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2년 영화이야기

[용의자 X] - 아무도 못 푸는 문제를 만드는 것이 더 어렵다.

쭈니-1 2012. 10. 26. 08:06

 

감독 : 방은진

주연 : 류승범, 이요원, 조진웅

개봉 : 2012년 10월 18일

관람 : 2012년 10월 24일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용의자 X의 헌신]에서 무엇이 바뀌었나?

 

2009년 4월 9일 [용의자 X의 헌신]이라는 제목의 일본 스릴러 영화가 국내에 개봉하였습니다. 사실 그 전까지만해도 일본 스릴러 영화라면 일본 특유의 잔인한 영화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용의자 X의 헌신]은 전혀 다른 분위기의 영화였습니다.

단 한 건의 살인 사건. 범인도, 범행동기도 이미 나와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용의자 X의 헌신]은 무엇으로 영화를 이끌어 나가려는 걸까요? 그것은 바로 '알리바이 깨기'입니다. 살인 사건의 범인인 야스코를 몰래 사모한 천재수학자 이시가미는 야스코를 위해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어 냅니다. 천재 탐정이자 물리학자인 유카와는 이시가미가 만들어 놓은 완벽한 알리바이를 깨야만 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셈입니다.

이러한 독특한 구성은 대학 동기이지만 서로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이시가미와 유카와의 팽팽한 대결 속에 영화 초중반을 이끌어 나갑니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이 되면 야스코를 향한 이시가미의 애절한 사랑으로 마무리됩니다. 두 천재의 팽팽한 두뇌 싸움으로 인한 긴장과 이시가미의 애절한 사랑에 의한 감정적 부분을 건드리며 [용의자 X의 헌신]은 꽤 독특한 스릴러 영화의 영역을 구축해냅니다.

 

배우로도 유명한 방은진 감독이 바로 그러한 [용의자 X의 헌신]을 리메이크하여 [용의자 X]를 만들었습니다. 이미 [오로라 공주]를 통해 감성적 스릴러의 능력을 보여준 방은진 감독이기에 어쩌면 더욱 기대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방은진 감독이 [용의자 X의 헌신]을 리메이크하면서 가장 먼저한 일은 한국적 상황에 맞게 캐릭터를 변형시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탐정이라 하면 심부름센터 정도로 치부하는 상황에서 천재 탐정이자 물리학자인 유카와는 전형적인 한국적 형사인 민범(조진웅)으로 바뀌었습니다. 동물적 감각으로 예리하게 범인을 지목하는 민범은 한국영화가 만들어 놓은 전형적인 형사 캐릭터입니다.

그리고 중년인 야스코와 이시가미의 나이도 낮추었습니다. 중년 배우가 주연을 맡을 경우 흥행력이 떨어진다는 판단 때문인지 30대 초반의 배우인 류승범과 이요원이 천재수학자 석고와 살인사건의 범인인 화선역에 캐스팅되었습니다. 그럼으로서 자연스럽게 야스코의 딸은 화선의 조카로 설정이 바뀌었습니다. 과연 이러한 변화가 [용의자 X]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까요?

 

 

군형이 깨지다.

 

먼저 한국적 상황에 맞게 변형된 캐릭터에 의한 아쉬움을 먼저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용의자 X의 헌신]의 재미는 두 천재의 팽팽한 대결입니다. 이시가미는 유카와에게 묻습니다. '아무도 못 푸는 문제를 만드는 것과 그 문제를 푸는 것 중에서 어느 것도 더 어려울까?' 결국 [용의자 X의 헌신]은 아무도 못 푸는 문제를 만든 이시가미와 그것을 풀어야 하는 유카와의 대결인 셈입니다.

하지만 [용의자 X]에서 민범은 천재 물리학자가 아닙니다. 그는 그저 동물적 감각이 뛰어난 형사일 뿐입니다. 애초부터 천재 수학자인 석고와 게임 자체가 되지 않는 셈입니다. 상황이 그러하니 초반의 팽팽한 대결은 없습니다. 그저 민범은 다른 형사 캐릭터가 그러하듯이 적당히 예리하고, 적당히 까불며 영화의 분위기를 밝게 만드는 역할만 할 뿐입니다. 이렇게 균형이 깨진 것은 천재 물리학자 유카와의 캐릭터를 평범한 형사 민범으로 바꾼 탓입니다.

 

이렇게 균형이 깨지다보니 [용의자 X]는 너무나도 당연히 석고의 이야기가 되어 버립니다. 석고와 민범의 팽팽한 대결이 애초부터 불가능한 만큼 방은진 감독은 영화의 모든 시선을 석고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초점이 맞춰버립니다.

영화 초중반까지 팽팽한 대결로 인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후반에 비밀이 벗겨지며 이시가미의 슬픈 사랑이 펼쳐졌던 [용의자 X의 헌신]과는 달리, [용의자 X]는 처음부터 끝까지 석고의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영화를 이끌어 나갑니다.

그러니 당연히 스릴러 영화의 긴장감이 [용의자 X]에서는 부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석고의 슬픈 사랑에 의한 비극적 분위기가 조성되기만 할 뿐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보고 스릴러 영화가 아닌 멜로 영화를 본 느낌이라고 평하는데에는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딸이 아닌 조카를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화선의 캐릭터도 좀 더 설명이 필요한 듯이 보였지만 [용의자 X]는 모든 역량을 석고에게 집중시킵니다. 그러한 방은진 감독의 선택은 스릴러 영화로서는 단점이었지만 어느 외로운 천재의 슬픈 사랑 이야기에서는 장점으로 발휘됩니다.

