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렌 와이즈먼
주연 : 콜린 파렐, 케이트 베킨세일, 제시카 비엘
개봉 : 2012년 8월 15일
관람 : 2012년 8월 16일
등급 : 15세 관람가
1990년 [토탈 리콜]의 추억
며칠 전,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가 EBS에서 낯익은 영화가 방영하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폴 베호벤 감독의 영화 [토탈 리콜]이었는데,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어색한 연기와 조금은 촌스러운 SF가 TV 속에서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토탈 리콜]이 렌 와이즈먼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되었고 곧 국내 개봉할 것이기에 새롭게 리메이크된 [토탈 리콜]을 위해 복습하는 차원에서 폴 베호벤 감독의 [토탈 리콜]을 봤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보니 20년도 더 된 구닥다리 SF 영화에 나도 모르게 푹 빠져버렸습니다.
분명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딱딱한 연기는 지금봐도 안습입니다. 참 한결같은 배우입니다. 90년 당시의 제 리뷰를 보니 '더 이상의 특수촬영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날만한 어마어마한 특수촬영'이라며 이 영화를 평했지만 지금에와서 보니 특수효과 역시 유치하기만 합니다. 하긴 20년 동안 할리우드의 특수효과 기술은 계속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0년 [토탈 리콜]이 제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기억의 혼란에 대한 제법 진지한 질문 때문이었습니다. 영화 속의 더글라스 퀘이드(아놀드 슈워제네거)가 그러했듯이 영화를 보는 저 역시 시종일관 이건 환상일까? 현실일까? 나는 독재자의 편일까? 반군의 편일까? 의문을 품게 했습니다. 물론 영화의 결말은 알고 있었지만 더글라스에 감정이입을 하며 영화를 보다보니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조작된 기억에 대한 혼란이 고스란히 느껴져 흥미로웠습니다.
1990년 [토탈 리콜]을 보고나니 새롭게 리메이크된 [토탈 리콜]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져 버렸습니다.
새로운 [토탈 리콜]에서 주연을 맡은 콜린 파렐은 분명 아놀드 슈워제네거보다 연기를 잘 하는 배우이고, 1억 2천만 달러가 투입된 제작비는 이 영화의 특수효과를 더욱 세련되고 큰 스케일로 완성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바란 것은 단지 그것 뿐이었습니다. 원작을 고스란히 옮겨 놓고 그 대신 배우와 특수효과만 업그레이드 되었다면 렌 와이즈먼 감독의 [토탈 리콜]에 충분히 만족할 생각이었습니다.
8월 13일 영화를 몰아서 보는 바람에 영화 이야기도 아직 다 못 쓴 상황. 그러한 상태에서 새로운 영화를 본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토탈 리콜]에 대한 기대감이 워낙 컸기에 이 영화의 관람을 더이상 미룰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기 때문일까요? [토탈 리콜]은 매력적인 SF 액션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지만 제가 기대했던 조작된 기억에 대한 혼란은 전혀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1990년 [토탈 리콜]은 영화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혼란을 느껴야 했지만, 2012년 [토탈 리콜]은 그러한 혼란을 싹 지워버리고 너무나도 명확한 영웅담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애초에 1990년 [토탈 리콜]을 다시한번 보지 않았다면 2012년 [토탈 리콜]에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을텐데... 이럴땐 복습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1990년 [토탈 리콜]의 추억을 느낄 수 있는 장면들
얼핏 보면 렌 와이즈먼 감독은 1990년 [토탈 리콜]을 충실하게 리메이크한 듯이 보입니다. 물론 무대가 화성에서 지구로 바뀌면서 영화의 설정 자체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기억이 지워진 주인공이 환상을 현실로 바꿔주는 '리콜사'를 방문하면서 벌어지는 모험담은 그대로입니다.
특히 1990년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이 이번 영화에서 고스란히 재현되어 반가웠습니다. 그 중 하나가 가슴이 세 개 달린 창녀 장면입니다.
