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2년 영화이야기

[위험한 관계] - 검정과 하양이 만났을 때...

쭈니-1 2012. 10. 19. 10:38

 

 

감독 : 허진호

주연 : 장동건, 장쯔이, 장백지

개봉 : 2012년 10월 11일

관람 : 2012년 10월 18일

등급 : 18세 이상 관람가

 

 

검정색과 하얀색을 섞으면...

 

검정색은 가장 강렬한 색입니다. 거의 모든 색을 집어 삼킬 수 있을 정도로 검정색이 가지는 위력은 강력합니다. 하얀색은 가장 나약합니다. 다른 색과 섞으면 하얀색 고유의 순결한 느낌은 사라지고 맙니다.

그렇다면 이 검정색과 하얀색을 서로 섞으면 어떻게 될까요?  하얀색은 결코 검정에 삼켜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얀색의 순결함 역시 간직하지 못합니다. 그렇게해서 탄생하는 색이 바로 회색입니다.

제 개인적으로 회색은 색 중에서 가장 매력이 없는 색입니다. 강렬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순결하지도 않으며, 화려하거나 매력적이지도 못합니다. 검정색과 하얀색의 만남은 결국 회색이라는 비극을 낳을 수 밖에 없는 셈입니다.

[위험한 관계]를 봤습니다. [위험한 관계]를 보는 내내 저는 그 자체로도 강렬하고 순결한 검정색과 하얀색이 서로 사랑에 빠져 결국 비극으로 치닫는 안타까움을 경험했습니다. 원작을 알기에 그들의 사랑이 결코 해피엔딩이 아님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저는 마음 속으로 끊임없이 외쳤습니다. 너희는 절대 만나선 안된다고...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결국 회색이 되어 비극 속에 사라집니다.

 

셰이판(장동건)은 검정색입니다. 그는 매력적이지만 위험합니다. 그의 위험함은 주위의 여성들을 집어 삼켜 버립니다. 검정색에 삼켜진 색들은 안타까운 몸부림을 치지만, 정작 검정색인 셰이판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을 뿐입니다.

그런 그가 새로운 게임 상대로 지목한 것이 뚜펀위(장쯔이)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하얀색입니다. 욕망과 쾌락으로 넘쳐나는 1930년대 상하이에서 그녀는 죽은 남편의 뜻을 기리며 자신만의 순결함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셰이판은 뚜펀위에게 접근합니다. 셰이판의 위험을 잘 아는 뚜펀위는 셰이판을 거부합니다. 하지만 뚜펀위가 셰이판을 계속 거부하기엔 셰이판은 너무 매력적입니다. 결국 뚜펀위는 셰이판에 의해 점점 점령당합니다. 그러면서 그녀의 순결한 하얀색은 결국 사라지고 맙니다.

그런데 문제는 셰이판의 검정색마저 사라져 버렸다는 점입니다. 모든 색을 집어 삼킬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매력을 지닌 검정색은 결국 하얀색을 만나 자신의 매력을 잃고 점점 회색이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위험한 관계]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들의 가슴아픈 비극으로 막을 내려 버리는 것입니다. 

 

 

상하이로 간 '신사의 품격'

 

[위험한 관계]는 1782년 발표된 쇼데를로 드 라클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당시 프랑스 사회의 퇴페적인 문화를 그린 이 소설은 인과응보라는 교훈을 안고 있지만, 결국 악한일 수 밖에 없는 주인공을 내세운 탓에 그러한 교훈이 필연적으로 비극이 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함을 안고 있습니다. 

원작 소설의 발몽은 바람둥이이지만 그의 치명적인 매력은 여러 영화에서 좋은 소재가 되었습니다. 밀로스 포먼 감독의 1989년작 [발몽]에서는 콜린 퍼스가, 로저 컴블 감독의 1999년작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에서는 라이언 필립이, 이재용 감독의 2003년작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에서는 배용준이 이 매력적인 바람둥이 역을 맡아 영화의 비극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만큼 [위험한 관계]에서도 바람둥이 셰이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그는 아주 나쁜 놈입니다. 여성들의 마음을 가지고 놀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합니다. 그리고 흥미가 없어지면 매몰차게 그녀들을 버립니다. 하지만 그는 매력적입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그의 매력에 빠져들지 못한다면 [위험한 관계]는 실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의 매력은 영화에서 절대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장동건의 캐스팅은 완벽했습니다. 그는 이미 [신사의 품격]이라는 TV 드라마를 통해 매력적인 바람둥이 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낸 전력이 있습니다. 그는 바람둥이 특유의 능글맞은 미소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묘한 매력도 지니고 있습니다.

영화의 초반, 그의 그러한 매력이 잘 드러납니다. 자신에게 마음을 빼앗긴 여성들에게 냉소를 짓고, 마치 먹이를 찾는 맹수처럼 다음 먹잇감을 찾아 두리번거립니다.

