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2년 영화이야기

[아르고] - 가짜 영화가 최고의 영화가 되는 순간

쭈니-1 2012. 11. 7. 10:53

 

 

감독 : 벤 애플렉

주연 : 벤 애플렉, 존 굿맨, 알란 아킨, 브라이언 크랜스턴

개봉 : 2012년 10월 31월

관람 : 2012년 11월 6일

등급 : 15세 관람가

 

 

구피가 이 영화를 더욱 긴장하며 본 이유

 

'난 이런 류의 영화, 싫어해!' [아르고]를 보러 가자고 조르던 제게 구피가 한 말입니다.

요즘 계속되는 야근으로 인하여 축 늘어진 구피. 지난 주, 저는 그런 구피를 끌고 [늑대소년]을 보러 갔었습니다. 처음엔 피곤하다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던 구피는 [늑대소년]을 본 후 '송중기같은 늑대라면 키우고 싶다!'며 활짝 웃더군요. 재미있는 영화가 야근으로 지친 구피의 몸을 회복시킬 수는 없어도 야근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어느정도 회복시켜줄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원래는 월요일에 혼자 보려고 계획했던 [아르고]도 구피와 함께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월요일에는 너무 피곤하다는 구피를 위해 [아르고]의 관람을 화요일로 미뤘고, '이렇게 지친 나를 꼭 극장으로 끌고 가야겠어?'라며 눈을 흘기는 구피에게 '아잉! 나를 위해서 이 영화를 함께 봐줘'라며 쭈니 특유의 초강력 애교도 부렸습니다.

 

제가 이렇게 [아르고]를 구피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이유는 [아르고]가 영화적 완성도와 재미를 함께 갖춘 잘 만든 스릴러라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구피가 결혼 전 브라질의 수도 브라질리아에 위치한 한국대사관에서 몇 년간 근무를 했던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가끔 구피는 그 당시를 회상합니다. 어쩌면 브라질에서 근무했던 시절이 구피에게는 가장 황금기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저는 구피와 결혼한 지금이 황금기입니다. ^^)

[아르고]는 1979년 이란의 성난 시위대에 억류된 미국대사관 직원들을 구출하기 위한 CIA 의 비밀 작전을 소재로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실화를 기초로 했고, 감독을 맡은 벤 애플렉은 이 거짓말같은 실화를 최대한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처음엔 '난 이런 류의 영화, 싫어해.'라며 입을 삐죽 내밀던 구피는 영화가 진행되면서 점점 영화 속에 푹 빠졌고, 영화가 끝난 이후에는 축구에서 한국이 브라질을 이기는 날이면 브라질주재 한국대사관이 초긴장한다는 이야기, 그리고 한국대사관 직원이 페루의 일본대사관에서 다른나라 대사관 직원들과 함께 억류되었던 이야기를 하며 옛 회상에 빠져들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구피는 여전히 피곤해 보였지만 그래도 대사관에서 근무했던 옛 시절을 회상하며 희미한 미소를 짓기도 했습니다.

 

 

이 전쟁은 미국이 먼저 시작했다.

 

저야 뭐 당연히 대사관에서 근무한 적도 없고, 우리나라에 있는 다른나라 대사관의 문턱조차 넘어본 적이 없는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입니다. 하지만 그런 저도 [아르고]를 보며 손에 땀을 쥐어야 했습니다.

제가 [아르고]에 가장 큰 점수를 주고 싶은 것은 벤 애플렉 감독이 1979년 이란의 혁명과 미국 대사관 직원의 억류에 대해서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영화의 초반 벤 에플렉 감독은 나래이션을 통해 이 전쟁은 미국이 먼저 시작했음을 인정합니다. 모사데드가 석유의 국유화를 단행하자 미국은 이란에서의 석유 이권을 지키기 위해 팔레비 왕조를 도와 모사데드 정권을 축출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미국을 등에 업은 팔레비 왕조는 온갖 부정부패와 탄압 정치를 통해 이란 국민들 고통에 빠뜨렸습니다. 결국 견디다 못한 이란의 국민들은 이슬람교의 시아파 종교지도자 호메이니를 중심으로 1979년 이슬람 혁명을 일으킨 것입니다. 

벤 애플렉 감독은 '이란에 억류된 미국 대사관 직원 구하기'를 통해 이란의 이슬람 혁명을 비인권적인 행위로 규정할 수도 있었습니다. 공산주의가 무너진 이후 미국의 주적이 과격한 이슬람원리주의자임을 감안한다면 그것이 영화의 흥행에 더욱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벤 애플렉 감독은 그러지 않습니다. 그는 이란에 이슬람 혁명이 일어난 것은 석규 이권에 눈독을 들인 미국의 야욕이 1차적 원인이었음을 인정하며 영화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미국이 팔레비 왕조의 국왕인 하마드 레자 샤의 망명을 받아들이면서 이란 국민들의 공분을 샀고, 그에 대한 분노가 미국 대사관에 불똥이 튄 것임을 분명히 합니다. 결국 이 전쟁은 미국이 먼저 한 것입니다. 어마어마한 돈이 되는 석유 이권에 눈이 먼 미국의 야욕이 1979년, 아니 지금 현재까지도 지구촌의 긴장 상태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게다가 영화의 중반에는 캐나다 대사관 관저에 숨어 있는 미국 대사관 직원들을 포기하려는 미국 정부의 움직임도 표현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어이없습니다. 미국 대사관 직원들이 캐나다 대사관 관저에서 혁명군에 잡혀 총살을 당하면 전세계적인 이목을 끌고 공분을 사겠지만, 탈출하다 공항에서 잡혀 총살 당하면 전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된다는 이유입니다. 

