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2년 영화이야기

[자칼이 온다] - 막장 코미디보다 더 막장스러운 반전

쭈니-1 2012. 11. 22. 15:53

 

 

감독 : 배형준

주연 : 송지효, 김재중, 오달수, 한상진, 김성령

개봉 : 2012년 11월 15일

관람 : 2012년 11월 21일

등급 : 15세 이상

 

 

막장이라 소문난 영화가 보고 싶은 이유

 

11월 15일에 개봉하는 영화 중에서 [브레이킹 던 part 2]를 일찌감치 기대작 1순위로 정한 저는 기대작 2순위로 [자칼이 온다]를 선택했습니다. 제 계획이 일주일에 영화 두 편을 극장에서 보는 것이니 기대작 2순위까지는 극장에서 볼 가능성이 높은 영화인 것이죠.

제가 [자칼이 온다]를 기대작 2순위로 꼽은 이유는 꽤 많습니다. 요즘 저는 가벼운 한국영화가 심하게 땡기고 있습니다. 요즘 한국영화의 트렌드가 스릴러, 혹은 실화를 바탕으로한 무거운 주제의 영화들이다보니 한국 코미디영화를 보는 것이 힘들어졌습니다. 제가 [자칼이 온다]에 기대한 것은 코미디 영화로서의 가벼운 웃음이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송지효가 주연을 맡았다는 것 역시 [자칼이 온다]를 기대하게 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송지효는 [쌍화점]에서 몸을 아끼지 않는 연기로 저를 깜짝 놀라게한 배우입니다. 게다가 그녀는 최근 TV 예능 '런닝맨'에서 예능감을 폭발시키며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기도 합니다. 웅이와 제가 일요일 저녁이면 TV에 나란히 앉아 한 주간의 스트레스를 날리며 실컷 웃으며 즐기는 유일한 TV 프로인 '런닝맨'의 송지효가 나온다는 이유만으로도 [자칼이 온다]는 기대작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정은 시시각각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신작이 개봉하는 목요일에 기대작 1순위를 먼저 본 저는 일요일 저녁이나 늦어도 월요일 밤에는 기대작 2순위인 [자칼이 온다]를 보려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자칼이 온다]는 개봉 첫 주말 흥행에서 낮은 관객 동원력을 보이더니 동네 멀티플렉스에서 상영하는 스크린이 확 줄어들었고, 영화를 본 분들의 평가는 거의 '보지마! 수준이었습니다. 결국 구피는 [자칼이 온다]를 보지 않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고 저 역시 [자칼이 온다]는 나중에 다운로드 시장에 나오면 보는 것으로 정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갈대와도 같으니... 제가 다시 마음을 고쳐 먹고 혼자서라도 [자칼이 온다]를 보기로 결심을 한 것은 11월 22일에 새롭게 개봉하는 영화 리스트를 보고 나서입니다. 이번 주에 개봉하는 영화들은 유독 무거운 주제의 영화들만 포진되어 있더군요. [남영동 1985], [돈 크라이 마미]등 보고 싶은 영화들도 많이 있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마음이 굉장히 무거워질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꺼려지기도 했습니다.

이들 무거운 영화를 보기 전에 가벼운 마음으로 먼저 워밍업을 하자는 생각으로 큰 기대없이, 별다른 부담없이 저는 [자칼이 온다]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아주 약간의 가벼운 웃음이라도 안겨준다면 영화 자체가 막장이라도 만족하겠다는 생각으로...

 

 

전설적 킬러의 대명사 자칼

 

여러분은 '자칼'이라는 단어를 보면 무엇이 생각나시나요? 어쩌면 개과의 포유류 동물을 떠올리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저는 '자칼'이라는 단어를 보면 '킬러'라는 단어가 연상됩니다.

프레드 진네만 감독이 1973년 연출한 스릴러 [자칼의 날]과 마이클 카튼 존스 감독이 브루스 윌리스와 리처드 기어를 기용하여 만든 1997년작 [자칼]이라는 영화 때문이죠. 이들 영화는 전설적인 킬러 '자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들입니다.

이들 영화 덕분에 '자칼'은 전설적인 킬러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들 영화들은 사실 영국의 소설가 프레드릭 포사이드가 1971년 발표한 소설 '자칼의 날'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실제로 '자칼'이라는 별명으로 활약한 킬러도 존재한다고 합니다. 일리치 라미레스 산체스라는 본명을 가진 이 테러리스트는 1973년 유태계 백만장자 암살을 시작으로 악명을 떨쳤습니다. 그러한 그를 서방 언론이 프레데릭 포사이스의 소설 '자칼의 날'에 나오는 청부살인업자를 연상한다고 해서 '자칼'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고 하네요. 그는 결국 1994년 프랑스 경찰에 체포되어 파리의 교도소에서 종신형으로 복역중이라고 합니다.