셰이판이 뚜펀위에게 계획적으로, 그리고 서서히 다가서는 모습은 남자인 제가 봐도 숨이 멎을 정도로 멋졌습니다. 과연 그의 그런 매력에 넘어오지 않을 수 있을까요? 뚜펀위는 셰이판이 모든 색을 집어 삼킬 수 있는 위험한 검정색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의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TV 드라마는 잘 보지 않지만 [신사의 품격]만큼은 재미있게 봤던 저는 [위험한 관계]를 보면서 [신사의 품격]에서의 장동건의 캐릭터가 자꾸 겹쳐졌습니다. 그래서 [신사의 품격]에서처럼 셰이판과 뚜펀위의 사랑이 해피엔딩이기를 바라게 됩니다. 그러한 부질없는 바램이 있었기에 이 영화의 비극이 더욱 가슴 아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허진호 감독은 원작과 결말이 다를 것임을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욱 부질없는 바램의 끈을 마지막까지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1780년대 프랑스, 1930년대 상하이

 

어쩌면 제 바램은 애초부터 결코 이뤄질 수 없는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위험한 관계]가 가지고 있는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지 않은 바램이었기 때문입니다.

원작 소설은 1780년대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당시 귀족 사회의 문란하고 퇴폐적인 문화는 극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화려한 문화는 서민들을 핍박하면서 이뤄낸 결과물이었고, 이는 결국 프랑스 대혁명으로 이어집니다. 발몽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지 않더라도 그는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물결 속에 예정된 비극의 삶을 살아갔을 것입니다. 

그러한 1780년대 프랑스는 묘하게 1930년대 상하이와 겹쳐집니다. [위험한 관계] 속의 1930년대 상하이는 1780년대 프랑스가 그러했듯이 퇴폐적이고 문란한 자본가들의 문화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전쟁으로 인하여 집을 잃은 난민들이 득실거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중국까지 마수의 손을 뻗친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시민 운동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돈 많은 자본가들은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 속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즐깁니다.

 

난민들을 돕는다는 명목아래 호화로운 자선 파티를 즐기는 그들의 이중적인 모습은 [위험한 관계]의 시대적 배경을 잘 드러냅니다.  

상하이는 1842년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청나라가 난징조약을 체결하면서 굴욕적인 개항을 하였습니다. 그 이후 상하이는1927년 특별시로 지정되면서  중국 대외무역의 심장이 되었고 최대의 번영을 누리게 됩니다.

하지만 상하이의 번영은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1949년 건국을 기점으로 쇠락의 길을 걷게 되고,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변두리의 공업기지로 전락하게 됩니다. 특히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리는 문화대혁명 시기에 상하이는 '부르조아의 오염물'로 불리며 피비린내나는 숙청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위험한 관계]의 상하이 자본가들의 퇴폐적인 사회는 그리 오래가지 않아 몰락할 처지였던 셈입니다. 마치 1970년대 프랑스의 귀족 사회가 그러했듯이 말입니다. 1970년대 프랑스를 배경으로한 원작 소설을 1930년대 상하이로 옮긴 허진호 감독. 이 두 시대가 가진 비극의 씨앗은 영화의 비극을 더욱 절절하게 만들었습니다.

 

 

감정의 폭발이 일어나다.

 

배경도 완벽합니다. 1930년대의 상하이는 비극을 내포하고 있기에 영화의 비극에 시너지 효과를 줍니다. 장동건의 매력도 출중했습니다. 나쁜 놈이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매력적인 바람둥이 셰이판. 장동건은 남성인 제가 봐도 너무나도 완벽한 매력을 뿜어 냈습니다.

이렇게 완벽한 조합 속에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감정이 폭발하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서서히 검정색에 물드는 하얀색을 바라보는 안타까움은 뚜펀위의 미묘한 감정 변화 속에 제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습니다. 서서히 하얀색에 물드는 검정색 또한 마찬가지인데, 검정색은 결코 하얀색이 될 수 없습니다. 뚜펀위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신의 매력을 잃어가는 셰이판을 보며 저는 그들의 사랑을 응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셰이판은 뚜펀위에 대한 사랑을 너무 늦게 알아버렸습니다. 자신이 이미 하얀색에 물들고 있음을 알아차렸을 때에는 그는 매력없는 회색이 되어 쓰러져야 했던 것입니다. 뚜펀위를 향한 애절한 사랑 고백을 들으며 저는 오랜만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어쩌면 셰이판은 처음부터 하얀색을 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모지에위(장백지)에게 보내준 드레스가 눈처럼 새하얀 드레스임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자기 자신은 검정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얀색을 동경하던 셰이판. 그가 하얀색을 동경하는 그 순간 어쩌면 비극은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었겠죠.

뚜펀위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너무 늦게 알아버린 셰이판처럼, 셰이판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너무 늦게 알아버린 모지에위 역시 오열을 합니다. 그들 모두는 상하이라는 퇴폐적인 도시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검정색이 되어 버렸지만 끊임없이 하얀색을 동경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영화 후반에 폭발해버린 비극의 감정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저를 사로 잡았습니다. 영화를 본 후 집에 도착한 시각은 12시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감정의 폭발을 조절하지 못하고 한동안 잠 못이루었습니다. 

검정색과 하얀색이 만나 점차 회색이 되어 버리는 비극의 현장. 1930년대 상하이라는 도시의 배경과 장동건을 비롯한 장쯔이, 장백지의 멋진 연기, 그리고 감정의 폭발을 불러 일으키는 허진호 감독의 연출력은 그렇게 다음날  새벽까지 제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들의 사랑이 해피엔딩이었다면 나는 회색이라도 응원할 수 있었을텐데...

회색으로라도 검정과 하양이 행복할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