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2년 영화이야기

[로우리스 : 나쁜 영웅들] - 악법도 법인 세상에서...

쭈니-1 2012. 10. 25. 10:45

 

 

감독 : 존 힐코트

주연 : 톰 하디, 샤이아 라보프, 가이 피어스, 제시카 차스테인, 미아 와시코브스카

개봉 : 2012년 10월 18일

관람 : 2012년 10월 24일

등급 : 18세 이상 관람가

 

 

무법천지... 미국의 금주법 시대

 

1917년, 미국 영토 내에서 알코올 음료를 양조및 판매, 운반, 수출입하지 못하게 하는 미국헌법 수정 제18조가 연방의회를 통과하였습니다. 그리고 각 주의 승인을 얻어 1920년 1월 미국의 금주법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미국에서 금주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은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 중 세계대전 참전에 따른 전시의 식량절약, 작업능률 향상이라는 문제와 더불어 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맥주로 유명한 독일에 대한 반감이 큰 몫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처구니없는 법이지만 당시에는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금주법을 지지하는 이들이 생각하는대로 금주법은 전시 미국의 식량을 절약하고, 작업 능률을 향상시켰을까요? 어쩌면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술을 양조하기 위해선 각종 곡식과 과일이 필요한데 그것이 금지되었으니 곡식과 과일들은 고스란히 식량이 되었을 것이며, 국민들이 술에 마시지 못하니 작업 능률도 향상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금주법은 그러한 장점보다 예상하지 못한 단점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오랜 세월 술을 즐겨온 사람들에게 강제로 술을 못마시게 하니 밀조, 밀매등 범죄가 크게 늘었고, 술을 밀수, 밀송, 밀매하는 갱단이 날뛰었습니다.

실제로 금주법 시대는 갱단의 전성 시대였습니다. 사람들은 술을 원하지만 정부가 술을 금지시켰으니 술에 대한 어마어마한 이권은 음성적으로 거래되었고, 그러한 이권을 갱단이 독차지하며 미국은 갱단의 천국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영화 [언터쳐블]로 유명한 미국의 대표적 마피아 보스 알 카포네가 바로 금주법 시대를 주름잡던 갱단으로 그는 밀주 사업을 통해 굉장한 부를 축적하였고, 그러한 부를 바탕으로 온갖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결국 1929년 10월 뉴욕 주식시장의 붕괴로 시작된 미국의 대공황 시대에 금주법은 유명무실화 되었으며 1933년 헌법수정 제21조에 의해 폐지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의 일입니다. 이러한 금주법의 웃지 못할 해프닝은 아무리 좋은 법이라도 억지로 시행할 경우의 부작용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로우리스 : 나쁜 영웅들]은 그러한 금주법 시대를 배경으로 한 갱스터 영화입니다.

 

 

왜 그들은 '나쁜 영웅들'인가?

 

[로우리스 : 나쁜 영웅들]은 금주법 시대를 배경으로 프랭클린 카운티라는 작은 시골마을에 사는 본두란가 삼형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입니다.

본두란가의 삼형제는 당시의 법의 잣대로 본다면 악당들입니다. 그는 법으로 엄연히 금지된 술을 양조하여 사람들에게 유통시킵니다. 하지만 그러한 그들의 불법 행위를 지역 주민들은 물론이고, 지역의 보안관들 마저 비난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술을 마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시카고에서 새로 부임한 특별수사관 찰리 레이크스(가이 피어스)가 밀주업자들에게 상납을 요구하고 나선 것입니다. 밀주 사업은 엄연히 불법이니 그것을 눈 감아주는 대신 뒷돈을 달라는 것이죠. 프랭클린 카운티의 대부분의 밀주업자들은 그러한 찰리의 요구에 무릎을 꿇습니다. 하지만 본두란가의 삼형제는 찰리에게 대항합니다. 결국 본두란가의 삼형제와 특별수사관 찰리의 대결이 펼쳐집니다. 

 

여기서 문제, 과연 법이 허용하지 않은 밀주 사업을 하는 본두란가의 삼형제가 악당일까요? 아니면 밀주를 단속하는 임무를 가지고 부임했지만 오히려 밀주 업자들의 뒤를봐주고 돈을 챙기려 하는 특별수사관 찰리가 악당일까요?

애매하시다고요?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금주법이라는 악법이 존재하는 상황이니 그러한 악법의 잣대로 악당과 영웅을 구별하는 것은 지금의 시점에서는 애매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영화의 원제인 'Lawless'는 '무법의, 무법 상태인, 법을 지키지 않는'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금주법 시대의 미국과 딱 어울리는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나라의 영화 수입업자는 '나쁜 영웅들'이라는 부제를 달았습니다.

