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존 허위츠, 헤이든 쉬로스버그
주연 : 제이슨 빅스, 크리스 클라인, 숀 월리엄 스콧
개봉 : 2012년 8월 9일
관람 : 2012년 8월 13일
등급 : 18세 관람가
미국식 10대 섹스 코미디에 화들짝 놀랐던 사연
제가 본격적으로 영화를 좋아하기 시작했던 90년대 초반. 저는 이 영화, 저 영화 할 것 없이 닥치는대로 봤습니다. 특히 유명 배우가 나오는 영화라던가, 유명 감독이 연출한 영화, 영화제 수상작과 흥행에 크게 성공했던 영화들은 필히 챙겨 보았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포키스]라는 영화를 보게된 동기도 이 영화가 1982년 미국 박스오피스를 강타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1982년 [포키스]가 기록한 1억 5백만 달러의 흥행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E.T.]와 시드니 폴락 감독의 [투씨], 테일러 핵포드 감독의 [사관과 신사], 실베스타 스탤론 감독의 [록키 3]에 이은 5위 기록이었습니다.
하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봤던 [포키스]는 제게 충격을 안겨줬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단순했습니다. 6명의 고등학교 친구들이 성인 나이트클럽인 '포키스'에 가지만 그곳에서 굴욕만 당하고 쫓겨납니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통쾌한 복수에 성공합니다. 이 단순한 코미디 영화에서 제가 충격을 먹은 것은 영화의 마지막 부분이었습니다. 복수에 성공한 이들에게 같은 고등학교의 퀸카 여학생이 포상으로 자신과의 섹스를 허락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아직 보수적인 섹스관을 가졌던 저로서는 그 장면에서 상당한 문화적 충격을 느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성에 대해서 상당히 보수적이었습니다. 고등학생이 섹스를 한다는 것 자체가 당시의 제겐 충격적이었는데, 그것도 사랑 없이 마치 장난처럼 하는 [포키스]의 섹스를 저는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리고 몇 년 후 저는 [아메리칸 파이]라는 영화를 보게 됩니다. 어찌보면 [포키스]와 상당 부분 맞닿아 있는 영화였지만 [포키스]를 보면서 느꼈던 충격을 [아메리칸 파이]를 보면서는 느끼지 못했습니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제 섹스관이 조금은 진보적이 된 것일 수도 있었지만 [아메리칸 파이]에서 고딩의 섹스는 [포키스]처럼 장난스럽지 않았습니다. 제가 보기엔 오히려 상당히 진지했습니다. (물론 한 녀석은 제외하고...)
당시에는 상당히 화제가 되었던 파이 자위씬도 흥미로웠는데, 제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두부로 자위를 한다는 녀석을 잘 알고 있었기에 [아메리칸 파이]의 파이 자위씬은 그 녀석을 떠오르게 해서 영화를 보며 맘껏 웃을 수가 있었습니다.
시리즈가 진행되며 점점 야해진다.
[포키스]를 보면서는 불쾌했던 미국식 청소년 섹스 코미디가 [아메리칸 파이]를 보면서는 유쾌한 웃음으로 다가왔습니다. 같은 장르의 영화에서 이렇게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아메리칸 파이]가 가지고 있는 10대 섹스가 예상외로 진지했기 때문이었고, 미성숙한 그들의 자위 행위가 제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을 떠오르게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메리칸 파이]의 성공으로 만들어진 [아메리칸 파이 2]에는 그러한 풋풋한 10대의 섹스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전 편을 이끌었던 주인공들은 대학생이 되었고, 미성년자라는 틀에서 벗어난 그들은 더욱 야한 섹스 파티를 준비하며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마구 날뜁니다.
