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2년 영화이야기

[이웃사람] - 결국 해답도 이웃사람이다.

쭈니-1 2012. 8. 30. 11:55

 

 

감독 : 김휘

주연 : 김새론, 김성균, 김윤진, 천호진, 마동석, 임하룡

개봉 : 2012년 8월 22일

관람 : 2012년 8월 29일

등급 : 18세이상 관람가

 

 

볼라벤이 가니 덴빈이 온다더라.

 

15호 태풍 볼라벤의 한반도 상륙은 저희 가족에게 엄청난 공포를 안겨주었습니다. 볼라벤이 상륙도 하기 전인 토, 일요일부터 모든 계획을 포기하고 집에 꼼짝도 못하고 갇혀 지냈으며, 월요일에는 베란다 창문에 테잎을 붙인다며 온갖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볼라벤이 본격적으로 수도권에 상륙한 화요일에는 웅이의 학교가 임시휴교를 선언했고, 회사에 출근해서도 혹시 집에 태풍 피해를 입지는 않을지 하루 종일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

결국 볼라벤은 전국 각지에 안타까운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입혔지만, 불행중 다행으로 수도권에서는 생각보다는 큰 피해없이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볼라벤이 지난 간 후 저는 기진맥진해 있었습니다. 보고 싶었던 영화 보기도 모두 포기하고 볼라벤에 의한 피해에만 신경을 써야 했기에 막상 볼라벤이 무사히 지나가고 나니 무슨 지구 멸망의 순간에서 살아 나온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긴장이 풀리고 이제 볼라벤 때문에 미뤄뒀던 영화를 봐야 겠다고 결심했지만 곧이어 14호 태풍 덴빈이 한반도로 향한다는 뉴스를 듣고 좌절해야 했습니다.

분명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은 이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전에는 이렇게 태풍으로 인하여 공포에 떨며 하루를 보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냥 덤덤하게 뉴스를 보며 태풍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만 느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태풍이 오기도 전에 두려워하고, 걱정하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네요.

왜 그럴까요? 아마도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볼라벤이 한반도를 강타했을 때, 저는 그 누구보다도 웅이가, 그리고 구피가 태풍으로 인하여 다치지는 않을지 걱정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고 싶었기에 볼라벤에 긴장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 볼라벤이 할퀴고 지나간 자리를 덴빈이 한반도에 상륙하여 2차 피해가 우려된다고 합니다. 저는 또 다시 웅이와 구피를 걱정하며 안절부절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강풀... 그의 힘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볼라벤이 물러가고, 덴빈이 한반도에 상륙하기 전, 하루의 여유 시간이 남았습니다. 덴빈으로 인하여 수도권에 많은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저는 또 다시 영화 보기를 포기해야 할 것이 분명했기에 이 단 하루의 여유는 극장으로 향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습니다.

결국 저는 지난 일주일 동안 볼 기회만 엿보고 있었던 [이웃사람]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잠시 [공모자들]에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공모자들]은 덴빈이 물러간 이후에 보기로 하고 홀로 [이웃사람]을 봤습니다.

제가 [이웃사람]을 기대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이 영화가 지난 주말 박스오피스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제게 [이웃사람]은 강풀 원작의 영화라는 사실만으로 영화 개봉 전부터 큰 기대를 안겨준 것입니다.

강풀은 웹툰 작가입니다. 이미 그의 웹툰은 [아파트]에서부터 시작하여 [이웃사람]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영화화되었습니다. 그만큼 강풀의 웹툰은 탄탄한 스토리 라인과 매력적인 캐릭터를 지니고 있어서 영화화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저는 강풀의 웹툰을 모두 챙겨 보았고, 영화는 [아파트]를 제외하고 모두 보았습니다.

 

하지만 강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들은 2011년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예상 외의 성공을 거두기 전까지 흥행에서 실망스러운 결과만 가져왔습니다. 항간에는 강풀 징크스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그것은 웹툰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의 웹툰을 영화화하는 사람들이 강풀 웹툰의 기본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강풀의 웹툰은 미스테리심리썰렁물과 순정만화로 나뉩니다. 하지만 장르가 무엇이건, 그의 웹툰은 수 많은 캐릭터와 그 안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의 웹툰을 영화화한 감독들은 그러한 강풀 웹툰의 기본을 잘 이해하지 못한 셈이죠.