10%의 성공 확률보다 90%의 실패 확률을 감안하며, 실패했을 경우 미국에게 가장 유리한 상황을 선택하는 미국 정부의 비정한 모습은 충격적이기까지 합니다. 석유 이권을 위해 이란 국민들을 도탄에 빠뜨리는 비리 정권을 옹호하고, 대사관 직원을 구출하는 것보다, 미국대사관 직원 억류라는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사건을 통해 미국에게 유리한 상황을 계산하는 미국 정부. 벤 애플렉은 [아르고]를 통해 그러한 미국의 모습을 가감없이 표현해낸 것입니다.

 

 

결말을 알면서도 긴장을 하게 된다.

 

결국 [아르고]는 미국의 영웅담이 아닌 토니 멘데즈(벤 애플렉)의 개인적 영웅담이 됩니다. CIA의 구출 전문 요원인 그는 할리우드 SF영화를 찍기 위해 장소를 물색한다는 명목으로 이란에 잠입하고, 캐나다 대사관저에 숨어 있던 미국대사관 직원 6명을 영화사 직원으로 속여 이란에서 빠져 나올 기발한 계획을 세웁니다.

영화의 중반, 토니가 할리우드의 분장 기술자 존 챔버스(존 굿맨), 그리고 영화 제작자 레스터 시겔(알란 아킨)을 섭외하여 '아르고'라는 SF영화를 제작한다는 소문을 내는 과정은 긴장감 속에 소소한 웃음을 전해줍니다.

벤 애플렉 감독의 능수능란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점입니다. [아르고]는 가짜 영화를 제작하는 토니 일행의 해학적 모습과 이란에 억류된 미국대사관 직원들의 위험한 모습을 번갈아 보여주며 영화 속의 모든 장면을 하나의 긴장감 넘치는 계획으로 묶습니다. 우스꽝스러운 '아르고' 제작 발표회 현장마저 소소한 웃음과 함께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장치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가 왜 제 2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칭호를 듣는지 이해가 됩니다. 

 

토니가 이란에 가서 작전을 수행하는 장면부터는 영화의 긴장감은 점점 높아집니다. 불안에 떠는 대사관 직원들을 독려하는 토니. 하지만 토니의 작전이 성공 가능성보다 실패 가능성이 더 높다고 판단한 미국 정부가 대사관 직원들의 구출 작전을 포기하려 합니다.

파쇄된 미국대사관의 서류를 복원하여 미국대사관을 빠져 나간 직원이 있음을 감지한 이란의 혁명군은 시시각각 추격의 끈을 조여 옵니다. 반미 감정이 팽배한 이란의 국내 정세도 불안하게 돌아갑니다.

우리는 토니의 작전이 성공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캐나다 대사관저에 숨은 미국대사관 직원 6명을 할리우드 작전이라는 기발한 작전으로 멋지게 구출한 토니 멘데스의 실화, 이것이 [아르고]의 기반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스위스행 비행기가 뜨고, 대사관 직원들이 환호를 터뜨리는 그 순간까지, 저는 조마조마해하며 영화를 보고 있었습니다. 결말을 알고 영화를 보면서도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벤 애플렉의 연출력이 정말 대단했음을 실감하는 순간입니다.

 

 

가짜 영화가 최고의 영화가 되는 순간

 

하지만 절대 토니 일행을 태운 비행기가 이란을 무사히 빠져 나갔다고 해서 박수를 치며 극장 밖으로 나가지는 말아주세요. [아르고]의 진정한 재미는 바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바로 그 순간부터이기 때문입니다.

1979년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의 육성으로 당시의 긴박했던 순간과 성공 이후의 일화가 나래이션으로 담담하게 흘러 나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스크린에서는 당시 실존 인물들의 사진과 영화 속 캐릭터들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제가 놀라웠던 것은 실재 인물들과 [아르고]의 캐릭터의 너무나도 완벽한 싱크로율이었습니다. '당시의 실재 인물들이 [아르고]에서 자신의 캐릭터를 연기를 했나?' 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국 대사관 직원들의 모습은 영화 속의 모습과 실재 모습이 거의 일치했습니다.

벤 애플렉 감독은 [아르고]는 그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긴장감 넘치는 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그친 것이 아닌, 조국의 야욕으로 인해 낯선 이국땅에서 생과 사를 오고가던 이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그만큼 [아르고]는 영화 속의 진솔함이 짙게 베어 있어 좋았습니다.

 

그러고보니 토니가 대사관 직원들을 구출하기 위해 가짜로 만들려고 했던 '아르고'라는 SF영화가 실제로 만들어졌다면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해집니다. 아마도 최고의 SF영화가 되지 않았을까요?

사실 토니가 '아르고'의 시나리오를 택했을 때, 그는 단지 영화 속의 배경이 이란과 어울릴 것이라는 이유로 선택했습니다. 이야기의 탄탄함, 캐릭터의 건실함 등 좋은 영화의 조건은 애초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만약 '아르고'가 만들어졌다면 최고의 SF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라고 예상하는 이유는 영화를 만들려는 이들의 열정과 노력, 그리고 간절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르고'는 만들어지지 않았고, 애초부터 가짜로 기획된 영화이지만, 이란에 억류된 이들을 살리기 위한 토니와 존, 레스터의 열정과 이란에서 살아서 빠져 나가기 위한 미국대사관 직원 6명의 노력과 간절함 만으로도 '아르고'의 감동이 생생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들의 열정과 노력, 간절함은 가짜 영화 '아르고'를 최고의 영화 [아르고]로 만들어 냈습니다.

 

그 어떤 영화라도 만드는 사람의 열정과 노력이 담겨 있다면

함부로 돌을 던지지 마라.

아무리 가짜 영화라도 그들의 열정과 노력은 진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