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2년 영화이야기

[점쟁이들] -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매력적인 캐릭터 열전

쭈니-1 2012. 9. 27. 10:31

 

 

감독 : 신정원

주연 : 김수로, 이제훈, 강예원, 곽도원, 김윤혜, 양경모

개봉 : 2012년 10월 3일

관람 : 2012년 9월 24일

등급 : 15세 관람가

 

 

귀신 영화에 초대되다.

 

저를 겁쟁이라고 비웃어도 좋습니다. 저는 겁쟁이가 맞고, 제가 겁쟁이라는 점을 숨기고 싶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귀신 영화가 무섭습니다. 무서워도 그냥 무서운 것이 아닌 끔찍하게 무섭습니다. 서양의 귀신은 하나도 안무서운데 동양의 귀신은 정말 무서워합니다.

예전에 2007년 [극락도 살인사건]을 봤을 때의 악몽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스릴러 장르의 영화인줄 알고 결혼기념일을 맞이하여 구피와 함께 극장을 찾았다가 혼비백산했었습니다. 영화가 끝난 후 결혼기념일에 이런 귀신 영화를 보자는 사람이 어딨냐며 구피한테 된통 혼난 것은 덤이었습니다.

그나마 [극락도 살인사건]은 조금 나은 편입니다. 사극 스릴러인줄 알고 혼자 극장을 찾았다가 갑자기 황당한 '전설의 고향' 시츄에이션으로 영화의 중요한 마지막 부분은 거의 눈을 감고 소리로만 감상해야 했던 [궁녀]는 정말 미치는줄 알았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오죽 제가 화가 났으면 제 영화 이야기의 제목이 '제발 스릴러라고 우기지마라!'였겠습니까?

물론 그렇게 귀신 영화를 무서워하면서도 스스로 선택해서 본 영화도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영화가 바로 [오싹한 연애]입니다. 그래도 [오싹한 연애]는 조금 나았던 것이 로맨틱 코미디와 공포의 신선한 결합이었고, 제가 좋아하는 손예진이 있었기에 무서움을 참고 볼 수 있었습니다.(물론 귀신 나오는 장면은 두 눈 감고 봤습니다.)

 

그런 제게 귀신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시사회에 참가해달라며 발칙하게 조른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점쟁이들]입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퇴마사들이 신들린 마을이라는 울진리에서 무시무시한 귀신과 맞서 싸운다는 [점쟁이들]. 평소같다면 고개를 마구 가로 저으며 '싫어. 안볼테야!'를 외쳤겠지만 웬일인지 이 영화는 은근히 땡깁니다.

일단 이 영화가 코미디와 공포, 판타지를 묶은 퓨전 장르라는 것이 안심되었습니다. 귀신의, 귀신에 의한, 귀신을 위한 영화가 아닌, 귀신은 그저 장르의 퓨전을 위한 하나의 장치일 뿐인 것입니다.

그리고 김수로, 강예원 등 코믹 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배우들이 출연한다는 점과 감독이 [시실리 2km], [차우] 등을 통해 코미디와 공포의 결합에 일가견이 있는 신정원 감독이라는 점도 저를 안심시켰습니다. 이 두 영화를 전부 봤지만 끔찍할 정도로 무섭지는 않았거든요. (물론 [시실리 2km]에서는 몇몇 장면에서 눈을 감아야 했지만...)

결국 저는 용기를 내어 시사회에 참가했습니다. 그래도 혼자 가는 것은 아무래도 무서울 것 같아서 이제훈을 좋아하는 친여동생을 꼬드겨 같이 갔습니다. (제 여동생은 이제훈을 실제로 봤다며 밥까지 사주더군요. 일석이조였습니다.) 극장 좌석은 맨 앞자리라 영화보기 힘들었지만 무대인사를 나온 배우들은 가까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5분간 행복했고, 2시간 동안 고개아팠습니다.)

물론 저를 시사회에 초대한 분에게 어느 장면에서 눈을 감아야 하는지 문의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친절하게 스포를 풀어주신 유하나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그 장면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습니다.) 자!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보게된 [점쟁이들]. 이제 [점쟁이들]의 영화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요즘은 여러 캐릭터들이 집단으로 나오는 영화가 인기?

 

먼저 영화 시사회에 초대해주신 분들에겐 죄송하지만 [점쟁이들]에 대한 제 개인적인 아쉬움으로 영화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 중인 [어벤져스]의 영향 때문일까요? 요즘 우리 영화들을 보면 개성 강한 여러 캐릭터들이 한꺼번에 몰려 나와 팀플레이를 이루는 영화들이 많습니다.

최근 [괴물]에 육박하는(하지만 넘기는 힘들어 보이는) 흥행 성적을 올리고 있는 [도둑들]도 그렇고, [도둑들]과 함께 쌍끌이 흥행을 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도 그랬습니다. [간첩]도 각기 개성 강한 네 명의 생활밀착형 간첩들이 나왔고, [점쟁이들] 역시 각자의 방법으로 퇴마 활동을 하는 다섯 명의 '점쟁이들'이 등장합니다.

