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2년 영화이야기

[업사이드 다운] - 중력을 거스르려면 좀 더 강력한 뭔가가 필요해!

쭈니-1 2012. 11. 12. 11:21

 

 

감독 : 후안 디에고 솔라나스

주연 : 커스틴 던스트, 짐 스터게스

개봉 : 2012년 11월 8일

관람 : 2012년 11월 9일

등급 : 12세 관람가

 

 

영화의 상상력이 날 사로잡았다.

 

가끔 너무 독특한 상상력만으로 저를 사로 잡는 영화가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설정을 생각을 했지?'라고 저를 놀라게 하는 영화들... 그러한 영화적 상상력은 제가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이자 원동력입니다.

[업사이드 다운]도 그런 영화입니다. 영화의 예고편을 보자마자 저는 곧바로 이 영화에 빨려들고 말았습니다. 두 개의 행성이 거꾸로 마주보며 하나의 태양을 따라 공존하는 세상. 두 행성의 사람들은 위 아래에서 서로 맞닿아 있지만 서로 다른 중력 때문에 각각의 행성에 다가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업사이드 다운]은 이 독특한 영화적 상상력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로미오와 줄리엣' 식의 금지된 사랑입니다. 독특한 상상력으로 완성된 영화적 세계임을 감안할 때, 그 속의 메시지는 꽤 고전적이고 일반적인 셈입니다.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금지된 사랑이라는 주제는 사랑, 그 이상의 많은 것을 담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업사이드 다운]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중력을 가진 행성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양극화 현상을 비유하기도 합니다.

 

상부의 행성에 사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부유합니다. 그들은 하부 행성의 자원을 싸게 사서 원료를 만든 이후 비싸게 하부 행성에 되팝니다. 그렇게해서 얻어진 부가 상부 행성을 지탱합니다.

하부 행성의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가난합니다. 그들은 하루 종일 일을 하지만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하루 하루를 겨우 버틸 수 있을 정도의 식량 뿐입니다. 이건 마치 근대의 서양 제국주의와 그들이 부를 지탱하기 위해 서로 경쟁적으로 침략했던 식민지를 보는 것 같으며,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력을 제공하는 서민과 그러한 서민의 노동력을 통해 부를 축적인 재벌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가진 자들은 못가진 자들을 착취하여 부를 얻었으면서 그들을 핍박하고, 무시합니다. 상부 행성의 사람들이 하부 행성의 사람들을 대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상부 행성의 에덴(커스틴 던스트)와 하부 행성의 아담(짐 스터게스)은 사랑에 빠집니다. 과연 그들의 사랑은 이 케케묵은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의 관계를 전복시킬 수 있을까요?

[업사이드 다운]은 SF의 상상력을 통해 영화적 세계를 완성했고, 그 안에 고전적인 금지된 사랑이라는 주제를 끌어내며 대중성을 확보하고, 근대 제국주의부터 이어온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에 칼날을 들이댑니다. 과연 그러한 [업사이드 다운]의 도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

 

 

주인공 이름에 대한 재미있는 고찰

 

결론부터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업사이드 다운]에 제가 너무 많은 것을 원했는지도 모르지만, 저는 영화가 끝나고 뭔가 굉장히 허전함을 느껴야 했습니다. [업사이드 다운]이 이루어 놓은 시각적 효과는 분명 아름다웠지만, 그 안에 구축되어 있는 이야기는 중반 이후 급속도로 힘을 잃어 버렸고, 마지막은 대충 급하게 마무리된 듯했기 때문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부터 아담과 에덴의 금지된 사랑의 그 어떤 부분이 저를 만족시키기에 부족했는지, 그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주인공의 이름을 주목해 주세요. 남자 주인공의 이름은 아담이고, 여자 주인공의 이름은 에덴입니다. 네, 맞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교회를 다니지 않아도 왠만하면 모두들 잘 아는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인간 아담과 아담이 이브와 함께 살았던 지상 낙원 에덴을 뜻합니다.

저는 [업사이드 다운]을 보며 '왜 여자 주인공의 이름이 이브가 아닌 에덴일까?'라는 의문을 품었습니다. 로미오에겐 줄리엣이 있듯이 아담에겐 당연히 이브가 짝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보니 여자 주인공의 이름이 이브가 아닌 에덴인 이유를 알겠더군요.

 

아담은 이브와 에덴 동산에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브가 하나님이 절대 먹지 말라고 경고했던 선악과를 먹게 되고, 결국 아담과 이브는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이브로 인하여 억울하게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아담. 그에게 에덴 동산은 다시 돌아가고 싶은 선망의 대상이었을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 지상으로 내려온 아담은 갖은 고생을 하면서 에덴 동산을 끊임없이 그리워했을 것입니다.

그러한 아담과 에덴 동산의 관계는 [업사이드 다운]에서 아담과 에덴의 관계로 드러납니다. 하부 행성에 사는 아담에게 상부 행성은 선망의 대상이었고, 상부 행성과의 유일한 끈인 에덴은 아담에게 유일한 희망이 됩니다.

사실 아담은 상부 행성의 만행으로 부모를 잃었습니다. 그렇다면 상부 행성에 대해 적개심을 가질 법도한데 아담에게 그러한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부 행성에 사는 에덴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적극적으로 그녀에게 다가섭니다. 그가 에덴을 몰래 만났다는 이유로 이모 할머니를 잃었을 때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말로는 상부 행성이 자신에게 한 일을 절대 잊지 않았다고 외치지만 그의 행동 그 어디에서도 상부 행성에 대한 적개심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에덴을 향한 사랑(혹은 선망)에만 매달립니다.  