1990년 [토탈 리콜]은 고등학생 관람가 등급의 영화였고, 저 역시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방학때 영화를 봤습니다. 한창 성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한 시기에 본 영화라서 그런지 영화 속의 가슴 세 개 달린 창녀 장면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장면이 2012년 [토탈 리콜]에 고스란히 재현된 것입니다.
하지만 1990년 [토탈 리콜]에서 가슴이 세 개 달린 창녀 장면은 산소 부족으로 기형적 인간이 대다수인 화성의 빈민가를 배경으로 등장한 장면이기에 충분히 필요한 장면이라는 느낌이지만, 2012년 [토탈 리콜]에서는 조금 느닷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굳이 저 장면에서 가슴이 세 개 달린 창녀가 등장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장면이라 반갑기는 했지만...
1990년 [토탈 리콜]을 회상할 수 있는 또 다른 장면은 더그(콜린 파렐)가 지워진 기억의 흔적을 찾아 브리튼 연방에 변장하여 몰래 들어가는 장면에서 등장합니다.
변장한 더그에 앞서 입국한 중년의 부인. 혹시 카메라가 별 의미없어 보이는 그녀의 모습을 왜그리도 집착하며 보여줬는지 궁금하신 분이 계시다면 1990년 [토탈 리콜]을 다시 보시면 될 듯합니다.
1990년 [토탈 리콜]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장면은 중년 여성으로 변장하여 화성에 입국한 더글라스가 시스템 오류로 들통이 나고, 중년 여성의 얼굴이 갈라지면서 그 속에서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나오는 장면입니다. 2012년 [토탈 리콜]에서 별 의미없어 보이는 중년 여성은 바로 1990년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변장했던 바로 그녀인 것입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며 '앗! 그녀다.'라는 생각에 굉장히 반갑더군요.
분명 렌 와이즈먼 감독은 1990년 [토탈 리콜]의 팬을 위한 팬 서비스도 꽤 신경을 쓴 듯합니다. 그러니 이런 추억의 장면들이 영화의 스토리 전개와 상관없이 불쑥 등장하여 영화를 보는 저를 즐겁게 한 것이죠.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렌 와이즈먼 감독은 원작 영화의 팬을 위한 서비스에는 충실했지만 원작을 충실하게 리메이크할 생각은 결코 없었던 듯이 보입니다.
렌 와이즈먼 감독은 애처가가 분명하다.
2012년 [토탈 리콜]이 1990년 [토탈 리콜]에서 가장 눈에 띄게 바뀐 점은 로리(케이트 베킨세일)라는 캐릭터입니다.
1990년 [토탈 리콜]에서 로리는 샤론 스톤이 맡았습니다. 기억이 조작된채 살아가는 더글라스. 그가 리콜사를 방문하고 지워진 기억이 일부 돌아오자 아내였던 로리는 더글라스를 죽이려 합니다. 아름다운 아내에서 치명적인 킬러로 변신하는 로리는 짧은 등장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였습니다. 샤론 스톤은 이 영화로 주목받은 이후 [원초적 본능]으로 세계적인 스타덤에 올랐었습니다.
렌 와이즈먼 감독은 [토탈 리콜]을 리메이크하면서 로리의 비중을 키웁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로리 역을 연기한 케이트 베킨세일은 렌 와이즈먼 감독의 부인입니다. 이 두 사람은 [언더월드]에서 감독과 배우로 만나 결혼까지 이뤄낸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잉꼬 커플입니다.
그래서일까요? 2012년 [토탈 리콜]의 로리는 1990년 [토탈 리콜]의 로리와 리치터(마이클 아이언사이드) 캐릭터를 합쳐졌습니다. 마치 더그 퀘이드의 섹시하면서도 위험한 가짜 부인 역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2012년의 로리는 1990년 끈질기게 더글라스를 추격하던 리치터 캐릭터까지 흡수해 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렌 와이즈먼 감독이 한가지 간과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캐릭터 행동의 당위성입니다. 로리라는 캐릭터의 비중을 높인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로인한 로리의 과한 행동을 관객인 제게 납득시키지 못한 것입니다.