이렇게 여러 캐릭터들이 나오는 영화의 장점은 확실합니다. 개성강한 캐릭터가 많은 만큼 그로 인한 영화적 재미도 다양할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장점이 확실한 만큼 단점 역시 확실합니다. 많은 캐릭터들을 한데 묶을 수 있는 리더 캐릭터가 부실하면 영화 자체가 산만해질 수도 있고, 캐릭터 구축에도 시간이 꽤 걸린다는 점입니다.

[간첩]은 김과장(김명민)이라는 리더 캐릭터가 확실한 반면 다른 캐릭터 구축이 부실해서 개성 강한 캐릭터에 의한 재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습니다. 그에 반에 [점쟁이들]은 리더 캐릭터가 부실한 편입니다. 그래서 영화가 상당히 산만합니다.

 

이 영화의 리더 캐릭터는 누구일까요? 얼핏 보면 열혈 취재 기자인 찬영(강예원)인 듯이 보입니다. 그녀는 [점쟁이들]의 캐릭터 중에서 유일하게 역술인이 아닌 일반인입니다. 그러면서 죽은 아버지를 통해 울진리와 악연을 가지고 있으며, 젊고 잘생긴 퇴마사인 석현(이제훈)과 알콩달콩 러브 라인을 연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찬영을 리더 캐릭터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찬영은 영화의 후반,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활약을 하지만 그 이전까지만해도 거의 민폐 수준이었고, 석현과의 러브 라인은 할듯 안할듯 미지근하며, 죽은 아버지를 통한 울진리와의 악연 역시 거의 대충 그려집니다.

그렇다면 퇴마사 중의 리더라고 할 수 있는 박선생(김수로)이 캐릭터 중의 리더일까요? 제가 보기엔 신정원 감독의 의도는 그런 것 같은데, 박선생을 캐릭터 중의 리더로 삼기에 부족한 것은 박선생의 캐릭터 구축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석현과의 관계는 공감이 되지 않았고, 이들의 마지막 화해 역시 뜬금이 없었습니다. 울진리 사건 해결에서도 그의 역할이 거의 없고, 마지막 악귀와의 대결에서는 우스꽝스럽게 당하기만 합니다. 

이렇게 리더 캐릭터가 아예 없는 상황이니 다른 캐릭터 역시 대충 그려집니다. 그 중 심인(곽도원)은 잘만 다듬으면 멋진 캐릭터가 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특히 심인과 승희(김윤혜)의 관계는 살짝 맛뵈기만 보여주고 그냥 접어버린 느낌입니다. 개성 강한 캐릭터들은 가득한데 이들 모두 제대로 캐릭터가 구축되지 못해 영화는 어수선하기만 합니다.

 

 

이들 캐릭터만 잘 구축한다면 매력적인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분명 [점쟁이들]의 캐릭터 구축은 부실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부실한 캐릭터들은 개성이 강하고 매력적입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점쟁이인 박선생. 하지만 뭔가 2% 부족한 그의 능력과 석현과의 껄끄러운 관계 속에 울진리에서의 경험을 잘 다듬었다면 겉만 번지르한 박선생이 진정한 퇴마사로 거듭나는 성장담을 담아 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부재와 어머니의 죽음 속에서 공학 박사라는 스펙에도 불구하고 퇴마사가 된 석현의 캐릭터는 또 어떻고요. 어릴 적 사고에 대한 트라우마,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 아버지를 향한 애증의 감정, 그리고 찬영과의 달콤한 러브 라인. 이 중 하나만 잘 살렸어도 [점쟁이들]에서의 석현 캐릭터는 몇 배는 매력적이 되었을 것입니다.

젊은 시절 사랑을 위해 스승을 버린 심인. 그런데 그렇게 사랑했던 여성은 어떻게 되었는지 설명이 없고, 물건을 통해 과거를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승희는 그저 엽기녀 역할만 하며,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볼 수 있는 월광(양경모)은 애어른 노릇밖에 하지 못합니다.

이들 하나 하나가 영화의 주인공을 맡겨도 손색이 없을만큼 매력을 가지고 있건만 신정원 감독은 매력적인 캐릭터를 설정해 놓고 그들의 캐릭터를 구축하지 못함으로서 그냥 낭비해버리는 느낌입니다. 차라리 캐릭터 수를 확 줄이고 한 두명의 캐릭터에 집중하는 편이 나을뻔했습니다.

 

자! [점쟁이들]에 대한 아쉬운 점은 여기까지... 너무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제대로 구축되지 못한채 소모되는 것이 아쉬워 쓴소리가 길어졌네요.

