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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영화들] '딕 트레이시'는 코믹스 영웅물을 어떻게 변화시켰나?

쭈니-1 2012. 1. 7. 08:00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 [토르 : 천둥의 신], [퍼스트 어벤져], [그린 랜턴 : 반지의 선택] 등등... 2011년에 국내에 개봉한 할리우드산 영웅물입니다. 이들 영화의 공통된 특징이라면 코믹스라는 이른바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2012년에도 마블 코믹스의 영웅들을 모아 놓은 [어벤져스]를 비롯하여 수많은 영웅물이 관객을 찾을 예정입니다. 그렇다면 이 코믹스 영웅물은 어디서부터 시작했을까요? 그리고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요?

 

 

 

코믹스 영웅물의 시조는 [슈퍼맨]

 

코믹스 영웅물의 시조는 논란의 여지없이 1978년에 만들어진 리처드 도너 감독의 [슈퍼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토퍼 리브가 평소엔 소심한 기자이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외계에서 온 초인적인 영웅 슈퍼맨으로 변신하는 클락 켄트라는 캐릭터를 맡아 열연을 펼쳤던 [슈퍼맨]D.C 코믹스의 대표적인 영웅이며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사랑 받는 캐릭터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리처드 도너 감독의 [슈퍼맨]슈퍼맨을 소재로 한 최초의 영화는 아닙니다. 이미 40년대부터 슈퍼맨은 영화로, 애니메이션으로, TV 시리즈로 꾸준히 만들어져 왔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코믹스 영웅물의 시조로 1978[슈퍼맨]을 꼽은 것은 특수효과의 발달로 제대로 된 슈퍼맨의 액션을 영상화시킨 최초의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이후 1980년 리처드 레스터 감독의 [슈퍼맨2], 1983년 역시 리처드 레스터 감독의 [슈퍼맨 3], 1987년 시드니 J. 퓨리 감독의 [슈퍼맨 4 : 최강의 적]까지 꾸준히 만들어 졌지만, 시리즈가 진행되는 동안 아쉽게도 관객은 꾸준히 줄어 들었습니다.

결국 20년 동안 기나긴 잠을 자야 했던 '슈퍼맨'은 2006년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수퍼맨 리턴즈]를 만들며 다시 활동을 시작했고, 최근에는 잭 스나이더 감독에 의해 [수퍼맨 : 맨 오브 스틸]이 제작되면서 코믹스 영웅의 시조인 '슈퍼맨'은 새롭게 태어날 준비를 마친 상태입니다.

 

 

 

코믹스 영웅물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배트맨]

 

이렇듯 [슈퍼맨]의 코믹스 영웅물의 시조라면 1989년 만들어진 [배트맨]은 코믹스 영웅물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만든 매우 중요한 영화입니다. '슈퍼맨'과 더불어 D.C 코믹스의 대표적 영웅인 '배트맨'. 하지만 슈퍼맨이 외계에서 온 초인적인 영웅이라면 배트맨은 개인적인 아픔을 간직한 어두운 영웅이었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배트맨]의 흥행을 크게 기대하지 않은 것은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이변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배트맨]251백만 달러의 흥행을 기록하며 1989년에 개봉한 영화중에서 흥행 TOP의 자리에 오른 것입니다. 1989년에는 흥행의 마술사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인디아나 존스 3 : 최후의 성전]과 액션 시리즈로는 전설적인 영화인 리처드 도너 감독의 [리쎌 웨폰 2]가 개봉했던 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팀 버튼이라는 괴짜 감독이 만든 어두운 영웅물 [배트맨]이 이들 영화를 모두 제친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까지 할리우드 제작자들은 코믹스 영웅물의 위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1992[배트맨 2]를 마지막으로 팀 버튼 감독을 하차시키고, 조엘 슈마허 감독을 기용하여 원작과는 동떨어진 [배트맨 포에버]를 만듭니다. 물론 주연 배우도 영웅과는 거리가 먼 외모를 지닌 마이클 키튼 대신 섹시가이 발 킬머를 내세웠고 분위기도 훨씬 밝게 꾸몄습니다.

