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2년 영화이야기

[공모자들] - 이 세상엔 희생해도 되는 생명은 없다.

쭈니-1 2012. 9. 6. 13:43

 

 

감독 : 김홍선

주연 : 임창정, 최다니엘, 오달수, 조달환, 조윤희, 정지윤

개봉 : 2012년 8월 29일

관람 : 2012년 9월 5일

등급 : 18세 이상 관람가

 

 

마음 단단히 먹고 보다.

 

9월 3일 월요일... 다음날이 웅이의 생일이어서 구피와 웅이의 반 아이들에게 사줄 간식을 사러 백화점에 갔습니다.(요즘은 생일 파티를 하는 대신 반 아이들에게 간식과 선물을 주더군요.)

백화점 식품 코너에서 웅이의 반 아이들과 선생님에게 나눠줄 빵을 사고나니 시간이 많이 남더군요. 구피가 자신은 그냥 버스타고 들어갈테니 [공모자들]보고 오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공모자들] 관람은 다음으로 미루고 구피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9월 4일 화요일... 저녁에 웅이의 생일을 축하하고 즐거운 한때를 보냈습니다. 하루종일 비가 퍼붓더니 저녁이 되며 조금 잠잠한 상황. 구피가 비도 잠잠했으니 [공모자들] 보고 오라고 했지만 저는 마루 바닥에 벌러덩 누워 오늘은 비가 와서인지 영화볼 기분이 아니라며 멍하니 TV만 봤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공모자들]을 볼 시간적 여유가 충분했습니다. 구피는 일찌감치 '난 [공모자들] 안볼테니 혼자 봐.'라고 선언한 까닭에 홀로 쓸쓸히 극장에 가야 했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지난 일요일부터 화요일까지 3일 연속 [공모자들]을 보러 극장으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저는 스스로에게 변명을 대며 [공모자들]을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공모자들]을 그토록 외면한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영화의 소재가 너무 잔인하기 때문입니다. 요즘들어서 유난히 유쾌한 영화가 땡기지만 최근 극장가는 유행처럼 잔인한 영화만 히트치고 있었습니다. 정말 생각없이 맘껏 웃어보고 싶은데, 그럴만한 영화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극장 앞에서 서서 한동안 [577 프로젝트]를 볼까 고민을 하기도 했습니다. 스토리와 캐릭터 위주로 영화를 보는 개인적 취향 탓에 다큐멘터리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공모자들]보다는 훨씬 밝은 영화일 것 같아서 제 마음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결국 [공모자들]을 봤습니다. 이 영화를 먼저 본 분들의 호평과 지난 주말 박스오피스 1위라는 성적.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스릴러라는 장르의 유혹이 밝은 영화를 보고 싶다는 제 욕망을 꺾은 셈이죠. 

평일 밤이라 한산한 극장. 그 넓은 상영관에 홀로 앉은 저는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그 어떤 잔인한 장면이 나오더라도 결코 고개를 돌리지 않겠다고... 이 영화의 그 대단하다는 반전을 꼭 깨고 말겠다고...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공모자들]은 제가 고개를 돌리고 싶은 만큼의 잔인함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반전을 깨지도 못했습니다. 굳이 총평을 하자면 우려했던 시각적 잔인함 대신 심리적 잔인함이 강했고 반전이 돋보이는 영화였습니다.

 

 

캐릭터 구축... 훌륭했다.

 

일단 저는 [공모자들]에게 꽤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김홍선 감독은 [공모자들]로 감독 데뷔한 신인감독입니다. 하지만 그는 노련하게 [공모자들]을 매력적인 스릴러 영화로 조련해냅니다.

[공모자들]의 가장 큰 맹점은 바로 캐릭터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영규(임창정)는 아주 나쁜 놈입니다. 그는 장기밀매 브로커로 돈을 위해 산 사람의 장기를 적출해서 파는 극악무도한 놈입니다.

가끔 아주 나쁜 놈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영화가 있습니다. 최근에 본 [90분]도 그러했는데, 그럴 경우의 가장 큰 문제는 관객이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하지 못한채 방관자의 입장에서 영화 속의 사건을 바라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되면 필연적으로 관객이 느껴야할 긴장감은 떨어지게 됩니다. [공모자들]은 바로 그러한 영규의 맹점을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김홍선 감독은 결코 서두르지 않고 영규의 캐릭터를 구축하는데 심혈을 기울입니다. 그에게 3년 전의 상처도 심어주고, 다시는 장기밀매를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함으로서 최소한의 양심도 표현해 냅니다. 영규의 유리(조윤희)에 대한 순애보는 이 나쁜 남자의 캐릭터를 최대한 순화시키려는 김홍선 감독의 노력입니다. 이렇게 정성껏 구축된 영규의 캐릭터는 영화의 중후반부에 제대로 그 힘을 발휘합니다.