비록 보지는 않았지만 [아파트]의 경우는 주인공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꾸며 공포영화의 기본 공식 안에 강풀 웹툰을 꾸겨 넣으려 시도했고, [바보]는 한국영화계의 스타 시스템을 이용하여 강풀의 웹툰을 안일하게 각색했습니다. [순정만화]는 원작 안의 그 수 많은 캐릭터들과 그들의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채 알콩달콩하고 예쁜 로맨틱 코미디로 포장하려다가 실패한 케이스입니다.

강풀 웹툰의 최초 성공작이라 할 수 있는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원작에 충실하며 그 안의 사랑을 모두 담아내려 시도한 첫번째 영화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웹툰과 영화는 어차피 다른 장르이고, 웹툰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영화에 담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원작에 충실하고, 원작의 가장 핵심인 인간에 대한 사랑을 제대로 담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보여준 강풀 원작 영화의 정석인 셈입니다.

 

 

놀랍도록 원작에 충실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웃사람]은 [그대를 사랑합니다]와 마찬가지로 강풀 웹툰을 원작에 가장 가깝게 영화화했습니다. 스타급 배우보다는 웹툰의 싱크로율에 집중하여 캐스팅을 했고, 그렇게 캐스팅된 배우들은 마치 웹툰의 캐릭터들이 걸어서 스크린 속으로 들어간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영화의 진행 역시 놀랍도록 웹툰에 철저하게 맞춰져 있습니다. 제가 강풀의 웹툰 '이웃사람'을 본 것이 거의 2년 전의 일입니다. 그런데도 영화 [이웃사람]을 보면서 마치 2년 전에 읽었던 웹툰 '이웃사람'을 다시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영화가 아무리 원작에 충실하다고 해도 원작의 모든 것을 담아내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이웃사람]은 제가 기억하고 있는 '이웃사람'의 모든 캐릭터, 모든 에피소드를 담아냈습니다. 물론 웹툰을 다시 읽어보면 영화에서 생략된 에피소드들이 다수 발견되겠지만 최소한 지금 제가 기억하고 있는 웹툰 '이웃사람'과  영화 [이웃사람]은 한치의 차이도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 유료화된 '이웃사람'의 마지막 부분인 22화부터 30화까지를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500원을 결제해야 했지만(그런데 언제부터 강풀의 웹툰이 유료화된거죠?) 웹툰의 마지막 부분의 기억이 희미해서 다시 읽어보지 않고는 베길 수가 없었습니다.

웹툰의 22화부터 30화는 류승혁이 강산빌라를 떠나기 하루전을 담고 있습니다. 류승혁이 안혁모에게 모든 범죄를 뒤집어 씌우고, 강산빌라를 떠나기 전 유수연을 노리는 긴박한 부분인데, 웹툰을 읽으며 영화와 너무나도 똑같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웹툰 '이웃사람'이 비교적 분량이 적었던 것도 한 요인일 것입니다. 하지만 강풀의 웹툰이 기본적으로 30~40화 정도로 다른 작가의 웹툰에 비해 분량이 적음을 감안한다면 [아파트], [바보], [순정만화]가 하지 못한 것을 [이웃사람]은 해낸 것입니다.

분명 [이웃사람]에게도 유혹은 있었을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이 영화가 공포영화인 점을 감안해서 죽은 후에도 송경희(김윤진)와 류승혁(김성균)의 주위를 맴도는 원여선(김새론)을 좀 더 섬뜩하게 그려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이웃사람]은 좀 더 무시무시한 공포영화가 될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혹은 연쇄살인마인 류승혁을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보는 아저씨가 아닌 감정이라고는 전혀 없는 섬뜩한 사이코패스로 변경할 수도 있었을 것이며, 원작의 마지막 결말을 바꿈으로서 원작을 읽은 관객들에게 새로운 반전을 안겨주고 스릴러의 묘미도 획득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김휘 감독은 이 모든 것을 포기합니다. 그는 우직하게 원작을 충실히 영화로 바꾸는 것에만 몰두합니다. 그는 원작의 모든 것을 담아내려 시도하는 감독들의 일반적인 실수인 에피소드의 나열이라는 함정에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캐릭터 구축에도 충실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에 이어 [이웃사람]까지 흥행에 성공하면서 앞으로 강풀 웹툰의 영화화는 공식이 정해진 듯 보입니다. 어설프게 강풀 웹툰을 충무로 시스템 속에 꾸겨 넣으려 시도하지 말고 웹툰의 있는 그대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현재 [26년]이 영화화 준비단계에 있다고 합니다. 전두환 전대통령의 암살이라는 충격적인 소재를 담고 있는 [26년]도 [그대를 사랑합니다]와 [이웃사람]의 성공 원인을 잘 분석해야 할 것입니다.

