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2년 영화이야기

[회사원] - 동질감과 이질감의 조화가 아쉽다.

쭈니-1 2012. 10. 27. 09:20

 

 

감독 : 임상윤

주연 : 소지섭, 김동준, 이미연, 곽도원

개봉 : 2012년 10월 11일

관람 : 2012년 10월 24일

등급 : 18세 이상 관람가

 

 

황금같은 휴가의 하루 동안 느낀 행복

 

10월 내내 바쁘다가 드디어 벼르고 별러서 연차 휴가를 냈습니다. 연차 휴가날 아침, 일찌감치 일어나 8시 20분에 극장으로 츨근(?) [로우리스 : 나쁜 영웅들]을 보고, 10분 정도 휴식 후 10시 35분에 [용의자 X]를 봤습니다.

베트남 쌀국수로 30여분의 점심시간을 떼우고 곧바로 1시 20분에 [회사원]까지 보고나니 시간은 낮 3시. [조조 : 황제의 반란]까지 보고 싶었지만 그러려면 지하철을 타고 다른 멀티플렉스로 가야 하는 상황. 아쉽지만 저는 하루 간의 짧은 연차 휴가 동안 세 편의 영화로 만족을 해야 했습니다.

컴컴한 극장 밖으로 나오니 햇살이 정말 따뜻하더군요. 평소같으면 사무실에서 별 감흥없이 창문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을 맞으며 덥다고 짜증을 내고 있었겠지만, 그날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편한 옷차림으로 맞이한 햇살은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지하철을 타지 않고 버스를 탄 이유도 아마 햇살이 너무 좋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버스 창 밖을 내다보며 사람들의 바쁜 모습도 구경하고, 햇살도 맞고... 그렇게 저는 황금 같은 연차 휴가를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좀 전에 봤던 세 편의 영화를 천천히 되씹어 보았습니다. [로우리스 : 나쁜 영웅들]은 금주법이라는 악법으로 인하여 나쁜 놈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삼형제의 영웅담이었고, [용의자 X]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완벽한 알리바이를 세우려했던 어느 천재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회사원]은...

마지막으로 본 [회사원]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니 참 이상한 매력이 있는 영화라는 느낌이 먼저 듭니다. 사실 저는 [회사원]에 대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스토리 라인이 부족하다는 혹평을 쏟아 냈고, 흥행 성적도 시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남자인 제가 소지섭의 매력에 이끌려 영화에 흠뻑 빠질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그런데 의외로 [회사원]을 되씹어보니 나도 모르게 가슴이 아릿한 것입니다. 어쩌면 지형도(소지섭)가 원한 것도 제가 낮에 느낀 그 아름다운 햇살을 만끽하는 소소한 행복이 아니었을까요? [회사원]은 킬러 액션이라는 장르로 덮어져 있지만 지형도에게 킬러라는 직업을 빼고 나면 회사에 얽매여 아둥바둥거리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직장 생활은 어떻습니까?

 

영화의 첫 시작, 택배 차량에서 지형도 과장과 신입 알바생인 라훈(김동준)의 대화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형도는 훈에게 묻습니다. '너는 이 직장에 만족하니?'

사실 저 역시 20대 시절 그러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이렇게 대답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직장이 어딜가나 비슷하지 않나요? 그냥 월급만 꾸준히 잘 나오면 열심히 다닐려고요.' 

그런데 영화 속의 훈 역시 비슷한 대답을 합니다. 마치 나의 20대 시절을 보는 것만 같은 훈. 하고 싶은 일도 없고, 딱히 야망도 없습니다. 그저 월급이나 잘 받으며 물 흐르는대로 그렇게 조용히 살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일상적인 대화가 오고간 다음의 상황입니다. 훈은 택배기사로 변장하여 경찰과 경찰이 보호중인 증인을 몰살시킵니다. 그리고 훈은 형도에게 제거됩니다. 그러고보니 저 역시 월급만 잘 나오면 꾸준히 다니겠다고 생각했던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당했습니다. 저 역시 훈처럼 제거된 셈입니다.