그러나 [배트맨 포에버]를 기대만큼의 흥행을 거두지 못했고, 이게 전부 악동 발 킬머 탓이라고 생각한 제작자들은 이번엔 조지 클루니라는 새로운 배우를 내세워 [배트맨 과 로빈]을 만들었지만 역시 관객의 반응은 차디찼습니다. 이렇게 할리우드 제작자들의 코믹스 영웅물에 대한 몰이해로 망가질 대로 망가진 배트맨2005년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배트맨 비긴스]를 만들며 겨우 원위치로 돌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2세대 코믹스 영웅물의 등장

 

D.C 코믹스의 대표적인 영웅을 영화화한 [슈퍼맨]과 [배트맨]은 이렇게 코믹스 영웅물의 문을 활짝 열었지만 아둔한 할리우드 제작자들은 코믹스 영웅물에 대한 관객의 열망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슈퍼맨]은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점차 흥행의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었고, [배트맨] 시리즈는 점점 망가져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80,90년대 1세대 코믹스 영웅물이 가능성만 제시한 채 표류하고 있을 때, 2000년대 들어서 2세대 코믹스 영웅물의 시대를 활짝 연 영화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엑스맨][스파이더 맨]입니다. 각각 브리이언 싱어와 샘 레이미라는 천재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엑스맨][스파이더 맨]은 코믹스 영웅물에 대한 관객의 갈증을 확실하게 풀어주며 현재의 코믹스 영웅물 시대를 본격적으로 만든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가 있습니다. 과연 1세대 코믹스 영웅물이 점차 하락세에 접어든 상태에서 2세대 코믹스 영웅물이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며 갑자기 인기를 얻은 걸까요? 만약 그러한 의문점이 생긴 분이라면 여기 주목해야할 영화 한 편이 있습니다. 바로 1991년에 만들어진 워렌 비티 감독, 주연의 [딕 트레이시]입니다.

 

 

 

1세대와 2세대 코믹스 영웅물을 연결시키다.

 

[슈퍼맨][배트맨]의 성공은 코믹스 영웅물에 대한 관객의 열망을 파악하기엔 무리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워낙 유명한 영웅 캐릭터였기 때문에 할리우드 관계자들은 이들 영화의 성공이 코믹스 영웅물에 대한 관객의 열망이 아닌 그저 유명한 캐릭터 덕분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워렌 비티는 1990[딕 트레이시]라는 영화를 완성합니다. 1990년이면 [슈퍼맨]은 제작이 중단된 상황이었고, 더욱 기괴하게 바뀌고 있는 [배트맨 2]에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우려를 표명하고 있었던 해이기도 합니다. 바로 그 사이에 태어난 것이 바로 [딕 트레이시]입니다.

엄밀히 따진다면 [딕 트레이시]는 코믹스 영웅물은 아닙니다. 체스터 굴드라는 유명 만화작가의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이기는 하지만 이른바 D.C 코믹스, 마블 코믹스에 소속된 만화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딕 트레이시]를 코믹스 영웅물의 연대기에서 중요한 영화로 꼽는 이유는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스타일 때문입니다.