이제 [점쟁이들]에서 만족스러웠던 부분들을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점쟁이들]의 가장 큰 장점은 앞에서도 언급했던 매력이 철철 넘치는 개성넘치는 캐릭터들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 둥장하는 각각의 캐릭터들을 외전 형식으로 과거의 행적을 영화화하거나, 2편 형식으로 이후의 이야기를 해도 참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못말리는 열혈 기자 찬영이 대기업의 비리를 캐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취재기. 박선생과 석현의 관계와 영화에서도 언급되었던 박선생의 굴욕기. 그리고 [고스트 버스터즈]를 연상하게 하는 석현의 퇴마 소동, 심인이 꽃미남(?) 시절에 벌였던 아픈 사랑 이야기와 심인과 승희 사이에 숨겨진 출생의 비밀, 그리고 미래를 보는 월광이 학교에서 겪어야 했을 왕따 이야기, 퇴마사와 열혈취재기자라는 독특한 커플 석현과 찬영의 이후 활약기까지...

이제훈의 군입대로 몇몇 이야기들은 제작하려면 2년 후이거나, 배우를 교체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겠지만, [점쟁이들]의 캐릭터들은 각각의 영화가 가능할 정도로 무한한 매력을 풍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자 간담회에서 이제훈이 밝힌대로 시리즈화가 된다면 더욱 매력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점쟁이들]에서는 비록 너무 많은 캐릭터들의 난립으로 캐릭터들의 매력을 제대로 이끌어 내지 못했지만 만약 시리즈화가 제대로 이어진다면 더욱 매력적인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올 것 같습니다.     

 

 

코믹 호러! 신정원 감독의 포텐이 폭발하다.

 

결국 [점쟁이들]의 개성이 강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는 장점임과 동시에 단점이 되어 버립니다. 그렇다면 [점쟁이들]에서 할 이야기가 캐릭터 뿐일까요? 그게 또 그렇지 않습니다.

[점쟁이들]의 감독은 신정원입니다.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2004년 [시실리 2km]로 감독 데뷔했고, 2009년 [차우]를 거쳐 [점쟁이들]까지 왔습니다. 그가 연출한 세 편의 영화는 모두 코믹과 호러를 결합한 영화들입니다.

기자 간담회에서 신정원 감독은 코믹호러 3부작을 염두에 두었음을 밝혔습니다. 결국 [시실리 2km]와 [차우], [점쟁이들]로 신정원 감독의 코믹호러 3부작은 완성되었습니다. 이렇게 완성된 코믹호러 3부작은 서로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일단은 배경이 그러합니다. 이들 영화는 모두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진행됩니다. 겉보기에는 평화롭고 한적한 시골 마을. 이곳에 낯선 이들이 찾아오며 공포와 코미디가 결합이 되는 것이죠.

[시실리 2km]는 조직의 다이아몬드를 들고 튄 석태(권오중)를 쫓아 양이(임창정)이 시실리라는 한적한 시골 마을을 오면서 시작됩니다. 이 영화에서는 원한을 지닌 처녀 귀신 송이(임은경)가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 양이를 놀라게 하지만 정작 무서운 것은 송이가 아닌 다이아몬드에 눈이 먼 마을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돈에 눈이 먼 순박한 사람들의 섬뜩함은 [점쟁이들]에서도 이어집니다.

 

신정원 감독의 두번째 영화 [차우]의 배경 역시 한적한 시골입니다. 10년째 범죄가 없는 산골 마을 삼매리. 이곳에 식인 멧돼지가 나타나고, 식인 멧돼지를 잡기 위해 마을 사람들은 최고의 사냥꾼들을 마을로 불러 들입니다.

[차우]의 캐릭터 구성은 [점쟁이들]과 매우 유사합니다. 최고라며 어깨에 힘을 주지만 뭔가 2% 부족한 전문가들. 그리고 결정적으로 [차우]에서 논문을 위해 사냥꾼 일행에 억지로 끼어든 변수련(정유미)이라는 캐릭터는 [점쟁이들]에서 찬영으로 발전한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이렇게 일관성 있는 장르의 영화를 제작하다보니 코믹호러 장르에 대한 신정원 감독의 능력치도 점점 상승하는 느낌입니다. 사실 [시실리 2km]와 [차우]는 코미디 성격이 너무 강해서 오히려 호러라는 장르가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차우]의 영화 이야기에서 '공포 스릴러와 코미디의 황금 비율을 찾아라'라며 아쉬워한 것은 그러한 이유입니다.

[점쟁이들] 역시 호러보다는 코미디쪽에 더 많이 치우쳐있지만 그래도 신정원 감독이 어느 정도의 황금 비율을 찾은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그의 이전 영화들과는 달리 확실히 [점쟁이들]을 보며 더 많이 긴장을 했으니까요.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정원표 코믹호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장르 영화와 분위기가 많이 다릅니다. 하지만 신정원 감독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인정하고 즐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면 [점쟁이들]은 분명 가벼운 마음으로 신정원표 코믹호러를 즐길 수 있는 영화임에는 분명해보입니다.

 

 

이제 신정원표 코믹호러에 익숙해지려고 했는데...

신정원 감독은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코믹호러 3부작을 마친다고 한다.

그러면 [점쟁이들 2]는 진정 없는건가?

구축되다 만 이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그냥 묻어둬야 하는가?

아깝다. 아까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