배형준 감독은 바로 킬러의 대명사인 '자칼'을 끌어 들입니다. 영화 제목도 [자칼이 온다]이고, 영화의 주인공도 자신을 전설의 킬러 '자칼'이라 소개하는 봉민정(송지효)과 그녀에게 잡힌 한류 스타 최현(김재중)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자칼이 온다]는 전설적인 킬러 '자칼'을 영화의 소재에 끌어들인 만큼 '자칼'의 명성에 걸맞는 '자칼'의 활약을 담고 있을까요?

[자칼이 온다]의 이야기는 바로 이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소재는 전설의 킬러 '자칼'이지만 영화 장르가 코미디이다보니 영화 속의 모든 캐릭터들은 우스꽝스럽게 희화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전설적 킬러 '자칼'이라 주장하는 봉민정의 캐릭터 역시 마찬가지인데, 그녀의 어리버리한 행동은 '자칼'이라는 전설의 킬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실제로 배형준 감독은 영화의 오프닝씬에서 '자칼'의 정체를 보여줍니다. 그럼으로서 봉민정이 진짜 '자칼'이 아닌 짝퉁 '자칼'임을 은근슬쩍 내비칩니다. 그러면서 짝퉁 '자칼' 봉민정과 그녀에게 납치된 최현의 코믹한 에피소드를 배치하고 관객을 웃기려 합니다. 이름만 들어도 섬뜩한 전설의 킬러 '자칼'로 웃기겠다고 덤벼든 [자칼이 온다]의 무기는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보여준 실제 '자칼'은 모습을 감춘채 어느순간 잊혀지고, 짝퉁 '자칼' 봉민정과 그녀를 어떻게든 속여 위기를 벗어나려는 최현, 그리고 그 주위를 둘러싼 여러 인간 군상들은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를 생산하며 '이래도 안웃을래?'라고 관객에게 들이댑니다.

문제는 '이래도 안웃겼다.'라는 점입니다. 영화는 작정하고 관객을 웃기려 덤벼드는데, 그러한 영화를 보는 관객석에는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자칼이 온다]의 코믹 코드가 실패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며, 이 영화의 평이 부정적인 이유입니다.

 

 

[그녀를 믿지마세요]의 코믹 감각은 도대체 어디로?

 

[자칼이 온다]의 배형준 감독은 2004년 [그녀를 믿지 마세요]라는 코미디 영화로 성공적인 데뷔를 한 감독입니다. [그녀를 믿지 마세요]는 김하늘과 강동원을 내세운 영화로 이제 막 출소한 어느 사기꾼 여성이 우연히 순진한 시골 청년과 엮이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코미디입니다.

[그녀를 믿지 마세요]가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천연덕스럽게 귀여운 사기꾼 여성을 연기한 김하늘의 매력도 한 몫했지만, 시골 사람들의 시끌벅적한 소동극도 영화의 재미에 크게 한 몫을 했습니다.

[자칼이 온다] 역시 무대는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의 자그마한 호텔입니다. 모텔에서 호텔로 승격한지 며칠 되지 않는 이 곳에서 핸섬한 한류스타 최현과 어리버리한 짝퉁 킬러 봉민정의 소동극 외에도, '자칼'을 잡기 위해 서울에서 파견된 엘리트 형사 신팀장(한상진)과 시골 형사 마반장(오달수)이 서로 대립하며 코믹한 에피소드를 만들어냅니다. 

이건 마치 [그녀를 믿지 마세요]에서 사기꾼 도시녀가 순진한 시골에서 여러 사람들과 부딪히며 겪는 에피소드를 연상시킵니다. [소년은 울지 않는다]로 잠시 외도를 했던 배형준 감독이 다시 자신의 주특기인 시골을 무대로한 시끌벅적한 코미디 영화로 귀환한 것입니다.

 

그런데 안웃깁니다. [자칼이 온다]를 보며 정말 [그녀를 믿지 마세요]의 배형준 감독의 영화가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안웃깁니다. [그녀를 믿지 마세요]를 연출한지 8년 만에 배형준 감독의 코믹 감각은 전부 어디론가 증발해버린 것 같습니다.

[자칼이 온다]가 안웃긴 이유는 너무 과장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를 믿지 마세요]는 관객을 웃기려 덤벼들면서도 어느 정도의 선은 지켰습니다. 코믹한 분위기를 만들려면 어느 정도의 과장은 필요한 법이지만 그것이 선을 넘으면 유치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녀를 믿지 마세요]는 바로 그 선을 적당히 지켜냈던 것입니다.

