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2년 영화이야기

[피에타] - 그가 세상을 향해 손을 내밀다.

쭈니-1 2012. 9. 19. 11:20

 

 

감독 : 김기덕

주연 : 조민수, 이정진

개봉 : 2012년 9월 6일

관람 : 2012년 9월 18일

등급 : 연소자 관람불가

 

 

내가 김기덕에 대해서 알고 있는 진실과 오해

 

제가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처음 만난 것은 1997년 1월 [악어]라는 영화를 통해서입니다. 당시 저는 방위 소집해제 이후 복학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대학 등록금이나 벌어보자는 심정으로 시작한 아르바이트가 비디오방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정말 많은 영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밤새 카운터에 앉아 비디오방에 배치되어 있는 영화들을 거의 모두 섭렵했을 정도니까요. 물론 새벽 아르바이트라 취객과, 좀도둑, 그리고 양아치들과 비디오방이 여관인줄 착각하는 몰염치한 연인들 때문에 고생을 했지만 밤 새 영화를 볼 수 있는 아르바이트라니... 제겐 천국과도 같았습니다.

그렇게 밤새 닥치는대로 영화를 보던 그때 저는 [악어]를 보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대한 제 첫 느낌은 만족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물 속에서 풍선을 부는 장면 등 수중 촬영씬이 꽤 인상 깊었고 아름다웠지만, 영화 전체적인 짜임새가 제가 보기엔 너무 느슨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김기덕 감독은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하며 거의 매년 새로운 영화를 내놓았습니다. 다른 한국영화들과 비교해서 그는 빠르게, 그리고 저렴하게 영화를 만들어냈고, 그것은 당시에도 꽤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대학에 복학하고 취업 준비를 해야 했던 저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제 영화 취향은 다분히 상업적이었으니까요.

그러다가 우연히 [파란 대문]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진아(이지은)와 혜미(이혜은)이라는 두 여성의 우정을 그린 영화인데 마지막 진아를 위한 혜미의 선택이 성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제게 충격을 안겨준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파란 대문]의 충격은 애교 수준이었습니다. 아직도 저는 2002년에 본 [나쁜 남자]의 충격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사창가의 깡패 한기(조재현)가 순진한 여대생 선화(서원)를 타락시킴으로서 구원을 받는 이 영화는 김기덕 감독의 최고 흥행작이지만(조만간 [피에타]로 인해 그 기록은 깨질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저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불편하다.'라는 인식을 안겨준 영화이기도 합니다.

이후 저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의도적으로 피했고, 제가 좋아하는 여배우 이나영이 출연한 [비몽]을 보기 전까지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막연하게 [나쁜 남자]의 충격으로만 기억이 되곤 했습니다.

언젠가 저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곽재용 감독과 김기덕 감독을 싫어한다.'라고... 그 말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두 감독을 싫어하는 이유는 서로 다릅니다. 곽재용 감독의 경우는 그의 유치한 상상력을 싫어합니다. 하지만 김기덕 감독의 경우는 저를 불편하게 하는 그의 독특한 영화 세계를 싫어합니다.

[나쁜 남자]로 대표되는 그의 영화에서 여성은 폭력의 희생자입니다. 하지만 그의 영화 속의 여성들은 남성에 의한 부당한 폭력에 대항하기 보다는 오히려 순순히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여성을 통해 폭력의 가해자인 남성은 구원을 얻습니다. 비록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많이 보지 않았지만 제가 본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항상 그런 식이었습니다. 저는 그러한 남성의 폭력도 싫었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여성의 태도 역시 불편했습니다. 그것이 제가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싫어하는 이유입니다.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탔다고 그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할까?

 

[피에타]가 2012년 9월 8일 제 69회 베니스영화제에서 그랑프리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습니다. 한국의 영화감독이 세계 3대 국제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임권택, 박찬욱 감독 등 세계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은 거장들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한국영화계의 이단아라는 김기덕 감독이 해낸 것입니다.