1990년 로리는 화성의 독재자 코하겐에 의해 더글라스의 부인으로 심어졌고, 더글라스가 기억을 되찾게 되며 자신의 임무대로 더글라스를 제거하려 합니다. 그녀의 역할은 거기까지였고,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리치터는 코하겐의 심복으로 피도 눈물도 없는 캐릭터입니다. 하지만 그가 코하겐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더글라스를 죽이려 했던 것은 로리의 죽음 때문입니다. 영화에서는 특별히 언급되지 않았지만 로리의 죽음을 알게된 리치터는 자신의 상관인 코하겐의 명령을 거부할 정도로 폭주합니다. 로리와 리치터는 어떤 특별한 관계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2012년 로리는 더그의 가짜 아내라는 역할을 수행하다가 더그가 기억을 되찾자 코하겐 수상의 곁에 바짝 붙어 심복 역할을 합니다. 과연 더그의 가짜 아내 역할이 코하겐의 최측근 심복이 할만한 임무인지도 의문이 가지만, 영화의 중반엔 알 수 없는 이유로 자신의 상관인 코하겐의 명령도 무시하고 더그를 죽이려합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로리의 과한 행동에 '도대체 왜 저래?'라는 의문만 갖게 되었습니다.
렌 와이즈먼 감독은 무리수를 두면서 로리 역의 비중을 높였기에 그에 대한 부작용도 고스란히 떠안고 말았습니다. 렌 와이즈먼과 케이트 베킨세일이 잉꼬 부부인것은 알겠지만 그런 사적인 관계 때문에 가장 중요하고 가장 매력적인 악당 캐릭터에 무리수를 둬서 영화의 재미를 망친 것은 분명 좋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조작된 기억의 재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다.
로리 캐릭터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1990년 [토탈 리콜]에서 로리와 리치터의 역할이 합쳐졌습니다. 그리고 그로인한 부작용으로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고 매력적인 악당 캐릭터가 매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렌 와이즈먼 감독은 원작의 재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습니다. 1990년 [토탈 리콜]의 진정한 재미는 특수효과에 의한 시각적 재미가 아닙니다. 필립 K. 딕이라는 전설적인 SF 작가가 완성해낸 조작된 기억에 대한 혼란입니다. (그는 그러한 소재를 자주 사용합니다.)
1990년 [토탈 리콜]에서 더글라스는 리콜사에서 기억을 이식받습니다. 그가 이식받은 기억은 이중 스파이. 그로인하여 더글라스는 지금의 상황이 실제 상황인지, 아니면 리콜사에서 이식을 받은 가짜 상황인지 혼란을 겪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장면으로 리콜사의 직원이 더글라스를 찾아와 '당신은 지금 환상 속에 갇혀 있으니 이 알약을 먹으면 현실로 돌아올 수 있다.'라고 회유하는 장면입니다. 더글라스는 알약을 먹으려다가 리콜사 직원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보고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눈치챕니다.
2012년의 [토탈 리콜]에서도 그런 장면이 나옵니다. 더그의 친구인 해리가 '이건 리콜사에서 심은 환상이니 빨리 현실로 돌아오라'며 더그를 회유합니다. 그런데 더그가 현실로 돌아오는 조건이 멜리나(제시카 비엘)를 총으로 쏘는 것입니다. 그녀는 환상이니 그녀를 제거해야 현실로 돌아올 수 있다는 설명이죠. 하지만 더그는 멜리사의 눈에 흐르는 눈물을 보고 그녀가 환상이 아닌 실제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비슷한 장면으로 보이지만 사실 이 두 장면의 차이는 하늘과 땅 사이입니다. 1990년의 더글라스는 그저 알약 하나만 먹으면 현실로 올 수 있다는 회유를 받습니다. 그런데 2012년의 더그는 옆에 있는 멜리나를 죽여야 현실로 올 수있다고 합니다. 이건 알약 하나 먹는 것과 사람을 죽여야 하는 것처럼 그 차이는 확연합니다.