그리고 2003년 [아메리칸 파이 웨딩]으로 이 시리즈는 막을 내리는 듯이 보였습니다. 성욕을 참지 못하고 파이에 자위 행위를 하던 짐(제이슨 빅스)은 대학생이 되어 야한 섹스 파티를 준비하더니 결국 진정한 사랑을 만나고 결혼을 하고 막을 내린 것입니다. 마치 사춘기에서 성인으로 짐의 성장담을 보는 듯한 이러한 기획은 나름 새롭기도 했지만 [아메리칸 파이]의 풋풋한 고딩의 섹스 소동에 좋은 추억을 간진한 제겐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어른이된 이들의 야한 섹스 소동에 포커스가 맞춰지는 것만 같아서 아쉽기도 했습니다.
[아메리칸 파이 웨딩]의 리뷰 제목이 '아직도 할 이야기가 남았니?'였습니다. 저는 이쯤에서 [아메리칸 파이] 시리즈가 막을 내리길 바랬던 것입니다.
하지만 10년 만에 시리즈의 4편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번엔 성인이 된 이들이 동창회를 열면서 벌어지는 섹스 소동이라고 합니다. 솔직히 기대보다는 걱정이 먼저 되었던 것은 당연했습니다. 이미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풋풋함은 사라지고 자극적인 야함만 부각되고 있음을 알기에 [아메리칸 파이 : 19금 동창회] 역시 시리즈라는 미명 아래 얼마나 야한 장면만을 선보일지 걱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본 후 블친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영화 벙개 시간까지 2시간 남짓 남은 상황. 저는 그날을 함께 해준 처남에게 [아메리칸 파이 : 19금 동창회]를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처남의 대답은 '뭐 이런 영화를 보려고 해요?'였습니다. 하긴 처남과 함께 보기엔 영화의 제목이 거시기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아메리칸 파이 : 19금 동창회]를 제외하고는 볼 영화가 없었습니다.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점점 실망감만 느꼈기에 저 역시 굳이 극장에서 볼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남은 시간을 멀뚱히 커피나 마시며 보내는 것보다는 13년 전의 추억이라도 회상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 결국 처남을 설득했습니다. 이렇게 [광해, 왕의 된 남자]의 제작보고회, [나는 왕이로소이다]의 관람에 이은 8월 13일의 영화 바다 제 3탄... [아메리칸 파이 : 19금 동창회]의 이야기가 시작된 것입니다.
결혼을 하고 나니 철이 들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제가 [아메리칸 파이 : 19금 동창회]를 보기 전에 가장 우려했던 부분은 갈수록 야해지는 시리즈의 정체성입니다. 애초에 [아메리칸 파이]는 주체할 수 없는 성욕을 간직한 고딩의 해프닝을 담은 영화였습니다.
그랬던 영화가 1편의 주인공들을 쫓아 가면서 그들의 성장담을 담는데 주력합니다. 그러니 주체할 수 없는 성욕을 간직한 풋풋한 고딩은 온데 간데 없고 성인 되어 버린 녀석들의 야한 이야기만 넘쳐나게 된 셈입니다.
[아메리칸 파이 웨딩]이 개봉한지 이제 9년이 지났습니다. 짐과 미셀(앨리슨 해니건)은 단란한 가정을 이루었고 귀여운 아들까지 두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교 동창회가 열립니다. 제목 그대로 '19금 동창회'가... 그렇다면 과연 이들의 동창회는 불륜이 넘쳐나는 난잡한 섹스 동창회가 되어 버리는 것일까요?
그런데 예상외로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야한 장면은 최대한 자제되고 오히려 어른이 되어 버린 짐과 그의 친구들의 자아 찾기가 펼쳐집니다. 영화의 부제목이 안겨다주는 야릇한 분위기를 기대했던 분들에겐 실망이겠지만 저는 오히려 좋았습니다. 그들도 이제 성욕을 주체할 수 없는 고딩이 아닌 성욕을 이성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성인이니까요.
존 허위츠와 헤이든 쉬로스버그 감독은 [아메리칸 파이 : 19금 동창회]에서 1편인 [아메리칸 파이] 팬들을 제대로 추억으로 안내하려고 작정을 한 듯이 보입니다.