 

 

그들의 사랑이 혁명으로 이어지지 않은 이유

 

[업사이드 다운]은 금지된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아담과 에덴의 사랑은 그러한 금지된 사랑을 충실히 표현해 냅니다. 하지만 제가 원한 것은 그 이상이었습니다.

상부 행성과 하부 행성이라는 매력적인 세계를 만들어 놓고 고작 금지된 사랑이라는 고전적인 이야기만 할 것이라 저는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제 글의 앞 부분에서 밝혔듯이 [업사이드 다운]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인 양극화를 상부 행성과 하부 행성이라는 SF적 상상력으로 비유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담과 에덴의 사랑이 상부 행성과 하부 행성의 양극화를 뒤집는 혁명으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한 것입니다.

하지만 아담에겐 혁명 의지가 없습니다. 그저 에덴에 대한 무조건적인 선망만 있을 뿐입니다. 그저 앞뒤 가리지 않고 에덴에게 가기 위해 무모한 모험을 하는 모습을 보며 저는 아담에게 점점 실망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는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에덴을 향한 선망(혹은 사랑)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빈껍데기에 불과한 캐릭터였던 것입니다.

 

결국 아주 작은 혁명은 이뤄집니다. 하지만 그러한 혁명을 이뤄낸 것은 아담이 아닙니다. 상부 행성 사람들인 밥과 에덴이 이루어낸 혁명입니다. 혁명이 필요한 것은 하부 행성의 사람들인데, 상부 행성의 사람들로 인하여 혁명이 완성되었으니 그러한 혁명이 완벽할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업사이드 다운]은 상부 행성과 하부 행성의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불안전하지만 그래도 작은 혁명을 이루어 놓았으면서 그러한 혁명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아담과 에덴의 사랑에 대해서만 마지막까지 집착할 따름입니다.

제가 [업사이드 다운]에 실망한 것은 바로 이러한 부분 때문입니다. SF적 상상력으로 완성된 매력적인 세계가 그저 금지된 사랑이라는 고전적 주제 만으로 만족을 느끼며 서둘러 영화를 끝내 버립니다. 뭔가 더 대단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업사이드 다운]은 '그냥 이것으로 만족해.'라며 스스로 그 이상의 이야기를 차단시켜버립니다.

이러한 실망감은 최근에 다른 영화에서 느낀 적이 있는데 바로 2011년 가을에 봤던 [인 타임]이라는 영화에서였습니다. [인 타임] 역시 시간이 화폐인 독특한 미래 세계를 구축해 놓고, 주인공의 의적 행위에 스스로 만족하며 그 이상의 무언가를 기대했던 저를 실망시켰었습니다. [업사이드 다운]을 본 후 [인 타임]이 떠오른 이유입니다.

 

 

분명히 시각적으로는 아름답다.

 

만약 저처럼 [업사이드 다운]에 금지된 사랑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 자체가 그러하듯이 그냥 금지된 사랑만으로 만족한다면 [업사이드 다운]은 시각적 아름다움과 함께 어느정도의 만족감은 안겨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일단 [업사이드 다운]이 이루어놓은 시각적인 아름다움은 상당한 수준입니다. 위와 아래에 각각의 중력이 공존하다보니 상부 행성과 하부 행성이 맞닿아 있는 풍경은 영화가 표현할 수 있는 최상의 아름다움을 안겨줍니다. 

특히 아담과 에덴이 만나 사랑을 나누는 산에서의 장면은 꽤 독특한데 아름다운 음악과 더불어 산에서의 장면은 아담과 에덴의 금지된 사랑을 최대한 아름답게 표현하는 최고의 명장면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렇게 불편한 자세로 어떻게 사랑까지 나눴는지는 아직까지 의문. ^^

그 외에도 [업사이드 다운]은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가 아닌 캐나다의 저예산 SF영화임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여러 판타스틱한 장면들을 연출해냈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지만 가족들이 정치적 이유로 망명하여 프랑스 국적을 가진 후안 디에고 솔라나스 감독은 아마도 조만간 할리우드의 러브콜을 받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업사이드 다운]은 이러한 시각적 아름다움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였습니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뭔가 굉장히 서둘러 끝맺음을 하는 모양새라서 더더욱 아쉬웠습니다.

중력을 거스르는 운명의 사랑이라는 거창한 광고 카피에 걸맞는 영화가 되려면 중력이라는 절대적인 힘을 압도할 수 있는 좀 더 강력한 뭔가가 필요했습니다. 분명 영화의 중반부까지는 아름다운 화면과 더불어 강력한 뭔가를 기대하게 하는 설정으로 이끌어 나갔습니다. 하지만 [업사이드 다운]은 무엇이 그리도 겁이 났는지, 혹은 급했는지, 서둘러 영화를 끝내며 관객들이 좋아할만한 달달한 해피엔딩으로 만족하라고 속삭입니다. 

금요일 밤. 늦은 시각에 [업사이드 다운]을 보고 극장을 나서는 길. 이 영화에 한껏 기대를 한 구피도, 저도 뭔가 형용할 수 없는 실망감을 안은채 그렇게 피곤함을 느끼며 집으로 향했습니다. 이 영화의 거창한 상상력과 아름다운 화면에 걸맞지 않은 초라한 해피엔딩에 실망하며...

 

 

그들의 사랑은 아름다웠지만...

평범한 사랑, 그 이상이 되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