[회사원]에 대한 제 첫 느낌은 그랬습니다. 형도와 훈의 일상적인 대화에서 제 20대 시절의 회사 생활을 떠오르며 형도와 훈에게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곧이어 이어진 킬러 액션에서는 낯선 이질감을 느꼈습니다. [회사원]은 동질감과 이질감이라는 서로 상반된 느낌을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제게 번갈아 느끼게 한 셈입니다.

 

[회사원]은 이런 식입니다. 형도가 느끼는 직장인의 비애는 제게 공감을 줬습니다. 하지만 형도의 직업이 킬러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액션 영화의 판타지를 채워 나갑니다.

어차피 회사에서 필요한 인원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내 위의 그 누군가가 스스로 회사를 나가거나, 아니면 내가 위의 누군가를 짓밟고 서지 않으면 진급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같은 회사를 다니는 동료로 포장되어 있지만 그들 모두는 결국 경쟁자인 셈입니다.

형도가 자신의 사수를 제거하고 부장으로 승진하는 장면은 그래서 참 의미심장합니다. 누군가는 밀려나고, 누군가는 그 밀려난 자리를 차지합니다. 산악 모임에서 동료들의 축복을 받으며 부장 명패를 받는 형도. 그의 씁쓸한 표정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회장의 아들이라는 명목으로 이사 자리를 꿰찬 권종태(곽도원) 이사라는 캐릭터도 옛 직장에서의 경험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대학을 막 졸업하고 다니던 직장에서 회장의 아들이라는 이유 만으로 사장 자리를 꿰찬 분이 계셨습니다.(딱 권이사같은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의 어린 아들은 회사를 제 집 드나들듯이 하며 싸가지의 진수를 보여줬었죠. 먼 훗날 제가 저 꼬맹이를 모셔야 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절망적이더군요. 결국 저는 1년도 채 되지 못해서 그 직장에 사표를 던졌습니다. 그런것이 바로 제가 체험한 직장 생활이고, [회사원]은 그런 직장 생활을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킬러 판타지... 과해도 너무 과했다.

 

하지만 [회사원]은 우리 시대의 직장인들이 느끼는 비애를 그리는 영화는 아닙니다. 이 영화의 진짜 목적인 킬러 액션이고, 그로인해 소지섭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사실 소지섭은 남자인 제가 봐도 멋지긴 하더군요. 그가 양복을 입은 모습을 보면 똑같은 양복인데 저와는 어쩜 저렇게 다른지(물론 옷걸이 차이겠지만... -_-) 자괴감을 들 정도였습니다.

특히 와이셔츠 위에 방탄조끼를 입는 무리수 패션에서도 '조끼가 멋지네요.'라는 영화 속 어느 여성의 대사처럼 그의 모습은 멋지기만 했습니다. 그의 별명이 왜 소간지인지 [회사원]을 통해 확실히 보여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임상윤 감독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과해도 너무 과한 설정을 하기 시작합니다. 형도가 회사 동료들을 몰살하는 장면은 소지섭의 멋진 액션 연기가 돋보이지만 영화의 현실성이 너무 떨어져서 오히려 눈살이 찌푸려졌습니다.

어쩌면 액션 영화는 판타지를 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부분의 액션 영웅들은 혼자 수 많은 적들을 물리칩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해보이는 것을 액션 영화들은 영웅을 내세워 관객의 판타지를 채워줍니다. 그런 면에서 임상윤 감독은 소지섭을 통해 킬러 액션 판타지를 충족시켜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의 문제점은 바로 이 시점에서 발생합니다. 현실과 판타지가 잘 조화를 이룬다면 [회사원]은 꽤 독특한 킬러 액션 영화가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찌되었건 형도가 느꼈을 직장인의 비애 부분에 저는 상당 부분 공감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만으로는 영화의 재미가 떨어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인지 [회사원]은 영화의 후반부에 가서 무차별적인 총기난사 장면으로 영화를 마무리짓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마지막 장면이 영화 전체와 어울리지도 않을 뿐더러 너무 과해서 긴장감을 느끼기에도 무리가 있다는 것이 [회사원]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물론 인상적이긴 했습니다. 사무실이 밀집된 곳이라면 어디에서건 볼 수 있는 평범한 정장 차림의 남녀 사원들이 총을 들고 형도를 죽이려는 장면은 신선하다 못해 충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수 많은 동료들이 난사하는 총을 맞으면서도 방탄조끼 하나로 멀쩡하게 버티고 일어나는 형도의 모습에서는 실망감만 느꼈습니다.

