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2년 영화이야기

[늑대소년] - 우직하고 충직한 짐승의 사랑이 눈물겹다.

쭈니-1 2012. 11. 2. 11:35

 

 

감독 : 조성희

주연 : 송중기, 박보영, 장영남, 유영석

개봉 : 2012년 10월 31일

관람 : 2012년 11월 1일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가을은 멜로의 계절

 

어느덧 바람이 쌀쌀합니다. 저희 회사는 벌써 보일러를 가동시켰고, 저는 두꺼운 회사 잠바로 온 몸을 꽁꽁 싸매고 있는 중입니다. 이제 막 11월에 들어선 날씨치고는 추워도 너무 추운 것은 아닌지...

이렇게 쌀쌀한 가을을 맞이하면 극장가에는 유행하는 영화 장르가 있습니다. 바로 멜로 영화입니다. 이것은 마치 하나의 공식 같은 것은데, 더운 여름에는 오싹한 공포 영화가, 가을에는 훈훈한 멜로 영화가 관객에게 좀 더 어필한다는 막연한 속설과 같은 것입니다.

사실 그러한 공식은 오래 전에 깨졌습니다. 여름에 몰아서 개봉하던 한국 공포영화들은 최근들어 계속 흥행의 쓴 잔만 들이키고 있으며, 멜로 영화 역시 잘 만든 영화라면 계절에 상관없이 흥행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으니까요. 결국 문제는 계절에 맞는 장르가 아닌, 영화의 만듦새일 뿐인 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늑대소년]은 쌀쌀한 가을, 아니 어느 계절이라도 잘 어울리는 멜로 영화입니다.

 

어쩌면 많은 분들이 [늑대소년]을 멜로 영화라 칭한 부분에서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늑대소년]은 멜로 영화가 맞습니다.

폐가 좋지 않아 한적한 시골 마을로 가족들과 이사를 온 순이(박보영). 그녀는 그곳에서 정체 불명의 소년 철수(송중기)를 만나게 됩니다. 철수의 정체는 영화의 제목에서 밝히듯이 늑대인간입니다.

이쯤되면 [늑대소년]은 호러, 혹은 판타지가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하지만 조성희 감독은 꿋꿋하게 [늑대소년]의 장르를 멜로로 밀어부칩니다.

영화 전체를 감싸는 순이와 철수의 풋풋한 사랑은 관객들에게 웃음을 안겨 주고, .주위의 방해로 인한 이별 장면에서는 여기 저기에서 여성 관객들의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결국 마지막 장면에 가서는 순이와 철수의 슬픈 사랑에 대한 여운을 안고 극장 밖을 나서게 됩니다.

그렇다면 과연 서양의 대표적 호러 소재인 늑대인간이 어떻게 해서 성공적인 멜로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일까요? 그럼 이제부터 늑대인간 철수와 몸이 약한 소녀 순이의 사랑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트와일라잇]? 우리에겐 [늑대소년]이 있다.

 

2주 후면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최종편인 [브레이크 던 PART 2]가 개봉합니다.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뱀파이어와 늑대인간, 그리고 인간 여성의 삼각 사랑을 다뤘기 때문입니다.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은 서양의 아주 오래되고, 전형적인 공포의 소재입니다. 사람의 피를 빨아 먹는뱀파이어, 보름달이 뜨면 무시무시한 늑대로 변하는 늑대인간. 서양의 오래된 설화를 바탕으로 할리우드 영화들이 만들어낸 이 두 캐릭터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오싹함을 안겨주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그러한 공포 캐릭터들이 근사한 판타지 멜로의 주인공으로 변신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출발점은 [트와일라잇]입니다. 잘 생긴 뱀파이어와 사랑에 빠진 인간 여성의 이야기라니... 이러한 소녀적인 감수성을 바탕으로한 원작 소설은 물론이고, 영화마저 대박이 나면서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은 공포의 소재로만 어울린다는 일반적인 편견이 산산조각 나고 말았습니다.

 

분명 [늑대소년] 역시 출발점은 [트와일라잇]과 같습니다. 철수가 무슨 연유로 '늑대인간'이 되었는지 영화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단지 배경이 1960년대로 6.25 전쟁이 한반도를 할퀴고 간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제시되고, 강한 군인을 만들고 싶다는 어느 과학자의 비틀어진 욕망이 후반부에 잠시 언급될 뿐입니다.

하지만 사실 그러한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트와일라잇]에서 에드워드(로버트 패틴슨)가 뱀파이어가 된 이유를 시시콜콜하게 설명하지 않은 이유와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철수의 외모입니다. 조성희 감독은 늑대인간 철수로 송중기를 캐스팅했습니다. 보기만 해도 훈훈한 외모에 모성애를 자극시키는 귀여움까지 간진한 송중기에게 야수의 위험함을 간직한 늑대인간을 맡기다니... 공포 영화의 관점에서 보면 미스 캐스팅으로 보이지만 [늑대소년]의 장르가 멜로라면 이건 거의 완벽한 캐스팅입니다. 조성희 감독이 애초부터 멜로적 관점에서 늑대인간의 설화를 소재로 택했다는 점을 엿볼 수 있습니다.

 

 

송중기와 박보영의 풋풋한 사랑으로 분위기를 만들다.

