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2년 영화이야기

[루퍼] - 미래를 바꾸고 싶은가? 그렇다면 자신을 먼저 바꿔라.

쭈니-1 2012. 10. 12. 16:24

 

 

감독 : 라이언 존슨

주연 : 조셉 고든 레빗, 브루스 윌리스, 에밀리 블런트

개봉 : 2012년 10월 11일

관람 : 2012년 10월 11일

등급 : 18세 이상 관람가

 

 

시간여행 소재의 영화가 나를 사로잡는 이유

 

중학교 시절 명절날 밤, TV에서 해주는 명절 특선 영화 [빽 투 더 퓨쳐]를 보게된 저는 모두가 잠든 그 한밤중에 혼자 '이 영화 정말 재미있다'라며 감탄사를 연발했었습니다. 아마도 그 날부터였을 것입니다. 제가 시간여행 소재의 영화를 좋아하게 된 것은...

시간여행을 소재로한 영화의 매력에 제가 흠뻑 빠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탄탄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로 간 누군가로 인해 현재가 바뀌고, 미래가 바뀌는 것을 보면 저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영화가 [빽 투 더 퓨처] 3부작 시리즈였고, [나비효과]였습니다. 

기대작이 무려 네 편이나 한꺼번에 개봉한 지난 목요일, 제가 그 수 많은 기대작들의 관람을 뒤로 미루고 [루퍼]를 선택한 이유 역시 시간여행 소재의 매력 때문입니다. [루퍼]는 시간여행을 소재로한 영화이면서 특이하게 킬러를 내세웁니다. 미래에서 보내준 타깃을 처치해야 하는 현재의 킬러. 그런데 미래에서 보내준 타깃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면? [루퍼]의 기본 설정은 무궁무진한 이야기거리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연일 계속된 야근으로 피곤에 지친 구피를 끌고 극장으로 달려 갔습니다. 시간여행 소재의 영화에 대한 사랑이라면 저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구피는 투덜거리면서도 순순히 극장으로 끌려와주더군요. 그러면서 제게 이기적인 남자라는 비난도 잊지 않고 해줍니다.(자기도 보고 싶었으면서...)

그렇게해서 보게된 [루퍼]는 솔직히 제가 예상했던 영화에서 포인트가 빗나가 있는 영화였습니다. 저는 시간여행을 소재로 하고 있기에 과거와 현재, 미래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상당히 복잡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루퍼]는 의외로 시간여행이라는 소재 대신 다른 것들을 더 중점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영화 초반은 심하게 암울했고, 중반은 '도대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는거지?'라는 생각이 들만큼 예상 외의 전개를 보이더니, 후반에 가서는 머리 띵한 결말을 안겨줍니다. 비록 애초에 기대했던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를 매력적으로 이끌어내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실망했어'라고 단정짓기도 힘든... 암튼 [루퍼]는 꽤 독특한 매력을 지닌 영화임에는 분명해보입니다.

 

 

미래의 나와 현재의 나.

 

[루퍼]의 영화적 배경을 먼저 설명하겠습니다. [루퍼]는 2044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SF영화치고는 꽤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다보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SF영화처럼 두 눈이 휘둥그레지는 미래 도시의 모습은 없습니다. 단지 공중부양형 바이크 정도가 영화 속의 특이할만한 소품의 전부입니다.

주인공인 조(조셉 고든 레빗)는 거대 범죄조직에 고용된 킬러입니다. 하지만 그가 죽이는 대상은 현재 그러니까 2044년의 사람이 아닙니다. 30년 후인 2074년에서 범죄조직이 타임머신을 통해 보내주는 대상입니다. 2074년의 범죄조직은 제거 대상을 과거로 보내 죽임으로서 완전 범죄를 이룰 수 있고, 2044년의 킬러는 미래의 사람을 죽임으로서 안전하게 큰 돈을 벌 수 있는 구조입니다. 그러한 킬러를 '루퍼'라 부릅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2074년 레인메이커라는 인물이 범죄 조직을 장악하면서 그는 가장 먼저 '루퍼'를 제거하기 시작합니다. 2044년의 '루퍼'들은 30년 후의 자기 자신을 제거하고 그 댓가로 어마어마한 금괴를 보상받습니다. 그리고 30년이라는 시한부 인생동안 돈을 펑펑 쓰면서 미래가 없는 나날을 보내는 것이죠.

