은아를 잃은 유림의 처절한 복수극으로 영화의 후반을 마무리합니다.

유림은 [테이큰] 처럼 액션이 가능한 부모가 아니기에 조한 일행을 향한 유림의 복수극은 관객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더욱 먹먹하게 만들 뿐입니다. 어쩌면 김용한 감독이 노린 것도 그러한 먹먹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분들이 유림의 분노는 이해하지만 그러한 분노를 표현하는 영화의 방식이 너무 서툴렀다는 평이 지배적입니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특히 오형사(유오성)의 대처는 아무리 생각해도 미숙했습니다. 유림의 복수는 영화를 보는 관객의 마음이 후련하게 하는 대리만족을 안겨주지도 못했고, 치밀함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저 또 한 명의 희생자를 양산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한다면 은아를 지키지 못한 유림은 이미 그 순간부터 산 사람이 아닌 죽은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돈 크라이 마미]는 그러한 부분을 영화적으로 표현했지만 같은 부모의 입장에서는 유림의 희생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물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위로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한 'Don't Cry, Mommy'는 은아가 유림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입니다. 극복할 수 없는 너무 큰 마음의 상처를 입은 은아는 마지막 순간 홀로 남겨진 엄마를 걱정했습니다.

은아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죽음으로 가장 큰 상처를 입게 될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엄마라는 사실을... 은아는 바로 그러한 엄마를 위로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은아는 그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그녀 마음의 상처는 너무나도 컸으며, 법으로조차 보호받지 못한 그녀는 모든 희망을 잃은 것입니다. 미성년자라는 이유 만으로 피해자 대신 가해자를 더 보호해주는 우리나라의 이상한 법의 실체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는 분노를 느껴야 했습니다. 제 옆에는 훌쩍거리는 여성 관객의 울음 소리가 들렸지만 저는 눈시울조차 뜨거워지지 않았습니다. [돈 크라이 마미]는 슬픔보다는 분노를 관객에게 요구한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김용한 감독이 요구한 분노를 느끼며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하지만 'Don't Cry, Mommy'라는 은아의 마지막 메시지 앞에서는 그러한 제 분노도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얼마나 많이 아팠을까요? 가해자들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피해자가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상황. 그것이 바로 성범죄입니다. 은아의 아픈 마음이 느껴져, 영화를 보는 내내 슬픔 대신 분노를 느꼈지만, 그 메시지를 보는 순간만큼은 눈시울이 한 없이 뜨거워졌습니다.

 

[돈 크라이 마미]와 [남영동 1985]를 본 후에 저는 서둘러 웅이의 학교로 갔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교문 앞에서 저를 기다릴 웅이를 데리러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교문에서 해 맑게 웃으며 제게 뛰어오는 웅이를 보며 [돈 크라이 마미]가 더욱 아프게 느껴졌습니다. 유림 역시 은아를 키우며 천진난만한 은아의 웃음에 많이 행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더이상 은아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때 내가 현장에 있었다면... 그때 내가 조한이라는 아이를 경계하고 만나지 못하게 했다면... 영화에서는 생략되었지만 유림은 스스로 후회하고 죄책감을 느끼며 괴로워했을 것입니다. 그러한 그녀의 마음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기에 저는 더욱 아팠습니다.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돈 크라이 마미]는 잘 만든 영화는 결코 아닙니다. 김용한 감독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꺼내 놓지만 신인감독답게 결코 세련되지는 못했습니다. 투박하고 서투르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구 꺼내 놓는 어린 아이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서투른 이야기라도 그 이야기에 진심이 묻어 있다면 귀를 기울여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돈 크라이 마미]는 결코 잘 만든 영화는 되지 못했지만, 미성년자 성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김용한 감독의 이야기는 진심이 묻어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며 은아가 남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위로에 더욱 아팠고, 피해자 대신 가해자를 보호하려는 우리나라의 법에 더욱 분노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돈 크라이 마미]는 그런 영화입니다.

 

범죄를 저지른 미성년자에게 자신의 행위가 잘못된 행위라는 사실을 인지하게끔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미성년 범죄자를 처벌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