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외이야기들/영화에 대한 생각들

대종상의 운영상 문제, 왜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욕먹어야 하나?

쭈니-1 2012. 10. 31. 14:43

 

 

10월 30일... 퇴근 후 중간고사를 하루 앞둔 웅이의 시험 공부를 돕기 위해 방에서 열공 분위기에 젖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눈은 웅이의 교과서에 있었지만 귀는 거실에서 들려오는 대종상 영화제의 수상 소식에 향해 있었습니다. 

신인 남녀 배우상을 [은교]의 김고은과 [범죄와의 전쟁]의 김성균이 받았다는 소식을 들으며 수긍의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지만 신인 감독상을 [해로]의 최종태 감독이 받았다는 소식에 '[해로]? 그런 영화가 있었나?'하며 웅이 몰래 [해로]를 검색해 보기도 했습니다.

대종상 수상작 소식을 더 듣고 싶었지만 거실에서 TV를 보시던 장모님, 장인어른이 TV 채널을 돌려 드라마를 보시는 바람에 더 이상의 수상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웅이의 시험 공부를 도와준 이후에는 [007 스카이폴]을 보기 위해 극장에 가야 했기에 결국 대종상 수상작 소식은 하루가 지난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나와 인터넷 뉴스를 검색하니 난리가 나있더군요. [광해, 왕이 된 남자]가 대종상 15개 부문을 휩쓸며, 독식 논란이 일고 있었습니다. 뭐 의외의 결과이긴 했지만 대종상 영화제가 공정성을 잃고 표류한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니 그냥 웃어 넘겼습니다.

 

 

49회 대종상 영화제 사회를 맡은 '울랄라 부부' 신현준, 김정은

 

사실 저는 오래 전부터 대종상 영화제를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대종상 영화제를 신뢰하지 않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지난 2009년 46회 시상식에서 [신기전]이 작품상을 수상한 이후부터였습니다. [신기전]을 재미있게 보지 못한 저로서는 그러한 결과가 납득이 되지 않았을 뿐더러, 상 나눠가지기로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그해 대종상은 작품상은 [신기전]이, 감독상은 [국가대표]가, 남우주연상은 [내 사랑 내 곁에], 여우주연상은 [님은 먼 곳에], 남우조연상은 [마더], 여우조연상은 [애자], 신인감독상은 [작전], 신인남우상은 [7급 공무원], 신인여우상은 [똥파리]가 차지하며 완벽하게 주요 상을 나눠 가졌고, 기술상도 [미인도], [박쥐], [쌍화점], [해운대] 등이 골고루 가져가는 해프닝을 보여줬습니다.

이후 대종상은 여러 영화들이 수상을 나눠 갖는 형태를 꾸준히 보여줬고, 이렇게 여러 영화들이 사이좋게 상을 나눠갖는 영화제라면 굳이 '누가 수상을 할까?'라는 두근거리는 기대감으로 시청을 할 필요가 없다고 느낀 것입니다. 그 이후 저는 대종상 영화제 수상 소식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게 되었습니다.

 

[신기전]은 2009년 최고의 영화?

 

그런데 어제 대종상의 문제는 2009년과는 정반대였습니다. 2009년의 대종상이 나눠갖기 논란을 일으켰다면 2012년 대종상은 몰아주기 논란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후보에 오른 영화들이 사이좋게 상을 나눠갖던 대종상이 왜 갑자기 1년 만에 상 몰아주기로 바뀐 것일까요?

1년 만에 그러한 문제가 대두된 것은 수상작 선정 방법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올해부터는 투표로 작품을 선정하던 기존의 방식 대신, 각 영화를 최고 10점부터 최하 5점까지 점수화해서 절대평가를 하는 시스템을 새롭게 도입했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대종상 영화제의 수상작 선정 방식은 어떠한 것일까요? 일단 학생, 개인사업가, 시나리오 작가 등 여러 분야의 직업군을 가진 20대에서 50대까지 고루 분포된 일반 심사위원 50명이 17일간 하루 평균 3편씩 총 40편의 영화를 감상하고 평가를 하였습니다.

심사 과정에서도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를 선입견을 방지하기 위해서 당일 심사 영화는 당일 공개를 원칙으로 했으며, 매작품 감상전 신분증 확인을 통해 보안을 강화했고, 심사위원들은 심사 진행 중에도 출석률 2/3이상을 준수해야 했으며 이를 어겼을 경우 심사위원 자격을 상실하였습니다. 또한 심사 중 의견 교환 등을 방지하기 위해 대종상 영화제 사무국 요원이 심사장소에 상주해 관리 감독을 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매년 있어왔던 공정성에 대한 잡음을 막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 것이죠.

 

공정한 과정(?)을 걸쳐 선발된 5편의 작품상 후보작들.

 

이렇게 일반 심사위원들이 후보작을 선정하여 공정성을 높이려 했지만 49회 대종상 시상식은 오히려 다른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광해, 왕이 된 남자]가 15개 부문 상을 휩쓸며 작품성보다 관객이 선호하는 흥행성이 중요시된 결국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선정하는 인기 투표의 결과가 나와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김기덕([피에타]의 감독 김기덕이 아닌...) 심사위원장은 '이전에는 모든 후보작들을 심사하며 가장 좋은 작품이 무엇인가를 비교 평가했다. 하지만 올해는 한 작품의 심사가 끝날 때마다 평점을 기입, 봉해 넣어뒀다. 위원장인 나도 이런 결과가 나올줄 몰랐다. 작품에 대한 평가는 절대평가였다.'라며 심사위원 특별상을 시상하러 나와 오히려 변명을 늘어놔야 했습니다.

심사위원장도 몰랐던 수상 결과라니... 게다가 일반 심사위원을 위촉했던 예심과는 달리 본심에서는 전문 심사위원의 명단이 공개되지 않아 공정성 논란은 더욱 거세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결국 공정성을 강화하겠다는 대종상의 변화는 오히려 [광해, 왕이 된 남자]의 몰표 논란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비교 평가가 아닌 절대 평가와 불투명한 전문 심사위원이 가져다준 결과인 것이죠.

 

[광해, 왕이 된 남자]와 인기투표를 하라고?

그냥 무릎을 꿇는 것이 낫겠다.

 

애초부터 대종상 영화제의 결과를 신뢰하지 않았으니 [광해, 왕이 된 남자]가 15개 부문을 휩쓸었다는 인터넷 기사 자체는 제게 그저 웃고 넘길 해프닝에 불과했습니다. '대종상 영화제가 또 한 건 했네.'라며...

그런데 사건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렇지않아도 [광해, 왕이 된 남자]에 불만이 많던 안티팬들이 이번 일을 계기로 마치 [광해, 왕이 된 남자]가 CJ의 권력을 등에 업고 대종상을 가로챘다며 비난을 퍼붓고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대종상의 운영상의 문제가 [광해, 왕이 된 남자]를 향해야 하는 걸까요?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켜도 스크린 독점이라며 비난을 퍼붓던 그들입니다. 아주 작은 이벤트 하나만 해도 꼼수라며 난리를 치던 그들입니다. 이제 대종상의 문제점마저 [광해, 왕이 된 남자]가 떠안아야 하는건가요? 이건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했던 감독, 배우 그리고 수 많은 스탭들을 모욕하는 짓입니다.

저도 거대 자본 CJ가 자신이 배급하는 영화를 흥행 성공시키기 위해 하는 짓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광해, 왕이 된 남자]가 단지 CJ의 배급 영화라는 이유만으로 온갖 말도 안되는 비난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절대 옳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 내게 상을 많이 줘서 이런 험한 꼴을 당하게 하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