1편의 주역이었던 짐과 그의 친구들은 물론이고, 그들의 여자 친구들까지 모두 한 자리에 모아 놓았기 때문입니다. 정말 제대로 1편의 동창회를 한 셈입니다.
그렇게 동창회를 열어 놓고 섣부르게 야한 섹스 파티로 빠지지 않은 것도 고무적인 일입니다. 짐과 미셀의 부부 관계 회복기, 오즈(크리스 클라인)와 헤더(미나 수바리)의 진정한 사랑 찾기, 케빈(토마스 이안 니콜라스)과 비키(타라 레이드)의 첫 사랑의 추억 등등 [아메리칸 파이 : 19금 동창회]는 절대 선을 넘지 않으며 성인이 되어버린 1편의 주역들의 이야기를 펼칩니다.
그런데 그들의 이야기가 꽤 공감이 되었습니다. [아메리칸 파이] 이후 2, 3편이 진행되면서 저와의 공감대가 점점 멀어졌던 이 영화는 4편에 와서야 다시금 저와의 공감대를 형성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들의 9년만의 이야기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대로라면 1년마다 동창회는 나도 찬성
제 고등학교 시절은 어땠을까요? 저 역시 그 즈음에 자위 행위를 시작했고, 성에 대해서 왕성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메리칸 파이]의 짐 일당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는 순수한 짝사랑에 빠져 있었고, 소설가가 되겠다며 수업시간에 빈 노트를 꺼내 놓고 수업은 듣지 않고 노트에 소설을 쓰곤 했습니다. 그렇게 제가 쓴 소설은 반 친구들에게 꽤 인기가 있었습니다.
만약 고등학교 동창회를 연다면 그때의 녀석들을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겠죠. 우리들의 왕성했던 성에 대한 호기심과 풋풋했던 첫사랑, 그리고 당시 우리가 꿨던 꿈들까지... 만약 그 동창회에 제 짝사랑이라도 나온다면 [아메리칸 파이 : 19금 동창회]의 케빈이 그러했듯이 구피에게 죄책감을 느끼며 잠시라도 설래였을 것입니다.
젊은 시절 모험가가 되고 싶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한 핀치(에디 케이 토마스)의 좌절, 성인이 되어서도 사고뭉치라며 따돌림당하는 스티플러(숀 월리엄 스콧)의 분노. 이것은 비단 영화에서의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당장 고교 동창회를 연다면 우리들, 그리고 우리들의 친구들 모습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동창회가 즐거웠습니다. 아들이 태어난 후 관계가 소원했던 짐은 미셀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오즈와 핀치는 진정한 사랑을 찾고, 스티플러 역시 삶의 자신감을 되찾습니다. 케빈은 첫 사랑을 추억을 다시한번 간직하게 되고요.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할지도 모를 모두가 행복해지는 이 고교 동창회를 보면서 저 역시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들이 그리워졌고, 제 옆의 구피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섹스 코미디답게 조금은 황당한 섹스 소동이 펼쳐지기도 합니다. 특히 짐을 유혹하는 10대 소녀 카라는 조금 무리수이다 싶을 정도의 장면이었습니다. 하지만 핀치의 어머니와 스티플러의 섹스는 1편의 핀치와 스티플러 어머니의 섹스씬에 대한 유쾌한 반격 정도로 받아들인다면 큰 거부감은 없을 듯이 보입니다. (물론 제 정서로는 친구와 친구 어머니의 섹스는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지만...)
영화의 마지막에 짐과 그 일행은 1년에 한번씩 동창회를 열자고 서로에게 제안을 합니다. 만약 예전같았다면 '지겨우니 이제 그만...'을 외쳤겠지만 이 녀석들의 동창회가 유쾌했기에 저도 모르게 '찬성'을 외치고 말았습니다. 네, 뭐 조금 지겨우면 어떻습니까? 추억을 되새길 수 있다면 녀석들의 동창회에 저 역시 참가하고 싶습니다.
어른이 되어서야 진지하고 건전해진 녀석들의 섹스 파티.
그래서인지 나 역시 그들의 파티에 동참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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