 

영화의 초반부를 영규의 캐릭터 구축으로 시간을 보낸 [공모자들]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잔인한 이야기를 펼쳐 보입니다.

다리가 불편한 아내 채희(정지윤)와 함께 결혼 후 처음으로 해외 여행에 나선 상호(최다니엘). 하지만 이 두 사람의 행복은 오래 지속되지 못합니다. 채희를 호시탐탐 노리는 악마의 손길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정성껏 구축된 영규의 캐릭터가 빛을 발합니다. 사실 상호와 채희 캐릭터는 최대한으로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영화를 보는 관객 입장에서 사라진 아내를 애타게 찾는 상호에게 감정이입을 하기엔 무리가 따릅니다. 하지만 주인공인 영규는 채희를 노리는 악마 중의 대장격입니다. 진퇴양난인 셈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홍선 감독은 영규의 복잡한 내면을 잡아냅니다. 바로 채희와 영규 그리고 유리와의 복잡한 관계 설정입니다. 채희는 3년 전 일이 틀어져 희생되어야 했던 영규 동료의 동생인 것입니다. 게다가 영규의 순애보 대상인 유리가 상호를 도와주면서 일은 더욱 꼬이게 됩니다. 유리의 아버지 역시 장기 이식을 받기 위해 중국에 가는 길이며, [공모자들]은 채희의 장기가 유리의 아버지에게 이식될 것임을 암시합니다.

채희를 도와줄 수도, 그렇다고 채희를 희생할 수도 없는 상황. 이 복잡한 상황에서 관객은 영규의 편이 되지 못하지만 영규의 마음이 움직이도록 마음 속으로 간절히 응원하게 됩니다. 영규의 눈빛이 흔들리는 장면에서 채희의 희생을 막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게 영규는 최악의 악당이면서 관객의 응원을 받게 되는 묘한 상황이 되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잔인한 이유 (이후 스포 포함) 

 

영규는 나쁜 놈입니다. 그것은 바꿀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불쌍한 채희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영규입니다. 상호가 그 일을 하기엔 그는 무기력해 보입니다. 영규가 최악의 악당이면서 관객의 응원을 받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영규는 그러한 기대에 부응합니다.

이후에는 이 영화의 반전에 대한 언급이 있으니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더 이상 글을 읽지 않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공모자들]의 반전은 이 영화의 진정한 재미이기에 반전을 미리 알고 영화를 본다면 영화의 재미가 반감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공모자들]의 첫번째 반전은 채희가 중국으로 가는 배에서 희생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영규는 관객의 바램을 외면하지 않은 셈입니다.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채희를 살려내고 경재(오달수)를 통해 빼돌립니다.

영규가 관객의 기대에 부응하며 영규는 나쁜 놈이 확실하지만 관객의 응원을 받게 됩니다. 이제 나쁜 놈에서 믿음직한 놈이 된 영규가 채희를 상호의 폼으로 돌려 보내고, 여전히 채희의 장기를 노리는 더 나쁜 놈들을 향해 복수를 해주길 바라게 됩니다. 하지만 [공모자들]은 바로 이 부분에서 영화의 진정한 잔인함을 표출합니다. 이 전까지는 영화를 보며 '생각보다 잔인하지 않네.'라고 생각했던 저도 영화의 두번째 반전에 와서는 너무 잔인한 설정에 소름이 돋아야 했습니다.

 

영화의 초중반부가 생각보다 잔인하지 않게 느껴진 이유는 영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채희의 장기를 노리는 나쁜 놈이지만 초반부터 성실하게 구축된 캐릭터 덕분에 관객들은 그의 변심을 기대하게 되고, 결국 그가 마음을 고쳐 먹고 채희를 살려낼 때엔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됩니다. 영화 속에 믿음직한 캐릭터가 있다는 것의 효과인 셈이죠.

하지만 두번째 반전에서 [공모자들]은 그렇게 믿음직한 영규마저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영규가 무기력해지면서 [공모자들]은 진정으로 잔인해지는 것이죠.

영규를 무기력하게 만든 것은 역설적이게도 상호입니다. 채희의 장기를 노리는 배후의 인물이 바로 상호였던 것이죠. 상호가 자신의 본심을 드러내는 순간 무사할줄 알았던 채희도, 영규가 지키고 싶어하던 유리도, 그리고 유리의 아버지도 모두 허망하게 희생되고 맙니다. 영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그저 분노하며 울부짖는 일 뿐입니다.  