30년 후의 미래와 바꾼 어마어마한 금괴. 그러한 행운(?)이 조에게도 찾아옵니다. 하지만 조는 30년 후의 자기 자신을 보고 당황하게 되고 그러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30년 후의 조(브루스 윌리스)는 도망을 갑니다. 미래의 자신을 잡아 처치하지 못하면 조직에 의해 현재의 자신도 위험한 상황. 조는 묘한 상황에 처한 것입니다.

 

미래의 자기 자신을 죽여야 하는 현재의 킬러 이야기. [루퍼]의 기발한 상상력은 바로 이 시점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루퍼]는 이야기에 살을 붙입니다.

그 첫번째 이야기는 사랑입니다. 미래의 조가 죽을 각오를 하고 과거로 올 수 밖에 없었던 사연은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로 모두 설명됩니다.

사실 조는 30년 후의 미래와 어마어마한 금괴를 바꾸었습니다. 그렇게 미래가 없는 시한부 인생을 살던 조는 한 여성을 만나게 되고 그녀와 사랑에 빠집니다. 30년 후의 예정된 죽음을 기다리던 조가 사랑으로 인해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문제는 사랑이라는 것을 모르는 냉소적인 현재의 조가 그러한 미래의 조의 마음을 이해할리가 없다는 점입니다.

처음엔 미래의 조와 현재의 조가 서로 힘을 합쳐 위기를 헤쳐나갈 것이라 생각했지만 예상외로 현재의 조는 미래의 조를 죽이려 덤벼듭니다. 현재의 조와 미래의 조의 대결.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내가 충돌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는 평범한 SF액션과는 다른 재미를 안겨줍니다.

사람은 항상 변하기 마련입니다. 지금의 가치관이 미래의 가치관이 될 수도 있지만 아닐 가능성이 더 큽니다. 무엇을 경험하고, 누구를 만나는 가에 따라 사람들은 변합니다. 미래의 자기 자신을 이해못하는 현재의 조와 현재의 조를 한심하게 생각하는 미래의 조. 이 두 사람의 상반된 가치관은 미래의 조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서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현재의 조와 미래의 조의 충돌은 영화 마지막까지 이어집니다.

 

 

현재의 조도 진실된 사랑을 느끼다.

 

[루퍼]는 마지막 순간까지 현재의 조와 미래의 조를 대치시킵니다. 그렇다면 과연 현재의 조는 미래의 조가 느꼈을 사랑을 끝까지 이해하지 못한 것일까요?

[루퍼]가 재미있는 점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입니다. 영화의 중반, 예상 외의 전개로 '도대체 영화가 어떻게 흘러가는 거지?'라고 느꼈던 바로 그 시점에서 현재의 조 역시 진실된 사랑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미래의 레인메이커를 찾아 죽여야 하는 미래의 조. 그러한 미래의 조를 처치해야만 하는 현재의 조. 결국 현재의 조는 미래의 조가 찾고 있는 레인메이커 후보군 중의 하나인 사라(에릴리 블런트)의 농장에서 미래의 조를 기다리게 됩니다.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액션으로 치달을 것만 같았던 [루퍼]는 그 순간 갑자기 분위기가 느슨해집니다. 미래의 풍경이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은 한적한 농장. 그곳에서 사라와 그녀의 열살된 아들 시드와 함께 지내게 되는 현재의 조.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버림을 받은 이후 단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가족의 따뜻함을 느끼게 됩니다.

 

현재의 조가 사라의 농장에서 가족의 따뜻함을 느끼고 있는 와중에 미래의 조는 미래에 레인메이커가 될지도 모를 아이들을 암살하고, 자신을 쫓는 범죄조직을 박살내며 다닙니다.

영화의 초반만 하더라도 인간적인 캐릭터는 미래의 조였습니다. 30년 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막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과거로 온 조. 그는 사랑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로맨티스트입니다.

그에 비해 현재의 조는 냉혈한입니다. 자신의 절친한 친구와 은괴를 맞바꿀 정도로 이기적입니다. 그러한 그의 이기적인 모습은 미래의 자기 자신에게도 냉정한 태도를 유지합니다. 미래의 자신과 힘을 합쳐 위기를 헤쳐나가는 것보다 미래의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이 현재의 자신에게 더욱 유리하다고 판단한 그는 끊임없이 미래의 자기 자신을 죽이려 시도합니다.