액션 영화의 판타지? 좋습니다. [회사원]은 어차피 킬러 액션 영화이고, 액션 영화의 판타지에 일정부분 기댈 수 밖에 없는 영화임을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너무 과하면 차라리 안하니만 못합니다. 덕분에 소지섭은 한껏 더 멋있어졌지만 소지섭이 멋있어진다고 해서 그것이 온전히 영화적 재미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 또한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대체적으로 좋았다.

 

분명 [회사원]은 아쉬운 점도 많은 영화입니다. 특히 마지막 클라이맥스의 과한 액션은 아쉽다못해 실망스럽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회사원]을 실망하기에는 개인적으로 매력적인 면이 더 많았던 영화입니다. 소지섭은 남자가 봐도 멋있었고, 김동준(저와 이름이 같아 더욱 애착이 갑니다. ^^)은 초반의 어색한 연기를 잘 극복하여 갈수록 연기자다운 면모를 보여줍니다.

특히 영화 중반 이미연의 출연은 너무나도 반가웠습니다. 사실 저는 이 영화에 이미연이 출연하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훈의 어머니로 이미연이 등장하다니 깜짝 놀랬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과거 인기 가수였다는 설정인데 이미연이 맡은 유미연은 제가 사춘기 시절 좋아하던 이지연(사랑을 쫓아 가수의 인기를 버리고 미국으로 훌쩍 떠나버린)이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사춘기 시절의 제 방에는 이미연과 이지연의 브로마이드가 벽에 도배되어 있다시피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유미연에게 눈빛이 흔들리는 형도의 모습이 공감되었습니다. 아마 고아였던 형도는 어린 시절의 우상을 통해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는지도 모릅니다. 미연을 쳐다보는 형도의 눈빛은 사랑하는 사람을 보는 눈빛이 아닌 존경하는 사람을 보는 눈빛이었거든요. 그래서 미연에게 찻집을 차려주고 싶었던 그의 마지막 소망이 더욱 가슴아팠습니다.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회사에만 너무 얽매이지 말고 개인적인 행복을 찾으라는... 네, 맞습니다. 이 세상에는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도 될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도, 직장도, 돈도, 자식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형도의 일상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채, 그저 회사를 위해 살아온 꼭두각시같은 나날이었습니다. 회사에서 사람을 죽이라면 죽이고, 동료를 배신하라면 하고, 그런 그에게 회사는 승진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안겨주지만 그것이 형도 개인의 행복이 되지는 못합니다.

과거의 우상이었던 미연을 만난 형도는 그녀와 함께 하며 개인적인 행복을 처음 맛봅니다. 어린 시절 고아였던 그는 언제나 살기 위해 바둥거렸기에 그런 행복을 맛볼 기회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처음 찾은 개인적인 행복을 지키기 위해 회사를 벗어나려 합니다.

그런 형도의 모습은 마치 내 모습과도 같습니다. 저 역시 회사의 굴레를 벗어나 연차 휴가를 냈던 그날처럼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영화를 보고, 영화에 흠뻑 취해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리뷰를 쓸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욱 행복할 것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지만, 그렇다고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 수도 없는 것이 우리들의 삶입니다. 자기 자신의 행복과, 남들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사회인으로서의 삶의 조화가 필요한 셈입니다. 동질감과 이질감의 조화가 필요했던 [회사원]처럼 말입니다.

 

 

[회사원]의 가장 큰 문제는 [아저씨]를 뛰어 넘지 못했다는 것이 아닌

동질감과 이질감의 조화를 마지막에 가서 스스로 무너뜨린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