하지만 [자칼이 온다]는 그러한 선 따위를 지킬 생각이 애초에 없었다는 듯이 초짜처럼 마구 덤벼듭니다. 결국 영화는 선을 넘은 과장의 길로 들어서고, 이를 지켜봐야 하는 관객은 유치함에 하품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자칼이 온다]에서 선을 넘은 과장의 한 예를 들어보자면 최현이 자신은 최현이 아니고 짝퉁 가수 최헌이라고 우기는 부분입니다. 아무리 어리버리한 킬러라고 해도 봉민정은 그러한 최현의 주장을 곧이 곧대로 믿으며 시간을 끕니다. 그러는 사이 마반장과 신팀장이 현장에 옵니다. 그런데 그들은 최현과 봉민정의 변태 섹스인줄 알고 그냥 나갑니다. 아무리 코미디 영화라고 하지만 이러한 설정을 보고 웃는 관객은 드뭅니다. 그저 이 답답한 설정에 가슴을 치며 '쟤네 왜 저러는걸까요?'라고 반문하고 싶은 생각만 들 뿐입니다. 

 

 

차라리 막장으로 끝났다면... (스포 포함)

 

하지만 [자칼이 온다]의 진짜 문제는 영화의 반전이 시작되는 후반부입니다. 배형준 감독은 '반전이야. 깜짝 놀랬지?'라며 뜬금없는 반전을 꺼내듭니다. 그런데 이 반전이라는 것이 과장 섞인 영화의 전, 중반보다 더 최악입니다.

이 영화의 반전은 봉민정이 정말 '자칼'이라는 설정입니다. 그녀는 짝퉁 '자칼'을 없애기 위해 최현 납치를 이용한 것입니다. 뭐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설정입니다. 여기까지는... 그런데 봉민정이 최현을 질질 끌며 살려준 이유가 어이없습니다. 최현에게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네요. 결국 어리버리 봉민정 설정은 최현과 러브 라인을 만들기 위한 작전이었던 셈입니다.

저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갑자기 뜬금없이 최현과 봉민정의 러브 라인을 꺼내듭니다. '자칼'의 계획이 완벽하게 성공한 셈입니다. 이렇게 '자칼'의 계획은 완벽하게 성공했는데... 영화를 보는 제 입가에선 쓴 웃음만 나옵니다.

차라리... 차라리 말입니다. 그냥 봉민정이 짝퉁 킬러였다는 설정이 나을 뻔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아무도 죽이지 못하고 어리버리 소동만 펼치다가 얼떨결에 진짜 '자칼'을 처치하는 것이 더 나을 뻔했습니다. [자칼이 온다]는 봉민정이 진짜 '자칼'이라는 반전을 위해 과장된 전, 중반보다 더욱 심각한 억지스러운 후반을 완성한 셈입니다.

 

게다가 문제는 이것 뿐만이 아닙니다. 봉민정이 '자칼'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자칼이 온다]는 본의 아니게 '자칼'의 범죄를 미화해 버렸습니다.

아무리 전설의 킬러 '자칼'의 신출귀몰한 행위라고 할지라도 살인은 범죄입니다. 봉민정은 안젤라(김성령)를 죽였고, 그 이전에도 수 많은 살인을 저지른 잔인한 살인자일 뿐입니다.

[그녀를 믿지 마세요]의 사기꾼 영주(김하늘)는 자신의 죄값을 치뤘고, 이젠 평범한 삶을 살기로 결심함으로서 관객으로부터 면죄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칼이 온다]의 봉민정은 죄값은 물론,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봉민정의 범죄를 송지효의 매력으로 덮기에는 그녀가 저지른 살인이라는 범죄 자체가 너무 끔찍합니다.

그러나 배형준 감독은 별 것 아니라는 식으로 봉민정의 범죄를 덮어버립니다. 그리고 짝퉁 '자칼'을 희생양으로 내세워 영화를 급하게 마무리짓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웃으라고요? 살인을 저지르고도 아무런 죄의 댓가도 없이 유유자적하게 브에노스아이레스로 떠나려는 봉민정의 모습과 그런 봉민정에게 전화해서 나와 함께 일해보자며 새로운 청부 살인을 의뢰하는 최현의 미소를 보며 웃으라고요? 

아무리 우리가 사는 사회가 무서워졌고, 이제 살인은 자극적인 범죄 축에 끼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고 해도 봉민정의 살인을 코미디로 이용하려는 이 영화의 설정이 어이없었습니다. 차라리 막장 코미디라면 그러려니 하고 즐겼을텐데, 봉민정의 살인을 멋지고, 웃기게 표현하는 영화의 후반부는 막장 코미디보다 더 막장스러웠습니다.

 

고작 코미디 영화의 설정가지고 뭐 그렇게 열을 내냐고?

난 살인이라는 끔찍한 범죄를 보며 웃고 싶은 생각은 없다.

전설의 킬러 '자칼'의 마지막 살인으로 코미디 영화를 만들겠다는

감독의 의도 자체가 막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