그랬던 두 캐릭터의 성격은 현재의 조가 사라의 농장에서 생활하며 뒤바뀝니다. 레인메이커를 죽여야 한다는 목적 하나로 잔혹한 살인을 저지르는 미래의 조와는 달리 현재의 조는 사라, 시드를 위해 위험도 감수합니다. 현재의 조가 사라를 만나며 미래의 조는 사랑하는 아내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는 경험을 합니다. 조와 사라가 사랑에 빠질 것임을 암시하는 장치입니다. 현재의 조는 사라에게 사랑을 느꼈고, 시드에게 어린시절 자신의 모습을 본 것입니다. 그렇게 현재의 조는 변해갑니다.

 

 

미래를 바꾸고 싶은가? 그렇다면 자신을 먼저 바꿔라. (스포포함)

 

2074년의 조가 2044년에 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미래를 바꾸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는 레인메이커를 제거하면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의 미래가 바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조는 미래의 조와 다른 생각을 합니다. 만약 그녀를 살리고 싶다면 그녀와 만나지 않으면 될 것이라고 미래의 조를 설득합니다. 미래의 조가 남의 희생을 통해 미래를 바꾸려 했다면 현재의 조는 자신을 먼저 희생할 생각을 한 것입니다.(물론 사랑에 냉소적인 현재의 조였기에 가능한 희생일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두 명의 조가 가지고 있는 미래를 바꾸겠다는 의지의 차이는 영화의 후반부에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끝까지 레인메이커를 제거하려는 미래의 조. 하지만 현재의 조는 시드가 미래의 레인메이커임을 알게 되지만 그를 제거하지 못합니다. 어머니에게 버림을 받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엿보았던 시드에게 조는 동정심(다른 의미에서는 사랑)을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의 초반 현재의 조와 미래의 조가 서로 대치를 하게 된 것은 현재의 조가 사랑이라는 감정이 매마른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에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현재의 조가 진정한 사랑을 알았기 때문에 미래의 조와 대치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 묘한 변화는 [루퍼]가 관객에게 던지는 본질적인 질문과 맞닿아 있습니다.

 

영화의 초반, 미래의 인간들이 가지게 될 염력을 아주 사소하게 처리함으로서 영화 후반에 그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본 [루퍼]. 라이언 존슨 감독은 영화의 초반부터 영화 후반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해둔 셈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마지막 현재의 조가 선택한 결말은 많은 논란이 예상됩니다. 미래의 조 때문에 사라가 죽고, 그로인해 악한 마음을 가지게 된 시드. 그는 자신의 염력을 이용하여 조직을 장악하고,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루퍼'에 대한 복수심으로 2074년의 '루퍼'들을 차례로 제거한 것입니다. 이것은 애초부터 미래의 조가 선택한 일이고, 미래의 조로 인하여 벌어질 사건입니다.

마치 [터미네이터]가 연상되는 장치입니다. 만약 미래의 기계들이 인간 지도자인 존 코너를 제거하기 위해 '터미네이터'를 1984년으로 보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랬다면 '터미네이터'를 막기 위해 카일 리스가 1984년으로 보내지지 않았을 것이며, 그랬다면 카일 리스와 사라 코너는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존 코너는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미래의 조가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에 와서 레인메이커를 죽이기 위한 활동을 벌이지 않았다면 어쩌면 이 강력한 염력을 가진 아이는 레인메이커라는 희대의 악당이 아닌 선한 영웅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현재의 조가 바꾸려 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현재의 조는 사라와 시드를 만나 함께 생활하면서 자기 자신을 바꿨고, 그러한 변화를 토대로 미래를 바꾸기 위한 자신의 희생을 선택합니다. 만약 그러한 현재의 조의 선택을 응원하지 않는 분들이라면 미래의 조가 한 방식을 응원할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미래의 조의 방식으로는 미래가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루퍼]는 말합니다. '미래를 바꾸고 싶은가? 그렇다면 자신을 먼저 바꿔라.' 어쩌면 그것은 현재의 우리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불안한 미래를 비관하며 세상을 원망하기 이전에...

자신을 먼저 변화시키며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어떨까?

미래의 조와 현재의 조의 차이는 바로 그것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