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2년 영화이야기

[늑대아이] - 우린 그들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게끔 이끌어줄 의무가 있다.

쭈니-1 2012. 9. 17. 14:05

 

 

감독 : 호소다 마모루

더빙 : 미야자키 아오이, 쿠로키 하루, 니시이 유키토

개봉 : 2013년 9월 13일

관람 : 2012년 9월 15일

등급 : 전체 관람가

 

 

고생물학자는 돈을 벌 수 있을까?

 

웅이의 장래희망은 한결같습니다. 한때 공룡박사를 꿈꾸던 웅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자신의 꿈을 구체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고생물학자가 꿈이며, 우리나라 공룡박사로 유명한 이융남 박사에게 배우려면 어느 대학에 가야하는지 알아 보기도 하고, 유학을 가려면 영어를 잘 해야한다며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하기도 합니다.

처음엔 저도, 구피도 그냥 그러려니 했습니다. 남자 아이라면 으레 공룡에 관심을 갖기 마련이니 성장 과정 중의 하나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웅이가 벌써 10살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룡박사라는 꿈은 한결같고, 오히려 공룡박사가 되기 위한 과정을 구체화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니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하더군요.

'고생물학자가 되면 돈은 벌 수 있을까?'라는 문제가 저와 구피의 가장 큰 걱정입니다. 웅이가 어른이 되어서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고생물학자라는 직업이 앞가림을 할 수 있을만큼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제 경제적 능력도 문제입니다. 웅이가 원하는 세계적인 고생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국내 교육으로는 부족할 것입니다. 결국 유학을 보내야 하는데 저와 구피에겐 웅이를 유학보낼 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웅이가 크면서 좀 더 현실적인 꿈을 갖게 되기를 은근히 바라면서도 웅이가 세계적인 고생물학자가 되는 상상을 하기도 합니다. 웅이가 새로운 공룡뼈를 발견하고 공룡의 이름에 쭈니사우르스라는 이름을 붙여준다면 참 멋진 일이잖아요. ^^

부모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어린 자녀가 성장하여 스스로 생활할 수 있게끔 인도하는 것... 저는 그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공부해라'라는 잔소리가 입에 붙어 있습니다. 학벌 중심의 대한민국 사회를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부모의 중요한 역할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어린 자녀가 행복하게 살도록 이끌어주는 것 역시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을 잘 벌고, 사회적으로 성공한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잖아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요? 그리고 여기 그러한 부모의 역할을 담은 감동적인 애니메이션이 국내에 개봉했습니다. 바로 [늑대아이]입니다.

 

 

늑대인간 설화를 이용하긴 했지만...

 

평범한 대학생 하나(미야자키 아오이)는 어느날 학교에서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남학생을 만나게 됩니다. 둘은 곧바로 사랑에 빠집니다. 그런데 그가 어느날 충격적인 고백을 합니다. 자신은 바로 늑대인간이라는 거죠.

늑대인간과 인간 여성의 사랑, 얼핏 [트와일라잇]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늑대인간과 뱀파이어를 공포의 소재 대신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탈바꿈시킨 이 영화는 원작 소설은 물론이고, 영화도 [뉴문], [이클립스], [브레이킹 던]으로 시리즈화되며 전세계적으로 흥행 성공의 신화를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늑대아이]에서 [트와일라잇] 류의 판타지 로맨스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늑대인간과 인간 여성의 사랑을 담은 영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늑대아이]가 담고 있는 것은 아주 특별한 그들 사랑 이후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늑대인간과 사랑에 빠진 하나는 두 아이를 낳습니다. 굉장히 활발한 말괄량이 유키와 소심하고 나약한 성격의 막내 아메가 늑대인간과 하나의 사랑의 결실입니다. 그러나 아빠인 늑대인간은 사고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하나에겐 짧지만 행복했던 사랑이 끝나고 이제 두 아이를 키워야한다는 냉혹한 현실만 남아 있는 것입니다.

 

결혼을 하신 분들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아이를 키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빠가 없는 상황이라면 엄마의 육아 부담은 더욱 커지겠죠. 그런데 여기에 아이들이 보통의 인간 아이가 아닌 늑대인간과 인간의 혼혈이라면 그 부담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늑대아이]는 그러한 하나의 고충을 영화의 초반에 짧지만 강렬하게 삽입합니다. 사랑하는 남편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두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하나. 주위의 시선도 신경써야 하고, 경제적 부담도 감수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점점 성장하면서 하나는 점점 초췌해져갑니다.

하나 역시 꿈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홀로 도시로 와서 아르바이트를 두 개나 하며 힘든 대학생활을 버틴 것입니다. 하지만 유키와 아메를 위해 그녀는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 합니다. 꿈을 안고 사는 것 자체가 그녀에겐 사치입니다. 어떻게든 보통 아이들과는 다른 유키와 아메를 잘 키워내는 것, 그녀는 그것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야 합니다. 그녀가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외딴 시골 마을로 이사를 결심한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나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도망치듯이 시골행을 택합니다.

 

 

진심은 언제나 통하기 마련이다.

 

과연 하나는 외딴 시골 마을에서 잘 해낼 수 있을까요? 수 많은 사람들이 귀농을 결심하고 힘든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멋진 자연의 삶을 꿈꿉니다.