1990년 [토탈 리콜]을 보면서 제가 더글라스라면 알약을 먹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리콜사에서 기억을 이식하면서 생긴 것이기에 이 모든 상황이 정말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이전의 평화롭던 삶도 그리웠을 것이고요.
하지만 2012년 [토탈 리콜]을 보면서는 해리의 제안은 재고할 가치조차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현실로 돌아오고 싶어도 옆의 사람을 죽이라는 바보같은 제안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지금 상황이 환상인지, 현실인지,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혼란을 안겨주는 것에서 2012년 [토탈 리콜]은 전혀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혼란 대신 명확함만 남았다.
1990년 [토탈 리콜]의 초반은 더글라스가 처한 현 상황이 리콜사에 의해 심어진 기억인지, 아니면 실제 상황인지 혼란을 가져다줍니다.
하지만 이것이 환상이 아닌 실제라는 것이 명확하게 밝혀지면서 영화는 새로운 혼란을 안겨줍니다. 그것은 과연 더글라스는 코하겐의 편인지, 아니면 반군의 편인지에 대한 혼란입니다.
영화의 초반까지 1990년 [토탈 리콜]의 혼란을 그런대로 비슷하게 쫓아가던(하지만 전혀 성공적이지 못했던...) 2012년 [토탈 리콜]은 중반부부터는 그것조차 귀찮다는 듯이 더그의 정체를 명확하게 해놓습니다. 그럼으로서 마지막까지 더그를 살려두려 했던 코하겐의 선택을 우습게 만들었습니다. 자신을 배신한 부하를 끝까지 살리려하는 독재자라니...
1990년 [토탈 리콜]은 영화의 마지막까지 관객에게 혼란을 안겨줍니다. 외계 문명이 만들어 놓은 화성의 자연 대기 제조 장치가 대상입니다. 마지막까지 코하겐은 그 장치가 화성을 폭파시키는 장치라며 더그를 막습니다. 자신의 목숨까지 내던지고 더그를 막는 코하겐을 보며 저는 어쩌면 정말 화성 폭파 장치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폴 베호벤 감독은 이건 환상일까? 실제일까?, 더글라스는 코하겐의 부하일까? 반군의 편일까?, 저 장치는 화성의 대기를 만드는 장치일까? 화성을 폭파시키는 장치일까? 라는 삼중의 혼란을 제게 안겨준 것입니다.
하지만 렌 와이즈먼 감독은 초반에만 잠시 원작 영화의 혼란을 따라하다가 나중에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저 더그의 명확한 영웅담에 집착합니다. 영화의 마지막까지 의심을 품게하던 원작 영화의 매력을 스스로 포기한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원작 영화의 혼란을 포기한 댓가는 분명 있습니다. 렌 와이즈먼 감독은 혼란을 포기한 대신 시원 시원한 액션을 움켜 잡았습니다. 그 덕분에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SF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의 묘미를 살려 냅니다.
영화의 예고편에서도 보여준 자기부상 자동차의 추격씬, 그리고 미로와도 같은 엘리베이터 공간에서의 액션, 지구의 핵을 통과하는 거대한 폴의 파괴씬 등등... 분명 오락영화로서는 충분히 즐길만한 영화적 재미는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필 이 영화를 보기 며칠 전에 1990년 [토탈 리콜]을 봐버렸고, 그 매력에 흠뻑 빠져 버렸습니다. 그것이 제가 2012년 [토탈 리콜]에 실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만약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으셨다면, 그리고 볼 계획이 있으시다면 부디 1990년 [토탈 리콜]은 보지 않고 이 영화를 보시길 개인적으로 추천합니다.
20년이 흐르며 분명 영화 기술은 발전했지만
영화를 이루는 재미를 다양하게 표현하는 것은 오히려 후퇴한 것은 아닌지...
1990년 [토탈 리콜]과 2012년 [토탈 리콜]을 비교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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