 

 

아무도 못 푸는 문제를 만드는 것과, 그러한 문제는 푸는 것.

 

[용의자 X의 헌신]에서도 '아무도 못 푸는 문제를 만드는 것과 그러한 문제를 푸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어려울까?'라는 질문이 화두가 되었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용의자 X의 헌신]을 봤던 당시만 해도 그러한 질문에 대답을 선뜻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는 편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용의자 X]는 영화 전체를 석고에게 집중한 덕분에 제게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안겨줬습니다. 분명 아무도 못 푸는 문제를 만드는 것이 훨씬 더 어렵습니다.

아무도 못 푸는 문제를 만든다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제로의 상태에서 문제 자체를 새롭게 창조해야 함을 뜻합니다.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기발한 문제를 만들어야 하며, 그에 따른 모든 변수를 감안해야 합니다. 작은 그 무엇이라도 놓치면 문제의 완벽성은 훼손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와 반대로 아무도 못 푸는 문제를 푸는 것은 조금은 쉬운 문제입니다. 그 이유는 문제 자체가 이미 제시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역량을 문제에 집중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문제를 만드는 것과 문제가 이미 제시된 상황에서 그 문제를 푸는 것... 당연히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문제를 만드는 것이 더 어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석고도 그러한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자신의 천재성을 모두 발휘하여 완벽하게 화선의 알리바이를 만들어 냅니다. 그 누구도 화선의 알리바이를 깨지 못할 완벽한 문제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감안하지 못한 변수가 발생합니다. 그것은 바로 민범입니다. 자신과 고등학교 동창인 민범이 사건의 담당 형사로 오게 되면서 그의 완벽한 문제에 균열이 가기 시작합니다.

민범이 천재일 필요도 없습니다. 민범은 그저 감안하지 못한 변수일 뿐이지만 이 작은 변수 하나가 석고의 완벽한 문제를 무너뜨립니다. 민범에게 '아무도 풀 수 없는 완벽한 문제를 만드는 것과 그것을 푸는 것 중에서 어느 것도 더 어려울까?'라는 석고의 질문은 어쩌면 해답을 알고 있는 좌절감에서 나온 푸념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완벽한 문제가 민범에 의해 풀리게 될 것임을 이미 예견한 것이죠. 

방은진 감독이 [용의자 X]의 모든 역량을 석고에게 쏟아 부은 것에 대한 결실은 바로 후반부에 맺어집니다. 자신의 만든 문제가 풀리게 될 것임을 예감한 석고의 그 흔들리는 눈빛. 영화는 거의 2시간 동안 차근 차근 준비된 석고의 비극을 [용의자 X의 헌신]보다 더욱 심도 깊게 잡아냅니다.

 

 

천재가 천재를 연기하다.

 

어디에선가 [용의자 X]를 두고 '천재가 천재를 연기하는 것을 보는 즐거움'이라고 평하였습니다. 저는 보지 않은 영화의 리뷰는 잘 읽지 않는 편이라 본문 글은 읽지 않았지만 그래도 리뷰의 제목 만큼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용의자 X]는 류승범을 위한 영화입니다. 류승범... 그의 이미지는 유쾌발랄한 반항아였습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품행제로], [아라한 장풍 대작전] 등의 영화에서 그는 자신의 이미지를 꾸준히 구축해 놓았습니다.

하지만 그도 이제 30대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더이상 교복을 입고 반항아 연기를 한다는 것은 무리가 따릅니다. 물론 그도 그러한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사생결단], [용서는 없다], [부당거래]를 통해 개성 강한 악역에 도전 하며 자신의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뒤집었으니까요.

그러한 상황에서 [용의자 X]는 류승범의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개성 강한 악역으로 반항아 이미지를 벗어나긴 했지만 또 다른 이미지에 갇힐 수도 있는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용의자 X]는 반항아도, 그렇다고 개성 강한 악당도 아닌 캐릭터로 류승범이라는 배우를 관객에게 인지시키고 있습니다.

 

저는 [용의자 X]를 보며 이런 결심을 했습니다. 만약 내가 [용의자 X]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눈시울이 뜨거워지지 않는다면 과감하게 [용의자 X]를 실패작이라 평할 것이라고...

천재 대 천재의 대결을 제대로 잡아내지 못한 이 영화가 석고의 사랑에 대한 슬픈 감성을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면 [용의자 X]는 [용의자 X의 헌신]에서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석고가 화선을 위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그리고 화선을 위한 마지막 선택이 무엇이었는지, 저는 전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석고가 화선에게 스토커 짓을 했을 때 설마 방은진 감독이 마지막 반전이라며 석고의 진실된 사랑을 훼손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결말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뻔히 아는 결말로 인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저는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눈물이 두 뺨을 흐르고 흘러 내리지는 않았지만 눈시울이 잠시 뜨거워진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용의자 X]는 일본의 원작을 한국적 상황으로 바꾸며 조금 무리가 있는 설정이 되었지만 류승범의 뛰어난 연기 덕분에 원작이 담고 있는 진한 감수성 만큼은 제대로 잡은 것 같습니다. 방은진 감독의 선택은 꽤 탁월했습니다.

 

 

방은진 감독은 하나를 포기하는 대신

다른 하나를 키워내는 집중력을 보여줬다.

둘 다 표현할 수 없다면 그러한 포기와 집중은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