이 영화는 본두란가의 삼형제가 부패한 특별수사관 찰리의 횡포에 맞서 싸우는 영웅담이지만, 그렇다고 본두란가의 삼형제를 당시의 관점에서 영웅이라고 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금주법이라는 악법이 본두란가의 삼형제에게 '나쁜 영웅들'이라는 굴레를 씌운 것입니다.

 

 

소년은 그렇게 남자가 되고, 남자는 그렇게 사랑에 빠진다.

 

차라리 [언터쳐블]처럼 선과 악이 확실하게 구분되는 영화라면 [로우리스 : 나쁜 영웅들]은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본두란가의 삼형제는 밀주 업자로 당시의 관점에서 범법자이고, 악당입니다. 그러한 본두란가의 삼형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이다보니 존 힐코트 감독은 본두란가의 삼형제 중 둘째인 포레스트(톰 하디)와 막내 잭(샤이아 라보프)의 캐릭터를 구축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합니다.(본두란가의 장남인 하워드 본두란의 캐릭터는 생략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로우리스 : 나쁜 영웅들]을 지루해 하시는 것도 바로 갱스터 무비이면서 포레스트와 잭의 캐릭터 구축에 영화의 대부분이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 형들에게 나약하다고 무시만 당하던 잭이 형들에게 인정받고, 연인인 베르사(미아 와시코브스카)에게 과시하기 위해 저지르는 일련의 사건들은 마치 잭의 소년에서 남자로의 성장담을 보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편에서는 순정마초 포레스트와 대도시 시카고를 떠나 조용히 살고 싶어서 프랭클린 카운티까지 흘러 들어온 댄서 매기(제시카 차스테인)의 러브 스토리가 잔잔하게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세세하게 구축된 본두란가 형제들의 캐릭터는 결국 본두란가의 삼형제가 금주법을 어긴 악당들이 아닌 부패한 경찰관 찰리와 맞서 싸우는 영웅이 되는 과정에서 관객의 감정이입을 이끌어 냅니다.

특히 적절한 타이밍에 크리켓(데인 드한)의 희생으로 영화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로우리스 : 나쁜 영웅들]은 클리아맥스를 관객 앞에서 펼쳐 놓습니다. 본두란가 삼형제와 찰리의 아슬아슬한 대립이 영화의 마지막에 폭발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클라이맥스에서도 상당히 흥미로운 점이 발견됩니다. 그것은 밀주 업자와 공권력의 대결이 아닌, 금주법으로 억울하게 범죄자가 된 선량한 사람들과 그러한 악법을 이용하여 부를 축적하려는 부패한 권력의 상징인 찰리의 대결로 펼쳐진다는 점입니다. 마지막 순간이 통쾌하셨다면 이미 여러분들도 본두란가의 삼형제를 악당이 아닌 영웅으로 받아들인 셈입니다.

 

 

지금 현재 우리 시대의 악법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로 유명한 소크라테스. 하지만 그의 사상은 아테네 법에 위배되어 그는 사형을 당하게 됩니다. 소크라테스의 명언 중에서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바로 그러한 악법에 의해 희생당한 것입니다.

[로우리스 : 나쁜 영웅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과연 우리 사회에 악법이 있다면 우린 소크라테스처럼 '악법도 법이다'라며 악법에 의한 희생을 묵묵히 받아들여야 할까요? 아니면 본두란가의 삼형제처럼 악법에 맞서 싸우며'나쁜 영웅'임을 자처해야 할까요?

법이라는 것이 시대에 따라서, 그리고 사회적 상황과 개인적 성향에 따라서 악법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뒤돌아보면 미국의 금주법처럼 '저 시대엔 저런 어처구니없는 법이?'라며 웃게될 법이 분명 지금 우리 나라에도 존재할 것입니다.   

 

최근 아동, 청소년 성폭력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여론이 들끓자 정부에서는 아동,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을 내 놓았습니다. 문제는 제2조제5호의 아동, 청소년 이용 음란물에 대한 법률에서 아동, 청소년을 지정하는 문구가 애매하다는 점입니다.

법률에 의하면 '아동, 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이라고 지정이 되어 있습니다. 이는 곧 성인이 등장하는 음란물이라도 아동, 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 또는 표현물이 출연하면 아동, 청소년의 성보호 법률에 걸려 범법자가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최근 언론과 많은 이들이 이러한 애매한 규정의 문제점을 지적하지만 아동, 청소년 성폭력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들끓는 가운데 그러한 문제는 덮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에 대한 반감으로 금주법이라는 악법을 시행한 1920년대 미국과도 비슷해 보입니다.

법이라는 것이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시행되어야 하는데, 이렇게 감성적으로 시행이 될 경우 그에 따른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로우리스 : 나쁜 영웅들]을 보고나서 지금 현재 제가 사는 2012년 대한민국의 현실이 문득 떠오릅니다. 참 씁쓸합니다.

 

나는 영웅 체질은 아니기에...

악법도 법이라며 충실히 따르며 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