하지만 도시 생활에 길들여진 이들이 시골 생활에 적응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귀농을 결심하는 수 많은 사람들 중 대부분이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시골 생활에 실망하고 다시 도시행을 선택한다고 합니다.

하나를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하나를 보며 '조만간 편의점, 노래방을 그리워하며 도시로 떠날 것이다.'라며 수근거립니다. 거의 쓰러져가는 외딴 집에서 젊은 여성이 어린 두 아이들을 키우며 버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하나에겐 절박함이 있었습니다. '늑대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도시 생활이 불가능했던 하나에겐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던 것이죠. 그녀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여자보다 강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는 바로 그 강한 엄마인 셈입니다. 남성도 힘든 시골 생활을 그녀는 아이들을 위해서 꿋꿋히 버텨냅니다.

 

그리고 그녀의 진심은 결국 통합니다. 마을 사람들 역시 그녀의 진심을 알아주고 그녀를 돕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시골 마을로 이사온 하나는, 오히려 사람들과 더불어 힘든 역경을 이겨냅니다.

하나의 도시 생활이 위태위태하게 그려진데 반에 시골 생활은 꽤 활기차게 그려집니다. 특히 도시에선 사람들 시선에 숨기 바빴던 유키와 아메가 환하게 웃는 모습은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하나에게 감정이입을 하며 영화를 봤던 저는 유키와 아메가 잘 커주는 것을 보며 속으로 '다행이다. 건강하게 잘 커줘서...'를 되뇌었습니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비록 하나는 시골 생활을 꿈꾸지 않았습니다. 그녀도 꿈이 있었고, 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어머니라는 이름을 갖게 되면서 자기 자신을 버립니다. 어린 자식들을 위해서 힘든 시골 생활도 버텨냅니다.

[늑대아이]를 보며 유키와 아메가 잘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흐뭇했습니다. 아이들을 잘 키우겠다는 그녀의 진심은 결국 유키와 아메를 누구보다도 멋진 아이들로 키워낸 것입니다. 그렇게 행복은 지속될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성장합니다. 그것은 이 영화의, 아니 하나의 비극이었습니다.

 

 

성장한 아이들은 부모의 품을 떠난다.

 

[늑대아이]는 너무나도 세심하게 유키(쿠로키 하루)와 아메(니시이 유키토)의 성장을 담아 냅니다. 말괄량이 여자아이에서 점점 숙녀로 자라나는 유키와 소심하고 나약한 막내에서 누구보다도 듬직한 늑대인간으로 성장하는 아메.

하나의 노력 끝에 유키와 아메는 이제 성인의 문턱에 있습니다. 그리고 다 큰 아이들이 그러하듯이 유키와 아메는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나려고 합니다. 유키는 인간의 길을, 그리고 아메는 늑대의 길을...

시종일관 잔잔하게 하나의 헌신과 유키와 아메의 성장을 담아내던 영화는 영화 후반부에 태풍과도 같은 클라이맥스를 준비합니다. 하나는 보낼 수 없다고 울부짓습니다. 부모의 마음은 다 그럴겁니다. 아직은 어린 듯이 보이는 내 자식이 이제 다 컸다고 부모의 곁을 떠나려 하면 아직 못해준 것이 너무 많고, 더 보호해줘야 할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픈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보내줘야 합니다. 부모의 역할은 그들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삶을 선택했다면 마음 속으로 응원하는 것 역시 부모가 해야할 의무인 것이죠.

[늑대아이]는 비록 늑대인간이라는 특별한 존재를 내세워 '늑대아이'를 키우는 하나의 경우를 그려냈지만 그것은 비단 하나 뿐만이 아닙니다. 보통의 인간 아이를 키우는 우리 모두 또한 하나와 전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늑대아이]는 분명 아이들 취향의 애니메이션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극장을 찾은 어린이 관객들은 영화에 쉽게 집중력을 잃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내 앞좌석의 어린 아이는 집에 가자고 영화 중반부터 엄마를 조르기 시작했습니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이전작인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썸머워즈]가 10대 청소년 관객이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라면 [늑대아이]는 좀 더 성숙한 20대부터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애니메이션입니다. 물론 저처럼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자녀를 둔 중년의 관객이라면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다행히 웅이는 [늑대아이]를 재미있게 보더군요.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이 영화를 보고 뭘 느꼈어?'라는 물음에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영화 자체가 성인 관객을 위한 주제를 담고 있어서 웅이가 영화적 재미 그 이상의 무언가를 느끼기엔 무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늑대아이]를 보고나니 이 영화를 웅이가 아닌 구피와 함께 봤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룡박사의 꿈을 안고 있는 웅이. 저와 구피가 할 수 있는 것은 웅이가 공룡박사의 꿈을 버리고 좀 더 쉽게 돈을 벌고, 편하게 살 수 있는 직업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아닌, 웅이가 원하는 공룡박사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고 지켜주는 것이겠죠. 하나가 그러했듯이 우린 우리의 자녀들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게끔 이끌어줄 의무가 있으니까요.

 

 

 유키와 아메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도록 이끌어준 하나.

그녀의 모습은 그 어떤 누구보다 아름답고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