 

 

살인마도 이웃사람이지만, 결국 해답도 이웃사람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웃사람]의 기본은 인간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인간에 대한 사랑이 [이웃사람]에서 표현되는 방식은 꽤 신선합니다. 그것이 이 웹툰의, 이 영화의 진정한 재미이죠.

겉보기에 이 영화는 인간에 대한 무서움을 담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영화의 기본 줄거리가 요즘 뉴스에서 자주 나오는 묻지마 범죄를 연상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범죄의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 묻지마 범죄는 내 자신이 피해자가 될 수도 있으며, 우리에게 별 다른 원한이 없고, 오히려 평소에 웃으며 인사를 하고 지냈던 우리의 이웃이 갑자기 살인마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저는 집의 문을 굳게 닫고 낯선 사람은 물론이고 낯익은 사람들까지 경계하게 됩니다.  

연쇄 살인마 류승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강산 빌라에 사는 평범한 남자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윗집에 서는 소녀 원여선을 처참하게 살해합니다. 아무런 이유도 없습니다. 그냥 그녀가 거기에 홀로 있었고, 아랫집에 사는 아저씨인 탓에 경계를 조금 늦추었기 때문입니다. 그 뿐입니다.

이쯤되면 [이웃사람]은 강풀의 다른 웹툰과는 달리 인간에 대한 사랑이 아닌, 인간에 대한 두려움을 담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웃사람]은 그러한 인간에 대한 두려움을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풀어 나갑니다. 원여선을 죽인 것은 '이웃사람'이지만 유수연(김새론)을 구한 것 역시 '이웃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가방 가게 주인인 김상영(임하룡)은 TV 뉴스에 나오는 토막 살인에 사용된 가방이 자신의 가게에서 팔린 가방은 아닐지 의심합니다. 하지만 그는 가게 매출에 악영향을 끼칠까봐 신고를 포기합니다.

만약 그때 그가 신고를 했다면 류승혁은 다른 희생자가 발생하기 이전에 쉽게 붙잡혔을 것입니다. 그러나 김상영은 '나만 아니면 되'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외면하고 결국 그 자신이 류승혁의 피해자가 되어 버립니다.

피자 가게의 배달원 안상윤(도지환), 그리고 여선을 잃고 죄책감에 빠진 송경희(김윤진), 어두운 과거를 가지고 있는 빌라 경비원 표종록(천호진)이 만약 김상영처럼 자신과 관계없는 일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면 유수연은 원여선이 그랬던 것처럼 처참하게 희생당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내 일도 아닌데, 내 자식도 아닌데'라는 생각을 가졌다면 결코 류승혁의 살인 행각을 멈추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이웃사람'에게 관심을 가졌습니다. 물론 각자의 이유는 달랐지만 그들은 '이웃사람'에 불과한 유수연을 지키고 싶어 했고, 결국 끔찍한 살인마에게 지켜냈습니다. 그들이 인간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죠.

영화를 보고나서 귀신보다 무서운 것은 인간이지만, 우리가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에 결국 귀신보다 무서운 인간도 우리들이 함께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결국 내가 지키고 싶은 이들을 지키기 위해서 문을 걸어 잠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 것이죠. 인간에 대한 두려움... 어쩌면 그것자체가 비극인지도... [이웃사람]은 우리 주변 사람들의 그런 이중적인 단면을 보여주면서도 '그래도 결국 해답은 이웃사람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P.S. 혹시 엔딩 크레딧이 끝나고 히든 영상은 없었나요? 원작에서는 김종국에 대한 죄책감을 떨쳐낸 표종록에게 류승혁이라는 새로운 죄책감이 등장하는데... 영화에서는 그러한 장면이 나오지 않네요. 혹시나 히든 영상이 있을까 싶어서 끝까지 엔딩 크레딧을 지켜보고 싶었지만 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김새론이 부른 구슬픈 '귀가'라는 음악이 섬뜩하게 느껴져 서둘러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_-

 

 

[이웃사람]을 보고나서 어김없이 그날 밤 내 꿈에는 귀신이 등장했다.

어딘가에 갇혀 슬피 우는 귀신.

그 곁에는 귀신을 가둔 남자의 음흉한 웃음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런 젠장할... 이래서 내가 귀신 나오는 영화를 보지 못하는 거다.

꿈 속의 귀신은 불쌍했지만 귀신이 등장하는 꿈은 언제나 나의 단잠을 설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