워렌 비티는 [딕 트레이시]를 만화를 고스란히 스크린 속으로 옮겨 놓은 듯한 기법으로 완성시켰습니다. 그래서 영화의 배경은 비현실적으로 원색적이었고, 캐릭터들 역시 만화적이었습니다. 알 파치노, 더스틴 호프만 등 당대의 명배우들은 이 만화 같은 영화를 위해서 기꺼이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감내해 냈습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이것이 실사 같은 애니메이션인지, 애니메이션 같은 실사 영화인지 헷갈릴 정도로 [딕 트레이시]는 원작과 최대한 비슷한 분위기 연출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결과는 놀라웠는데 [딕 트레이시]1990년에 미국에서 가장 흥행에 성공한 영화로 9위에 오른 것입니다. 1990년은 [나홀로 집에], [사랑과 영혼], [늑대와 춤을], [귀여운 여인], [토탈 리콜], [다이하드 2] 등 쟁쟁한 화제작들이 풍성했던 해이기도 합니다. 그 가운데 [딕 트레이시]가 당당하게 이름을 올린 것입니다. [딕 트레이시]가 기록한 북미 흥행 기록은 무려 13백만 달러입니다.

 

 

[딕 트레이시]가 이루어낸 것들.

 

[딕 트레이시]의 흥행 성공은 [스폰]의 영화화로 이어졌습니다. 만화 원작의 영화화에 회의적인 입장이었던 할리우드는 원작을 고스란히 스크린 속으로 옮겨 놓은 [딕 트레이시]의 흥행에 관심을 가졌고마블 코믹스의 영웅물인 [스폰]이 1997년 제작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물론 [스폰]은 기대한 만큼의 흥행을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4천만 달러의 제작비로 북미 흥행 성적은 고작 54백만 달러에 불과했으니까요. 하지만 월드와이드 흥행 성적이 87백만 달러에 달함으로서 최소한 손해 보지는 않았습니다. 할리우드가 드디어 코믹스 원작의 영화가 돈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입니다.

[딕 트레이시]는 만화와 영화의 경계를 허무는 역할을 함으로서 코믹스 영웅물의 전성기를 열 수 있는 기반을 닦은 것입니다. 만약 [딕 트레이시]가 없었다면 코믹스의 영웅물은 어쩌면 [슈퍼맨 4 : 최강의 적][배트맨과 로빈]을 마지막으로 사라졌을 것이며, 우리는 그 수많은 코믹스의 매력적인 영웅들을 영화가 아닌 애니메이션으로 만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들 영웅들이 영화화된다고 할지라도 [배트맨 포에버][배트맨과 로빈]이 그러했듯이 원작은 훼손되고 할리우드 제작자들의 입맛에 맞게 달달하게 각색되었을 것입니다.

[엑스맨]의 울버린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괴로워하고, [스파이더맨]의 피터 파커가 영웅의 무거운 책임감 때문에 힘겨워 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참 아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딕 트레이시는]...

 

[딕 트레이시]1991119일 우리나라에서 개봉을 맞이합니다. 미국에서는 1990615일에 개봉한 것을 감안한다면 미국보다 6개월이나 늦게 개봉한 것입니다. 그만큼 국내 수입업자들은 이 영화의 흥행 가능성을 낮게 평가한 것이죠. 만약 미국에서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어쩌면 국내 개봉은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1991119일 개봉 당시 상영 극장만 봐도 그러한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종로의 주요 극장가에서 개봉되지 못하고 신촌의 크리스탈, 대학로의 동숭아트센터, 신사역의 브로드웨이, 잠실의 롯데월드, 상계동의 유토아 극장 등 변두리 극장에서 상영했습니다. 그나마 종로의 피카소 극장에서 상영하긴 했지만 피카소 극장은 피카디리 극장에서 상영을 끝낸 영화들을 상영하던 소극장에 불과했습니다. 그렇게 [딕 트레이시]는 우리나라에서는 찬밥 신세였던 것이죠.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에 불과했던 저는 뒤늦게 비디오로 출시된 [딕 트레이시]를 보며 거리가 모두 파란색, 빨간색, 노란색, 녹색 일색이어서 마치 꿈을 꾸는 듯하다.라는 평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흔히 할리우드를 꿈의 공장이라고 합니다. [딕 트레이시]는 그러한 꿈의 공장 할리우드에 알맞은 생산품이며, 1세대 코믹스 영웅물과 2세대 코믹스 영웅물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해준 중요한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