저는 압니다. 이로 인하여 많은 이들이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다르게 볼 것이라는 것을... 예전에 그의 영화를 불편하게 생각했던 이들도 앞으로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찬양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올드보이]로 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던 박찬욱 감독도 그러했었습니다. 그가 [올드보이]의 차기작으로 [친절한 금자씨]를 내놓았을때 많은 이들이 결코 친절하지 못한 이 영화를 두고 칭찬을 하지 못해서 안달을 했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친절한 금자씨]에 대한 안 좋은 평을 내 놓으면 득달같이 쫓아와 영화볼 줄 모르는 놈으로 매도하며 악플을 쏟아냈습니다.(제가 그 피해자였고, 그 사건 때문에 저는 네이버를 등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피에타]를 보러 가는 제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자칭 영화광이라고 자부하는 제가 한국영화 최초로 세계 3대 국제 영화제 그랑프리를 차지한 [피에타]를 안 볼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싫어합니다. 따라서 [피에타]가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탔건 타지 못했건 상관없이 [피에타]를 보며 만족을 느낄 가능성은 희박했습니다. 그렇다고 그러한 실망감을 고스란히 영화 이야기에 담는 것도 두려웠습니다. [친절한 금자씨]의 영화 이야기를 쓴 후 불특정 다수에게 당한 그 처참한 악플이라는 폭력의 악몽이 다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고나니 그런 쓸데없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저는 [피에타]가 재미있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 너무 단단하게 마음을 먹어서인지 영화 자체가 너무 쎄게 느껴지지도 않았고,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서 항상 느꼈던 여성을 향한 남성의 폭력이라는 불편함도 이 영화에선 전혀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이건 저 혼자만의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저는 [피에타]가 세상을 향해, 그리고 일반 관객을 향해 김기덕 감독이 용기내어 내민 화해의 손이라고 느꼈습니다. 그의 영화는 일반 관객들이 즐기기엔 언제나 불편했습니다. 다시말해 흥행성과는 거리가 먼 영화들이었던 셈이죠. 국내 극장 환경이 멀티플렉스로 재편되는 상황에서 흥행성이 먼 그의 영화는 배급사의 외면을 받았고, 김기덕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한국에서 개봉시키지 않겠다는 폭탄 선언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그런 식이었습니다. 세상과 타협을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항상 세상과 맞서 싸우려 했습니다. 그의 영화에서 느꼈던 불편함은 그런 비주류 감독의 뚝심이었습니다. 자신의 영화 세계를 타협없이 날것 그대로 관객 앞에 내던진 그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상에, 그리고 관객에게 오히려 싸움을 걸어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변했습니다. 최소한 제가 느끼기엔 그렇습니다. [영화는 영화다], [의형제]의 장훈 감독 사이에서 벌어진 사제간의 불화, 2008년 [비몽]이후 3년 간의 칩거 생활. 그 사이에 김기덕 감독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저는 잘 모르지만 그는 [피에타]를 통해 확실히 변했습니다.

 

 

나쁜 남자 이강도... 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이강도(이정진)... 그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으레 존재하는 나쁜 남자입니다. 사채업자인 그는 청계천의 가난한 세입자들의 돈을 뜯어내기 위해 강제로 보험에 가입하게 만든 후 그들을 장애인으로 만들어 보험금을 갈취합니다.

그에게 인간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듯이 보입니다. 상대방의 노부모 앞에서도 거침없이 폭력을 휘두르고, 살려달라고 자신이 병신이 되면 가족들을 먹여 살릴 수가 없다고 매달리는 이들의 애원에도 전혀 흔들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는 미숙아입니다. 영화 초반에 홀로 자위 행위를 하는 모습을 통해 김기덕 감독은 이강도가 사랑을 받지 못했기에 사랑을 할줄 모르는 정신적 미숙아라는 사실을 고스란히 까발려 놓습니다. 이강도라는 캐릭터에게 연민을 느낄 최소한의 장치를 미리 마련해 놓은 셈입니다.

그런 그 앞에 엄마(조민수)라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다짜고짜 '내가 30년 전에 병원에서 널 버린 엄마다.'라며 용서를 구하는 그녀. 강도는 그러한 어머니의 존재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어머니라는 존재 앞에 굴복합니다. 그만큼 그는 사랑에 목말라 있었던 것입니다.

강도가 엄마와 함께 보내는 일상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서 좀처럼 찾기 힘든 밝은 장면의 연속이었습니다. 특히 강도가 어린 아이처럼 거리에서 풍선을 가지고 좋아하는 장면에서 그는 나쁜 남자 이강도가 아닌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행복했고, 그 행복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강도의 행복은 아주 잠시였습니다. 그에게 앙심을 품은 사람들이 많았던 만큼 강도는 항상 엄마의 안위가 걱정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일이 터진 것입니다. 엄마가 누군가에게 납치된 것이죠.

바로 이 부분에서 김기덕 감독은 그의 이전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우화와 같은 장면들을 연출합니다. 엄마를 납치했을 가능성이 있는, 자신이 폭력을 가했던 이들을 찾아다니는 강도. 그리고 그는 그들의 처참한 현실을 목격하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칩니다.

최소한 제가 본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서 그가 창조해낸 나쁜 남자들은 그런 식으로 뉘우치지 않습니다. 순수함의 상징인 여성에게 폭력을 가하고, 그렇게 무너지는 그녀들을 통해 구원을 받는 것이 김기덕 감독식의 뉘우침이었습니다.