 

[늑대소년]은 한국판 [트와일라잇]을 목표로 하고 있는 영화인 것입니다. 그래서 영화의 거의 대부분은 철수와 순이의 사랑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폐가 약한 소녀 순이. 그녀는 자신의 약한 몸이 가족들에게 짐만 된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낍니다. 그녀가 밤에 어머니 몰래 꺼내든 일기장의 문구를 보면 자신에 대한 혐오가 가득 묻어나 있습니다.

그러한 그녀가 철수를 만납니다. 인간의 손길을 전혀 느껴 본 적이 없는 듯이 보이는 소년 철수. 그에게는 야수의 본능만이 남아 있습니다. 순이는 그러한 철수에게 인간으로서의 삶을 가르치려 합니다. 철수로 인하여 순이는 할 일이 생긴 것입니다.

철수에게 인간의 삶을 교육시키면서 '나는 아무짝에도 필요없는 아이'라는 자괴감이 사라진 것입니다. 철수를 만난 순이가 자괴감이 가득 묻어 있는 일기장을 덮고 애완견 훈련 책을 펼쳐 드는 것은 순이의 캐릭터 성격이 철수로 인하여 변하였음을 뜻합니다.

 

변한 것은 철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영화의 오프닝씬에서 철수를 키운 과학자는 철수를 인간으로 대하지 않습니다. 그를 우리 안에 가두고 그에게 짐승의 먹이를 줍니다.

그런 철수에게 순이는 어쩌면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철수에게 인간의 삶을 가르쳐주고, 따뜻한 노래를 불러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늑대소년]은 순이와 철수가 서로 만나 점차 변하는 과정을 꽤 세세하게 그려냅니다. 그러는 동안 영화는 온갖 풋풋한 장면들을 토대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훈훈하게 합니다.

철수와 순이가 얼굴에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했다가 가족들에게 들키는 장면은 어쩌면 불필요한 장면처럼 보이지만 순이와 철수의 풋풋한 사랑을 드러내는데 효과적으로 사용됩니다.(실제로 저는 그 장면이 약간 오글거렸는데, 오히려 다른 관객들의 반응은 박장대소였습니다.) [늑대소년]은 이렇게 영리하게 늑대인간과 소녀의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쉽게 변하는 인간의 사랑 VS 우직하고 충직한 짐승의 사랑

 

멜로 영화에서 주인공의 풋풋한 사랑만 있다면 심심할 것입니다. 조성희 감독은 그런 면에서 조역 캐릭터들을 적절하게 이용합니다.

특히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순이의 어머니 역을 맡은 장영남의 연기입니다. 우리들의 억척스럽고 정 많은 어머니의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낸 장영남은 순이와 철수의 사랑 이야기에 감초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물론 악역도 필요합니다. 영화의 초반 등장부터 '난 악당이요.'라고 얼굴에 써붙이고 등장하는 지태(유영석)가 그러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합니다. 그는 얄미운 악당은 물론이고, 철수의 야수적 본능을 일깨우게 하는 장면을 이끌어 내며 [늑대소년]에서 순이와 철수 다음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냅니다.

철수가 야수로 변하는 장면은 딱 두 장면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 두 장면 모두 순이를 위한 장면으로 호러적 분위기를 낭만적 분위기로 변환하는 역할을 해냅니다. 조성희 감독은 세세한 부분까지 꼼꼼하게 [늑대인간]이 완벽한 멜로 영화가 되도록 배려한 것입니다.

 

결국 이렇게해서 [늑대소년]은 한국적 웃음과 젊은 풋풋한 사랑, 그리고 가슴아픈 비극을 준비한 완벽한 멜로로 탄생됩니다.

[트와일라잇]은 서양의 감성에 맞춰져 있어서 국내 관객들에겐 오글거리는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실제로 벨라(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뉴 문]을 통해 '어장관리녀'라는 비꼬임을 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늑대소년]은 [트와일라잇]에서 시작했으면서  한국적 정서에 맞춰져 있습니다. 시골 사람들의 순진함이 웃음을 안겨주고, 순이와 철수의 사랑 역시 풋풋한 로맨틱 코미디와 아련한 비극 사이를 성공적으로 오갑니다.

마지막 장면이 약간이 논란이 있을 법하지만 순이의 사랑을 충직하게 기다리던 철수의 캐릭터에 비춰본다면 큰 무리는 없어 보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언제 어디서건 변하지만, 짐승의 사랑은 우직하고 충직하다는 점을 점을 감안한다면 순이와 철수의 사랑은 애초부터 비극으로 향해 있었을테니까요.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 밖은 여전히 차갑고 매서운 바람이 몰아쳤지만 제 가슴만은 훈훈하고 따뜻했습니다. 아마 이래서 가을에는 멜로 영화라는 공식이 만들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늑대소년]은 계절에 상관없이 훈훈한 멜로영화이지만, 가을에 보니 더욱 감성이 젖는 느낌입니다.

 

 

영화가 끝나고 다른 관객들은 일어서 극장 밖으로 나가지만

나는 한참동안 철수가 눈사람을 만드는 장면을 응시했다.

순이와 약속을 지키는 철수의 그 모습이 굉장히 행복해보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