이 보다 더 잔인한 설정이 있을 수 있나요? 채희에게 가장 믿을 수 있었던 존재인 상호가 채희의 장기를 노리는 가장 무서운 존재가 되고, 그로인하여 영화에서 가장 믿음직했던 캐릭터인 영규가 무기력하게 무너집니다. 영규의 변심으로 채희를 지켰고, 이제 복수의 순간을 기대했던 저는 이 잔인한 반전에 온 몸에 힘이 빠져 버렸습니다. [공모자들]은 그렇게 잔인한 비극을 완성해냅니다.

 

 

이 세상엔 희생해도 되는 생명은 없다.

 

죽은 동료를 위해 애써 살려 놓은 채희는 상호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합니다. 이에 영규는 분노하며 '도대체 왜?'라고 묻습니다. 그때 상호는 이렇게 말합니다. 채희 하나만 희생하면 30명은 살릴 수 있다고... 한명을 희생해서 30명을 살릴 수 있다는 반론. 얼핏 들으면 맞는 말같습니다.

하지만 과연 [공모자들]을 보며 상호의 그 이야기에 '맞아.'라고 동의하는 분들이 계실까요? 아무리 한 명의 희생으로 30명을 살릴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은 범죄입니다. 그것도 아무런 죄 없는 한 명을 억지로 희생시키는 극악무도한 범죄입니다.

며칠 전에 [언씽커블]이라는 영화를 놓고 몇몇 분들과 필요악에 대한 논쟁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저는 [언씽커블]을 보지도 않은 상황에서 얼떨결에 이 논쟁의 한가운데에 서게 되었습니다. 제가 [언씽커블]을 보지는 않았지만 얼핏 들으니 50명의 무고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2명의 죄없는 어린 아이를 고문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라고 합니다. 저는 50명을 구하기 위해 2명을 희생시키는 이 영화의 메시지에 공감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논쟁에 참여한 다른 분들은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을 찬성하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논쟁이 길어지면서 저는 섬뜩함을 느껴야 했습니다. 다수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소수가 바로 자기 자신, 혹은 자신의 가족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은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을 찬성할까? 라고 생각하니 인간이라는 존재가 무서워지기까지 하더군요.

 

[언씽커블]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는 동안 저는 지인들에게 넌지시 물어봤습니다.

'만약 서울에 핵폭탄이 설치되어 있어 몇 시간 안에 그 폭탄이 터지고 모든 사람들이 죽게 되는데 한 명의 어린아이만 희생시키면 핵폭탄이 터지지 않고 서울의 시민들을 살릴 수 있어. 그렇다면 넌 그 아이의 희생에 찬성할거니?'

충격적이게도 제 주위의 지인들은 몇 초의 고민도 없이 '응'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한 명의 어린아이보다 천만 명의 넘는 서울 시민의 생명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래서 질문을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그 희생되어야 하는 어린아이가 바로 너의 아들, 딸이라면?' 그 지인은 수십초동안 고민하다가 결국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수십, 수백, 수천 명의 생명은 바로 한 명의 생명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한 명의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못한다면 수십, 수백, 수천 명의 생명 역시 소중함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죠. 상호는 한 명을 희생해서 30명을 살릴 수 있다며 자신의 범죄를 미화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희생당하는 한 명의 생명을 돈으로 밖에 보지 못하는 그에게 30명의 생명이 소중할리가 없습니다.  

이 세상엔 희생해도 되는 생명은 없습니다. 모두 자기 자신의 생명이 중요하고, 자신의 가족이 소중합니다. 나를 위해서, 내 가족을 살리기 위해서, 남을 희생시켜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상호의 논리에 동조하는 것이죠. 살려야 하는 나와 가족이 아무리 다수일지라도,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영화가 끝나고 으슬으슬 추웠습니다. 그날 밤에는 저답지 않게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도 못했습니다. 언젠가 공중 화장실에서 얼핏 본 장기 밀매 스티커가 생각났습니다. 그곳에 전화하는 사람들은 분명 간절히 살리고 싶은 그 누군가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로인해 희생되어야 하는 그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대해선 눈을 가리고 귀을 막겠죠. 이것이 현실이고, 저는 이것이 가장 섬뜩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막상 자신의 일이 되면 상호의 이야기에 동조한다는 사실이 저를 무섭게 합니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픽션이다.

장기밀매 보로커... 정말 끔찍한 존재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장기를 사려는 사람들이 있는 한

이 끔찍한 존재들은 누군가에게는 필요악이 된다.

당신은 진정 이 끔찍한 필요악에 동조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