이건 마치 강도가 그러했듯이 김기덕 감독 스스로가 자신이 살아온 삶, 자신이 만든 영화들을 뒤돌아보며 자신의 영화를 불편해하는 관객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전의 그는 관객의 느낄 불편함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피에타]에서 그는 강도라는 캐릭터에게 느낄 불편함을 관객에게 친절하게 설명했고, 이해시켰습니다. 

그래서 저는 [피에타]가 전혀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서 처음으로 남성 캐릭터에 연민을 느꼈습니다. 엄마를 찾아 애타게 해매는 그의 모습을 보며 그가 다시 행복해지길 바랬습니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들 합니다. 어머니의 사랑 없이 큰 강도가 괴물이 되었듯이, 김기덕 감독이 자라온 환경은 그의 영화 속에 고스란히 투영되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그(들)를 이해한다면 강도라는 캐릭터에게서, 그리고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을 더이상 외면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김기덕식 [올드보이] (스포 포함)

 

결국 [피에타]는 세상을 향해 악마와도 같은 짓을 해온 한 남자를 향한 구원에 대한 영화입니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악마와도 같은 행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합니다. 영화의 후반부 땅에 엎드려 잘못했다고, 제발 용서해달라고 절규하는 강도의 모습은 진심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피에타]는 동시에 복수에 대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아들을 죽음으로 내몬 강도를 향한 미선의 복수입니다. 그런데 이 복수는 그저 복수의 상대를 죽이는 단순한 복수가 아닌 복수의 상대가 죽음보다 더 강렬한 지옥과도 같은 괴로움을 맛보게 하기 위한 진정한 복수입니다.

그래서 저는 [피에타]를 보며 [올드보이]가 떠올랐습니다. 복수에 대해서 일반적인 시선이 아닌 다각적인 시선을 보여줬던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는 아직까지 제게 최고의 한국영화로 기억되는 영화이기도합니다.

물론 [피에타]는 [올드보이]처럼 매끈하게 잘 빠지지는 않았습니다. 상업영화에 서툰 김기덕 감독답게 [피에타]는 여기 저기 거친 부분이 눈에 띕니다. [올드보이]처럼 마지막 반전을 잘 숨겨놓지도 못했습니다. 영화 오프닝에서 자살을 하는 훨체어를 탄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며 미선이 강도에게 접근하는 이유에 대해서 초반부터 쉽게 예상할 수 있게끔 합니다.

특히 미선이 강도의 자위 행위를 도와주고 손에 묻은 정액을 물로 씻는 장면에서 미선이 강도의 어머니가 아니라는 너무나도 강렬한 암시를 보여줍니다. 강도의 정액을 씻는 미선의 표정에 드러나는 혐오.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마지막 반전은 무용지물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피에타]는 그러한 반전이 중요한 영화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미선의 납치극이 자작극임은 영화의 중후반부에 고스란히 노출이 되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후반에 시점이 상당부분 미선에게 옮겨지기도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미선의 복수를 통한 강도의 변화입니다. 미선이 납치되었다고 생각하는 강도가 자신으로 인해 비참한 삶을 사람을 찾아다니며 느껴지는 미묘한 표정의 변화, 그리고 참회와 절규는 영화의 제목 그대로 그에게 자비를 베푸고 싶게끔 만듭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어쩌면 [피에타] 이후의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더욱 관객과 가까워질지도 모르겠다고 말입니다. 그것은 비단 그가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함으로서 한국영화계의 거장으로 거듭났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피에타]를 통해 자신의 영화에 불편함을 느끼는 관객들까지 포용하고, 용감하게 손을 내밀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그가 내민 손을 관객이 잡는 것 뿐입니다. [피에타]는 [광해 : 왕이 된 남자]의 흥행 광풍 속에서 묵묵하게 관객들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고 합니다. 비록 [피에타]를 향한 이러한 관객의 반응은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의 후광이 크다고 할지라도, 그의 영화를 향한 관객의 반응은 희망적입니다.(그의 영화를 싫어하는 저도 이렇게 [피에타]를 재미있게 봤으니 말입니다.)

김기덕 감독이 19번째 영화, 20번째 영화에서도 세상을 향해, 그리고 관객을 향한 손을 거두지 않는다면 더이상 그는 한국영화계의 이단아, 비주류 감독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가 용감하게 내민 이 손을 관객들이 꼭 잡고 놓아주지 않을테니까요. 저 역시 김기덕 감독을 향한 오랜 편견과 오해를 이제는 거둬들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김기덕 감독님...

당신이 내민 손은 의외로 따뜻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